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I/UX

세계 최대 폰트 회사의 서체 디자이너가 일하는 법

에밀리오스 모노타입 타입 디렉터 인터뷰


1887년 미국에서 설립된 모노타입은 올해로 137년을 맞이한 세계 최대 폰트 회사다. 타임스 뉴 로만(Times New Roman), 애리얼(Arial), 헬베티카(Helvetica), 고담(Gotham) 등 디자이너라면 한 번쯤 들어봤을 유명 폰트를 상당수 개발했다. 국내외 유명 브랜드의 로고 서체도 대부분 ‘모노타입 산(産)’이다.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폰트 회사’라는 수식어가 붙는 이유다.

에밀리오스 테오파누스(Emilios Theofanous, 모노타입 크리에이티브 타입 디렉터)는 현재 모노타입에서 가장 활동적인 디자이너 중 한 명이다. 글로벌 브랜드의 타이포그래피 자문을 맡고 있으며 유럽과 인도의 서체 디자이너 팀을 관리하고 있다. 몇 년 전에는 헬베티카를 현대화 하는 거대 프로젝트 ‘헬베티카 나우 배리어블(Helvetica Now Variable)’의 주축 멤버로 참여했다. 1957년 발표된 헬베티카는 모노타입의 상징과도 같은 폰트다.

에밀리오스가 디자인한 투블로(Touvlo)는 19세기 영국의 그로테스크함을 현대적으로 재해석 했다는 평가를 받는다(자료=모노타입)

에밀리오스의 서체 스타일은 생동감과 리듬감으로 요약된다. 최근 디자인한 투블로(Touvlo)는 2023 커뮤니케이션 아츠 타이포그래피(2023 Communication Arts’ Typography)에서 우수상을 수상했다. 지중해 섬나라 키프로스 출신인 에밀리오스는 그리스어를 모국어로 사용한다. 대학에선 서체가 아닌 수학과 디지털 아트를 전공했다. 이런 배경이 그만의 독특한 스타일을 형성했다고 에밀리오스는 말한다.

그리스어는 복잡하며 고유한 필기 리듬을 지니고 있습니다. 제가 서체를 디자인할 때 디테일과 리듬감에 집중하는 건 이 때문입니다. 또 수학을 전공한 덕에 글자의 곡률을 더 잘 이해할 수 있었고, 대학원에서 디지털 아트를 배운 경험은 글자에 생동감을 더하는 데 도움을 줬습니다.

에밀리오스는 젊은 디자이너와 소통하는 것을 즐긴다. 세미나와 대학 워크숍에 참가하는 것은 놓칠 수 없는 보람이다. 오는 19일 모노타입코리아가 ‘브랜드의 목소리: 타이포그래피의 힘’을 주제로 국내 첫 세미나를 진행한다. 에밀리오스도 한국을 방문해 글로벌 커스텀 서체 동향, 서체가 사람들의 감정에 미치는 영향, 서체 디자인의 AI 활용 방안 등을 발표할 예정이다. 세미나에 앞서 에밀리오스를 서면으로 만나 서체 디자이너로 일하는 법을 물었다.

에밀리오스 테오파누스(Emilios Theofanous)는 모노타입 소속 크리에이티브 타입 디렉터다. 유럽과 인도의 서체 디자이너 팀을 관리하는 등 현재 모노타입에서 가장 활동적인 디자이너 중 한 명이다(자료=모노타입)

다양한 경험은 서체 디자이너에게 자산

그리스어라는 언어적 뿌리가 지금의 스타일에 미친 영향이 궁금하다.
그리스어는 아름다운 글자다. 특히 서체 디자이너에게는 매력적인 부분이 많다. 신경 써야 할 작은 디테일이 많아 그만큼 복잡성이 가득하며, 고유한 필기 리듬을 갖고 있다. 이는 글자를 보는 방식에 영향을 줬다. 서체를 디자인할 때 생동감 있는 디테일을 살리고 곡선에 특정한 긴장을 더하는 것을 좋아하는 이유는 아마 이 때문일 것이다.

