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I/UX

UX 디자인 관점으로 본 명동 버스 대란

왜 서울시는 실패할 수밖에 없었는가

“이전엔 늦어도 15분, 20분이면 타고 갔어요. 근데 지금은 봐요. 1시간 넘게 기다리고 있잖아요”

지난 4일 퇴근을 위해 명동에서 버스를 기다리고 있던 한 승객이 MBC 취재진에게 전한 답이다. 그는 취재진에게 퇴근지옥을 겪고 있다고 토로했다. 서울시가 명동에서 버스를 타기 위해 정류장 이곳저곳을 이동하는 것이 위험하다며 버스들에 번호 푯말을 부과하고 각 번호 푯말에 적힌 구역에서만 정차·승하차할 수 있는 ‘푯말 정류장 정책’을 시행한 후 벌어진 일이었다.

명동입구 정류장에서 길게 늘어선 시민(사진=이데일리)

그 결과 버스 행렬이 끝없이 이어지고 지나가는 승용차까지 뒤엉키면서 차도까지 꽉 막혀버렸다. 명동에서 비롯된 정체는 명동뿐만 아니라 서울역과 숭례문까지 늘어져 약 1km 구간이 통째로 마비되는 사태까지 이어졌다. 이런 푯말 정류장 정책이 논란이 되자 서울시는 뒤늦게 정책 도입을 유예하고 대책 마련에 나섰다.

한편 이렇게 명동 버스 대란에 대해 많은 시민이 불편을 겪고 분노하고 있던 와중에 UI·UX 디자이너들이 의견을 내보이고 있다. 사용자의 니즈를 분석·파악하고, 이에 기반해 경험 디자인 설계를 진행하는 UX 디자이너에겐 익숙한 실패 사례고, 이번 대란이 도시 계획 UX 디자인의 중요성과 필요성을 인식하는 계기가 될 것이라는 것이 그들의 논지였다.

그렇다면 UX 디자인 관점에서 보았을 때 이번 서울시 명동 버스 대란 행정은 어떤 문제가 있는 걸까? 그리고 정말 도시 계획에 UX 디자인이 활용될 수 있을까? 이번 글에서는 UX 디자인에서 핵심 요소 중 하나인 사용자 중심 디자인의 관점으로 명동 버스 대란을 다뤄본다.

?사용자 중심의 디자인(UCD)이란?

UX 디자인의 한 분류인 ‘사용자 중심 디자인’은 최종 사용자가 무엇을 원하고, 필요로 하는지에 중점을 두고 디자인 가치를 만들어내는 디자인 방식이다. 사용자의 니즈, 요구 사항, 경험을 이해하고 이를 바탕으로 제품이나 서비스를 설계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기존 디자인 과정과 비교해 사용자를 대상으로 한 리서치, 사용성 검증 등이 디자인 개발 중심의 축을 이루고, 사용자를 디자인 과정에 참여시킨다는 핵심 차이점이 존재한다.

리서치 부재

이번 명동 버스 대란 원인으로 1차 지목된 것은 정책 시행 이전에 충분한 리서치가 이루어지지 않았다는 점이다. 실제로 서울시는 해당 논란 이후 “별도의 설문 조사를 거치지 않았다” 라고 말하면서 시민들의 공분을 샀다.

사실 이런 리서치 부족은 수많은 실패한 UX 디자인 프로젝트에서 자주 볼 수 있는 흔한 현상이다. 자칫 소홀하기 쉽지만 사용자 중심의 UX 디자인에 있어서 리서치 과정은 사용자의 니즈와 목적 행동 패턴 등을 이해하고 프로젝트 전체 방향성을 결정하는 매우 중요한 과정이다.

