“광고전략? 크리에이티브? AI? 일단 다 녹여!” 블렌드엑스의 광고 제작 비법
김창범·이민규 블렌드엑스 공동대표 인터뷰

# 사례 1
9년 전 생명보험 기업 AIA생명은 언어장애를 겪는 어머니가 딸에게 생일 축하 노래를 불러준다는 내용의 ‘엄마의 첫 번째 노래’ 캠페인을 공개했다. 국내외 음성 전문가가 모여 성대 구조를 분석, 실제 음성을 복원한 이 캠페인은 많은 소비자에게 감동을 안겼고, 공개 한 달 만에 누적 조회수 900만을 넘기며 유수 광고제에서 수상의 영광을 거뒀다.
# 사례 2
프리미엄 캡슐커피 브랜드 네슬레코리아는 2년 전 새 캠페인을 선보였다. ‘다양한 레시피’라는 콘셉트로 유재석, 김숙, 정재형 등 유명인의 유튜브 채널에 브랜디드 콘텐츠를 진행했다. 이후 페스티벌 현장에서 시음 행사를 열고 SNS 콘텐츠로 바이럴을 유도했다. 이 같은 멀티 채널 연계 마케팅 전략은 단순 유입을 넘어, 오가닉 매출을 올리는 성과로 이어졌다.
위에서 소개한 두 캠페인 모두 종합광고대행사 ‘블렌드엑스(BlendX)’가 진행한 프로젝트다. 분야도 스타일도 전혀 다르지만 한 가지 공통점이 있다. ‘블렌드(Blend) 철학’이 투영됐다는 점이다.
여기서 말하는 블렌드, 커피 메뉴 이름 앞에 붙는 그 단어가 맞다. 김창범 블렌드엑스 공동대표는 ‘블렌드 철학’을 “기존 프레임을 해체해 최선의 방식으로 재조립하는 것”이라고 설명한다. 한 마디로 ‘다 녹이고, 섞은 뒤, 새로 뽑아낸다’는 뜻. 고정관념에 얽매이지 않기 위한 원칙이자 신념이다.
앞선 두 캠페인이 대표적이다. AIA생명의 당초 의뢰는 CSR(기업의 사회적책임) 캠페인이었다. 블렌드엑스는 브랜드의 진정성이 잘 드러나는 동시에 소비자에게 감동을 줄 수 있는 캠페인을 고민하다 음성 복원 기술 프로젝트를 기획했다. 김창범 대표는 “예산이 부족했지만 새로운 걸 만들기 위해 직접 발로 뛰어가며 전문가를 섭외했다”고 했다.
네슬레코리아 사례도 비슷하다. 원래 요청사항은 바이럴 중심의 마케팅이었다. 하지만 블렌드엑스는 단순 유입을 넘어 실제 매출로 연결되는 캠페인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이에 브랜드 컨설팅을 거쳐 강점을 파악한 뒤 ‘브랜디드 콘텐츠 – 오프라인 이벤트 – SNS 콘텐츠’로 이어지는 멀티 채널 캠페인을 제안해 실행까지 이뤄냈다.
이처럼 광고주의 요청사항을 그대로 따르는 대신, 처음부터 다시 고민해 실제 성과로 연결되는 결과물을 만드는 게 블렌드 철학이라는 설명이다.
이민규 블렌드엑스 공동대표는 “광고 하나로 임팩트를 주는 시대는 끝났다”며 “앞으로는 디지털 미디어의 모든 과정을 조합해 ‘어디에서 보여주고 행동을 유발할 것인가’하는 전반적인 커뮤니케이션 전략을 잘 설계해야 소비자를 설득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규모는 크지 않지만 못하는 게 없는, 강한 종합광고대행사 블렌드엑스의 두 대표를 만나 블렌드 철학을 자세히 들어봤다.

광고 하나로 ‘끝’인 시대는 이제 끝났다
블렌드엑스의 색깔이 가장 잘 드러난 사례로 AIA생명의 ‘엄마의 첫 번째 노래’ 캠페인을 꼽았다.
김창범 대표(이하 김): 이 캠페인은 블렌드엑스가 아직 분사하기 전, 모회사인 더크림유니언의 광고 조직이었을 때 진행한 프로젝트다. 당시 예산이 한정돼 있었기 때문에 기술 개발이 필요한 부분은 자체 설계하거나 직접 발로 뛰며 방법을 찾았다. 다행히 캠페인의 취지에 공감하는 많은 외부 파트너들이 진심으로 참여한 덕에 좋은 결과물이 나왔다. 이후 비슷한 프로젝트들을 연달아 진행했고, 국내에서 ‘IT 기술을 광고에 가장 잘 녹여내는 조직’이라는 평가를 받기도 했다. 이때 ‘고객사의 요청사항 그 이상을 고민한다’는 현재 정체성이 정립됐다.
