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t&Luxury 카르티에 재단 미술관
카르티에 기업의 혁신적 경영은 보석과 피혁제품에 국한되지 않았다. 그들은 현대미술에 남다른 관심과 애착을 갖고 1984년 프랑스 최초로 기업의 재단 미술관을 설립했다.
지난 3월 말 지중해변의 휴양국가 모나코에서 대낮부터 보석상을 턴 무장강도들의 소식이 화제다. 이들은 다름 아닌 명품 보석브랜드 ‘카르티에(Cartier)’ 보석상을 턴 4명의 남성으로 이튿날 경찰에 긴급 체포됐다. 견물생심이었던가? 카르티에 보석은 150년이 넘도록 많은 이들의 선망이 되고 있다. 우리나라에서도 10여 년 전부터 예물이나 귀한 선물로 인기가 높다. 어느덧 멀리서도 한눈에 알아볼 수 있는 붉은 케이스 역시 마케팅에 일조했다.
명품브랜드 카르티에의 역사
브랜드의 발자취를 살펴보면 1847년 아돌프 피카드(Adolphe Picard)의 견습생이었던 루이-프랑소아 카르티에(Louis-François Cartier)가 파리 시내 보석 아뜰리에의 책임자가 되면서 스토리는 시작된다. 19세기 중엽 파리는 오페라와 극장관람이 성행했고, 무도회가 끊이지 않았다. 사교가 꽃을 피우면서 화려한 의상과 호화로운 장신구의 수요가 폭발적으로 증가하던 시대적 배경이 사업 초기부터 카르티에의 도약에 밑받침됐다.
사업이 빠르게 발전하자 창업주의 아들인 알프레드 카르티에(Alfred Cartier, 1841-1925)가 1899년 부티크를 방돔광장의 뤼드라페(Rue de la Paix) 13번지로 이전하게 된다. 그리고 이 부티크는 지금까지 카르티에의 역사를 담은 부티크로 그 자리를 지키고 있다. 또한, 알프레드는 1902년 런던과 1909년 뉴욕에 차례로 부티크를 열면서 해외시장을 개척했다.
실상 카르티에가 유명 브랜드로서 입지를 굳히는 데는 손자 루이 카르티에(Louis Cartier, 1875-1942)가 지대한 공헌을 한 것으로 평가된다. 그는 전 세계를 여행하면서 진귀한 원석을 발굴하고 적극적으로 수입했을 뿐 아니라, 현지의 전통 보석에서 영감을 얻어 이국적인 미를 가미한 새로운 디자인을 창안했다. 더불어 프랑스 및 유럽에 국한하지 않고 전 세계 최고의 고객층을 확보해 나갔다. 이러한 3세 경영시대에 카르티에는 혁신적 창의력을 토대로 그들 고유의 스타일, 즉 카르티에 스타일을 탄생시켰다.
하지만 루이의 동생 자크가 사망한 이듬해인 1942년에 루이마저 세상을 떠나면서 가족경영 전통에 위기를 맞게 됐다. 형제의 죽음으로 인해 카르티에의 사업권이 전 세계로 흩어지게 됐고, 이후 사업가 로버트 오끄(Robert Hocq)에 의한 카르티에 브랜드 라이터 출시를 기점으로 재도약을 꿈꿨다. 오끄는 1979년 교통사고로 숨지기 전까지 흩어졌던 카르티에의 경영권 통합을 완성하고 세계시장 점유증대에 주력했다. 당시 동업자인 알랭 도미니크 페렝(Alain-Dominique Perrin)과 결탁하며 그들은 ‘머스트 드 카르티에(Must de Cartier)’라는 콘셉트로 세계적인 성공을 거뒀고 이로써 카르티에의 제2의 전성기를 맞게 됐다.
카르티에의 아트 마케팅(Artketing)
카르티에 기업의 혁신적 경영은 보석과 피혁제품에 국한되지 않았다. 그들은 현대미술에 남다른 관심과 애착을 갖고 1984년 프랑스 최초로 기업의 재단 미술관을 설립했다. 알랭 도미니크 페렝은 카르티에의 21세기 경영전략으로 현존하는 예술가들과의 소통을 선언하게 된다. 전 세계 예술인들과 연합해 창의성을 높인 새로운 디자인을 선보였을 뿐 아니라, 세계 속의 카르티에라는 기업 이미지를 확고히 했다. 이른바 예술을 활용한 마케팅, 즉 ‘아케팅(Artketing)’의 선두주자라고 할 수 있는데, 이는 현재까지 프랑스 기업 메세나의 혁신적인 표본이 되고 있다.
