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은 언제나 고객에 있다” 20년 차 ‘언더독 마케터’의 전투기
유두호 롯데멤버스 마케팅 부문장 인터뷰

국내 최초로 광고에 뮤직비디오를 접목한 인물. 갤럭시 S 초기 론칭 캠페인을 이끌며 아이폰으로부터 로컬 시장을 방어한 인물. 국내 이커머스 업계 최초로 유료 멤버십을 정착시킨 인물. 모두 유두호 롯데멤버스 마케팅 부문장을 수식하는 표현입니다.
이력만 보면 잘나가는 기업에서 순탄한 길만 걸어왔을 것 같지만 그는 자신의 20년 커리어를 회상하며 “언더독이 아닌 적이 없었다”고 단호히 말합니다.
제일기획에서 갤럭시 S 캠페인을 맡았을 땐 아이폰이라는 거인과 맞서야 했고, 지마켓에 합류해서는 네이버와 쿠팡으로 이탈하던 충성 고객을 붙잡아야 했습니다. 또 성형 정보 플랫폼 바비톡에선 소비자 사이에 만연하던 ‘불신’이라는 인식과 싸워야 했죠. 그의 표현을 빌리자면 줄곧 ‘관성의 반대편’에서 일해왔던 셈입니다.
관성의 반대편, 특히나 제품력이 충분히 올라오지 않은 상황에서 성과를 내려면 철저히 고객에 집중해야 합니다. 유두호 부문장은 “시대마다 고객이 원하는 것, 행동하는 것이 달라진다”며 “이를 놓치지 않고 고객 경험에 맞춰 메시지를 전달했기 때문에 선택받을 수 있었다”고 말합니다.
IMC 캠페인부터 멤버십, 플랫폼, 브랜딩에 이르기까지 분야를 넘나드는 유두호 부문장의 ‘마케팅 전투기’는 지금 시대를 살아가는 마케터들에게 큰 영감을 줍니다. AI가 모든 걸 쉽게 제작할수록 ‘고객을 얼마나 잘 이해하느냐’ ‘문제를 얼마나 뾰족하게 정의하느냐’에서 승부가 갈리기 때문인데요.
지난달 롯데멤버스 사옥에서 유두호 부문장을 만났습니다. 수많은 언더독 스토리 가운데 가장 기억에 남는 세 가지 결정적 순간을 물었습니다. 또 지난 20년 간 숱한 실패와 성공을 경험하며 깨달은 점과 AI 시대 마케터에게 필요한 역량에 대해서도 들었습니다.

아이폰을 이긴 갤럭시 S의 포지셔닝 전략
유두호 부문장은 16년 전 제일기획 소속으로 이끌었던 갤럭시 S 론칭 IMC(통합 마케팅 커뮤니케이션) 캠페인을 생생하게 기억합니다. 당시 전 세계 스마트폰 시장은 애플의 아이폰이 꽉 잡고 있었는데요. 그해 갤럭시 S는 시장의 예상을 뒤엎고 국내 스마트폰 판매량 1위를 달성하는 데 성공합니다. 해당 캠페인은 아직까지도 아이폰으로부터 로컬 시장을 지킨 세계 유일의 마케팅 사례로 기억되고 있습니다.

Q. 당시 시장은 ‘아이폰 천하’였습니다. 캠페인 접근에 고민이 많았을 것 같습니다.
2010년에 출시된 갤럭시 S는 아이폰에 비해 제품 완성도나 사용자 경험 면에서 부족했습니다. 때문에 정면 승부로는 고객을 설득하기 어렵다고 봤고, 브랜드 포지셔닝을 다르게 가져가기로 했습니다. 그렇게 떠올린 게 ‘아이폰은 감성, 갤럭시는 성능’이라는 프레임이었습니다. 국내 전자제품 소비자들이 스펙과 성능에 민감하다는 점을 겨냥한 메시지였죠.
Q. 이 메시지가 그때 만들어졌군요. 커뮤니케이션 전략도 남달랐다고요.
TV 광고만으로는 메시지를 효과적으로 전달하기 어렵다고 봤습니다. 이제 막 출시된 제품이다 보니 브랜드의 일방적인 주장처럼 들릴 위험이 있었거든요. 때문에 유명 IT 블로거와 얼리어답터를 찾아가 제품 리뷰를 요청했습니다. 실제 후기라면 더 믿을 만하겠다고 판단한 거죠.
Q. 16년 전에 이미 인플루언서 마케팅을 시도한 거군요.
그런 셈입니다. 아이폰도 유명 블로거의 후기를 통해 입소문이 나던 때였어요. 소비자들이 브랜드 이미지보다 실제 사용 경험을 더 중요하게 여긴다는 신호였습니다. 이런 변화를 빠르게 캐치해 메시지 전략에 반영시킨 점이 캠페인 성공에 주효했다고 생각합니다.