네슬레코리아 사례를 꼽은 이유도 궁금하다.
이민규 대표(이하 이): 당시 네슬레코리아의 캡슐커피 및 머신 부문의 주요 니즈는 바이럴을 통한 온라인 구매 루트를 구성하는 것이었다. 유입량 증가가 목표였는데, 더 좋은 결과를 위해 브랜드 컨설팅에도 참여했다. 이후 콘셉트를 도출한 뒤 브랜디드 콘텐츠와 오프라인 행사, SNS 콘텐츠를 연계하는 캠페인을 진행하기로 했다. 결과적으로 브랜드 가치를 높여 오가닉 구매를 높이는 데 기여할 수 있었다. 다양한 방식을 한 데 섞어 좋은 결과물을 완성했다는 점에서 블렌드 철학에 잘 들어맞는 사례라고 생각한다.
고객사의 요청사항을 그대로 따르지 않는 이유가 있나.
김: 우리는 고객사의 ‘가려운 곳’을 파악해 최선의 방식으로 해결하고 싶다. 이를 위해선 고객이 요청한 내용을 그대로 이행해선 안 된다. 왜 이런 요청을 했는지 그 배경과 상황, 내부 조직의 구조나 이해관계, 타깃 시장의 특성 등 다양한 변수를 함께 고려해야만 최적의 전략을 설계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 과정이 곧 ‘한 데 녹인다’는 블렌드 철학이기도 하다.
블렌드 철학, 독특하다. 어떻게 떠올리게 됐나?
이: 광고 시장의 변화 속에서 자연스럽게 도출된 결론이다. 예전에는 광고회사가 임팩트 있는 광고 한 편 만들고 ‘우리 역할 끝!’이라고 말할 수 있었는데, 이젠 상황이 달라졌다. 정보는 넘쳐나고 트렌드는 급변한다. 앞으로는 영상, SNS, 퍼포먼스 등 각 마케팅 활동이 전체적인 관점에서 어떤 효과를 내는지 이해할 수 있어야 한다. 따라서 콘셉트부터 콘텐츠, 미디어에 이르기까지 총체적인 디지털 커뮤니케이션 믹스를 설계하는 회사가 되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나온 개념이 ‘혼합’이구나.
이: 그렇다. ‘섞어서 새로 뽑아낸다’는 뜻인데, 좀 촌스러우니 ‘기존의 고정관념을 모두 녹여 창의적인 결과물로 도출한다’고 말하곤 한다(웃음).
진행했던 여러 캠페인 사례만 봐도 기획, 제작부터 영상, 오프라인, SNS까지 다양한 영역을 소화하고 있다. 블렌드 철학을 실행하기 위해서라도 다양한 영역의 조합이 중요할 것 같은데, 조직은 어떻게 구성돼 있나?
김: 전략가, TV광고 시절 기획자, BTL 전문가, 디지털 미디어 전문가, SNS 전문가 등이 모두 함께 일한다. 고객사의 마케팅 니즈를 다 소화할 순 없어 외주를 돌리곤 하는 다른 대행사와 달리 블렌드엑스는 각 전문 영역을 모두 내재화했다. 그룹장은 모두 15년 차 이상 베테랑이다. 덕분에 전문성과 일관성을 갖춘 결과물을 만들어낼 수 있다고 자부한다. 한 마디로 블렌드엑스는 ‘각 분야 전문가들이 모두 모여 있는 종합광고대행사’다.

팀 간의 협력이 많을 텐데 조직 운영에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김: 좋은 광고회사는 시끄러워야 한다고 생각한다. 최대한 많이 논의해야 좋은 결과물이 나오기 때문이다. 일반적인 종대사에는 팀 간에 보이지 않는 선이 있다. 하지만 저연차 퍼포먼스 담당자가 시니어 크리에이티브 담당자에게 “요즘 미디어는 이런 카피에 반응하지 않아요”라고 말할 수 있어야 하고, 영상 제작자가 미디어 플래너에게 “이런 미디어 믹스가 더 효율이 높을 것 같다”고 제안할 수 있어야 한다. 블렌드엑스는 그게 가능한 회사다.
