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년 차 베테랑 디자이너가 말하는 ‘에이전시에서 일하는 법’
황미진 매드코퍼레이션 크리에이티브그룹장 인터뷰

오늘도 많은 에이전시 디자이너가 프로젝트 내내 사정없이 날아 드는 지적에 ‘마상(마음의 상처)’을 입는다.
지적 자체가 ‘마상’의 원인은 아니다. 정확히 말하면 지적의 주체가 문제다. “동료 디자이너에게 피드백을 받는 건 괜찮아도 마케터나 기획자, 광고주 등 디자인 비전공자에게 듣는 지적은 어쩐지 자존심이 상하다”는 것. 열정 넘치는 젊은 디자이너일수록 이런 경향이 강하다.
에이전시에서 협업은 필수다. 좋은 소통이 프로젝트의 성공으로 이어진다는 사실을 모르는 바는 아니지만, 마음은 그렇지 않다. ‘분명 내가 처음에 만든 시안이 훨씬 보기 좋은데…’
이 고민, 어떻게 해결할 수 있을까? 일 잘하는 에이전시에서 힌트를 찾을 수 있지 않을까.
올해로 6년차를 맞이한 종합 디지털 마케팅 에이전시 매드코퍼레이션은 자타공인 ‘협업의 고수’다. 마케팅부터 기획, 디자인, 크리에이티브까지 다방면의 업무를 소화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지난해 한국디지털광고대상에서 금상을 받은 배스킨라빈스 캠페인을 비롯해 굵직한 프로젝트를 연달아 수주, 성공으로 이끌고 있다. 올해 매출액은 전년 대비 500% 성장할 것으로 예상된다.
신호철 대표가 다양한 직무의 인재에게 요구하는 가장 중요한 역량은 ‘커뮤니케이션 능력’이다. 가깝게는 프로젝트에 참여한 동료 마케터부터 멀게는 광고주, 나아가 광고를 마주하게 될 소비자까지 모든 영역의 대상과 소통을 한다. 필요하다면 설득을 하고, 필요하다면 의견을 과감히 수용한다. 이유는 하나, 프로젝트를 성공시키기 위해서다. 상업 디자이너가 ‘예술혼’을 굽히는 데는 다 이유가 있는 법이다.

매드코퍼레이션은 이처럼 목적 지향형 마인드로 무장한 인재들의 집단. 광고 및 마케팅 소재 제작 전반을 총괄하는 크리에이티브그룹의 황미진 그룹장도 젊은 디자이너에게 언제나 소통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황미진 그룹장은 “경력 있는 마케터나 광고주는 디자이너만큼의 안목을 갖고 있다”며 “그런데 일부 젊은 디자이너는 이를 잘 모르고 피드백을 받았다는 사실 자체에 자존심 상해 하는 경우가 많다”고 했다.
그도 신입 시절엔 본인의 색깔이 반영되지 못한 결과물을 마주하거나, 광고주의 날 선 피드백을 들을 때마다 디자이너로서 자존감이 흔들리곤 했다. “이 시기를 슬기롭게 극복해야 디자이너로서 한 단계 성장할 수 있다”고 그는 강조한다.
18년차 베테랑 디자이너인 황미진 그룹장을 만나 에이전시 디자이너로서 제대로 일하는 법을 물었다. 만난 김에 흔들리는 자존감을 부여잡는 그만의 노하우도 함께 들었다.
협업의 열쇠는 귀를 여는 것
젊은 디자이너들이 보통 언제 자존감 문제를 겪나요?
다른 부서 직원들에게 피드백 받을 때죠. 적나라하게 말하면 이런 심리인 건데요, ‘마케터가 뭘 안다고 디자인으로 지적질이야?’ 라고 생각하는 경우가 많아요.
나름 일리 있는 말 같은데요.
디자이너가 만들었다고 해서 항상 정답인 건 아니죠. 경력이 쌓인 능숙한 마케터라면 웬만한 디자이너 이상의 ‘눈’을 갖고 있어요. 특히 시장의 관점을 짚어줘요. 그러니 디자이너는 다양한 피드백에 귀를 열고 유연하게 대응해야 해요. 그래야 프로젝트를 성공적으로 마무리할 수 있어요.
고집을 우직하게 밀고 나가는 것도 때로는 필요한 덕목이 아닐까요?
물론 그런 경우도 있어요. 단, 상대를 설득시킬 수 있어야 합니다. 설득할 수 없다면 결코 잘 만든 디자인이 아니라고 생각해요.
설득할 상대가 많을 것 같습니다.
에이전시 소속이라면 크게 3가지로 정리할 수 있어요. 1차 관문은 동료 마케터입니다. 2차는 광고주고요, 3차는 소비자예요. 모두를 설득시킨 디자인이 비로소 성과를 낼 수 있죠.
이중 가장 중요한 건 누구인가요?
단연 소비자죠. 그런데 디자이너가 소비자와 직접 소통할 기회는 많지 않아요. 때문에 1, 2차 관문에 집중해야 합니다. 결국 가장 괴로운 건 프로젝트가 실패하는 일이거든요. 거기서 가장 크게 상처 입기도 하고요. 그러니 마케터나 광고주의 피드백을 언제든 받을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그래야 최종 관문에서 고배를 마시는 일을 막을 수 있어요.
상업 디자이너가 자존감 지키는 노하우
에이전시 디자이너로서의 마음 가짐이 궁금합니다.
디자인 작업을 하기 전 광고 제작물의 목표와 역할을 충분히 이해하려 해요. 목표에 대한 이해 없이 프로젝트를 성공시킬 수는 없으니까요.
그런 관점에서 광고 디자인의 정의를 내려주신다면?
광고 디자인이란 정확한 타깃 분석과 목표 설정 후 만들어지는 창작물이라고 생각합니다. 소비자의 심리적인 부분까지 철저하게 고려돼야 하죠. 다시 말해 디자인은 단순한 미적 감각을 넘어 분석과 통계, 심리전, 협업이 반영된 결과물이에요.
그럼에도 디자이너잖아요. 작업을 하면서 끓어 오르는 창작 욕구 같은 게 있을 텐데, 이걸 모두 억누르는 건 힘들지 않을까요?
물론이죠. 그래서 나름대로의 노하우가 생겼어요. 광고 프로젝트의 목표에 철저히 집중하는 가운데 작은 디테일에 개성을 녹이는 겁니다. 디자이너만이 할 수 있는 작은 반항이랄까요. 예컨대 전체적인 콘셉트는 광고주가 제시한 걸 따르되 오브젝트의 색깔처럼 광고주가 특별히 지정하지 않은 것에 제 취향을 반영하는 거예요. 소소한 재미도 있고요, 때로는 이런 디테일이 제작물의 퀄리티를 높여주는 계기가 되기도 해요.
광고주가 원하는 게 명확해서 디테일에 변주를 주기 어려울 땐 어떻게 하나요?
그럴 때마다 디자이너들에게 하는 말이 있어요. “두 가지 다 만들어라.” 광고주가 원하는 콘셉트의 시안과 본인이 원하는 시안을 모두 만들어 보여준 뒤 설득하라는 거죠. 심리적으로 선택지가 하나일 때는 분석에 힘쓰지만, 여러 개일 때는 비교하는 것에 집중하거든요. 그러니 본인이 만든 게 정말 괜찮다면 분명 광고주에게도 선택될 겁니다.
시안을 두 가지 만드는 게 현실적으로 가능할까요?
물론 힘들지만 원하는 걸 하려면 대가는 필요하죠. 일단 한번 어필에 성공하잖아요? 그럼 광고주가 디자이너를 굉장히 신뢰하고, 이후에는 디자이너의 의견이 더 잘 반영돼요.

