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I/UX

올해로 42년차, ‘폰트 디자인계 전설’에게 듣는 폰트의 미래

고바야시 아키라 모노타입 타입 디렉터 방한 기념 인터뷰

폰트가 다 똑같다고요? 자동차가 네 바퀴를 가졌다고 전부 같다고 하진 않죠

글자의 세계를 깊이 들여다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한 번쯤 고민해 보았을 법한 고민이 담긴 말이다. 이는 글로벌 폰트 기업 모노타입(Monotype)의 크리에이티브 타입 디렉터이자, 지난 40여 년간 유럽권에서 높은 위상을 가진 ‘아코(Akko)’를 포함해 다양한 문자의 디자인 작업에 매진하며, 2022년 TDC 메달을 수상하는 등 일본에서 “서양 폰트의 제1인자”로 불리는 세계적인 폰트 디자이너 고바야시 아키라(Kobayashi Akira)의 말이다.

오는 31일 모노타입코리아가 개최하는 브랜딩 세미나 Brand Talks Korea 2025에 참가하는 고바야시 디렉터는 무려 15년 만에 한국을 찾는다. “서울이라는 도시에서 문자 정보가 어떻게 사용되고 있는지 직접 보고 싶다”는 그는, 단순히 심미적인 외형이 아니라 문화를 매개하고 정보를 전달하는 도구로서의 폰트에 대해 강연할 예정이다.

과연 이 전설적인 폰트 디자이너는 어떻게 폰트 디자인을 업으로 삼게 됐을까? 또 현재의 폰트 디자인 업계와 미래에 대해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을까? 이에 <디지털 인사이트>가 고바야시 디렉터와 Brand Talks Korea 2025를 위한 방한에 앞서, 서면 인터뷰를 진행했다. 이번 인터뷰에선 그의 디자인 철학과 작업 방식, 그리고 폰트의 현재와 미래에 대한 깊은 시선이 담겼다.

인생을 바꾼 한 장의 포스터

40년 폰트 디자인 경력을 가진 고바야시 디렉터의 폰트 인생은 초등학교 시절까지 거슬러 올라간다(사진=모노타입)

고바야시 디렉터의 폰트 인생은 초등학교 시절 포스터를 그리면서 시작됐다. 신문의 제목 활자를 따라 그리며 글자의 힘과 매력에 매료된 그는 일본의 식자기 제작사 샤켄(Sha-ken)에서 한자 폰트를 디자인하다가 세계로 나아가길 결심했고, 유럽으로 유학을 떠나 폰트의 본고장에서 캘리그래피와 타이포그래피의 견문을 넓혀갔다.

안녕하세요! 처음 뵙는 독자분들을 위한 간단한 자기소개 부탁드립니다.
반갑습니다! 모노타입의 크리에이티브 타입 디렉터 고바야시 아키라입니다. 현재 독일에 거주 중입니다. 본업인 모노타입 디렉터뿐 아니라 폰트 관련 저서를 출간하고, 여러 국제 디자인 공모전의 심사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는 중입니다.

최근엔 모노타입의 일본어 폰트인 ‘타즈가네 고딕(Tazugane Gothic)’과 ‘쇼라이 산스(Shorai Sans)’ 개발을 지휘했습니다. 또 전설적인 디자이너 헤르만 차프(Hermann Zapf)와 아드리안 프루티거(Adrian Frutiger)의 초기 폰트를 현대적으로 재해석하는 작업에도 참여했습니다.

40년에 가까운 디자인 경력을 가지고 계십니다. 폰트를 업으로 삼게 된 계기는 무엇일까요?
사실 초등학교 때부터 폰트 디자인에 관심이 많았습니다. 당시 학교 캠페인 포스터를 그리면서 이미지뿐 아니라 글자의 형태가 정보를 전달하는 데 큰 영향을 미친다는 것을 자연스럽게 느꼈습니다. 물론 그때는 ‘폰트 디자인’이나 ‘레터링’ 같은 단어조차 모르던 시기였지만, 신문의 한자 제목을 따라 그려 포스터를 만들며 몰두했습니다.

어린 시절부터 글자에 재능이 있으셨군요.
네, 아무래도 어린 시절부터 그림도 아니고 글자에 관심을 갖는게 쉽지 않다보니 그렇다고 볼 수 있죠. 이후 일본의 사진 식자기 제조사인 샤켄에서 한자 폰트 디자이너로 일하면서 헤르만 차프의 책을 접하게 되었고, 더 깊이 폰트 디자인을 배우기로 결심했습니다. 결국 회사를 떠나 런던으로 가 캘리그래피를 공부하며 많은 장인들을 만나게 되었고, 그때 얻은 배움이 지금까지도 저에게 중요한 토대가 되고 있습니다.

