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세계 1위 종대사 WPP는 추락하고 퍼블리시스는 날개를 달았는가?
두 기업의 전략으로 알아보는 글로벌 광고 대행사의 생존 전략

외신에 따르면 최근 세계 최대 글로벌 광고 대행사 ‘WPP’가 가장 큰 미디어 계정인 글로벌 소비재 기업 ‘마즈(Mars)’를 빼앗길 위기에 처했다. 마즈는 자사 미디어 계정을 프랑스의 글로벌 광고 대행사인 ‘퍼블리시스(Publicis)’로 이전할 계획이다. COMvergence(글로벌 광고 대행사 트래커)에 따르면 마즈의 미디어 계정 가치는 약 17억 달러에 이른다. WPP는 큰 타격을 피할 수 없을 것으로 보인다.
WPP의 상황은 좋지 않다. 올해 말 사임을 예고한 마크 리드(Mark Read) CEO는 7년의 재임 기간 동안 WPP의 시가총액을 절반 수준인 약 60~70억 달러로 만들었고, 신규 고객사 확보보다 이탈이 더 많았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마크 리드가 이끈 WPP의 부진은 시가총액에 정직하게 반영됐다. WPP의 시가총액은 2018년부터 5년간 21% 이상 하락해 120억 달러 아래까지 하락했다. 반면 같은 기간 기존 105억 달러에서 160% 상승한 퍼블리시스는 280억 달러가 넘는 시가총액을 기록했다. 그 과정에서 WPP는 많은 고객사를 퍼블리시스에 빼앗겼다. 2025년 3월에도 약 7억 달러 규모의 ‘코카콜라(Coca-Cola)’ 미디어 계정을 퍼블리시스에 내줘야 했다.
나란히 글로벌 광고 대행사 1위와 2위를 지키던 두 기업의 행보는 대조적이다. 왜 퍼블리시스가 성장을 거듭하는 가운데 WPP는 무너지고 있는 걸까? 이번 기사에서는 WPP와 퍼블리시스의 전략 비교를 통해 글로벌 광고대행사의 현주소를 조명한다.
WPP는 왜 무너지는가?

연매출을 기준으로 비교했을 때, 2012년부터 2024년까지 퍼블리시스가 지속적인 우상향을 기록하는 것과는 달리 WPP는 변곡점을 보이는 양상을 띤다. WPP가 주춤하는 사이 2012년 두 배 이상 벌어졌던 차이는 2024년 약 15억 달러 안팎으로 좁혀졌다.
WPP 연매출이 꺾이기 시작한 건 2018년이다. 원인은 크게 4가지다.
1. 온라인 타깃 광고의 성장
퍼포먼스 마케팅 등 온라인 타깃 광고가 성장하며 전통적인 광고 시장의 입지가 줄어들고, 경쟁이 치열해졌다. WPP는 주요 고객 중 하나인 미국의 자동차 기업 ‘포드(Ford)’를 미국의 광고 대행사인 ‘옴니콤 그룹(Omnicom Group)’에 빼앗기는 등 경쟁에서 우위를 점하지 못했다.
2. 중국 시장 공략 실패
중국 미디어 자회사인 ‘그룹엠(GroupM)’의 뇌물 수수 스캔들로 중국 시장 공략에 실패했다. 이 영향으로 미국 증권거래위원회로부터 1900만 달러의 벌금 또한 부과 받았다.
3. AI 부상
머신러닝 등 AI가 부상하며 마케팅 캠페인을 직접 관리하고자 하는 고객의 니즈가 증가했고, 전통적인 광고대행사의 역할이 축소될 위기에 당면했다.
4. CEO 사임
마틴 소렐(Martin Sorrell)이 사생활 문제로 CEO 자리에서 내려오며 WPP에 대한 투자자의 불신이 짙어졌다. 마틴 소렐 사임 직후 마크 리드가 부임하는 과정에서 WPP 주가는 4%가량 하락했다.
마크 리드는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적극적인 M&A로 몸집을 키우고 수익을 늘리던 기존의 전략을 수정했다. 재무 성과 개선을 위해 구조조정과 비용 절감을 추진한 것이다. 리서치 기관 리절트 인터네셔널(Results International)에 따르면 2018년 WPP의 인수 건 수는 2017년 대비 50% 감소한 15건에 그쳤다. 보유했던 데이터 컨설팅 기업 칸타(Kantar)의 지분 60%도 이 시기 매각했다.
그러나 인력 감축과 일부 사업부를 매각한 마크 리드의 내부 구조조정에 대해 투자 은행 루마 파트너스(Luma Partners)의 테런스 카와자(Terence Kawaja) CEO는 “합병(Mergers)이라고 포장했지만, WPP는 그저 조직 재배치에 그칠 뿐, 실질적 구조조정의 장기적 성과는 미미했다”고 평가했다. 단기적 재무 안정 외에 광고 대행사로 생존하기 위한 미래 전략이 부족했다는 의미다.
