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케팅

브랜드 이름, 아직도 취향으로 정하시나요? (feat. TBWA코리아)

전략 기반의 네이밍 원칙 4가지

2001년 영국 우체국은 500년 가까이 써온 ‘로열메일(Royal Mail)’이라는 이름을 내려놓습니다. 새로운 이름은 ‘컨시그니아(Consignia)’. 무언가를 탁송하거나 맡긴다는 의미의 영단어 ‘컨사인(Consign)’에서 따온 명칭인데요. 당시 글로벌 물류 기업으로 확장하려던 영국 우체국은 ‘우편(Mail)’이라는 단어에 갇히지 않아야 한다고 판단했던 것이죠.

경영진은 새 이름에 자신감이 있었지만, 반응은 정반대였습니다. 대중은 왜 이름을 바꿨는지 납득하지 못하며 조롱을 퍼부었고, 해외 진출 계획도 기대만큼 풀리지 않았죠. 결국 영국 우체국은 이듬해 원래 이름으로 돌아가기로 결정합니다. 사업을 넓히겠다는 명분은 있었지만, 그 변화를 설득할 전략 없이 세련돼 보이는 이름을 고른 결과였습니다.

2001년 영국 우체국의 새로운 이름으로 선택된 컨시그니아. 막대한 비용을 들여 변경한 사명은 1년 만에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자료=logosmarcas)

25년이 지난 지금, 우리가 일하는 모습은 많이 달라졌습니다. 생성형 AI에 몇 마디만 입력하면 브랜드 이름 후보 수백 개를 받아볼 수 있죠. 그런데 후보가 늘었다고 컨시그니아 같은 실수가 줄어들까요. 경영진의 취향에 따라 이름을 선택한다면 결과는 크게 다르지 않을 겁니다.

그렇다면 제대로 된 브랜드 이름은 어떻게 만들어야 할까요? 이에 대한 답을 듣기 위해 20년 이상 브랜드 전략가이자 글로벌 독립 광고회사 TBWA코리아에서 브랜드컨설팅팀을 이끌고 있는 박혜진 팀장을 만났습니다.

박 팀장은 금융결제원의 본인확인 서비스 ‘나임(NA!M)’, SK그룹 건설 계열사 ‘SK에코플랜트’, KCC의 프리미엄 창호 브랜드 ‘클렌체’ 등 굵직한 리브랜딩 프로젝트를 주도한 인물인데요. 기업들이 네이밍 과정에서 흔히 빠지는 함정은 무엇인지 물었고요. 어떻게 해야 좋은 이름을 지을 수 있는지 전략 수립부터 의사결정 단계에 이르기까지 총 4가지로 살펴봤습니다.

지난달 중순 TBWA코리아 사무실에서 만난 박혜진 팀장. 그는 “브랜드의 전략과 콘셉트를 고려하지 않은 이름은 오래 가기 힘들다”고 강조했다(사진=디지털 인사이트)

후보부터 모으면 ‘취향 싸움’이 됩니다

본격적인 시작에 앞서 기본적인 질문부터 던졌습니다. 좋은 이름이란 뭘까요?

‘쉽고 직관적이어야 한다’ ‘부르기 좋아야 한다’ 등 다양한 요소가 있겠지만요. 박 팀장은 무엇보다 기업의 전략과 철학을 한 단어로 압축한 것이 좋은 이름이라고 설명했습니다. 이름은 브랜드 경험의 출발점이기 때문인데요. 전략을 반영한 명칭이어야 나중에 이어질 캠페인이나 슬로건, 스토리텔링과 잘 어울리고, 그래야 브랜드가 장기적으로 생명력을 갖고 성장할 수 있다는 겁니다.

특히 최근에는 제품과 서비스 품질이 상향평준화되면서 기능만으로는 고객에게 기억되기 어려운 시대가 됐는데요. 때문에 브랜드만의 고유성을 담아내고, 또 사업 영역이 달라졌을 때 그 이유를 충분히 납득시킬 수 있는 이름의 역할이 더욱 중요해졌다는 설명입니다.

하지만 모든 기업이 이런 과정을 거치는 건 아닙니다. 특정 팀에서 담당하든, 사내공모전을 거치든 브랜드의 목표와 가치, 타깃 등이 충분히 설명되지 않은 상태에서 아이디어만 받게 되면, 결국엔 의사결정권자의 취향으로 최종 결정하는 상황이 연출되곤 합니다.

