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가의 시선으로 바라본 ‘AI 법제화’… 한국의 현주소는?
강정희 법무법인 태평양 변호사 인터뷰

올해 시행된 유럽연합(EU)의 디지털시장법(DMA)에 전 세계의 이목이 쏠리고 있다. 공포절차만 남겨두고 있는 세계 최초의 포괄적 성격의 인공지능(AI)법인 유럽연합(EU)의 AI Act에 따르면 2026년부터 유럽 내에서 해당 법안의 AI 규제 위반 사항이 적발될 시 최대 전 세계 매출액의 7%를 과징금으로 내야 한다.
해당 규제가 유럽 내에서 AI 기능이 포함된 서비스 및 제품을 제공하고 판매하는 기업 전체를 대상으로 한 탓에 많은 기업이 긴장하고 있는 상태다. 아울러 아직 대부분 국가가 자국 내 AI 시장에 대한 구체적인 법제화를 마련하지 못한 상태에서 EU의 강한 사전 규제 방향이 영향을 미치지는 않을지 걱정하는 우려의 목소리도 적지 않다.
국내도 상황은 다르지 않은데, NIA, 과학기술정보통신부 등 여러 정부 기관 주체로 세미나 등 행사를 통해 국내 AI 법제화 동향을 소개하고 의견을 나누는 자리를 마련하고 있기는 하지만, 아직 구체적인 방향이나 사안이 결정된 바 없어 기업 및 소비자 모두 여전히 회색 지대에 놓인 AI 시장에 우려를 표하는 상태다.

이러한 가운데 다양한 컨퍼러스나 행사에 참가해 AI 법률을 주제로 강연을 펼치는 등 기업과 시민의 불안감을 진화하기 위해 적극적으로 노력하는 이가 있으니, 법무법인 태평양 AI팀의 주축을 담당하는 강정희 변호사다.
강 변호사는 삼성전자에서 9년 간 수석 변호사로 근무하고 대법원 재판연구관으로 3년 간 대법원 공정거래 사건을 전담하는 등 공정거래 법률 분야의 전문가로 활동해 왔다. AI 법률이 공정거래 및 플랫폼 규제법과 밀접한 관련이 있는데다 삼성전자에서의 업무가 대부분 구글, 애플, 퀄컴 등 빅테크 기업을 상대로 했던 만큼, 이러한 경험을 토대로 국내외 AI 법률 관련 자문을 도맡고 있다.
과연 국내 AI 법제화는 어떤 방향으로 나아가야 할까? 지난 6월 종각역 인근에 위치한 사무실에서 강 변호사를 만나 관련 내용을 물었다.
국내 AI 법제화 “우리나라가 어느 단계에 와 있는지 깊이 고민해야”
AI 법제화의 방향성은 자국 내 AI 산업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므로 많은 이들이 정부의 목소리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그러나 사전 규제와 사후 규제 중 어떤 방향이 선택될지, 규제는 얼마나 강경할지 아직 명확하게 공개된 바가 없다.
이처럼 여백이 많은 상태에서 업계는 정부가 EU의 영향으로 규제를 강화하는 쪽으로 나아가는 건 아닐지 우려하는 상황이다. 이에 강 변호사는 “22대 국회 들어와서 현재까지 6개의 인공지능 관련 법안이 발의되었다. 각 법안마다 주안점은 다르나 EU와 유사한 구조의 인공지능 기본법을 만들려고 하는 것으로 보인다”고 답했다. 그는 “인공지능을 규율하는 법을 만들 때는 기술의 성숙도, 시장상황, 정부의 역량, 법적문〮화적 환경 등을 모두 고려하여야 한다”고 하면서 “과연 우리나라는 어느 단계에 와 있는지 깊이 고민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는 법제화가 자국 내 기업 생태계 환경과 무관하지 않기 때문이다. 해당 국가가 보유한 영향력 있는 AI 기업 수를 살펴보면 이해하기 쉽다. 예로 강한 사전 규제를 표명하는 EU의 경우 이렇다 할 AI 기업이 많지 않다. 그렇다 보니 EU에 진출한 외국 기업에 의한 소비자 피해에 초점을 맞춰 법제의 방향성을 확립하거나 AI 대한 부족한 데이터를 모으는데 초점을 두어 AI Act를 만든 것이다. AI Act는 사업자에게 고위험 AI 시스템의 위험관리를 하도록 하고 관련 데이터를 작성, 제출하도록 하고 있다.

