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는 ‘누리집’인데 본문은 ‘홈페이지’… 혼란 부추기는 공공 웹
[공공언어 실태 진단 ③] 공공-비공공용어 혼용

행정, 금융, 복지 등 일상생활에 필수적인 공공 서비스의 디지털 전환이 가속화되고 있다. 하지만 정작 국민과 공공 서비스를 연결하는 가장 직관적이고 중요한 인터페이스인 용어에 가로막혀 불편을 호소하는 사용자들이 많다.
“더 쉽게 작성돼야” 국민 ‘까막눈’ 만드는 공공언어 현주소
[공공언어 실태 진단 ①] 312명에게 물었다
“공공기관 웹사이트 맞나… 비공공용어 17% 육박”
[공공언어 실태 진단 ②] 공공용어 준수율
<디지털 인사이트>는 총 세 편에 걸쳐 국내 공공언어 실태를 진단 중이다. 1편에서는 설문조사를 통해 공공 웹사이트에 대한 국내 사용자의 불만을 살펴봤고, 2편에서는 UX 라이팅 기업 와이어링크와의 협업을 통해 국내 최초로 주요 공공 웹사이트에 비공공용어가 얼마나 쓰이고 있는지 정량 분석했다.
앞선 두 콘텐츠를 준비하며 깨달은 점은 일관되지 않은 용어 사용이 사용자의 혼란을 부추긴다는 점이다. 이에 마지막 3편에서는 용어 혼용 문제를 살펴볼 예정이다. 공공용어와 비공공용어가 무분별하게 뒤섞인 가운데, 이런 상황이 사용자 경험에 어떤 문제를 초래하는지 파헤쳐본다.
공공 웹사이트의 언어 혼용 실태
공공 웹사이트 언어 문제의 영향을 가장 직관적으로 찾아볼 수 있는 대목은 정부가 권장하는 공공용어와 관습적인 외래어, 한자어 등의 비공공용어가 일관된 기준 없이 혼재돼 있는 ‘용어 혼용’ 현상이다.
특히 최근 와이어링크 TX 기업부설연구소가 자체 웹 크롤링 용어 진단 시스템 ‘TX Public’을 활용해 국내 최초로 주요 공공기관 웹사이트의 공공용어 준수율을 분석한 ‘용어 진단 시스템을 활용한 주요 공공 누리집 텍스트 분석 보고서’는 이런 기형적이고 혼란스러운 상황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보고서에 따르면 현재 주요 공공 웹사이트에선 웹사이트 자체를 지칭하는 기본 용어부터 뒤섞여 있는 상태다. 정부 권장 순화어인 ‘누리집’이 1750회(68.3%) 쓰이며 자리를 잡아가는 듯 보이지만, 비공공용어인 ‘홈페이지’ 역시 814회(31.7%)나 발견됐다.

사용자가 과업을 수행하는 핵심 레이블의 혼용 지표는 더욱 심각하다. 파일을 취득하는 행위의 경우 비공공용어인 ‘다운로드’가 330회(84.2%)로 압도적인 반면, 순화어인 ‘내려받기’는 62회(15.8%)에 그쳤다. 뒤이어 정보를 뜻하는 단어 역시 ‘데이터’가 750회(87.1%), ‘자료’가 111회(12.9%)로 나타났으며, 외부 링크 안내를 뜻하는 ‘관련 누리집(62.9%)’과 ‘패밀리 사이트(37.1%)’도 일관성 없이 혼용되고 있음이 드러났다.
심지어 ‘로그인’은 542회(99.3%) 쓰인 반면, 순화어인 ‘회원 들어가기’는 단 4회(0.7%) 등장하며 사실상 용어 순화의 목적 및 실효성을 잃은 채 시스템 내부에 파편화된 텍스트만 남긴 상태인 점이 확인됐다.

