앤트로픽과 손잡은 세일즈포스… ‘사스 생존법’ 통할까?
인터페이스 없는 소프트웨어의 등장

올해 초 ‘사스포칼립스(SaaSpocalypse)’가 미국 월가와 소프트웨어 업계를 강타했습니다. 사스 종말론. AI 에이전트의 발달로 기존 사스(SaaS, 서비스형 소프트웨어)들은 필요 없게 될 것이라는 공포였습니다.
기폭제는 앤트로픽이 1월 선보인 업무용 AI 에이전트 ‘클로드 코워크’였습니다. 목표만 있으면 스스로 판단해 다단계 업무를 실행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춰 업계에 파장을 일으켰죠. 이에 더해 앤트로픽이 법률·재무 등 11개 비즈니스 영역의 플러그인(확장 도구)까지 내놓자 시장은 요동쳤습니다. 세일즈포스, 어도비 등 글로벌 사스 공룡들의 주가가 일제히 급락하기도 했습니다. 누구나 자연어로 애플리케이션을 만들 수 있는 ‘바이브 코딩’ 시대가 열렸고, 사스의 몰락은 우려가 아닌 현실이 되는 듯했습니다.
그로부터 약 6개월이 흐른 지난달 26일, 세일즈포스가 흥미로운 소식을 전했습니다. 사스 종말론에 불을 지폈던 앤트로픽과 대규모 파트너십 ‘클로드포스(Claudeforce)’를 맺고 플러그인을 출시하겠다고 발표한 것입니다. 요약하자면, 세일즈포스가 수십 년간 축적해온 고객 데이터와 비즈니스 맥락 등을 앤트로픽의 클로드에서 바로 쓸 수 있게 된다는 내용입니다. 자사의 인터페이스 없이도 살아남을 수 있는 소프트웨어로 변모하겠다는 거죠.
세일즈포스가 사스 종말론의 희생양 중 하나로 지목돼왔던 만큼 양사의 협력은 언뜻 ‘적과의 동침’처럼 보이기도 합니다. 어째서, 이 글로벌 CRM(고객 관계 관리) 사스 기업은 AI 안으로 들어가는 선택을 한 것일까요. 사스가 AI에 백기를 든 것일까요, 아니면 생존을 위한 실리적 선택일까요. 세일즈포스가 앤트로픽과 손을 잡은 까닭에 대해 알아봤습니다.
이번이 첫 만남은 아니다

세일즈포스와 앤트로픽의 만남은 이번이 처음이 아닙니다. 양사는 이전부터 꽤 긴밀한 협력 관계를 이어온 사이였죠.
세일즈포스는 지난해 말부터 에이전트포스 등 자사의 플랫폼 내부에 클로드를 기본 파운데이션 모델로 탑재해 사용해 왔고요. 회사가 소유하고 있는 협업 플랫폼 ‘슬랙’ 내 AI 비서의 모델로도 클로드를 쓰고 있습니다. 앤트로픽 역시 세일즈포스의 CRM을 선호하며, 사내 업무에 슬랙을 적극 활용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죠. 올해 6월에는 슬랙 채널 안에서 클로드를 호출해 사용하는 ‘클로드 태그(Claude Tag)’ 기능을 출시하기도 했습니다.
때문에 이번 클로드포스 파트너십은 세일즈포스와 앤트로픽 간 관계 확장으로 볼 수 있습니다. 다만 서로의 플랫폼을 사용하던 기업 고객이자 협업 파트너에서, 세일즈포스 데이터와 생성형 AI 클로드를 하나로 통합하는 공동 생태계의 동반자로 진화했다는 점이 결정적 차이입니다. 이를 두고 마크 베니오프 세일즈포스 CEO는 “글로벌 선도 AI와 CRM의 강점을 결합한 파트너십”이라 평했고, 다리오 아모데이 앤트로픽 CEO는 “그간 양사가 해온 협업의 총합보다 훨씬 큰 시너지 효과를 창출하게 될 것”이라고 강조했습니다.

파트너십의 핵심은 클로드 안에서 세일즈포스의 데이터 및 워크플로우에 직접 접근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가장 먼저 선보이는 솔루션 ‘세일즈포스 인 클로드’가 대표적입니다. 세일즈포스 인 클로드는 회의 준비, 딜 상태 검토, 파이프라인 분석 등 37개의 사전 구축된 영업 스킬 등을 제공하는 클로드 전용 플러그인입니다.
이는 클로드 대화창에서 세일즈포스 CRM 업무를 할 수 있도록 지원합니다. 영업 담당자는 세일즈포스 앱을 별도로 열지 않고도, 클로드에서 CRM 데이터를 조회하고 즉시 작업할 수 있게 되고요. 클로드 내 에이전트는 실시간 매출 맥락을 기반으로 추론해 영업 파이프라인을 자동 갱신할 수도 있죠.
세일즈포스·앤트로픽 합친 ‘클로드포스’ 내달 오픈… AI와 사스 동맹
전 업무 환경서 자율형 에이전트 구현 목표
왜 클로드로 들어간 걸까

