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I/UX

[참을 수 없는 UX의 저렴함 ②-2] 외면했던 사용성 문제의 청구서

우리에게는 UX PM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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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동석 | 2026.06.05 | 6분

[참을 수 없는 UX의 저렴함 ②-1] 외면했던 사용성 문제의 청구서

왜 막대한 예산을 들여도 같은 실수가 반복될까

불편은 내부에 암묵적 손실을 누적한다

외부 고객의 불편은 앱 리뷰나 VOC로 드러나기라도 한다. 반면 사내 직원의 불편은 철저히 내부에 숨겨져 훨씬 더 치명적이다. 직원은 업무 시스템이 엉망이어도 대놓고 항의하기 어렵다. 인사고과와 조직 문화 속에서 그들이 택하는 것은 ‘적응’이다.

시스템을 비판했다간 “업무 숙련도가 떨어진다”거나 “새 시스템에 저항한다”는 낙인이 찍히기 십상이다. 그래서 그들은 조용히 자신만의 엑셀 우회로를 만들고, 모니터에 포스트잇을 붙이고, 동료에게 물어물어 수동으로 일을 처리한다.

제조사의 MES/ERP, 금융사의 심사 시스템, 병원의 EMR, 대기업의 구매·정산 시스템은 직원이 ‘본연의 가치 있는 업무’를 빠르고 정확하게 처리하도록 돕는 도구여야 한다. 그러나 현실의 수많은 시스템은 ‘시스템을 다루는 행위’ 자체를 또 하나의 거대한 업무로 부과한다. 직원이 엑셀을 켜는 순간, 그 디지털 전환은 실패한 것이다.

직원 한 명이 시스템의 불친절함 때문에 하루 30분씩 헛일을 한다면, 조직 전체로는 거대한 생산성 손실이자 돈이 새는 구멍이다. 실수가 두려워 같은 데이터를 보고 또 보게 만드는 시스템은 성실함이 아니라 ‘시스템 불신’이라는 암을 퍼뜨린다. 고객 경험은 시장에서 즉시 심판받지만, 직원 경험은 조직 안에서 조용히 곪으며 비용으로 누적된다.

재구축은 과거에 회피한 저렴한 UX의 대가다

(자료=클립아트코리아)

많은 조직이 5~7년 주기로 시스템을 통째로 다시 만든다. ‘차세대 구축’ ‘고도화’라는 번지르르한 명분이 붙는다. 기술 노후화나 보안 규정 변화로 불가피한 재구축도 있다. 그러나 솔직해지자. 상당수는 이전 프로젝트에서 해결하지 않고 뭉갠 UX 문제가 곪아 터진 결과다.

초기에 사용자 경험을 제대로 설계하지 않았고, 핵심 사용자 여정(Journey)을 검증하지 않았으며, 현업의 비효율적 프로세스를 그대로 코드로 굳혔다. 사용성 평가는 오픈 직전 요식행위로 치렀고, 운영 피드백을 반영할 개선 체계도 없었다.

그 결과 시스템은 배포되자마자 사용자의 ‘철저한 불신’ 속에 사망 선고를 받는다. 결국 조직은 또다시 수십, 수백억의 재구축 예산을 책정한다. 만들어놓고 쓰지 않는 실패를 뼈아프게 겪은 경영진이 늘어난 탓인지, 최근 나 역시 현장에서 임원들로부터 “제발 이번에는 직원이 실제로 잘 쓰는 시스템을 만들어달라”는 요청을 자주 듣는다.

조직은 예전에 UX 예산을 아껴 돈을 벌었다고 착각했을 것이다. 아니다. 그들은 돈을 아낀 게 아니라 이전 PM의 임기 동안 청구서의 지불을 유예했을 뿐이다. 재구축의 무한 반복은 기술의 진보가 아니라, 그 조직이 ‘사용자 경험’을 이해하는 능력이 처참하게 결여돼 있음을 증명할 뿐이다.

AI를 도입해도 비용은 자동으로 줄지 않는다

최근 모든 조직의 화두는 AX다. 고객센터에 AI 챗봇을 붙이고, 사내 문서 검색에 생성형 AI를 탑재하고, 회의록과 데이터 분석을 AI에 맡기면 비용이 극적으로 줄고 생산성이 폭발할 것이라 기대한다. 하지만 AI는 마법 지팡이가 아니다. UX가 엉망인 상태에서 도입된 AI는 기존의 UX 비용을 더 세련되고 빠른 방식으로 대량 증폭시킨다.

하버드비즈니스리뷰는 2025년 9월 칼럼에서 ‘워크슬롭(Workslop)’이라는 개념을 경고했다. 겉보기엔 그럴듯하지만 실제로는 과업을 의미 있게 진전시키지 못하는 AI 생성 오물 콘텐츠를 뜻한다. AI가 초고속으로 결과물을 뱉어내지만, 정작 그것을 받은 인간이 다시 읽고 팩트를 확인하고 맥락에 맞게 고치느라 더 많은 시간을 쓰게 만드는 쓰레기 산이다.

AI는 보고서 초안, 요약문, 고객 답변을 몇 초 만에 만들어낸다. 하지만 ‘빠르게 생성됐다’는 것과 ‘진짜 업무를 진전시킨다’는 것은 별개다. AI 챗봇이 고객의 맥락과 감정을 이해하지 못한 채 그럴듯한 동문서답을 내놓으면, 고객은 결국 상담사에게 연결해 처음부터 다시 분통을 터뜨린다. AI 검색이 준 부정확한 답 때문에 직원이 원문 서류를 다시 뒤진다면, 그것은 생산성 향상이 아니라 ‘업무 전가’다.