퍼블리시스의 도전적인 변화
반면 테런스 카와자는 비슷한 시기 내부 구조조정이 아닌 M&A에 집중한 퍼블리시스의 전략에 대해서는 높게 평가했다. 그는 퍼블리시스의 전략에 대해 “광고주와 시장 변화에 적합하게 준비하고 대응해 제대로 된 시장 접근(Go-To-Market) 전략을 마련했다”고 말했다.
민병운 대구가톨릭대학교 미디어영상광고홍보학부 교수는 퍼블리시스의 가장 큰 차별점을 “경쟁사를 누구로 정의하느냐에 있다”고 설명한다. 퍼블리시스는 다른 광고 대행사를 경쟁사로 생각하지 않았다. 퍼블리시스의 경쟁사는 ‘액센츄어(Accenture)’, ‘딜로이트(Deloitte)’와 같은 컨설팅펌 그리고 ‘구글(Google)’ ‘메타(Meta)’와 같은 퍼스트 파티 플랫폼 기업이었다. 두 집단과의 경쟁에서 이기지 못하면 광고 대행사는 크리에이티브에 국한된 하청업체로 전락할지도 모른다는 위기감 때문이었다. 그렇다면 구체적으로 퍼블리시스는 무엇을 했을까?
1. 전략적 M&A를 통해 에이전시에서 플랫폼으로 변화
퍼블리시스는 2015년 디지털 컨설팅 기업인 ‘사피언트(Sapient)’를, 2019년 데이터 마케팅 기업 ‘엡실론(Epsilon)’, 2021년과 2022년에는 커머스 기업인 ‘시트러스애드(CitrusAd)’와 ‘프로피테로(Profitero)를 인수했으며, 2024년에는 크리에이터 마케팅 기업인 ’인플루엔셜(Influential)’까지 인수했다.
이를 통해 퍼블리시스는 웹사이트와 앱 고객 여정을 설계하고, 2억 명 이상의 고객 데이터를 활용하는 등 에이전시에서 플랫폼으로 장기적 전환에 돌입할 수 있었다.
2. 중앙 데이터화 구조 설계
엡실론 인수는 퍼블리시스의 올인 전략이었다. 퍼블리시스는 엡실론 인수를 위해 당시 시총의 35% 이상을 투자했다. 퍼블리시스가 이토록 엡실론을 중요하게 생각한 이유는 엡실론이 보유한 데이터를 활용해 중앙 데이터화 구조를 구현하기 위해서였다.
엡실론 인수 이후 퍼블리시스는 ‘파워 오브 원(Power of One)’이라는 중앙화 플랫폼을 만들어냈고, 모든 퍼블리시스 계열사가 데이터를 공유하고 통합해 관리할 수 있게 됐다. 파워 오브 원을 통해 퍼블리시스 자회사는 크리에이티브, 미디어, 데이터 등 조직이 나뉘는 게 아니라, 클라이언트 중심의 팀(Client Hub)으로 재편됐다.
3. 빠른 AI 도입을 통한 업무 프로세스 효율화
퍼블리시스는 AI에 필수적인 데이터를 M&A를 통해 빠르게 확보했다. 이에 기반해 2018년 AI 플랫폼인 ‘마르셀(Marcel)’을 그룹에 도입했다. 마르셀의 핵심은 그룹 내 다양한 자회사에 얽힌 8만명 이상의 임직원을 유기적으로 연결하는 데 있다. 임직원은 마르셀을 활용해 과업에 적합한 동료 탐색, 내부 아카이브를 통한 지식 공유, 직원 기술 기반 프로젝트 매칭 등의 기능을 제공받을 수 있다. 이외에도 현재 퍼블리시스는 ‘코어AI(CoreAI)’에 3억1400만 달러 이상을 투자하는 등 AI에 적극적인 자세를 취하고 있다.
테런스 카와자는 이러한 변혁의 배경으로 아르튀르 사둔(Arthyr Sadoun) 퍼블리시스 CEO의 리더십을 꼽는다. 그는 “마크 리드의 보수적인 리더십에 비해 아르튀르 사둔의 진보적인 리더십은 변화의 속도가 매우 빠른 광고 업계에서 살아남기에 더욱 적합했다”는 평가다. 두 리더의 성향 차이로 인해 퍼블리시스에서 가능했던 혁신적인 변화가 WPP에서는 불가능했던 것이다. 이는 결국 빠른 의사 결정, 퍼스트파티 데이터에 연계한 매력적인 캠페인 제안으로 코카콜라 등 WPP의 주요 고객사를 퍼블리스에 빼앗기는 나비효과가 됐다.
광고 대행사는 광고 대행사에 그쳐서는 안 된다
민 교수는 “현 시대 광고 대행사의 역할은 ‘크리에이티브 파트너’가 아니라 ‘비즈니스 성과를 만드는 통합 파트너’”라고 강조한다. 글로벌 광고주는 단순히 크리에이티브 역량을 가진 광고 대행사를 원하지 않는다. 그들이 원하는 건 크리에이티브·미디어·데이터·커머스를 한 번에 묶어주는 통합 광고 시스템이다. WPP가 최근 마즈를 빼앗길 위기에 처한 것도, 올해 초 7억 달러 가치의 코카콜라 미디어 계정을 빼앗긴 것도 모두 이러한 흐름에 대한 대응이 부족했기 때문이다.