“명확한 판단 기준이 없으면 ‘세련됐다’ ‘고급스럽다’ ‘말맛이 괜찮다’ 하는 식으로만 평가하게 돼요. 왜 이 이름이 지금 우리 브랜드의 상황과 경쟁력에 필요한지 따져보는 대신 취향이나 느낌만으로 고르는 거죠. 이런 이름을 과연 좋은 이름이라고 할 수 있을까요?”

외주를 맡기는 경우에도 한계는 있습니다. 전문 네이밍 회사나 디자인 회사와 협업하더라도 브랜딩 전략까지 깊이 고민한 결과물을 받기 어렵기 때문이죠. 또 관행으로 자리잡은 분리 발주 구조 탓에 최종적으로 받아 든 이름과 로고가 따로 노는 경우도 왕왕 벌어집니다.

박 팀장은 “네이밍사나 디자인사도 물론 브랜드 정체성을 고려한다”면서도 “다만 빠르게 결과물을 내야 하는 프로젝트 특성상 브랜드의 장기적인 성장까지 고민해 이름을 짓기란 현실적으로 쉽지 않은 상황”이라고 덧붙였습니다.

좋은 이름 짓는 법①
전략을 한 문장으로 말해보세요

그렇다면 좋은 이름은 어디서부터 출발해야 할까요. 박 팀장은 브랜드가 소비자에게 어떤 가치를 약속하는지, 무엇을 지향하는지 등 전략과 콘셉트부터 한 문장으로 정리해보기를 권했습니다.

올해 출시된 금융결제원의 본인확인 서비스 나임 로고. ‘안전성과 정확성’이라는 브랜드 콘셉트를 직관적으로 드러내는 데 초점을 맞췄다(자료=금융결제원)

박 팀장이 최근 진행한 금융결제원의 본인확인 서비스 ‘나임’을 예로 들어보겠습니다. 나임은 패스(PASS)가 굳건한 1위를 지키고 있는 본인인증 시장에 국내 시중 은행 6곳이 함께 뛰어 들어 내놓은 서비스인데요. 해당 서비스의 네이밍과 로고 제작을 맡은 TBWA코리아 브랜드컨설팅팀은 ‘간편함’이나 ‘빠름’을 내세워서는 주목받기 어렵다고 보고, 은행 공동 서비스라는 점에서 오는 ‘안전성’과 ‘정확성’을 출발점으로 삼았습니다.

그렇게 나온 콘셉트가 ‘가장 안전하고 정확한 안심 본인확인’입니다. ‘나임’이라는 이름에는 본인(나)임을 안전하고 정확하게 확인받는다는 뜻을 담았고, 로고의 느낌표로 확인이 끝나는 순간의 안도감을 표현했습니다. 또 한글로 이름을 짓다 보면 자칫 가볍게 들릴 수 있기 때문에 은행다운 단단한 어감인지도 따졌다고요.

“후보 중에는 ‘우리는 안전해요, 정확해요’ 하며 기능을 설명하는 이름도 있었어요. 하지만 사용자가 설명형 이름을 이해할 만큼 본인확인 서비스를 오래 이용할 거라고 생각하지 않았어요. 때문에 보는 순간 정확한 인상을 전달할 수 있는 쪽에 집중했습니다.”

좋은 이름 짓는 법②
취향 대신 합의된 기준으로 고르세요

전략을 결정했다면 다음은 후보를 좁히는 과정입니다. 보통 이 과정에서 저마다의 취향이 충돌하기 때문에 합의된 기준으로 판단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앞서 소개한 나임의 사례로 이어서 설명해보면요. 클라이언트는 금융결제원이었지만 시중 은행 6곳이 모두 참여한 프로젝트였기 때문에 개별로 소통하다 보면 의사결정이 길어질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 박 팀장은 워크숍을 열고 각 은행 담당자들을 한자리에 모았습니다.

“먼저 담당자분들 앞에서 우리가 조사한 내용을 토대로 발표를 진행했어요. ‘시장 상황이 이렇고 소비자 인식이 이렇기 때문에 이런 콘셉트로 가야 하며, 후보는 이러이러하다’는 식으로요. 그 다음 은행끼리 섞어 조별로 토의를 거쳤죠. 기준을 명확히 제시한 덕에 큰 문제 없이 의견을 조율할 수 있었습니다.”

