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 것의 목소리로 신차를 빚어내다” 현대차의 UX 전략
현대차 UX 전략팀 3인 인터뷰


강남 한복판에 세워진 낯선 건물. UX 스튜디오는 지난해 7월 현대자동차 강남대로 사옥에 문을 열었다. 내부가 훤히 들여다 보이는 통유리, 육중하게 움직이는 로봇, 가상 주행 시뮬레이션까지. 언뜻 보면 신차 전시장 같지만, 실은 누구나 방문해 현대차의 신기술을 체험하고 의견을 낼 수 있는 UX 리서치 공간이다.
글로벌 모빌리티 업계 최초의 ‘개방형 UX 리서치 플랫폼’이라는 점에서 UX 스튜디오는 개관 즉시 주목을 받았다. 특히 UX 실무자의 관심이 뜨거웠다. 현대차는 참관 프로그램을 일반과 프로페셔널 두 가지로 나누어 운영 중인데, 프로페셔널은 반차를 내가며 방문하는 실무자들이 몰린 탓에 웬만한 수강신청보다 예약이 어려울 정도였다(기자도 수 차례 실패했다).
이들의 참가 이유는 대부분 비슷했다. ‘현대차 같은 기업은 대체 UX 리서치를 어떻게 하는 걸까?’
여기서 ‘현대차 같은’이라는 표현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크게 두 가지 의미가 담겼다. 하나는 ‘돈 많은 대기업’이고, 다른 하나는 ‘실물 제품을 만드는 기업’이다. 요컨대 돈 많은 기업이 UX에 얼마나 투자하고 있는지, 물리적인 제품에 UX가 어떻게 접목되는지 알고 싶다는 뜻이다.
지난해 취재차 UX 스튜디오에 방문했을 때는 이 질문에 충분히 답하기 어려웠다. 1년이 흐른 지금, UX 스튜디오는 사용자 목소리를 얼마나 수집했으며, 그렇게 얻은 데이터는 신차 개발에 어떻게 반영됐을까. 지난달 중순 UX 스튜디오 2층에서 현대차 UX 전략팀을 만나 자세히 물었다.

“날 것의 목소리가 필요했다“
UX 스튜디오가 생긴 가장 큰 이유는 모빌리티 산업의 패러다임이 ‘소프트웨어 중심 차량(SDV)’으로 바뀌었기 때문이다. 최근 몇 년 새 자동차는 ‘탈 것’에서 ‘전자제품’으로 바뀌었고, 완성차 기업 사이에선 하드웨어보다 소프트웨어 기술이 더 큰 경쟁력으로 떠올랐다. 현대차도 전 차종을 순차적으로 SDV로 전환 중이다.
현대차가 강남 사옥에 ‘UX 스튜디오 서울’을 세운 이유
‘살아있는 데이터’ 실시간 수집하는 공간
이 과정에서 걸림돌이 됐던 건 리서치 속도였다. 일반적으로 완성차를 기획하고 출시하는 데는 4~5년이 걸린다. 하지만 소프트웨어는 그 주기가 훨씬 짧아 기존 리서치 방식으로는 대응하기 어려웠다. 사용자 피드백을 실시간으로 수집할 필요성이 생겼고, 그렇게 탄생한 게 UX 스튜디오다.
속도만큼 중요하게 고려했던 건 데이터의 편향성이다. 현대차도 원래는 다른 기업처럼 외부 리서치 업체의 도움을 받아 사용자 조사를 진행했는데 해당 결과가 ‘정말 우리 고객의 목소리인지’ 확신할 수 없었다. 남신 UX 전략팀 팀장은 이렇게 설명했다.