그렇다면 세일즈포스는 왜 자사 플랫폼의 울타리를 넘어 클로드 안으로 들어가는 선택을 한 것일까요.
여기에는 ‘에이전트의 부상’과 ‘사스 인터페이스의 쇠락’이라는 패러다임 전환이 있습니다. 에이전트의 발전으로 AI가 접근할 수 있는 데이터와 처리할 수 있는 업무 영역이 대폭 늘어났습니다. 그만큼 사용자가 사스 전용 인터페이스에 접속할 필요성은 빠르게 줄어들고 있죠. 대시보드, 메뉴, 필터를 일일이 탐색하지 않아도 에이전트와의 대화만으로 업무를 완료할 수 있게 됐으니까요. 특히 ‘바이브 코딩’의 등장으로 개발자 한 명이 며칠 만에 사스 기능을 구현해내는 일도 가능해졌습니다.
이는 앞서 언급한 ‘사스 종말론’의 위기감과 맞닿는 지점입니다. 실제 글로벌 시장조사기관 가트너는 에이전트가 기존 UI·UX 중심의 애플리케이션을 거치지 않고 결과를 제공하면서, 2030년까지 약 2340억 달러(약 314조 원) 규모의 엔터프라이즈 소프트웨어 지출이 위협받고 있다고 경고했습니다. 조지 브로클허스트 가트너 수석 부사장은 “에이전트는 소프트웨어를 눈에 띄지 않게 만들며 사용자 증가와 매출 증가 사이의 연결고리를 끊어놓는다”며 “에이전트 사용자가 점점 더 늘어나면서, UI는 더 이상 차별화 요소가 아니다”라고 짚었죠.
세일즈포스의 이번 선택도 저물어가는 사스 인터페이스 시대의 생존 돌파구로 풀이됩니다. 화면을 찾는 사용자의 발길이 줄어드는 상황에서, 자사가 가진 데이터와 맥락이라는 무기를 들고 AI 에이전트의 뒷단(백엔드)으로 들어가는 방식을 택한 것입니다.
마크 베니오프가 클로드포스를 소개하며 “UI 자체가 AI”라고 언급한 것도 이 맥락에서 볼 수 있습니다. 사스 업무 환경의 기본값을 전통적인 인터페이스에서 에이전트로 이동하는 과정인 것이죠. 세일즈포스의 애플리케이션 및 마케팅 담당 사장인 패트릭 스토크스는 클로드포스에 대해 “클로드 코드가 개발자들에게 했던 것과 같은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이라며 “이는 지식 노동자들을 위해 똑같은 일을 해낼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완전히 새로운 업무 방식이다”라고 설명하기도 했습니다.

사실 세일즈포스는 이미 인터페이스 없는 시대를 준비하고 있었습니다. 올해 4월 공개한 헤드리스 360(Headless 360)이 그 주인공입니다. 헤드리스, 말 그대로 화면(머리)을 없앤 건데요.
이는 AI 에이전트가 인터페이스 없이 세일즈포스 플랫폼 기능을 실행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솔루션입니다. 일종의 배관망입니다. 사용자가 웹 화면에 접속할 필요 없이, 에이전트가 API, MCP 등 연결 도구를 통해 원하는 데이터·로직에 접근할 수 있도록 길을 터주는 역할을 하죠. 이 같은 헤드리스 구조는 클로드포스의 기술적 토대가 되기도 했습니다. 세일즈포스가 인터페이스 없는 소프트웨어로 살아남기 위한 포석이 된 셈이죠.
에이전트 시대, 사스를 더 쓸 거라고?
에이전트가 사람 대신 업무를 수행하면 소프트웨어 사용량이 줄어 사스 기업이 타격을 입을 것이라는 전망은 흔히 찾아볼 수 있는 비관론입니다.
하지만 세일즈포스는 이를 정면 반박합니다. AI가 고도화될수록 사스의 가치가 더 부각될 것이라는 시각이죠. 화면을 내려놓고 AI 에이전트의 백엔드에서 작동하겠다는 세일즈포스의 선택의 근거도 여기 있습니다.
마크 베니오프는 ‘사스 종말론’에 가장 강하게 반발해 온 대표적 인물입니다. 이번 파트너십 발표 직후 CNBC와의 인터뷰에서도 “사스 종말론은 헛소리”라며 비관론자들을 향해 일갈하기도 했는데요. 그는 프론티어 AI 모델이 사스를 대체할 수 없을 것이라고 주장합니다. 오히려 “클로드 같은 AI 모델은 세일즈포스 플랫폼에 저장된 데이터, 맥락 등에 의존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는데요.

