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R, 숫자 뒤에 남는 것들에 대하여 [Di 에세이]
김준수 웍스피어 CHRO
일을 하다 보면 정답 없는 문제를 마주할 때가 있습니다. 그 누구도 대신 답을 찾아줄 순 없겠지만, 다른 이들의 고민 속에서 힌트를 발견할 수는 있습니다. 그래서 준비했습니다. ‘Di 에세이’는 다양한 실무자들의 솔직한 경험 전하는 시리즈입니다.
이번 주제는 ‘눈에 띄지 않는 것’. 보이지 않는 곳에서 성실하게 일하는 이들이 있습니다. 숫자나 이름으로 환원되지 않는 가치를 지키기 위해 노력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살펴봅니다.
* Di 에세이는 <디지털 인사이트> 지면 매거진에 실리는 콘텐츠입니다. 그중 일부를 발췌해 온라인에도 공개합니다.
올해 창립 30주년을 맞은 잡코리아가 사명을 ‘웍스피어’로 변경했습니다. AI 기반의 종합 HR 플랫폼으로 거듭난다는 구상입니다. 이런 AI 시대에도 HR의 본질은 여전히 ‘사람’에 있습니다. 웍스피어에서 HR을 총괄하는 김준수 가치성장본부장(CHRO)은 “사람을 숫자로만 환원하지 않겠다”는 아주 단순한 원칙이 조직을 더 멀리 데려갈 수 있다고 믿습니다. ‘보이지 않는 일’을 통해 조직을 움직이는 HR의 힘, 김준수 본부장에게 들었습니다.
성과로 드러나지 않는 일을 지속하는 이유
인사 일을 오래 하다 보면 이상한 순간들이 찾아옵니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은 날이 가장 잘한 날처럼 느껴질 때입니다. 노동청 이슈가 없었고, 노사 분쟁도 없었고, 한 사람의 커리어가 리텐션을 통해 조용히 남는 것이죠. 보고서에 쓸 성과는 없지만 마음은 묘하게 평온합니다. 이런 일은 기록되지 않습니다. 숫자로 환산되지 않고 KPI에도 남지 않으며, 회의 자료의 맨 아래 각주에도 잘 등장하지 않죠. 하지만 저는 점점, 이런 일들이야말로 조직을 오래 움직이게 하는 힘이라는 확신을 갖게 되었습니다.
‘일어나지 않게’ 하는 일
HR은 종종 ‘결과가 없는 일’처럼 보입니다. 채용이 잘되면 사업부의 성과가 되죠. 문제가 터지지 않으면 아무도 HR을 떠올리지 않습니다. 그럼에도 우리는 계속 묻습니다. “이 결정이 누군가의 존엄을 해치지는 않는가?” “조금 느리더라도 더 정직한 방법은 없는가?” 하고요. 이런 질문들은 효율적이지 않습니다. 때로는 불편하고, 때로는 성과를 늦추기도 합니다.
그럼에도 제가 이 질문을 포기하지 않는 이유는 단순합니다. 조직은 숫자보다 신뢰로 먼저 무너지기 때문입니다. 하버드비즈니스리뷰(Harvard Business Review)는 조직 신뢰를 “위기 상황에서 드러나는 가장 지연된 성과 지표”라고 표현합니다. 문제가 생기기 전까지는 아무도 그 가치를 체감하지 못하지만, 무너질 때는 한 번에 무너집니다. 그래서 HR의 많은 일은 ‘일어나지 않게 하는 일’에 가깝습니다.
일부러 드러내지 않는 선택
저는 드러내지 않는 것을 일부러 선택할 때가 많습니다. 정책을 바꾸면서 ‘우리 팀의 성과’라고 말하지 않고, 갈등을 조용히 정리한 뒤에도 굳이 공을 설명하지 않습니다. 이렇게 하면 인정받기 어렵다는 걸 잘 압니다. 하지만 모든 가치를 설명해야만 존재하는 것처럼 만들고 싶지는 않았습니다. 조직에는 조용히 작동하는 신뢰 장치도 필요하다고 믿기 때문입니다. 드러내지 않음으로써 얻는 자유도 있습니다. 평가를 의식하지 않고 판단할 수 있는 자유, 단기 성과보다 장기 신뢰를 택할 수 있는 여지. 물론 한계도 있습니다.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순간, 스스로의 기준이 흔들릴 수 있죠. 그래서 종종 저 자신에게 묻습니다. “그래도 이 선택을 다시 할 것인가?” 지금까지의 대답은 대부분 ‘그렇다’였습니다.
숨어 있는 것을 발굴하는 사람
HR의 또 다른 역할은 아직 이름 붙여지지 않은 가능성을 먼저 알아보는 일입니다. 성과를 내지 못한 사람, 지금의 조직 구조에서는 빛을 보지 못하는 역량, 혹은 실패로만 남아 있는 경험들. 모든 아이디어가 실현되지는 않습니다. 모든 시도가 성공으로 이어지지도 않습니다. 그럼에도 계속 제안하고, 상상하고, 질문하는 이유는 조직은 이미 증명된 것만으로는 미래를 만들 수 없기 때문입니다. 연구에 따르면 장기적으로 성과를 내는 조직일수록 ‘실현되지 않은 아이디어’의 축적량이 많습니다. 보이지 않지만 그것이 다음 국면을 준비하는 토양이 되는 겁니다.
인정받지 않아도 지키고 싶은 것
제가 HR 리더로서 끝까지 지키고 싶은 것은 거창한 비전이 아닙니다. 회의실 밖에서 한숨 쉬는 사람을 그냥 지나치지 않는 태도, 불리한 결정 앞에서 최소한의 설명 책임을 다하려는 노력, 그리고 “사람을 숫자로만 환원하지 않겠다”는 아주 단순한 원칙입니다. 이 일들은 박수받지 않지만 조직이 어려운 순간에 마지막으로 붙잡게 되는 기준이 됩니다. 눈에 띄지 않지만 가치 있는 일들. 어쩌면 HR의 일은 늘 성과와 신념, 속도와 방향 사이 경계에서 균형을 잡는 일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이 조용한 일이 결국 조직을 가장 멀리 데려간다고 믿습니다.

김준수 가치성장본부장/ 웍스피어
다양한 분야에서 HR 업무를 경험한 김준수 웍스피어 가치성장본부장은 현재 피플성장실(인재팀, 조직문화팀, 총무팀)과 대외협력실(법무팀, PR팀, 대관, 보안팀), HRBP TFT를 총괄 중이다.
■ 現 잡코리아 가치성장본부장(CHRO)
■ 前 현대차그룹 42dot TA팀 리더
■ 前 원티드랩 HRBP팀 리더
■ 前 LG전자 인사기획팀/임원인사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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