“리서치 전문 업체마다 따라다니며 설문 조사에 참여하는 분들이 계세요. 일종의 훈련된 고객이죠. 훈련된 고객은 저희가 원하는 대답을 해줘요. 때문에 ‘그게 정말 진짜 고객 목소리가 맞느냐’ 하는 내부 의견이 꾸준히 있었어요. 저희는 날 것의 목소리가 필요했고, 이 점이 UX 스튜디오를 만든 중요한 이유였습니다.”
남신 UX 전략팀 팀장


UX 스튜디오는 사용자의 사소한 행동 하나도 놓치지 않도록 설계됐다. 1층에는 우드 형태의 콘셉트 스터디벅과 간이 주행 검증 벅이 마련돼 있어 방문객이 현대차의 신기술을 자유롭게 체험해볼 수 있다. 이 과정에서 발생한 시선 및 행동 데이터는 곧장 전용 서버로 전달돼 데이터화된다.
2층은 더 본격적이다. 임직원 카드 키를 찍어야만 입장할 수 있는 무거운 철문 뒤에는 마치 F1 훈련 시설을 연상시키는 수십 평 규모의 주행 시뮬레이터가 마련돼 있다. 막대한 비용을 들여 개발한 이곳에선 운전자가 실제 도로 상황에서 어떻게 반응하는지를 사방에 마련된 센서가 0.1초 단위로 정교하게 측정한다.
현대차가 UX 리서치에 이렇게까지 진심인 이유는 결국 자동차라는 제품이 안전과 직결됐기 때문이다. 현대차 UX 전략팀의 원칙 중 하나는 “1초라는 숫자도 가볍게 생각하지 않는 것”이다. 운전자가 새로운 기능을 사용하기 위해 아주 잠깐 시선을 돌린 사이 자칫 큰 사고가 벌어질 수 있어서다. 화려해 보이는 UX 스튜디오의 첨단 설비는 사실 모빌리티라는 분야에서 더 나은 UX를 달성하기 위해 꼭 필요한 선행 투자였던 셈이다.

5만명의 목소리는 어떻게 신차가 됐을까


영업사원 다음으로 운전자와 밀접하게 소통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UX 스튜디오는 UX 전략팀에서 운영한다. 50명 규모의 UX 전략팀은 총 4개 부서로 구성된다. 신기능을 기획·개발하는 UX 1, 2파트와 사용성을 테스트하는 유저빌리티 파트, UX 스튜디오를 담당하는 UX 스튜디오 파트다. 일반적인 소프트웨어 기업이라면 UX 파트만 있어도 될 테지만, 모빌리티 기업인 만큼 안전과 법규를 고려해야 해 검증을 전담하는 파트가 따로 있다는 설명이다.
UX 전략팀의 주된 역할은 신차 기획이다. 차세대 인포테인먼트 시스템과 그 안에 들어가는 AI 에이전트, 디스플레이 화면 구성과 물리버튼까지 차 안에 들어가는 모든 기능이 이들의 눈을 거친다. 그리고 이 과정에서 UX 스튜디오 파트의 역할은 빼놓을 수 없다. 지난 1년간 약 5만명의 방문객으로부터 수집한 데이터가 다양한 제품 개발에 반영됐는데, UX 스튜디오가 없었다면 의사결정이 불가능했을 사안이 적지 않다.

대표적인 게 페이스리프트 모델인 더 뉴 그랜저에 적용된 물리버튼과 계기판 설계다. 현대차는 당초 SDV를 개발하는 과정에서 물리버튼과 계기판 같은 아날로그 기능을 대형 디스플레이에 통합하는 방안을 추진했다. 하지만 처음 선보이는 SDV 제품인 만큼 사용자 반응을 정확히 파악하기 위해 사전 검증을 실시했고, 그 결과 일부 아날로그 기능이 오히려 도움이 된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처음엔 물리버튼과 계기판을 완전히 없애는 쪽으로 기획을 진행했는데요. 국내외 사용자 리서치를 진행해보니 일부 아날로그 기능을 남기는 편이 오히려 주행 중 시선을 덜 빼앗는다는 결과를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이에 따라 공조 및 미디어 버튼을 살리고 계기판 슬림 디스플레이를 따로 둔 지금의 레이아웃을 양산 모델에 적용했습니다.
한재선 UX 전략팀 UX 스튜디오 파트장
조사의 신뢰도를 위해 리서치 대상의 절반을 테슬라 운전자로 섭외하기도 했는데요. 결과적으로 고객분들도 이번 모델에 대해 ‘현대차만의 참신함을 잘 살렸다’며 호평해주고 계십니다.”