마드리드시 대중교통 개선을 위해 리서치 자료를 분석하는 UX 디자이너들(사진=UX플래닛)

한 예시로 스페인의 마드리드시 교통 공사(EMT)의 의뢰로 대중교통 버스 출퇴근 경험 및 이용 만족도 개선에 나선 UI·UX 디자이너 엘레나 마르코스는 버스 노선의 접근성, 정류장의 형태, 러시 아워 시간대, 목적지, 사용 연령층, 승하차 시간, 교통 패스 사용 여부까지 수 개월 동안 강도 높은 사용자 리서치 및 분석을 진행한 바 있다. 그 결과 버스 노선과 연결된 스마트 정류장을 도입해 시민의 버스 사용률을 높이면서도 교통 정체와 만족도를 효과적으로 향상시켰다.

그러나 이와 달리 현재 많은 기업은 디자인 프로젝트에 있어 리서치를 등한시 하고 있다. 실제로 IT 업계 실무자를 대상으로 한 UX 리서치 트렌드 리포트에 따르면 중소기업의 경우 설문에 응한 기업 중 약 절반(48%)이 사용자 리서치 수행을 위한 인프라나 전문 인력을 갖추고 있지 않다고 답했다. 그리고 이번 서울시 역시 같은 실수를 반복했다.

검증 부족

버스 대란 이후 명동 입구에 나와 사과하는 오세훈 서울 시장(사진=연합뉴스)

현재 많은 시민이 제대로 된 리서치 없이 시행된 정책에 불만을 표하고 있지만, 이번 사태는 단순히 리서치 부족만으로 벌어진 일은 아니다. 이번 명동 사태에 있어 서울시는 사전 리서치 외에도 정책 검증 과정조차 미흡했다.

실제로 서울시가 대란 이후 공유한 <광역버스 노선 대기표지판 운영사업 실시 전 시뮬레이션 현황>에 따르면 서울시는 줄서기 표지판을 설치하기 전에 현장 검증은커녕 제대로된 시뮬레이션조차 실시하지 않았다. 이렇게 서울시가 검증에 소홀한 이유는 ‘정류소 용량 산출’ 수식으로 대체할 수 있을 것이라는 안일한 판단 때문이었다.

사용자 중심 디자인이라는 용어를 처음 사용한 도널드 노먼이 말하는 핵심 원칙 중 하나는 ‘서비스 및 제품 디자인을 사용자와 함께 검증했는가?’ 다. 기본 UX 디자인 교육 과정 역시 다수의 디자인 시안을 비교하며 사용자의 만족도를 측정하는 A/B 테스트를 절대 소홀히 하지 말라고 거듭 강조하고 있다.

푯말 정류장 정책 시행 전/후 비교(자료=MBC 캡처)

사용자 중심 디자인의 원칙을 이번 명동 버스 대란을 대입해보면 서울시는 정책 도입 이전 시범 적용 기간을 가지고 사용자의 만족도나 결과값을 측정하며 푯말 정류장 방식과 기존 방식을 교차 검증해야 했다. 실제로 교통 운영 정책 시행 과정에선 ‘미시적 교통분석 시뮬레이션’을 실시해 개별차량의 가감속, 차로변경, 차량추종 등을 측정하고 정책으로 인한 변화를 파악하는 것이 정석이다.

하지만 이번에 서울시는 부분 적용 기간 없이 바로 노선별 대기판 설치를 진행했다. 노선별 대기판 설치가 사용자, 즉 시민에게 어떤 영향을 미칠지 충분히 검증하지 않은 것이다.

이에 대해 유정훈 아주대 교통시스템공학 부교수는 “이런 중요한 정책을 시행하기에 앞서 시뮬레이션을 하지 않은 것을 이해할 수 없다”며 “시뮬레이션을 했다면, 정책 이후 발생할 수 있는 주요 상황을 미리 예측할 수 있었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김정화 경기대학교 스마트시티공학부 교수 역시 “대란 당시 문제가 됐던 것은 주변의 엄청난 대기 행렬이 발생했다는 것인데, 그 부분은 수식으로 파악할 수 없는 부분”이라며 “무조선 시뮬레이션을 해야 한다”라고 말하면서 검증의 중요성을 거듭 강조했다.