Q. 캠페인 과정에서 안드로이드 앱도 개발했다면서요?
당시 안드로이드 마켓(현 구글 플레이)에 쓸 만한 앱이 없었거든요. 앱이 없으니 장점을 보여주고 싶어도 보여줄 수가 없었죠. 그래서 1인 개발자들을 찾아다니며 아이폰에서 되는 기능을 갤럭시에서도 쓸 수 있게 해달라고 했어요. 그리고 이 앱들을 기반으로 캠페인을 진행했습니다.
Q. 해당 캠페인을 어떻게 기억하시나요?
여전히 자랑스러운 프로젝트입니다. 후발주자의 브랜드 포지셔닝 전략을 어떻게 수립하고 실행해야 하는지 치열하게 고민한 순간이었고, 특히 존재하지 않는 고객 경험을 직접 만들어 메시지 전략까지 이어간 일련의 과정이 이후 커리어에서도 큰 자산이 됐다고 생각합니다.
돈 많은 고객도 원하는 건 똑같았다
2017년 유두호 부문장은 12년 간 일한 제일기획을 뒤로 하고 지마켓으로 향합니다. 당시 국내 이커머스 시장은 네이버와 쿠팡이 한창 주가를 올리던 때였습니다. 여기서 그는 로열티 마케팅이라는 완전히 새로운 영역에 도전, 국내 이커머스 최초 유료 멤버십 ‘스마일클럽’과 PLCC(상업용 표시 신용카드) ‘스마일카드’의 론칭 및 마케팅을 총괄하며 지마켓이 지금의 멤버십·결제·커머스 중심의 비즈니스 구조를 갖추는 데 기여합니다.

Q. 지마켓에 합류하던 때 국내 이커머스 시장 상황은 어땠나요?
네이버와 쿠팡이 빠르게 성장하며 기존 이커머스 강자들이 내리막을 걷고 있었습니다. 지마켓도 예외는 아니었죠. 배송이 가장 빠른 것도, 가격이 가장 저렴한 것도 아니었으니까요. 지마켓은 충성 고객의 이탈을 막기 위해 업계 최초로 유료 멤버십 스마일클럽 론칭이라는 초강수를 뒀고, 저는 그 마케팅을 담당했습니다.
Q. 전례가 없던 프로젝트입니다. 고객 유치가 쉽지 않았을 것 같은데 어떤 시도가 가장 결정적이었다고 보시나요?
신규 회원을 대상으로 진행한 웰컴 기프트 이벤트를 꼽을 수 있겠네요. 사실 시행착오가 굉장히 많았습니다. 해당 멤버십은 프리미엄 고객, 그러니까 객단가가 높은 고객을 겨냥하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프리미엄 혜택’을 줘야 한다고 판단했어요. 처음엔 실물 굿즈를 만들어 제공했습니다. 그런데 가입자가 늘지 않았죠. 이후 지식 강연과 클래식 공연, 아이돌 브랜드 콘서트 등을 기획했지만 여전히 반응은 시큰둥했습니다. 수 차례 실패하고 나서야 비로소 고객을 충분히 이해하지 못했다는 점을 깨달았습니다.
Q. 고객이 원하는 게 뭐였길래?
돈 많은 고객이라도 쇼핑몰에 원하는 건 똑같더군요. 다른 곳보다 저렴하게 사고 싶다, 이게 가장 큰 욕구였죠. ‘프리미엄’이라는 콘셉트에 빠져 기획이 미궁으로 빠지고 말았던 거예요. 이후 웰컴 기프트를 캐시 쿠폰으로 바꿨고 그 즉시 유료 회원이 급증했습니다.
캠페인, 고객 욕구 건드릴 수 있어야
지마켓에서 다양한 프로젝트를 성공적으로 이끈 그는 2021년 말, 성형 정보 플랫폼 바비톡으로 자리를 옮깁니다. 당시 바비톡은 업계 1위였지만 시장 경쟁이 치열해짐에 따라 새로운 변화가 필요하던 상황이었습니다. 서비스가 차별화되지 않은 상황에서 유두호 부문장이 택한 건 브랜드 마케팅이었습니다.