용어 혼용이 불러오는 사용자 경험 문제
앞선 수치는 사용자가 과업을 수행하는 동안 끊임없이 달라지는 용어에 노출되어 극심한 ‘인지 부하’를 강요받고 있음을 시사한다. 실제 여러 UI·UX 디자인 방법론과 가이드라인들은 과업 수행 흐름 내에서 이런 용어 혼용이 발생할 경우 사용자가 혼동을 겪을 수 있다고 말한다.
하지만 이런 조언에도 불구하고도 여러 공공 웹에선 공공용어와 비공공용어가 혼용돼 있는 모습을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다. 대표적이 게 앞서 살펴 본 ‘누리집’과 ‘홈페이지’의 혼용이다. 오늘날 다수의 지자체 메인 화면의 표면엔 ‘정부 지자체 누리집’이라는 용어가 자리 잡고 있다. 우리말 속에 남아있는 외래어, 외국어를 순화하기 위함이다.
문제는 이런 도입 취지가 무색하게도 과업 수행을 위해 사용자가 탐색 범위를 넓히고, 하위 경로로 진입할수록 화면에선 누리집과 홈페이지, 웹사이트 등의 공공용어/비공공용어가 혼용돼 사용자의 혼란이 가중된다. 안내 메뉴나 하단 바닥글에선 ‘누리집’이라고 적혀 있지만, 정작 사용자가 읽어야 할 본문 콘텐츠 및 안내글 속에서는 홈페이지라는 단어가 버젓이 나타난다.


실제 기후 에너지환경부 웹사이트의 안내 페이지에 접속해 보면 웹사이트의 틀을 이루는 상단 메뉴와 하단 바닥글엔 누리집이라는 순화어가 적용돼 있지만 사용자의 시선이 가장 오래 머무르고, 사용자가 찾고자 하는 정보가 있는 본문 콘텐츠 영역에선 홈페이지라는 용어가 노출된다. 이런 시각적 불일치는 단순한 표기 오류를 넘어, 인지적 마찰을 발생시킨다.
특히 디지털 서비스에 익숙하지 않은 정보 취약계층의 경우 홈페이지를 참조하라는 안내를 보고 현재 자신이 있는 누리집을 벗어나 전혀 다른 사이트를 찾아 헤매는 등 과업 흐름 자체가 붕괴될 수 있다.

이런 인지적 마찰은 정부가 세운 기준에도 어긋난다. 정부가 공공 웹·앱에 적용하도록 만든 범정부 디자인 시스템 KRDS는 “화면에서 사용자가 인지한 용어가 서비스의 다른 영역에서 동일하지 않게 제공되면 사용자는 자신의 이동 과정에서 대해 혼동을 겪을 수 있다”며 “서비스에서 사용하는 용어는 정확하고 일관성이 있어야 하며, 사용자가 쉽게 이해할 수 있게 친숙하고 명확해야 한다”고 명시하고 있다.
관리 체계 부족에 공공용어의 비현실성까지 더해져
그렇다면 왜 공공 웹사이트 내 텍스트들은 일관된 공공용어로 통일되지 못하고 혼용의 늪에 빠지게 되는 것일까? 이에 현장 전문가들은 공공용어가 기관에 공식적으로 전달되더라도 실제 담당자까지 공유되지 않으며, 용어 사용 여부에 대한 관리도 부족하다고 말하고 있다.
쉽게 말해 공공용어가 기관 차원에서 제시되더라도 이를 누리집을 개발 관리하는 각 부서와 담당자에게 전달되지 않거나 기존 콘텐츠까지 일괄적으로 수정하는 체계가 부족해, 적용 시점과 담당 부서에 따라 비공공용어가 남게 되는 것이다.
실제 김형주 글말생활연구소 소장은 공공기관에 외국어 개선 목록이 매달 배포되고 있음에도 현장에서 만난 대다수 공무원은 해당 목록을 본 적이 없다고 답한 점을 지적하며, 공공용어를 마련한 뒤 실사용 여부를 관리하지 않고 방치하는 기관이 많다고 꼬집었다.