담당자들에게 후보를 보여준 방식도 참고할 만한데요. 명칭을 쭉 나열한 뒤 선택하게끔 한 것이 아니라, ‘정확성을 강조한 후보’ ‘안전성을 강조한 후보’ ‘개인성을 강조한 후보’ 같은 식으로 분류해 판단을 도왔습니다.

이런 방법은 여러 부서가 얽힌 인하우스 브랜딩 작업에도 유용합니다. 시안 검토를 요청하기 전에 각 부서 담당자를 모아 전략에 동의를 받으면 이후 의사결정이 훨씬 쉽게 풀린다는 것이죠.

좋은 이름 짓는 법③
이름을 문장 안에 넣어 보세요

박 팀장이 이름을 평가하는 또 다른 기준은 확장성입니다. 이름이 광고 문구나 서비스명, 고객의 입말로 자연스럽게 이어지는지를 미리 따져본다는 겁니다.

지난 2023년 출범한 CJ대한통운의 배송 브랜드 오네. 처음부터 다양한 브랜딩, 마케팅 캠페인과 제품 서비스에 활용될 것을 염두에 두고 개발됐다(자료=TBWA코리아)

박 팀장은 TBWA코리아가 진행한 CJ대한통운의 배송 브랜드 ‘오네’를 사례로 들었습니다. 당시 CJ대한통운은 일요일 배송, 도착일 보장, 당일 도착처럼 다양한 배송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었지만, 고객 입장에선 각기 다른 상품으로 인식되는 문제가 있었습니다. 이에 각 서비스를 하나로 묶어 기억하게 할 이름이 필요했는데요.

TBWA코리아는 고객에게 배송이란 ‘기다리는 시간’이라는 점에 주목했고, CJ의 ‘Only One’ 철학과 ‘하나로 모든 배송을 해결한다’ ‘택배가 온다’는 뜻을 담아 오네(O-NE)라는 이름을 만들었습니다. 오네는 지난해 우리말 우수상표 선정대회와 대한민국 지식재산대전 등에서 수상했는데, 무엇보다 확장성이 우수하다는 평가를 받았습니다.

실제 오네는 다양한 브랜딩 활동에 활용되고 있습니다. “휴일에도 오네” “빠르게 오네”처럼 이름이 그대로 캠페인 문구가 되기도 했고, 택배 차량과 박스, ‘보내오네’ 같은 서비스명에 적용되면서 브랜드 경험의 출발점 역할을 충실하게 수행하고 있다는 설명이죠.

좋은 이름 짓는 법④
이름을 바꿀 땐 ‘왜’부터 설득하세요

기존 이름을 바꿔야 할 때도 있습니다. 새로운 사업 영역으로 진출하거나 계열이 분리돼 브랜드의 비전이 달라지는 경우인데요.

이때 중요한 건 고객에게 변화의 이유를 충분히 납득시키는 일입니다. 서두에 소개한 영국 우체국 사례를 기억하시나요? 사람들은 컨시그니아라는 단어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왜 바뀐 건지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경영진 눈에만 멋져 보였던 새 이름은 결국 대중의 외면을 받고 말았죠.

SK에코플랜트 로고. 기존 역량을 유지하면서 새 방향을 자연스럽게 드러내는 것이 과제였다(자료=TBWA코리아)

박 팀장은 SK건설의 리브랜딩 사례를 꼽았습니다. 지난 2020년 건설사였던 SK건설이 환경·에너지 기업으로 거듭나면서 새로운 이름이 필요해졌는데요. 이에 친환경을 뜻하는 ‘에코(Eco)’에, 건설용 생산 설비를 일컫는 용어이자 ‘심다’라는 뜻을 지닌 ‘플랜트(Plant)’를 합쳐 SK에코플랜트라는 이름이 탄생했습니다.

당시 프로젝트를 이끌었던 박 팀장은 “SK건설의 기존 역량을 이어가면서 새 방향까지 함께 보여주는 브랜드명이 필요했다”고 설명했는데요. 내부적으로 건설업에서 벗어나 친환경, 에너지, 신사업 중심의 ESG 기업으로 변모하는 데 기여했다는 평을 받았다고요.