Q. 당시 국내 성형 정보 플랫폼 시장 상황은 어땠나요?
고객 불신이 컸습니다. 플랫폼이 좋은 리뷰만 골라 보여준다는 의심이 뿌리깊게 형성돼 있었죠. 따라서 더 많은 리뷰를 모으는 기존의 전략 대신 브랜드 신뢰도를 높일 수 있는 차별화된 캠페인이 필요하다고 진단했습니다.
Q. 이후 소방관의 화상을 직접 치료해주는 ‘소방관 캠페인’을 진행했습니다. 반응이 좋았던 걸로 기억하는데요.
화상 치료가 비급여라는 사회적 문제에 주목해 소방관을 돕는 캠페인을 기획했습니다. 이를 통해 ‘바비톡=진정성’이라는 브랜드 이미지를 구축하고자 했죠. 실제 캠페인 반응도 뜨거웠고 소방청 표창도 받았지만 결국 실패한 캠페인으로 남고 말았습니다. 비즈니스 성과로는 이어지지 않았거든요.
Q. 왜죠?
이쁘고 젊어지고 싶다는 고객의 욕구를 건드리지 못한 탓입니다. 물론 사회적으로 중요한 문제라는 데는 공감대가 형성됐지만, 그게 구매 논리로 이어지지는 않았어요.
Q. 다음으로 시도한 게 ‘부작용 알리기 캠페인’입니다. 앱에 부작용 탭을 신설, 실제 성형 피해 사례까지 투명하게 공개했습니다.
소방관 캠페인 실패 후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 고객이 플랫폼을 믿지 못하는 이유에 주목했습니다. 좋은 정보만 선별된다는 의심이 원인이었으니 부작용까지 보여준다면 신뢰를 얻을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습니다. 고객의 욕구와도 직접적인 연관성이 있었고요. 그래서 성형 부작용 사례를 통해 고객의 신중한 선택을 돕고자 했습니다. ‘나쁜 정보까지 공개하는 플랫폼’이라는 포지셔닝은 역설적으로 소비자의 신뢰를 얻는 데 도움이 됐고, 바비톡의 트래픽과 매출 신장에도 톡톡한 기여를 했습니다.
“철학? 고객에만 집중해야”
매번 언더독의 위치에서 성공을 거둔 데에는 무언가 비결이 숨어 있을 것 같습니다. 20년 간 고수해온 철학이 무엇인지 묻자 예상 밖의 대답이 돌아왔습니다. “철학이나 원칙 같은 건 없다”는 겁니다. 대신 “고객이 무엇을 원하는지에만 집중했다”고 덧붙였습니다.
Q. 20년 베테랑인데 철학이 없다니 의외입니다.
정확히 말하면 특정 철학을 고집하지 않습니다. 저는 마케터를 ‘고객에 맞춰 변화하는 사람’으로 정의해요. 경력이 어느 정도 쌓인 마케터들을 만나면 소위 ‘곤조’가 있습니다. 이것만큼은 타협할 수 없다 하는 지점이 있죠. 철학이 있는 건 중요하지만 그걸 고수하려 애쓰는 건 좋지 않다고 봅니다. 왜냐하면 마케터는 비즈니스 성과로 말하는 사람이고, 고객을 설득하는 게 일인데, 그 고객이 끊임없이 변하기 때문입니다. 고객에게 외면받는 철학은 과감히 버릴 수 있어야죠.
Q. 마케팅에 대한 접근 방식도 남다를 것 같습니다.
마케팅은 고쳐나가는 과정에 가깝다고 생각합니다. 처음부터 완성된 것을 선보이는 게 아니라, 일단 캠페인을 공개한 뒤 고객의 반응을 보며 개선해 나가는 것이죠. 디지털 캠페인은 고객의 목소리를 더 빠르게 알 수 있으니 이 편이 더 효과적이라고 봐요.
Q. 고객이 뭘 원하는지 파악하는 노하우가 있다면요?
시행착오만이 답이에요. 고객은 말을 안 합니다. 행동으로만 보여줘요. 브랜드를 선택한다는 건 고객이 브랜드에 품고 있는 기대와 이미지, 사회적 맥락, 관계 등의 총합입니다. 너무 복합적이라 단일 리서치로는 온전히 파악할 수가 없어요. 캠페인을 시도하고 반응을 보며 고객이 원하는 걸 알아내는 게 가장 정확한 방법이라고 생각합니다.