공공용어 자체의 태생적 한계와 비현실성을 지적하는 목소리도 적지 않다. 현재 공공용어는 언어의 사회성과 디지털 시대의 문맥을 고려하지 않은 채 기계적인 우리말 바꾸기에만 매몰되어 있기에, 기존 비공공용어의 의미를 완전히 대체하지 못하며, 공공용어 전환을 실무자와 국민이 반기지 않게 된다는 이야기다.
특히 이번 보고서를 발표한 와이어링크 TX 기업부설연구소는 “언어의 특성상 사회성과 경제성을 무시할 수 없기 때문에 익숙하지 않은 공공용어 사용만을 무조건적으로 고집할 수는 없다”며 “시대의 흐름을 반영하지 못하고 사용자 친화적이지 않은 순화어 자체의 적절성에 대한 검토와 연구도 부지런히 이뤄져야 한다”고 분석했다.
지속 관리 체계 위한 도구가 필요한 시점
그렇다면 이런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 수 있을까? 전문가들은 단순한 일회성 용어 통일을 넘어, 이를 지속적으로 관리하고 개선하는 체계 마련에 나서야 하며, 이를 위해선 인력에 의존하는 관행적 검수를 벗어나 자동화된 검수 및 진단 시스템을 도입해야 한다고 말한다. 이번 실태 조사에 쓰인 ‘TX Public’처럼 방대한 웹 텍스트를 크롤링해 문맥에 맞는 순화어를 자동으로 진단하고 추천해 주는 기술적 장치를 활용하자는 것이다.
실제 김형주 소장은 대량의 공공용어 자료를 사람이 제한된 기준으로 일일이 평가하는 방식만으로는 문제를 정확히 파악하기 어렵다며, “대용량 데이터를 처리할 수 있는 프로그램 평가 방식을 도입할 필요가 있다”고 제언했다.
양명희 중앙대 교수 연구팀이 국립국어원과의 계약에 따라 발행한 <공공언어 개선을 위한 인공지능 활용 방안 연구> 보고서 역시 같은 이야기를 한다. 이들은 공공언어 감수 결과가 사업과 기관별로 흩어져 있고 오류 판정 기준도 일관되지 않은 현실을 지적하며, “인공지능 기반의 윤문 도구 개발을 지속적으로 추진하고 감수된 자료를 정기적으로 검토하고 업데이트하는 시스템”을 마련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TX Public을 개발하고, 보고서를 공유한 와이어링크 TX 기업부설연구소의 이상희 리더 연구원 또한 “공공 웹사이트에서 용어 혼용이 발생하는 가장 큰 원인은 언어 관리 체계의 부재”라며 “새로운 행정 용어나 외래어가 지속적으로 유입되지만 이를 일관된 기준으로 관리·점검하는 체계가 부족해 혼용이 반복되고 있다”고 진단한다.
나아가 “TX Public과 같이 공공언어 기준과 기관별 용어 정책을 기반으로 웹사이트의 표현을 자동으로 점검하고, 일관성 있는 용어 사용을 지원하는 솔루션이 운영 과정에서 발생하는 혼용을 줄이는 데 도움을 줄 수 있다”며, “이를 통해 담당자의 검수 부담을 줄이는 동시에 국민에게 더욱 이해하기 쉬운 공공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UX 혁신’ 꾀하는 디지털 공공서비스, UX 라이팅 필요한 때
공공언어, 공급자 아닌 사용자 관점의 글쓰기 적용해야
단어 순화로는 부족… 디지털 공공언어 어떤 모습이어야 할까?
국내 첫 공공 UX 라이팅 가이드 개발한 와이어링크 인터뷰
뉴스콘텐츠는 저작권법 제7조 규정된 단서조항을 제외한 저작물로서 저작권법의 보호대상입니다. 본 기사를 개인블로그 및 홈페이지, 카페 등에 게재(링크)를 원하시는 분은 반드시 기사의 출처(로고)를 붙여주시기 바랍니다. 영리를 목적으로 하지 않더라도 출처 없이 본 기사를 재편집해 올린 해당 미디어에 대해서는 합법적인 절차(지적재산권법)에 따라 그 책임을 묻게 되며, 이에 따른 불이익은 책임지지 않습니다.
- 에디터김동욱 (jkkims@ditoday.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