디자이너도 사용자 경험에 집중해야
소비자의 행동을 유도하는 광고를 잘 만듭니다. 매드코퍼레이션만의 비결이 있나요?
디자이너 모두가 사용자 경험(UX)에 집중해요. 처음 이 광고를 보는 사람이 어떤 생각을 할지 많이 고민하는 편이에요. 광고 프로젝트를 수주받을 때도 ‘왜 이런 콘셉트를 요구했을까’ ‘이런 레이아웃이나 카피에 어떤 의미를 담고 싶은 걸까’ 디자이너끼리 많은 토론을 합니다.
사례를 하나 들어주세요.
최근 국내 손해보험사 A사가 출시한 보험 설계 영업 플랫폼의 사용자 모집 마케팅 프로젝트를 진행한 적이 있어요. 광고 소재와 랜딩 페이지 등을 만들었는데요. 이 플랫폼이 일반인도 이용할 수 있는 서비스였어요. 그런데 국내에선 ‘보험이나 영업 관련 서비스는 무조건 다단계’라는 편견이 존재했기 때문에 이 같은 부정적인 인식을 없애는 데 많은 공을 들였어요.
예컨대 마케팅 제작물 전반에 ‘N잡’을 강조해 사용자가 받을 이익을 직관적으로 녹여 냈고요. 심리적 장벽을 낮추기 위해 가입 절차를 간소화하고, 일러스트를 적극 사용했어요. 모회사의 브랜드 컬러를 통해 신뢰도도 높였고요. 덕분에 고객사와 소비자 모두로부터 좋은 반응을 이끌어 낼 수 있었습니다.
UX를 낯설어 하는 디자이너에게 UX 팁을 준다면요?
어렵게 생각할 필요는 없어요. 언제나 프로젝트의 목적과 고객을 염두에 두고 작업하는 게 중요해요. 색상 하나를 선택하더라도 이게 사용자에게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그게 프로젝트의 성과로 어떻게 연결될 수 있는지를 설명할 수 있어야 합니다. 단적인 예로 광고가 네이버에 노출될 경우, 해당 광고 소재의 배경이 그린 색상이면 눈에 잘 안띄겠죠? 이런 사소한 것도 모두 UX적인 고민이라고 생각해요.
사용자의 공감을 얻기 위해 딱 한 가지를 기억해야 한다면?
이번에도 소통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싶어요. 디자인 작업을 할 때 흔히 트렌드에 관심이 가기 마련이지만 비슷한 것이 너무 많기 때문에 차별 포인트가 명확하지 않으면 묻히기 쉬워요. 그러니 트렌드 밖의 것, 다시 말해 클래식함에 집중하는 게 좋을 때가 있어요. 그런데 어떤 디자인이 클래식인지 아닌지는 혼자 힘으로 판단하기 힘들죠. 주변 동료들과 끊임 없이 소통하며 정말로 공감 받을 수 있는 디자인을 찾기 위해 노력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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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에디터장준영 (zzangit@ditoday.com)
- 섬네일손 찬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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