반면 미국의 경우 EU와 반대되는 입장으로 볼 수 있다. 현재 AI 산업을 주도하는 빅테크 기업 대부분이 미국 기업인 만큼, 미국 시장에 규제를 적용할 경우 규제 대상이 대부분 자국 기업으로 향하게 된다. 따라서 미국은 사전 규제를 지양하고 자율규제를 채택하고 있는 상황이다. 이는 개입할 때가 되면 언제든지 규제할 수 있다는 자신감의 결과인 것으로 풀이된다.
이런 관점에서 한국의 AI 법제화 방향은 국내 AI 산업의 현주소와 국가의 AI 규제 역량에 따라 결정될 가능성이 크다. 강 변호사는 “지난 6월 정부가 발표한 인공지능 기술 수준 평가 결과를 보면, 우리나라는 세계 주요 12개국 중 각 분야에서 4위 내지 6위를 기록했지만, 1위인 미국의 점수와는 5배 이상의 차이가 나는 등 선도국인 미국, 중국과 기술 격차가 상당하다”고 평가하면서도“한국은 세계에서 몇 안되는 LLM 상용 국가 중 하나인 점은 분명 의미가 있다”고 강조했다.
새롭게 성장하는 기술 시장에서 한국이 선두에 있던 적은 많지 않아요. 인공지능 선도국과 기술 격차가 난다고는 하지만, 지금 AI 시장에서 한국은 패권을 쥘 수 있는 몇 안되는 국가 중 하나입니다. 인공지능의 개발 및 이용에 관한 기본원칙, 인공지능사업자의 책무 및 이용자의 권리를 규정하는 것이 필요하지만, 혁신을 주저하도록 하는 강한 사전규제는 바람직하지 않아요
법제 과정에서 정부의 적극적인 소통도 중요
방향성만큼 많은 이들이 궁금해 하는 것은 ‘법제화의 속도’다. 일각에서는 국내 AI 시장의 성장 속도에 비해 법제화가 느리다는 우려가 나온다.
이에 대해 강 변호사는 “입법적 조치를 할 정도로 인공지능에 대한 이해가 성숙되지 않았다는 반증일 수 있다”고 지적했다.
현재 AI는 시장에서 혁신과 규제에 대한 사회적 합의가 이뤄지지 않은 상태다. 보통 신규 기술 시장에서는 시간이 지남에 따라 자연스럽게 사회적 합의가 이뤄지지만, AI의 경우 시장이 성장하는 속도가 지나치게 빨라 자연스러운 사회적 합의를 기다리기 어려운 상황이다. 그렇다 보니 비교적 활발하게 법제화에 대한 사회적인 조율이 이뤄지고 있음에도 법제화의 속도에 대한 우려가 발생하는 것이다.
실제 국내 기업 안에서도 시장을 선도하는 기업과 시장에 신규 진입하는 기업 간 이해 관계가 상충되며, 소비자 사이에서도 혁신에 무게를 두는 소비자와 개인정보보호 등 권리 보호에 무게를 두는 소비자 등 입장에 따라 다양한 의견이 교차하는 상태다.
이처럼 다양한 이해 관계에 따라 AI 시장에 대한 불안감을 표하는 상황에 대해 강 변호사는 “정부의 적극적인 소통이 중요하다”는 입장이다.
기업과 소비자의 걱정은 결국 충분히 소통하지 않아 발생하는 오해가 불러일으킨 결과입니다. 정책을 수립하고 수렴하는 절차에 있어 정부가 더욱 적극적으로 소통하길 바라는 아쉬움이 있어요