사소하지만 꼭 필요한 개선도 많았다. 지난해 여름에는 공조 오토(Auto) 기능의 레이아웃을 변경했다. 해당 프로젝트는 데이터로 이상 신호를 포착한 뒤 현장 관찰로 원인을 규명했다는 점에서 모범적인 UX 개선 사례로 꼽힌다.
“지난해 여름, UX 스튜디오에서 공조 오토의 사용성 조사를 진행했어요. 그런데 예상보다 사용 빈도가 훨씬 낮았습니다. 대략 30~40%였는데요. 이유가 궁금해 팀원 한 분이 사용자를 관찰해봤어요.
오토를 켜두면 설정 온도에 맞춰 바람이 나오는데 이게 싫은 사용자는 풍량을 건드립니다. 그럼 오토가 해제되거든요. 사실 오토를 유지하면서 바람을 줄이려면 오토 단수를 낮추면 되는데 차량 레이아웃 특성상 풍량 버튼이 오토 단수 조절 버튼보다 운전자 손에 더 가깝게 배치됐던 게 문제였죠. 그래서 헷갈리지 않도록 다양한 레이아웃을 여러 개 만들어 비교한 뒤 최종 결과를 그랜저 페이스리프트에 반영했습니다.”
양주리 UX 전략팀 책임연구원
아직 신차에 적용되지 못 한 괜찮은 아이디어도 있다. 현재 UX 스튜디오는 중국과 유럽, 북미에서도 운영되고 있는데, 이 과정에서 국가별 운전자의 UX 성향 차이를 발견할 수 있었다. 현대차에 따르면, 한국 운전자는 복잡한 UI에도 잘 적응하는 반면, 미국은 직관적인 사용을 선호한다. 그래서 바로가기 버튼을 애용하는 편이다. 하지만 중국은 이런 버튼이 트렌디해 보이지 않는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으며, 유럽은 사운드에 민감해 조용한 경험을 원한다고 한다.
한재선 파트장은 “보통 모빌리티 기업의 차량 디스플레이 UI는 하나의 사양으로 통일된다”며 “하지만 현대차는 UX 스튜디오를 통해 권역별 선호도를 파악할 수 있으므로 향후 소프트웨어 업데이트를 통해 국가마다 다른 UI를 적용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라고 했다.
그렇다면 이 모든 개선은 어떤 기준으로 이뤄지는 걸까. 남신 팀장은 ‘익숙함’이라고 답했다.
“UX를 두고 혁신 운운하는 경우가 있는데요. 차량에 있어서 만큼은 ‘가장 익숙한 게 가장 좋은 경험’이라는 철학을 갖고 있습니다. 그리고 생태계를 고민하는 것도 중요해졌습니다. 앞으로 차량과 모바일은 점점 더 연결될 테므로 이제는 생태계라는 단어를 빼고 모빌리티를 논할 수 없습니다.”
더 나은 UX 스튜디오가 되기 위해서
지난해 강남 사옥에 UX 스튜디오가 생기기 전까지 이날 인터뷰에 참석한 세 명을 포함한 UX 전략팀은 현대차 남양연구소에서 근무했다. UX 스튜디오 덕에 어떤 부분이 나아졌는지 묻는 질문에 이들은 입을 모아 “예상치 못했던 목소리를 들을 수 있었던 점”을 꼽았다.