수학 학사, 디지털 아트 석사 학위를 보유 중이다. 이 같은 독특한 학문적 배경이 서체 디자인에 어떤 영향을 미쳤나?
수학을 배운 경험은 글자 형태의 곡률을 더 잘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됐다. 또 디지털 아트는 창의적인 부분에서 도움이 됐다. 예를 들어 나는 폰트를 고정된 것이 아닌 ‘움직이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는 애니메이션과 영상 편집 경험에서 비롯됐는데, 폰트에 대한 이 같은 접근 방식은 *가변 폰트와 같은 복잡한 애니메이션 작업에서 유용하다고 생각한다.

*가변 폰트: 다양한 레이아웃, 공간, 화면 해상도, 밝기에 맞춰 적응하는 반응형 서체

그간 만들었던 다양한 폰트 가운데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을 고른다면?
모노타입 라이브러리 프로젝트 중에서는 헬베티카 나우 배리어블 프로젝트가 가장 흥미로웠다. 모노타입을 상징하는 헬베티카에 가변 폰트 기술을 적용, 현대적 감각에 맞춰 디지털화 하는 프로젝트였다. 스튜디오의 많은 전문가들이 협업해 5~6년에 걸쳐 제작됐다. 개인 프로젝트로는 Touvlo를 꼽고 싶다. 애정으로 만든 폰트다.

Touvlo가 지난해 커뮤니케이션 아츠 타이포그래피 대회에서 수상했다. 어떤 폰트인가?
Touvlo는 19세기 말에서 20세기 초 영국 서체 회사의 샘플에서 영감을 받아 제작됐다. 복잡한 레이아웃에서도 개성을 유지하는 동시에 설정 변화에 따라 유기적인 리듬을 갖추도록 설계했다. 다양한 환경에서 활용할 수 있다는 점이 특징이다.

수상 소감을 전한다면?
상을 받는 건 항상 기분 좋은 일이다. 동종 업계 동료들의 인정을 받는다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물론, 상패 자체의 디자인도 아름다워서 가족이나 친구가 놀러 왔을 때 대화 주제로 써먹기 좋다.

Touvlo는 2023 커뮤니케이션 아츠 타이포그래피 대회에서 우수상을 탔다(자료=모노타입)

취미가 디자인에 미치는 영향

일을 하지 않을 때는 무엇을 하는가?
다양한 서체 샘플을 수집한다. 특히 19세기 후반의 작업물을 좋아한다. 독특한 장식과 아름다운 테두리, 정교한 디자인이 마음에 든다.

서체 샘플 수집? 생소하다.
오래 전부터 금속 활자 서체 샘플 책을 수집했다. 금속 활자의 장인 정신과 오래된 책의 냄새를 항상 존경해 왔다. 이들 대부분은 디지털화되지 않아 현재 샘플 책에서만 그 시대의 기억으로 존재한다. 일종의 디자인 역사의 스냅샷인 셈이다. 다양한 시대의 책을 통해 당시의 스타일과 유행을 이해할 수 있다. 이는 지금의 디자인 작업에도 많은 도움을 준다.

디지털 시대에 고서적이라니 인상적이다.
물론 스크립팅도 꾸준히 배우고 있다. 디자인 프로세스를 효율화하고 싶어서다. 요즘은 많은 서체 디자이너가 디자인 작업 자동화를 위해 코딩과 간단한 스크립트를 사용한다. 대표적인 스크립트 언어로는 자바스크립트가 있다. 반복적인 작업은 스크립트로 자동화할 수 있다. 예를 들면 서체 디자인 앱 글립스(Glyphs)에서 PDF를 빠르게 내보내고 싶을 때 몇 줄의 코드로 가능하다. 디자이너들이 공유하는 많은 코드 스크립트를 온라인에서 찾을 수 있다.

서체 디자이너로서 영감을 어디에서 얻는가?
브랜드를 위한 전용 서체를 작업할 때는 보통 브랜드의 역사와 시각적 자료를 연구하는 편이다. 새로운 폰트를 만들 때는 요즘 유행하는 것을 살펴 보거나 문화, 도시 산책, 갤러리나 박물관 방문을 통해 영감을 얻곤 한다. 기본적으로 영감은 언제 어디서든 찾아 오지만, 시각적 자극이 커야 효과적이라고 생각한다.

브랜딩의 핵심, 서체

오랫동안 브랜드의 전용 서체를 만들어 왔다. 브랜드는 서체를 왜 필요로 할까?
서체는 브랜드 방정식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 중 하나다. 브랜드가 완벽한 로고, 색상을 갖추었더라도 서체가 적절하지 않다면 브랜드의 전체적인 이미지가 무너질 수 있다. 서체는 브랜드와 고객을 연결하는 동시에 신뢰성을 전달한다.