AI는 오답을 피하는 용도로 활용

지금까지 좋은 이름 짓는 원칙을 살펴봤습니다. 의사결정 과정에서 취향을 배제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말로 요약할 수 있을 텐데요. 전략과 콘셉트가 분명하게 담긴 이름은 고객의 기억 속에 브랜드를 각인시키고, 이를 토대로 마케팅 활동까지 효과적으로 이어갈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런 이름 짓는 게 어디 쉬울까요. 우리는 세련됨도, 센스도, 임팩트도 놓치고 싶지 않잖아요. 박 팀장만의 실무 노하우가 궁금해 좋은 이름 찾는 구체적인 비결을 묻자, “프로젝트 주제에 몰입한 채 다양한 콘텐츠를 접하다 보면 ‘이거다!’하는 순간이 찾아온다”는 답이 돌아왔습니다.

“브랜드의 의미와 강점, 지향, 가치, 소비자 환경 같은 맥락을 머릿속에 넣어두는 데서 출발하는 것 같아요. 그 상태로 잡지나 기사 같은 콘텐츠를 계속 접하다 보면 어떤 단어를 마주쳤을 때 ‘아, 이렇게 표현해볼 수 있겠다’하는 아이디어가 떠올라요. 한번은 주말에 미용실에 가 패션 잡지를 읽다가 유레카를 외친 적도 있죠.

앞서 전략과 콘셉트를 명확히 정해야 한다고 말했는데요. 사실 콘셉트 자체가 세상에 없던 경우는 드뭅니다. 따라서 뻔한 메시지를 그 브랜드만의 고유한 언어로 단순하게 정리하는 것이 관건인데요. 그런 아이디어를 떠올렸을 때 가장 쾌감을 느끼곤 합니다.”

TBWA코리아 브랜드컨설팅 1팀의 회의 모습. 네이미스트나 디자이너가 아니라 브랜드 컨설턴트 중심으로 구성된 점이 특징이다(사진=디지털 인사이트)

AI는 어떻게 활용할 수 있을까요. 박 팀장과 팀원들은 AI를 ‘피해야 할 답’을 추려내는 도구로 쓴다고 했습니다.

“AI는 이미 존재하는 데이터를 조합해 선택지를 만들어줘요. 그래서 뻔한 이름이 나올 때가 많습니다. 고객사도 그 정도는 AI로 찾을 수 있고요. 때문에 AI가 준 후보를 피해 좀 더 크리에이티브한 방향으로 가는 편입니다. 특히 미묘한 뉘앙스나 문화적 맥락, 사람들이 들었을 때 느끼는 감정 같은 건 아직 AI가 판단하기 어렵기도 하고요.”

이름, 브랜드 경쟁력을 담는 그릇

콜게이트가 야심차게 출시했던 냉동 라자냐. 소비자는 콜게이트 로고에서 치약 맛을 먼저 떠올렸다(자료=museumoffailure)

1980년대 초, 치약으로 잘 알려진 미국의 생활용품 회사 콜게이트는 냉동식품 시장에 뛰어들었습니다. 새로운 브랜드명은 ‘콜게이트 키친 앙트레(Colgate Kitchen Entrées)’. 치약으로 쌓은 소비자 신뢰를 식품으로 옮겨오겠다는 계산이었는데요.

시장의 반응은 냉담했습니다. 냉동 라자냐 포장지에 찍힌 ‘콜게이트’를 본 소비자는 치약 맛을 먼저 떠올렸습니다. ‘민트맛 라자냐’와 같은 조롱을 받던 콜게이트의 식품 브랜드는 결국 슬그머니 시장에서 물러나고 말았죠.

시장 확장 전략은 있었지만, 그 전략에 어울리는 이름을 선택하지 못한 결과였습니다. AI가 후보 수백 개를 순식간에 뽑아주는 지금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 브랜드가 무엇을 약속하는지 한 단어로 보여줄 수 없다면 고객은 엉뚱한 이미지를 떠올릴지 모릅니다.

“네이밍이 전부는 아닙니다. 이름 때문에 다 잘됐다고 할 수는 없어요. 하지만 가장 먼저 노출되고, 가장 자주 불리고, 가장 오래 기억되는 것도 이름이에요. 그래서 처음부터 브랜드의 경쟁력을 쌓아갈 수 있도록 설계하는 게 중요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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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에디터장준영 (zzangit@ditoda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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