이후에도 40년 동안 많은 폰트를 작업하셨습니다. 가장 큰 의미있는 폰트를 하나 꼽으신다면?
딱 하나만 꼽아야 하면 ‘아코(Akko)’ 폰트를 꼽을 것 같습니다. 독일에서 살면서 거의 매일 제가 만든 아코 폰트를 접하고 있기 때문인데요. 아코는 제가 작업한 디자인 중 가장 자주 사용되는 폰트로, 간결하면서 현대적입니다. 작은 공간에도 정보를 효과적으로 담을 수 있고, 작은 크기로 사용해도 가독성이 뛰어나며 큰 사이즈로 봐도 매력적이죠.

아코 폰트는 독일을 포함한 유럽권 지역에서 자주 접할 수 있는 대중적이면서도 세련된 유명 폰트다(자료=모노타입)

로고와 본문 폰트 모두에 브랜드 담겨야

고바야시 디렉터는 좋은 폰트와 나쁜 폰트 대신 상황에 맞는 좋은 선택과 나쁜 선택이 있다고 이야기한다(사진=모노타입)

최근 여러 국내외 기업 브랜드가 자체 로고 디자인을 본 딴 폰트를 선보이고 있다. 하지만 브랜드 고유의 톤을 구성하는 타이포그래피 요소는 로고뿐만이 아니다. 특히 고바야시 디렉터는 브랜드 커뮤니케이션의 또 다른 핵심이 본문용 폰트라고 강조한다. 소비자는 제품 정보를 접할 때 로고보단 오히려 본문 텍스트를 더 오래 응시하며, 이 때 텍스트를 구성하는 폰트는 사용자와의 감각적인 연결을 극대화할 수 있다는 것이 그의 설명이다.

잠깐 가독성 이야기가 나왔는데요. 베테랑 폰트 디자이너로서, ‘좋은 폰트’와 ‘나쁜 폰트’는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나요?
이 이야기에 대해선 강연에서도 이야기할 예정인데요. 저는 개인적으로 폰트 자체에 좋고 나쁨이 존재한다기보다는 특정 상황과 목적에 맞는 폰트가 있고, 그렇지 않은 폰트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선택하는 것은 디자이너의 몫이죠. 쉽게 말해 좋은 폰트와 나쁜 폰트 대신, 좋은 선택나쁜 선택이 있는 것입니다.

최근 기업 브랜드에서 자체 폰트를 출시하는 일이 많습니다. 이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많은 사람들이 브랜드 이미지라고 하면 로고만 생각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하지만 전 로고뿐만 아니라, 본문 폰트에도 가능성이 많다고 생각합니다. 관심 있는 제품의 정보를 찾아볼 때 계속해서 로고만 볼 수 없는 노릇이죠. 결국 사용자는 제품에 대한 설명, 기능, 가격 등의 텍스트 정보를 훨씬 오랫동안 보게 됩니다.

확실히 첫 인상을 제외하면 일반 본문 텍스트를 더 많이 읽게 되는 것 같아요.
그렇죠. 그때 본문 텍스트의 폰트가 브랜드의 철학이나 아이디어를 자연스럽게 표현하고 있다면 브랜드 이미지가 더욱 강력해질 수 있습니다. 즉, 폰트 디자인이나 타이포그래피는 고객과 적절한 톤으로 소통하는 역할을 합니다.

고바야시 디렉터가 개발을 지휘한 타즈가네 고딕은 전통적인 일본식 필체의 요소를 조화롭게 녹여낸 일본어 서체로 평가받고 있다(자료=모노타입)

최근 해외서도 한글 폰트 수요가 높아지고 있다고 들었습니다. 한국의 폰트 디자이너가 시장에서 매력과 경쟁력을 유지할 방법은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나요?
네, 최근 유럽을 포함한 해외에서도 동아시아 문자가 큰 관심을 끌고 있습니다. 특히 최근엔 라틴 문자와 아시아 국가들의 문자들을 섞어서 동시에 사용하는 사례가 많아지고 있는데요. 이런 상황일수록 각 언어 문자에 대한 이해를 더욱 깊이하고, 각 문자의 개성을 잃지 않으면서도 잘 어우러지도록 디자인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AI 시대에도 폰트 디자이너의 역할 변치 않아

고바야시 디렉터는 인간이 눈으로 글씨를 보는 감각을 이해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한다(사진=모노타입)

가변 폰트, AI 디자인 툴, 글로벌 언어 통합 폰트 등 최근 폰트 디자인 업계는 기술 변화와 함께 변모하고 있다. 고바야시 디렉터는 이 변화 속에서도 “인간이 눈으로 글자를 보는 감각”을 이해하는 디자이너의 역할이 중요하다고 말하며, 폰트의 기능과 감각, 철학을 이해하고 활용하는 눈을 기르라고 조언한다.