코카콜라는 2021년부터 ‘원 글로벌 마케팅 모델(One Global Marketing Model)’ 전략을 추진하며 글로벌·지역 광고 에이전시를 하나로 묶고 미디어·크리에이티브·퍼포먼스 통합 발주를 진행하고 있다. 이를 수행하기 위한 역량에 퍼블리시스가 적합하다고 판단한 이유는, 앞서 살펴본 2010년대 중반부터 시작한 장기적인 변혁으로 인해 퍼블리시스가 ‘AI 역량 내재화’ ‘데이터 기반 구조 설립’ ‘클라이언트 중심 통합 조직 운영’의 세 박자를 모두 갖췄기 때문이다.


WPP 또한 자체 AI 플랫폼인 ‘WPP 오픈(WPP Open)’을 개발해 이미지 생성 등 크리에이티브 자동화, 데이터 기반 타기팅 등 여러 기술을 제공하고 있지만, 그룹 전체를 유기적으로 연결하는 퍼블리시스의 마르셀에는 부족하다는 평가다. 크리에이티브 해리티지를 자부심으로 삼는 WWP 내부 분위기도 데이터와 AI 중심의 조직 문화 개편에 걸림돌로 작용한다. 더해서 WPP는 장기적인 비전 없는 구조조정으로 인해 아직 자회사들이 분절적으로 움직이고 있으며, 이로 인해 비용 절감과 속도 면에서 뒤쳐지고 있다.
WPP와 퍼블리시스의 사례는 글로벌 광고주가 광고 대행사에게 크리에이티브 에이전시의 역할만을 요구하지 않는다는 것을 보여준다. 이제 생존을 위해 광고 대행사는 에이전시의 역량을 넘어 플랫폼으로 변화를 목표로 해야 한다. 두 기업의 시가총액은 이에 대한 시장의 기대를 대변한다. 통합적인 역량을 가진 플랫폼이 되지 못한다면, 예외 없이 시장의 기대에서 잊혀지고 언젠가 자리를 내줘야 한다.
뉴스콘텐츠는 저작권법 제7조 규정된 단서조항을 제외한 저작물로서 저작권법의 보호대상입니다. 본 기사를 개인블로그 및 홈페이지, 카페 등에 게재(링크)를 원하시는 분은 반드시 기사의 출처(로고)를 붙여주시기 바랍니다. 영리를 목적으로 하지 않더라도 출처 없이 본 기사를 재편집해 올린 해당 미디어에 대해서는 합법적인 절차(지적재산권법)에 따라 그 책임을 묻게 되며, 이에 따른 불이익은 책임지지 않습니다.
- 에디터이민호 (treewords@ditoday.com)
- 섬네일김상현
- 22 “3가지 사라진다” 사명 바꾼 잡코리아가 예측한 AI 시대 ‘채용 경험’
- 21 AI 썼더니 별점 ‘뚝’… AI에 뿔난 게이머와 개발자들
- 20 ‘4조 원’ 옥외광고 시장 뛰어든 네이버와 카카오, 오프라인서 발견한 기회
- 19 “도전 혹은 오기?” 또다시 AI로 연말 광고를 만든 코카콜라
- 18 ‘UX 혁신’ 꾀하는 디지털 공공서비스, UX 라이팅 필요한 때
- 17 올리브영은 왜 협력광고 솔루션 파트너십을 발표했을까?
- 16 서울역 품은 카카오모빌리티가 옥외광고 시장에서 꾀하는 것
- 15 “OTT 공룡 맞손?” 넷플릭스와 아마존, 왜 파트너십을 체결했을까?
- 14 “인지도 상승에 올인했다” 뤼튼이 직접 밝힌 ‘GD 광고’ 전략
- 13 왜 세계 1위 종대사 WPP는 추락하고 퍼블리시스는 날개를 달았는가?
- 12 이노션이 초대형 디지털 옥외광고에 ‘청동용’을 띄운 까닭
- 11 요즘 기업들이 웹사이트를 리뉴얼하는 진짜 이유
- 10 “라디오버튼이 필요 없다고?” 토스 아티클에 UI·UX 실무자들이 뿔난 이유
- 9 코카콜라 AI 광고가 비난 받은 진짜 이유, 광고 업계의 생각은?
- 8 “도구의 정의는 바뀌니까” 노션이 AI에 진심인 이유
- 7 AI 검색 시대, 콘텐츠 마케팅 전략은?
- 6 AI 검색 시대에도 구글이 굳건할 수밖에 없는 이유
- 5 유튜브 쇼핑 스토어가 한국에 가장 먼저 출시된 까닭
- 4 유튜브가 쇼핑 기능을 고도화하는 이유 (feat. 소셜 커머스)
- 3 광고 업계에 물었습니다 “동영상 AI 소라, 어떻게 생각하세요?”
- 2 네이버 ‘클로바 포 AD’, 마케팅에 얼마나 도움 될까?
- 1 ‘GPT 스토어’ 출시 임박… 과연 돈 주고 쓸 만할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