한재선 파트장은 “이곳이 상업지구라 직장인들이 주로 방문할 줄 알았는데 의외로 아이들을 둔 부모가 많이 찾는다”며 “맘카페에선 ‘강남 주말에 가볼 만한 곳’으로 추천되기도 한다. 일반적으로 전문 업체를 써도 가족 단위 리서치는 진행하기 어려운 경우가 많기 때문에 패밀리 관점의 리서치에 큰 도움을 받고 있다”고 했다.
남신 팀장은 한 카페 아르바이트 직원의 사례를 들며 이렇게 말했다.
“사용자 조사를 하기 전에는 자율주행이나 AI 이야기가 많이 나올 줄 알았어요. 그런데 어떤 분이 말하길, 본인이 카페 알바를 하는데 매장 문을 열고 주차되냐고 물어보는 손님이 많다는 거예요. 그러니 차량 내비게이션에 상점 주차 정보가 기본으로 탑재되면 좋겠다는 의견을 주셨어요. 저희로서는 도저히 떠올릴 수 없는 피드백이잖아요. 이처럼 사용자가 자동차에 바라는 기능은 의외로 소소한 경우가 많은데 놓치고 있던 부분이라 참고가 많이 되죠. 해당 기능은 지금 개발 검토 중입니다.”
남신 팀장
2년차를 맞이한 UX 스튜디오는 내년을 목표로 새로운 변화를 준비 중이다. 우선 체험형 콘텐츠를 늘리고 A/B 테스트를 자주 진행할 계획이다. 또 자신의 의견이 차량 개발에 어떻게 반영됐는지 궁금해하는 방문객들의 의견을 반영해 관련 콘텐츠를 2층에 조성할 계획이다.

양주리 책임연구원은 “방문객분들을 관찰해보니 1층을 재미있게 구경한 뒤 2층에 올라왔다가 커피라운지와 신차밖에 없어 실망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며 “내년에는 2층을 더욱 알차게 꾸며 양방향 소통이 가능한 UX 스튜디오로 만들 예정이다. 또 특정 타깃을 대상으로 한 오프라인 이벤트도 더 자주 열어볼 계획”이라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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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나은 UX 스튜디오를 위해선 풀어야 할 과제도 있다. 우선 재방문자의 데이터를 지속적으로 추적하는 일이 필요하다. 한재선 파트장은 “데이터를 더 퀄리티 있게 수집하고 인사이트를 도출해야 한다는 관점에서 봤을 때 동일한 방문객의 피드백을 축적하고 발전시키는 체계가 더 고도화돼야 한다”고 했다. 대부분의 UX 조직이 그러하듯, UX 리서치의 기여도를 회사에 증명하는 것도 계속 고민 중인 일이다.
“저희가 인력도 그렇고 예산도 그렇고 회사의 전폭적인 지원을 받고 있는 건 분명합니다. 때문에 더더욱 우리의 기여도를 정량적인 산출물로 만들어 증명하는 과정이 중요하다고 봅니다. 지금은 1년밖에 되지 않아 리서치의 효과성을 리서치 횟수나, 신기능 반영 횟수, 차종 개수 등으로 잡고 있는데요. 궁극적으로 이를 비용으로 환산하는 방법을 고민하고 있습니다. 쉽지는 않아요(웃음).
그렇지만 너무 정량적인 결과에만 매달리려 하진 않습니다. 사실 UX라는 게 겁 없이 시도해야 하는 업이라고 생각해요. 한 번 조사로 ‘이거다’ 할 수는 없거든요. 그리고 본질적으로 정성적이기도 하고요. 그러니 저희는 계속 ‘츄라이(Try)’할 겁니다.”
남신 팀장
UX 스튜디오 같은 리서치 시설을 모든 회사가 갖출 순 없다. 회사의 추진력과 자금력이 모두 필요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이번 사례에서 UX 실무자들이 얻어갈 수 있는 메시지는 분명해 보인다. 현장의 목소리는 언제나 우리의 예상을 벗어난다는 점, 그리고 그 날 것의 목소리가 대개 더 나은 제품 개발에 도움이 된다는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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