실제 최근 ‘너무 똑같은 폰트만 나오는 것 같다’ ‘디지털 환경에만 신경 쓴 폰트가 너무 많다’ 등의 의견이 나오고도 있는 것 같아요.
물론 그 부분에 대해서도 디자이너들 나름대로 할 이야기가 있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우리가 “패션 브랜드들이 대부분 흰색 셔츠를 만드니까 모든 셔츠가 같다”거나, “모든 자동차는 네 바퀴를 가지고 있으니 똑같다”고 말하지는 않죠.

그게 앞으로의 폰트 디자이너들의 주요 과제가 될 수도 있겠군요.
네, 그렇죠. 때문에 저는 앞으로 사람들에게 폰트 디자인을 더 알리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하고, 앞으로 사람들이 폰트 디자인을 더 잘 이해하게 될수록 “폰트가 다 비슷하다”는 의견이 점점 줄어들 것이라고 봅니다.

이번 강연에서 더 자세히 이야기할 예정이지만, 사람들은 무의식적으로 디자인을 통해 필요한 정보를 선택하며, 폰트 디자이너들은 이걸 활용해야 한다는 점을 이야기할 계획입니다. 이 지점을 제대로 인식하고 활용한다면 사용자들이 폰트의 디자인을 더 흥미롭게 느끼고, 다르게 바라보게 될 겁니다.

다가올 미래 주목할만한 트렌드나, 변화가 있을까요? 이에 대해 디자이너들은 어떤 대비를 해야 한다고 보시나요?
물론 여러 기술 발전과 변화가 있겠지만 디자이너나 글자의 역할, 형태는 크게 바뀌지 않을 것이라 생각해요. 텍스트를 표현하는 디지털 기기는 날마다 진화하고 있지만, 인간의 눈은 굉장히 보수적이기 때문인데요. 그렇기에 인간이 눈으로 정보를 얻는 한, 글자의 형태 자체가 크게 변하지는 않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하지만 최근 여러 AI 및 신기술이 담긴 폰트들이 나오고 있지 않나요?
업계에 AI를 포함한 최신 기술이 도입되고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제가 생각하는 폰트 디자이너의 역할은 일상에서 활용 가능한 ‘도구’를 만들어내는 것입니다. AI가 이런 도구를 만들어낼 수도 있지만, 결국 중요한 것은 “그렇게 만들어진 도구가 사용자 관점에서 디자인 되었는가?” 입니다. 우리의 강점은 인간의 눈이 어떻게 사물을 보고, 이해하는지 AI보다 더 잘 이해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이걸 살려야 할 겁니다.

한국 청중과 폰트라는 커뮤니케이션 도구 공유하고파

다가오는 Brand Talks Korea 2025에서 고바야시 디렉터는 동양과 서양을 아우르는 폰트 디자인의 노하우와 브랜드와 함께 브랜드 전략과 디자인이 어떻게 폰트를 중심으로 연결되는지 깊이 있는 인사이트가 담긴 이야기를 할 예정이다.

<디지털 인사이트>에 서울 거리를 직접 걸어보며 오늘날 문자 정보가 어떻게 활용되는지 직접 보고, 폰트 디자인의 매력을 이야기하고 싶다고 한 그는 타이포그래피가 여전히 신선한 영감을 주는 세계임과 동시에, 폰트가 단순한 글자에서 벗어나 정보를 효과적으로 전달할 수 있는 매우 강력한 커뮤니케이션 도구라고 강조한다.

서울에 간 지 정말 오래되어서 이번 방문이 무척 기대됩니다. 이번 기회엔 서울이라는 도시를 걸으면서 오늘날 문자 정보가 어떻게 사용되는지 직접 보고 싶습니다. 또한 폰트가 정보를 효과적으로 전달할 수 있는 매우 강력한 커뮤니케이션 도구라는 점도 한국 청중들과 꼭 공유하고 싶어요.

  • 에디터김동욱 (jkkims@ditoday.com)
  • 섬네일안 선미
직접 들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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