이: 딱 세 가지 원칙만 둔다. 첫 번째는 각자 알아서 하는 자율성, 두 번째는 자유로운 논쟁을 할 수 있는 전투력, 세 번째는 자기 역할에 책임지는 희생 정신. 나도 회의실에 들어가는 순간부터 원플레이어다. ‘민규님’으로 불리며 같이 치고 박는다.
그런 분위기를 유지하는 게 어렵지 않나?
김: 수평적 문화를 유지하는 게 중요하다. 그래서 자주 부장님 농담을 던지며 분위기를 풀려고 노력한다.
이: 부장님 농담을 너무 해서 피곤하다.
매번 모든 팀원이 섞여 논쟁하는 방식에 부작용은 없나.
이: 효율적인 방법은 아니다. 일단 회의가 길어지고, 간혹 토론하다 서로 감정이 상하기도 한다. 하지만 이건 부작용이라기보다는 ‘감수해야 할 과정’이라고 생각한다. 처음이 어렵지 몇 번 반복하다 보면 속도도 붙는다.
AI 시대, ‘잘 섞는’ 능력 더 중요해질 것
올해로 4년 차를 맞은 블렌드엑스는 업력만 따지면 10년이 넘었다. 국내 대표 디지털 에이전시 더크림유니언의 광고 조직 ‘캠페인 아이디어 본부’가 전신이다. 초반엔 독창적인 크리에이티브로 이름을 알렸고, 2018년부터 ‘데이터’에 대한 시장 니즈가 늘어나자 기획과 제작을 넘어 퍼포먼스 미디어 영역까지 서비스를 확장했다. 이후 2022년 광고 역량과 철학을 토대로 독립법인 블렌드엑스를 출범했다.
두 분이 어떻게 함께하게 됐는지 궁금하다.
김: 2015년에 더크림유니언이 광고 전담 조직을 신설할 때 본부장으로 합류했다. 이후 팀을 쭉 운영하다 블렌드엑스로 분사할 때 오랜 기간 알고 지내던 이민규 대표에게 공동대표 자리를 제안했다.
이: 마침 새로운 것에 대한 갈증을 느끼고 있었다. 그간 제일기획, 글로벌 광고회사, 광고주, 디지털 광고회사, 외부 교수까지 다양한 경험을 했다. 이 과정 속에서 깨달은 것 한 가지. 이제는 임팩트 있는 광고 한 방으로 뭔가 바뀌는 시대가 아니라는 점이다. 때문에 기존에 없던 새로운 걸 해보겠다는 블렌드엑스의 제안에 흔쾌히 승낙했다.

실제로 함께 일해보니 어떤가?
이: 다른 건 몰라도 하나는 일치한다. 재미있는 회사를 만들자는 것.
김: 우리 둘의 공통점은 광고대행사와 광고주를 모두 경험해봤다는 점이다. 우리 업이 새로운 무언가를 만드는 일이잖나. 이왕 하는 거 직원들이 즐거움과 성취감을 느낄 수 있는 환경을 만들고 싶었다. 야근을 하더라도 즐거울 수 있는!
이: 그건 좀 위험한 발언 아닌가(웃음).
두 분의 그런 이력이 고객사와 관계를 유지하는 데도 도움이 됐겠다.
김: 맞다. 둘 다 광고주 사이드를 경험했으니, 무리한 요구가 있을 때에도 브리프나 전달사항에는 적히지 못한 외적인 이유를 충분히 짐작하고 대응할 수 있다. 또 최대한 정직하고 진심을 다해 일하기 때문에 고객사도 우리를 예뻐할 수밖에 없는 것 같다.
이: 고객사 대할 때도 세 가지 비결이 있다. 하나는 목적지향형 제안이다. 바이럴 이슈를 고민해달라고 했지만 차후 오가닉 방문에 대한 고민까지 제안하는 일종의 ‘건방짐’을 발휘하는 것이다. 두 번째는 즉각적인 액션이다. 가능한 빠르게 가능한 답변을 한다. 세 번째는 요즘 시대에는 보기 드문 친근함이랄까. 고객사와 밥 먹고 차 마시고 술 마시는 문화를 즐기는 편이다. 디지털 시대일수록 오프라인의 호흡이 한 방향을 바라보는 힘을 만드는 것 같다.
최근 AI 관련 신사업을 시작했다고 들었다. 간단히 소개해달라.
