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지만 읽는 곳이 있다. 종이잡지클럽

종이잡지클럽, 잡지도 라디오가 될 수 있을까

영국 밴드 버글스(The Buggles)는 아마 상상도 못했을 것이다. 그들에게 큰 명성을 가져다준 ‘Video Kill the Radio Star’라는 곡이 수십 년 뒤에는 미디어 연구자들에 의해 끊임없이 불려나올 운명 앞에 놓여 있었다는 사실을. 다들 알다시피 라디오는 살아남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여기, 종이잡지는 죽지 않는다며 온몸으로 호소하는 곳이 있다. 종이잡지클럽. “이런 시대에 종이잡지를 읽는다는 건 좀 촌스럽긴 하죠”라는 자조적 문구를 내세웠지만 잡지를 다루는 공간과 매니저의 태도는 사뭇 진지했다.


지금 우리 앞의 가장 새로운 물결

영국 밴드 얘기로 글을 열었으니 한국 밴드 얘기로 좀 더 이어가볼까 한다. 새소년. 멤버 전원이 90년대 중반에 태어난 이 밴드는 64년에 창간돼 80년대까지 인기를 누린 잡지 새소년과 이름이 같다. 보컬 황소윤이 우연히 잡지를 발견했고 그 이름이 마음에 들어 가져왔다고. 1989년에 폐간된 잡지가 1997년에 태어난 음악가에 의해 2017년 다시 세상에 나왔다. 새소년은 데뷔 다음해인 2018년 제15회 한국대중음악상에서 ‘올해의 신인상’과 ‘최우수 록 노래’를 동시에 수상했다.

그 해 10월, 종이잡지클럽이 문을 열었다. “잡지를 읽고 날카로움을 찾으며 지금 이 현재를 다루려 노력”함으로써 여러 잡지가 “함께 다시 이야기되기”를 바란다는 차분한 포부를 밝히며. 잡지에 새로운 기운을 불어넣는 모습이 어쩐지 새소년을 떠오르게 한다. 의도가 어땠는지 몰라도 그 이름이 ‘잡지’에서 ‘밴드’로 자리를 옮기며 새로운 기운을 얻은 건 분명하니까. 그렇다면 밴드 새소년을 소개하는 “지금 우리 앞의 가장 새로운 물결”이란 표현을 종이잡지클럽에도 적용할 수 있지 않을까.

“관심사가 어떻게 되세요?”

종이잡지클럽에 들어서면 제일 먼저 자신의 관심사를 털어놓아야 한다. 입구에서 바로 보이는 카운터에 있는 매니저가 처음 온 손님에게는 “관심사가 어떻게 되세요?”라고 묻기 때문이다. 얕은 취향과 얇은 귀를 모두 가진 탓에 관심사가 자주 바뀌는 편이긴 하지만 각 시기마다 집중적으로 들여다보는 영역만큼은 확실했다. 당시의 관심사는 ‘일하는 방식’과 ‘라이프스타일’. 자리에 앉아 전시돼 있던 잡지를 몇 권 뒤적이고 있으니 매니저가 이곳 저곳에서 잡지를 모아 가져온다.

받아든 잡지는 워크 디자인 1호와 2호, 나우 매거진 4호, 페이보릿 매거진 2호와 3호다. 한 권 한 권 짚어가며 내용을 설명하고 각각의 잡지를 어떤 식으로 읽으면 좋은지 알려준다. 종이잡지클럽 큐레이션의 장점은 완독의 부담을 덜어준다는 것이다. 애초에 잡지 3~5권을 앉은자리에서 다 읽는 건 물리적으로 불가능하다. 그러니 마음 편하게 먹고 자신이 미리 말한 관심사와 매니저가 일러준 방식을 바탕으로 콘텐츠를 골라가며 보면 잡지를 압축적으로 읽는 경험을 할 수 있다.

잡지가 있는 공간, 모이는 사람들

큐레이션의 규모는 개인을 넘어 모임에도 적용된다. 예컨대 월 1회 열리는 ‘해외 잡지 함께 읽기’나 ‘잡지 읽기 모임’은 다양한 잡지를 읽고 함께 이야기를 나누는 회원 대상 내부 모임이다. 또 대교 ‘세상에서 가장 큰 책방’ 프로젝트로 선정돼 올해 초 진행한 ‘종이잡지클럽 컨퍼런스’ 같은 외부 모임도 있다. 공지사항을 확인해보고 가까운 시일 내에 외부모임이 예정돼 있다면 먼저 참석해보고 공간을 방문하는 걸 권한다. 보다 쉽게 이곳의 매력에 빠져들 수 있을 테니 말이다.

잡지 콘텐츠 플랫폼으로

그럼 공지사항은 어디서 볼 수 있느냐? 종이잡지클럽 인스타그램에서 손쉽게 확인할 수 있다. 게다가 여기서는 공지사항만 전하는 게 아니다. ‘오늘 넘겨본 잡지’, ‘한 피쳐 깊게 읽기’, ‘다양하게 읽은 인터뷰’, ‘한 주제 다양하게 읽기’ 등 나름의 코너를 마련해 ‘종이잡지클럽이 밑줄 친 문장’을 전하고 매니저의 생각을 덧붙인다. 오프라인은 오프라인대로, 온라인은 온라인대로 훌륭한 잡지 콘텐츠 플랫폼 역할을 하고 있다.

잡지도 라디오가 될 수 있을까. 매체의 형식적인 특성을 고유한 톤 앤 매너를 갖춘 콘텐츠로 바꿔내는 게 관건이다. 종이잡지클럽에서는 그를 향한 걸음들이 천천히 차곡차곡 쌓여가고 있었다. 잡지를 덮고 공간을 나설 때면 사뭇 진지했던 그곳의 분위기가 자연스럽게 이해될 것이다.


위치 서울시 마포구 양화로8길 32-15 지하 1층
인스타그램 @the_magazine_club
웹사이트 wereadmagazin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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