사스의 자산인 원본 데이터와 비즈니스 맥락, 워크플로우 등은 AI가 스스로 창조할 수 없는 영역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이는 AI가 내놓는 결과물의 품질을 좌우할 정도로 중요합니다. 아무리 똑똑한 추론 능력을 갖춘 모델도 장기간 축적된 ‘진짜 데이터’가 없으면, 출력하는 결과물에 한계가 있습니다. 더군다나 AI의 성능은 향상되고 가격은 저렴해지는 흐름입니다.
이에 변별력을 갖추고자 데이터 경쟁력을 확보하려는 AI 기업들의 움직임은 분주해지고 있죠. 실제로 마크 베니오프에 따르면, 상위 10대 AI 기업 중 9개가 세일즈포스와 슬랙을 사용 중이며, 이들의 플랫폼 지출은 전년 대비 435% 급증했습니다.
세일즈포스가 말하는 사스의 가치는 여기서 발생합니다. 사스가 보유한 ‘신뢰할 수 있는’ 데이터와 맥락으로 AI의 인프라가 되는 것입니다. AI가 움직일 수 있는 기반 시스템, 즉 에이전트의 백엔드로 작동하겠다는 거죠. 마크 베니오프는 “세일즈포스는 데이터 비즈니스에 특화됐다”고 밝히며 사스가 AI의 기반이 될 수 있다고 강조했습니다.
세일즈포스는 이러한 사스와 AI의 결합이 생산성 극대화는 물론 나아가 사스 사용량 증가로 이어진다고 주장합니다. 패트릭 스토크스 세일즈포스 애플리케이션 및 마케팅 담당 사장은 “모든 기록을 평가하고 종합하고 계획을 세우는 1만 번의 클릭 과정이 클로드를 통하면 30초 만에 처리된다”며 “사용자가 필요한 정보를 얻기 위해 클릭하는 수고가 사라진 만큼 세일즈포스의 사용량은 전보다 늘었다”고 설명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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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세일즈포스의 낙관론을 경계하는 시선도 존재합니다. 클로드포스가 역설적으로 세일즈포스의 영향력 약화를 가속화하는 자충수가 될 수 있다는 경고입니다.
그간 세일즈포스를 비롯한 사스 기업들의 가장 큰 힘은 데이터 인프라와 사용자 인터페이스를 동시에 독점하는 데서 나왔습니다. 특히 자체적으로 설계된 화면에 사용자를 적응시킴으로써 강력한 의존성을 형성해왔죠. 하지만 클로드포스는 이러한 인프라와 인터페이스를 본격적으로 분리하기 시작했습니다. 사용자 접점의 자리는 클로드가 차지하고, 세일즈포스는 뒷단에서 데이터를 공급하는 인프라 역할로 기능하는 구도입니다.
이 때문에 수익성과는 별개로 세일즈포스가 그간 누려온 CRM 플랫폼으로서의 지위는 크게 흔들릴 수 있습니다. 사용자가 자신이 세일즈포스를 사용하고 있다는 사실조차 체감하기 어려워지면서, AI의 필요에 따라 호출되는 수많은 백엔드 애플리케이션 중 하나로 전락할 위험이 커진 셈입니다.
AI 운영체제 플랫폼 T1U.ai 설립자인 올리비에 카티브는 “세일즈포스의 역사적 권력은 데이터가 시스템 내부에 있다는 점뿐만 아니라, 사용자가 데이터와 만나는 인터페이스를 직접 통제하는 데서 나왔다”며 “클로드포스는 이 두 가지 권력의 원천을 분리하기 시작했다”고 설명했습니다.
그러면서 “클로드포스는 세일즈포스를 덜 필요로 하게 함으로써 세일즈포스를 더 쉽게 사용할 수 있도록 만들 수 있다”며 “그것이 바로 세일즈포스가 현재 해결해야 할 역설”이라고 짚었습니다.
기로에 선 ‘사스’
세일즈포스는 앤트로픽의 손을 잡는 방식으로 사스 종말론에 선을 그었습니다. 인터페이스 없이도 구동할 수 있는 소프트웨어로, AI를 받치는 기반 인프라로 진일보하겠다는 전략을 보여줬죠. 기술 발전과 사용자 행동 양식의 변화에 맞춰, 사스의 무대 자체를 더 넓은 곳으로 옮겨가고 있습니다.
하지만 사스 종말론에 대한 논쟁이 끝난 것은 아닙니다. 여전히 사스의 미래를 의심하는 시선이 팽배하죠. 비관론도 낙관론도, 아직 단정하기엔 이릅니다. 다만 사스 기업들이 변화의 기로에 서 있는 것만은 분명합니다. AI 에이전트의 부상은 변화의 시계를 더 재촉하고 있죠. 가트너는 이러한 흐름을 도태가 아닌 ‘변태(Metamorphosis)’의 과정이라고 정의했습니다. 기존의 사스는 근본적 체질 개선에 직면하겠지만, 그럼에도 사라지지 않고 다른 형태로 재탄생할 것이라는 진단입니다.
그래서 세일즈포스의 행보가 시사하는 바는 큽니다. 세계에서 손꼽히는 거대 CRM 사스 기업이 가장 먼저 스스로의 가치와 형태를 바꾸는 혁신에 나섰기 때문입니다. 클로드포스는 사스 시장의 어떤 선례가 될까요. 사스의 다음 시대를 여는 바람이 불기 시작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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