카르티에 재단 미술관(Fondation Cartier Pour l’art Contemporain)의 공식 명칭을 직역하면 ‘현대미술을 위한 카르티에 재단’이다. 이곳에서는 연중 내내 다양한 테마전시와 개인전을 선보이며, 전시문화를 선도하고 있다. 지금까지 유럽을 넘어서 세계 각지의 작가를 초청해 국제적인 전시를 선보여왔다. 한국인으로는 여류작가인 이불(Lee Bul)이 2007년 개인전을 통해 호평을 받은 바 있다. 더불어 세계의 명사를 초청한 포럼, 도록 및 전문서적 출판 등 다양한 참여 프로젝트로 관람객들과의 소통을 추구해왔다.
카르티에 재단 미술관의 구조를 살펴보면, 투명한 유리박스 안으로 전시장이 들여다보이고, 6층 높이의 사무실도 그 안에 공존한다. 전시장은 지상 2층 높이의 두 개 전시장이 대칭으로 마주하고 있으며, 지하 공간의 전시실로 이어지는데, 총면적이 1,200㎡이다. 또한, 지상 전시장 가운데 복층에 자리한 서점에서는 카르티에 현대미술재단의 전시 도록은 물론 현대미술계에서 화제가 되는 책들을 엄선해 판매하고 있다. 한편, 카르티에 재단의 명물 중 하나는 프랑스 문인이자 외교관이었던 샤또브리앙(Chateaubriand)이 1823년에 심은 서양삼나무이다. 더불어, 미술관 뒤뜰에는 녹지로 구성된 야외공연장과 카페가 있어 도심 속 휴식공간으로 활용된다.
라스파일가에 장누벨이 설계한 카르티에 재단 미술관
1984년 최초 개관이 됐을 때는 파리 근교 베르사유 근처에 위치한 주이 앙 조자스(Jouy-en-Josas)에 설립됐다. 이후 1994년에 파리 시내로 기관을 이전했는데, 몽파르나스 타워에서 남쪽으로 뻗어 있는 라스파일가(Boulevard Raspail)에 새로운 터전을 마련했다. 몽마르트언덕에 이어 몽파르나스는 파리 예술의 전성기 역사를 담고 있는 뜻깊은 곳이다. 19세기 말 20세기 초 전 세계의 꿈 많은 화가들이 파리에 진출하고자 모였던 구역이기도 하다. 지금은 일반 주거지로 용도가 변해버렸지만, 야수파 화가들의 아뜰리에는 물론 저명한 미국 사진작가 맨 레이(Man Ray)의 아뜰리에의 자취가 역력한 곳이다. 러시아 조각가 자드킨의 미술관도 이곳에 있다. 모딜리아니를 비롯한 ‘에꼴 드 파리(Ecole de Paris)’의 화가들의 아지트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무엇보다 라스파일가에 카르티에 재단 미술관이 새로운 터전을 열면서 화제가 된 것은 건축물이다. 마치 거대한 유리박스를 연상시키는 카르티에 현대미술재단은 다름 아닌 세계적으로 명성이 높은 프랑스 건축가 장누벨(Jean Nouvel)이 설계했다. ‘빛의 건축가’ 또는 ‘하이테크 건축가’라는 수식어가 붙는 그의 건축물에는 시대를 앞서가려는 진화의 고민이 역력하다. 2008년 건축계의 노벨상이라고 불리는 ‘프리츠커상’을 수상하며 명성을 굳힌 그의 대표적인 작품으로는 파리의 아랍문화원, 바르셀로나의 아그바 타워, 아부다비의 루브르 별관을 들 수 있다. 국내에는 삼성미술관 리움(Leeum)이 장누벨의 설계작품이기도 하다.
관람 안내
카르티에 재단 미술관은 최근 리노베이션을 마치고 2017년 4월 20일에 재개관했다. 또한, 서울시립미술관에서 ‘카르티에 재단 소장품 하이라이트 전시’를 2017년 5월 30일부터 8월 15일까지 관람할 수 있다.
관람 시간: 오전 11시 ~ 오후 8시(월요일 휴관)
01. 미술관 외부 전경
View of the building, Fondation Cartier
pour l’art contemporain, Paris,
2013 © Jean Nouvel / Adagp, Paris
Photo © Luc Boegly
02, 03. 전시 내부전경
Photo © Thomas Salva / Lument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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