사용자가 아닌 공급자에 집중

길게 늘어선 버스 행렬(자료=경찰청UTIC)

이번 명동 버스 대란은 상술했듯 제대로 된 사전 검증이나 리서치 없이 이루어진 탁상행정이다. 하지만 여러 UI·UX 디자이너는 단순 사전 조사 및 검증 부재 외에도 정책 설계 자세 자체에 문제가 있다고 말한다. 요컨대 이번 대란은 철저하게 사용자인 시민이 아닌 공급자인 서울시의 입장만을 고려한 정책 설계라는 것이다.

사용자 중심 디자인의 핵심 원칙 중 하나는 ‘실제 서비스를 사용하는 최종 사용자에게 집중하는가?’이다. 하지만 실제로 이번 서울시는 문제의 근본적인 원인인 ‘정류장의 규모 부족’ ‘명동 정차 노선의 과포화’ ‘입석 금지로 인한 버스 수용 가능 인원 감소’ 등은 전혀 손대지 않고, ‘질서를 지키지 않는 시민들과 버스’에만 집중하는 모습을 보였다. 이유는 간단하다. 가장 돈을 적게 들이고 빠르게 조치할 수 있는 방법이기 때문이다.

이에 대해 UX 전문가인 오의택 인간공학기술사는 “사용자인 시민의 니즈나 불편점에 대해 공감을 하고, 근본적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합리적이거나 창의적인 해결방안을 제시하는 것이 UX 디자인 관점에서는 중요하다”며 “시민이 질서를 지키지 않는 행동보다는 그 이면에 왜 그런 문제가 발생하는지 원인을 파악하는 것이 필요한 부분”이라며 서울시의 공급자 중심의 시각을 대란의 원인으로 꼽았다.

UX 디자인과 도시 계획

서울시를 누비는 수많은 대중교통 버스(자료=서울시)

결국 명동 버스 대란은 사용자 중심 사고방식에 입각해 진행했거나, UX 전문가를 프로젝트를 투입했다면 충분히 사전에 방지할 수 있었다. 실제로 최근 미국, 싱가포르, 영국 등 해외에서는 교통망을 포함해 각종 도시 계획에 사용자 중심의 UX 디자인을 접목시키는 추세다.

미국에서 8년 넘게 도시 교통 및 물류망 기획 전문가로 활동하고 있는 마날리 셰스는 “전통적인 도시 계획법과 솔루션을 기술과 결합하는 것이 점점 일반화됨에 따라 도시 계획에 UX 디자이너가 문제 해결에 큰 도움이 될 수 있다”고 말하면서 도시 기획에 있어 UX 디자인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국내서도 도시 계획에 UX 디자인을 접목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점점 높아지고 있다. <도시는 어떻게 브랜드가 되는가>의 저자 강대훈 위코리아 CEO는 “경관, 조명, 도시의 주된 색상, 건축, 도로 등은 도시의 UI라고 할 수 있다”며 “사용자가 성별, 나이, 장애, 언어에 제약을 받지 않도록 설계하는 범용 디자인과 휴먼 스케일을 반영해 생활에 불편함 없이 건물과 가로를 배치하고, 교통을 설계하는 것은 UX라고 할 수 있다”라고 말하며 UI·UX 디자인이 도시 계획에 충분히 활용될 수 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마치며

이처럼 UI·UX 디자인은 디지털 디자인을 넘어 더 넓은 분야로 나아가고 있다. UI·UX 디자이너는 단순히 화면이나 제품을 예쁘게 만드는 것에 그쳐서는 안된다. 훌륭한 UI·UX 디자이너는 디자인을 통해 심미적 아름다움을 넘어 사용자의 경험과 삶을 개선해야 하는 법이다.

그리고 뛰어난 디자이너는 흐름에 휘둘리기보단 언제나 흐름을 읽고 미리 준비해 변혁을 주도해나간다. 이제 UI·UX 디자이너도 현실 이슈에 대한 이해도와 관심을 가지고 새로운 트렌드와 기술을 준비해야 할 때다.

  • 에디터김동욱 (jkkims@ditoday.com)
  • 섬네일손 찬호
디자인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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