김: BX ONE이라는 브랜드 전략 자동화 플랫폼을 오픈했다. 사용자가 업종과 타깃, 핵심 메시지를 입력하면 AI가 전략, 키워드, 시장조사 리포트를 자동으로 만들어주는 웹 서비스다. 스타트업과 중소기업 담당자가 대상으로, 누구나 이용할 수 있도록 무료로 제공 중이다.

BX ONE을 출시하게 된 계기가 궁금하다.
이: 브랜드 컨설팅이 꼭 필요한 중소기업이나 창업자들을 많이 만났다. 그런데 비용 문제로 전문광고대행사를 이용하지 못하더라. 이를 AI로 해결할 수 있겠다고 판단했다. BX ONE은 단순히 자료를 요약하거나 문구를 만드는 수준이 아니라, 실제 브랜드 컨설팅처럼 소비자 니즈와 클라이언트의 강점을 연결, 전략 구조를 짜준다. 과장 좀 보태서 그대로 상부에 보고해도 괜찮을 수준이다.

광고인으로서 AI를 어떻게 보고 있나?
김: 스마트폰의 등장으로 모바일 앱 생태계가 폭발적으로 열렸던 것처럼, 패러다임의 전환이 시작되는 시점이라고 생각한다. 이미 업무 방식과 비즈니스 모델이 바뀌고 있다. 예컨대 CG 기술처럼 비용과 시간 문제로 접근하지 못했던 걸 누구나 시도해볼 수 있게 됐다. 단순한 업무 효율을 넘어 창의의 영역까지 영향을 미친다는 점이 주목할 만하다.
블렌드엑스는 AI 시대를 어떻게 준비하고 있나?
이: 모두가 각자 직무에 AI를 어떻게 도입해야 할지 고민해야 한다. 전 직원에게 필요한 AI 도구와 교육을 전폭적으로 지원하고 있다.
AI를 광고에 활용할 때 주의할 점이 있다면?
김: 기술력을 자랑하려 해선 안 된다. 앞서 소개한 ‘엄마의 첫 번째 노래’가 좋은 예시다. 당시 가장 중요하게 여겼던 건, 단순히 최상의 기술력을 보여주는 게 아니라 기술이 감성을 자극하는 커뮤니케이션의 도구가 되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그래야 소비자를 설득할 수 있다.
블렌드엑스의 중장기 목표는 무엇인가.
김: 비즈니스적으로는 중소기업과 창업자들을 위한 맞춤형 올인원 브랜딩 솔루션을 제공하려고 한다. 전문 대행사 수준의 브랜드 메시지와 시장 분석을 누구나 손쉽게 활용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우리 목표다. 아울러 ‘디지털 마케팅 액셀러레이터’로서의 역량도 강화해 나갈 계획이다.
이: 광고하고 싶은 사람이 모두 광고할 수 있는 세상을 만들고 싶다. 이를 위해 종합적인 인재를 모으고, 오프미디어부터 디지털시대까지의 광고 방식을 엮어보고 있다. 변화하는 광고 비즈니스의 끝을 부여잡고 이 시간을 살아가려는 회사가 아닌, 아직 수풀에 가려 길이 나있지 않지만 그곳에 발자국을 밀어 넣는 미래지향적인 광고회사가 되고 싶다.
마지막으로 더 나은 디지털 프로젝트 결과물을 내기 위해 고민 중인 현직 PM, PO, 디자이너에게 조언을 한다면?
이: 자신의 주특기는 분명히 인지하되, 여러 분야로 피보팅(Pivoting)해보는 시도를 하길 바란다. 예컨대 영상 광고제작자가 밈 콘텐츠를 시도한다거나, 기획자가 논리적 결함 여부와 무관하게 페스티벌의 떼창이 주는 감성의 절정을 이해해봤으면 좋겠다. 다양한 도구를 섞어낼 때만 발견할 수 있는 ‘새로운 것’이 있다.
김: 모든 걸 혼자 해결하려 하지 말고, 서로의 아이디어를 더해보는 것이 중요하다. 그리고 꼭 덧붙이고 싶은 말은, 겸손한 열정과 집요한 긍정이다. 자신의 강점을 어필하는 것도 좋지만, 겸손한 태도를 잃지 않고 끝까지 긍정적으로 고민을 밀어붙이다 보면 결국은 차별화된 결과물이 나온다고 믿는다. 이 집요한 고민이 더해진 결과물은 고객사로부터 어떤 질문이 들어와도 쳐낼 수 있는 단단한 힘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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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에디터장준영 (zzangit@ditoda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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