모노타입은 스웨덴 디자인 회사와 협업해 글로벌 의류 브랜드 H&M의 새로운 서체를 제작했다. 광고판부터 쇼핑백까지 다양한 디스플레이에서도 특성이 잘 유지되도록 개선됐다(자료=모노타입)

브랜드 서체를 만들 때 가장 중요하게 고려하는 점은 무엇인가?
서체가 왜, 누구를 위해 존재하며 어떤 매체에 담길지 묻는 것이 중요하다. 예를 들어, 아동 서적용 캐주얼한 필기체 스타일의 서체가 럭셔리 브랜드에 적용된다면 브랜드의 초점이 흐려질 것이다. 아동 서적용 서체가 좋지 않다는 뜻이 아니라 럭셔리 브랜드에 적절하지 않다는 말이다. 결국 서체를 잘 만들려면 먼저 사용범위를 조사해 해당 서체가 잘 작동할 수 있는지 확인해야 한다. 자간, 디자인 품질, 일관성, 질감, 리듬 등은 그 다음 문제다.

반대로 주의할 점이 있다면?
간혹 창의성이 넘쳐 고객사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지 못할 때가 있다. 하지만 디자이너 개인의 취향이 항상 브랜드 서체에 반영될 수 있는 건 아니다. 브랜드를 위한 작업이라는 사실을 분명히 이해해야 한다.

요즘 다양한 디지털 기기가 등장하고 있다. 서체를 디자인할 때도 디지털 환경의 가독성을 고려해야 한다고 들었다.
가독성과 접근성은 모노타입의 중요한 가치다. 실제로 브랜드도 많이 요구하는 사항이다. 모노타입은 서체 가독성에 대한 광범위한 연구를 진행 중이다. 최근 글로벌 가독성 연구를 발전시키기 위해 ‘가독성 컨소시엄(The Readability Consortium)’에도 합류했다. 모노타입의 연구에 따르면, 기존에 존재하는 디자인 원칙만 잘 지켜도 다양한 디지털 환경에서 서체가 잘 작동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디지털 시대에 서체 디자인의 미래는 어떻게 변할까?
애플의 비전 프로와 같은 새로운 디지털 기기와 가상 공간의 등장으로 더 복잡한 레이아웃이 가능해졌다. 이는 서체 디자인에 있어 새로운 기회다. 가변 폰트와 같은 최신 폰트 기술을 적용하면 새로운 레이아웃의 장점을 최대한 활용할 수 있을 것이다.

모노타입이 오는 19일 첫 국내 세미나를 연다. 모노타입은 지난해 말 국내 기업 전용 요금제를 출시한 데 이어 지난 5월 한국어 공식 웹사이트를 열었다(자료=모노타입)

오는 6월 19일 성암아트홀에서 첫 한국 세미나를 갖는다. 발표 주제가 궁금하다.
이번 세미나에서 타이포그래피의 핵심 요소와 모노타입에서의 경험을 공유할 예정이다. 글로벌 브랜드의 일관성, 커스텀 서체의 최신 예시, 특정 서체를 읽을 때 사람들이 느끼는 감정에 대한 연구, 새로운 기술 및 AI 활용 방안 등을 다룰 예정이다. 한국 방문은 처음이라 매우 설렌다. 한국의 독창적이고 활기찬 디자인 커뮤니티와 교류할 수 있기를 기대한다.

서체 디자이너를 꿈꾸는 한국의 학생 또는 디자이너에게 전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서체 디자인을 배우는 데 늦은 나이란 없다. 중요한 것은 자신의 스타일을 탐구하고 기술을 연마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처음 만든 폰트가 엉망일 수 있지만 괜찮다. 내 첫 폰트도 그랬다. 필요하다면 평소 존경하는 서체 디자이너에게 주저 말고 연락해 보길 바란다. 소셜 미디어를 통해 다른 디자이너들과 교류하는 것도 좋다. 사랑하는 일을 직업으로 할 수 있다는 것은 무척 즐겁고 감사한 일이다. 도전을 진심으로 응원한다.

  • 에디터장준영 (zzangit@ditoday.com)
  • 섬네일손 찬호
직접 들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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