Q. 2024년 롯데멤버스에 합류해 멤버십·데이터·플랫폼을 총괄 중입니다. 어떤 문제를 해결해 나가고 계신가요?
롯데는 다양한 브랜드를 운영하고 있는 만큼 엘포인트의 사용 영역이 굉장히 넓습니다. 이에 고객들의 포인트 경험을 하나로 묶을 수 있는 마케팅 도구가 필요하다고 판단했고, 롯데그룹의 첫 PLCC 상품인 롯데멤버스 카드를 론칭했습니다. 보통의 PLCC 카드는 각각의 사업 영역에서만 사용할 수 있지만, 롯데멤버스 카드는 그룹 차원에서 통합 운영되는 첫 사례로 차별화를 뒀습니다. 출시 과정에서 롯데멤버스가 그룹사 간 중간 역할을 성공적으로 수행했고, 롯데를 이용할수록 적립률이 늘어나도록 혜택을 설계해 그룹 시너지를 극대화했습니다.
실제 롯데멤버스 카드는 출시 1년 만에 30만 장 발급을 돌파하는 유의미한 성과를 내고 있습니다. 또 L.POINT 앱을 롯데그룹 계열사 혜택을 모은 허브로 재구축해 고객 체류시간을 늘리는 등 체리피커 문제도 함께 해결해 나가고 있습니다.
AI 시대 마케터에게 필요한 것
브랜딩부터 퍼포먼스까지 다양한 마케팅 캠페인을 주도해온 그는 평소에도 통합 마케팅 역량의 중요성을 강조해왔습니다. “마케팅은 원래 하나였다”는 게 그의 입버릇이죠. 특히 AI 시대 들어 후배들에게 ‘올라운더 마케터’가 되기를 주문하고 있습니다.

Q. 올라운더 마케터가 뭔가요?
모든 마케팅 업무를 이해하는 마케터를 말합니다. 과거에는 마케터 한 명이 브랜딩부터 퍼포먼스, 프로모션, 광고 등을 다 했습니다. 지금은 미디어가 다양해지면서 마케팅 업무가 분업화, 전문화됐는데, 그 탓에 브랜드 메시지가 일관되게 전달되지 못하는 부작용이 발생하고 있다고 봐요. 각 조직마다 목표도, 오디언스도 다르니 어쩔 수 없는 현상이죠.
Q. 좋은 말이지만 지금 같은 시대에 올라운더 마케터가 가능할까요?
AI 덕분에 가능해질 거라고 생각합니다. 너무 복잡해서, 시간이 많이 들어서 한 사람이 하지 못 했던 걸 AI가 빠르게 해줄 테니까요. 그럼 통합 마케팅 역량을 갖춘 사람들이 더 중요한 역할을 맡게 될 겁니다. 요즘 실리콘밸리에서 풀스택 개발자가 주목받는 이유와 비슷하다고 볼 수 있겠네요.
Q. 열심히 전문성을 기른 실무자라면 허탈할 수도 있겠습니다.
이런 질문을 던져보세요. 지금 내가 잘하는 일이 앞으로도 경쟁력이 될 수 있을까? 오늘의 나를 만든 능력이 내일의 나를 위협할 수도 있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합니다.
Q. 그렇다면 AI 툴을 많이 배워야 할까요?
아니요. 오히려 AI 툴에 집착하지 말라고 조언하고 싶습니다. 요즘 누가 AI로 뭐 만들었다 하면 우르르 몰려들곤 하는데 조급해서 그렇습니다. AI의 발전 속도를 보면 지금 나오는 팁들은 금세 무의미해질 겁니다. 툴보다는 마케팅의 본질, 즉 기획과 고객 이해에 집중하는 게 경쟁력을 쌓는 일입니다.
Q. 후배 마케터들에게 딱 한 가지 공부 방법을 조언한다면.
시행착오를 통해 배우세요. 실패가 용인되지 않는 상황이라면 다른 사람의 실패 사례를 복기하는 것도 좋은 방법입니다. 나라면 어떻게 해볼 수 있었을까를 끊임없이 고민해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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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에디터장준영 (zzangit@ditoday.com)
- 섬네일조현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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