법제화의 과정은 속도를 내기 어려운 요소가 많다. 과잉 규제와 과소 규제가 가지는 장단에 대한 충분한 분석이 선행돼야 하는 건 물론, 긍정적인 시장 형성을 위해 각 기관별 지향점에도 차이가 존재하기 때문이다. 다만 그 가운데 여러 기관이 공통의 방향성을 향해 나아가는 교집합이 분명하게 존재하므로, 이를 정부 차원에서 분리된 목소리가 아닌 하나의 목소리로 소통할 필요가 있다는 이야기다.
아직 회색 지대인 AI 시장… 기업의 준비도 필요
앞서 살펴봤듯 법제화가 빠른 시간 안에 완성되기는 어렵다. 결국 법제가 마련돼 규제가 적용되기 전까지 기업은 생존을 위한 고민을 스스로 이어가야 한다. 강 변호사에 따르면 현재 많은 국내 AI 기업이 고민하는 지점은 ‘데이터 수집 및 활용’이다.
예로 AI 학습을 위해 데이터를 수집하는 과정인 ‘크롤링’이 있다. 국가마다 크롤링에 대한 규제가 다른데, 크롤링이 허용되는 국가에서 AI 서비스를 제작한 뒤 이를 크롤링 규제가 엄격한 국가에서 상용화할 경우 법적인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
이에 강 변호사는 “기업은 거버넌스 구축을 통해 자체적인 매뉴얼에 따라 법적인 문제를 방지하고자 충분한 노력을 기울여야 하며, 이러한 시스템 구축을 통해 자사의 행위에 고의적인 의도가 없었음을 증명할 필요가 있다”고 전했다.

요컨대 발생할 수 있는 위험을 미리 예측하고, 이를 방지하기 위한 충분한 노력을 기울였다는 점을 소명할 수 있어야 한다는 뜻이다. 이는 명확한 법제가 마련되지 않은 현 상황에서 기업이 AI 시장에 적극적으로 임할 수 있는 출구 전략으로 활용될 수 있다.
이를 위한 법률 정보를 얻는 과정에 있어서도 “적극적으로 외부에 법률 자문을 구해야 한다”며 “필요한 법률 정보를 얻는 걸 너무 어렵게 생각하지 말고 외부 자문과 컨퍼런스 등을 통해 적극적으로 법률 정보를 탐구하길 추천한다”고 덧붙였다.
무엇보다 중요한 건 ‘소비자’
AI 법제화에 대한 불안과 우려의 목소리가 크다는 건 결국 시장의 관심이 매우 높다는 의미다. 실제 최근 1~2년 사이 AI 시장의 사회적 합의에 대한 토론이 활발히 이뤄지고 있다. 강 변호사는 “이 과정에서 ‘소비자’를 간과하지 않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강 변호사는 법제화에 있어 대결 구도의 프레임에서 벗어나 시장과 소비자에게 도움이 될 수 있는 방안을 함께 고민하길 촉구했다(사진=디지털 인사이트)
이를 위해선 먼저 ‘기업과 정부’라는 대결 구도에서 벗어나야 한다. 정부는 규제를 정치적으로 이용하는 행위를 지양해야 하며, 기업 또한 자사의 이익에 지나치게 치중하는 태도를 경계해야 한다. 그래야 법제의 핵심인 소비자가 등한시되는 결과를 방지할 수 있다.
강 변호사는 “법제란 단순히 시장에 대한 규제만을 의미하지 않는다”며 “시장을 보호하는 울타리의 역할도 함께 한다. 이 점을 이해해야 법제가 제 기능을 하기 위한 명확한 방향으로 나아갈 수 있다”고 전했다.
원론적일 수 있지만, 이를 위해 무엇보다 필요한 건 단연 소통이다. “공자님 말씀 같아도 때로 그런 게 정답일 수 있다”는 강 변호사의 말처럼, 정부와 기업, 소비자에 이르기까지 사회 전반이 투명하고 활발한 소통을 이어간다면, 모든 구성원이 받아들일 수 있는 AI 법제화가 실현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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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에디터이민호 (treewords@ditoda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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