저렴한 UX가 복잡성을 사용자에게 떠넘겼듯, 준비 없는 AI 도입은 업무의 복잡성을 그 결과물을 처리해야 하는 인간에게 떠넘긴다. 가해자가 버튼에서 자연스러운 문장으로 바뀌었을 뿐, 사용자의 과업이 한 걸음도 나아가지 못한다면 그것은 재앙이다. UX가 거세된 AX는 ‘자동화된 디지털 갑질’의 다른 이름일 뿐이다.

AI가 돈값을 하려면 AI가 들어갈 ‘인간의 경험 지도(User Journey)’가 먼저 설계돼 있어야 한다. 사용자가 어디서 막히는지, 어떤 정보를 필요로 하는지, AI가 오답을 냈을 때 어떻게 안전하게 회복(Recovery)하는지가 UX 관점에서 정의되지 않으면, AX는 구원수가 아니라 비효율을 무한 복제하는 증폭기가 된다.

우리에게는 ‘UX PM’이 필요하다

그렇다면 이 악순환의 고리를 어떻게 끊어야 하는가? 규모가 크고 중요한 디지털 전환·AX 과제일수록, 일정과 기능 목록만 체크하는 ‘개발 PM’만으로는 성공할 수 없다. 전체 사업의 사용자 경험 품질을 책임지고 조율하는, 강력한 권한의 ‘UX PM’이 반드시 필요하다.

여기서 말하는 UX PM은 와이어프레임을 그리거나 개발 산출물로서의 화면을 검수하는 실무자가 아니다. ‘조직의 사업 목표를 사용자 경험의 언어로 번역하고, 기능 목록을 실제 사용자·직원의 시나리오로 재구성하며, 기술적 한계로 UX가 훼손되려 할 때 방어선을 구축하는 전략가’다. UX를 선도해온 회사에서는 이미 전문가 그룹이 맡고 있는 역할이다.

UX PM은 프로젝트 내내 부서의 벽을 넘어 송곳 같은 질문을 던져야 한다.

  • “이 시스템에서 사용자가 단 하나만 성공해야 한다면, 그 과업은 무엇인가?”
  • “그 과업을 가로막는 가장 치명적인 내부 규정이나 기술 장벽은 무엇인가?”
  • “고객센터 문의를 절반으로 줄이려면 이 화면의 데이터 구조를 어떻게 뒤집어야 하는가?”
  • “현업이 엑셀로 도망치는 진짜 이유는 무엇이며, 프로세스를 어떻게 결합해야 엑셀을 버릴까?”
  • “AI 결과물을 직원이 의심 없이 믿고 쓰게 하려면, 신뢰도를 보여주는 화면 경험(XAI)을 어떻게 설계해야 하는가?”

특히 AI로 산출물의 생산 속도가 기하급수적으로 빨라진 지금, 이 역할은 더욱 절대적이다. 이제 조직에 필요한 것은 수백 장의 화면 기획서를 찍어내는 공장형 인력이 아니다. 경험의 기준과 품질을 날카롭게 통제하는 소수의 강력한 UX PM이다.

1~2명의 진짜 전문가만 있어도 경험의 북극성(품질 기준)을 세우고, 현업과 주니어가 AI 도구로 산출물을 초고속으로 구체화하는 방식이 표준이 될 것이다. 중요한 것은 AI를 도입했느냐가 아니라, 경험을 판단하는 인간의 기준이 얼마나 높은가다.

결국 UX를 아낀 조직은 가장 비싼 대가를 치른다

UX를 저렴하게 대한 조직은 결국 가장 값비싼 대가를 치르고 나서야 눈물을 흘린다. 조직은 UX를 가볍게 다루면 과제가 빨라진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가벼워진 것은 조직의 책임뿐이다. 사용자의 시간은 무거워지고, 직원의 업무는 무거워지고, 고객센터의 노동은 무거워지고, 다음 구축 예산은 더 무거워진다.

고객센터 비용, 민원 대응 비용, 사용자가 유튜브를 뒤지는 시간, 직원의 우회 노동, 생산성 저하, 낡기도 전에 폐기되는 시스템, 그리고 의미 없는 워크슬롭을 검토하느라 낭비되는 동료들의 고연봉. 이 모든 비극은 달라 보이지만 결국 하나의 뿌리에서 자란 열매다. ‘인간이 실제로 어떻게 행동하는지’를 깊이 고민하지 않은 채, 공급자 편의대로 기능을 채워 넣고 AI를 급조했기 때문이다.

저렴한 UX는 돈을 적게 들여 만든 UX가 아니다. 조직이 마땅히 짊어져야 할 시스템의 복잡성을 힘없는 사용자와 직원에게 떠넘기는 오만한 UX다. 그리고 그 청구서는 반드시, 예외 없이 조직의 숨통을 죄는 경영 위기로 돌아온다. 디지털 대전환의 시대에 UX는 프로젝트 막바지에 칠하는 화장이 아니다. 가장 먼저 내려야 할 전략적 의사결정이다.

다음 3편에선 이 역할을 맡아야 할 조직 내 UX 디자이너들이 어쩌다 단순한 ‘화면 생산 공장의 노동자’로 전락했는지, 그리고 AI 시대에 살아남아 조직을 구할 진짜 UX 전문가의 조건은 무엇인지 이야기해 보겠다.

(참조: 이동석, 2025, 디지털 갑질, https://www.rainmakerdnc.com/digitalgapjil)

  • 에디터장준영 (zzangit@ditoda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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