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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혜를 만드는 심리학적 사고

세상에 나쁜 뇌는 없다

섬네일 디자인. 손찬호 디자이너 bbt0808@ditoday.com

글. 박승원 와이어링크 TX그룹 TX 컨설팅 선임연구원
브런치. https://brunch.co.kr/@seung-park

UX를 잘하려면 사용자의 심리를 파악해야 합니다. 글을 잘 쓰려면 독자의 심리를 알아야 합니다. 장사를 잘하려면 소비자 심리학을 공부해야 합니다. 도대체 그 많은 심리학을 어떻게 다 습득해야 할까요?

심리학을 석사 과정까지 공부하면서 심리학 지식만으로 해결할 수 없던 문제가 있었습니다. 반대로 심리학만으로도 해결할 수 있던 부분이 있었는데, 이때 필요한 건 지식이 아니라 지혜였습니다. 지식보다 중요한 것은 심리학적 사고입니다. 이를 위해 모든 심리학 지식이 필요하진 않습니다.

심리학적 사고법만 체득했다면 4년의 시간과 학위까지 필요하지 않을지도 모릅니다. 사고법을 중심으로 접근한다면 최소한의 지식으로 최대의 효과를 낼 수 있습니다. 최소한의 지식으로 습득하는 사고법, 그 출발점은 세상에 나쁜 뇌는 없다는 걸 이해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이해할 수 없는 것은 ‘나빠서’가 아니라 ‘지식이 충분치 않아서’입니다(출처. EBS)

당신은 뇌를 통제할 수 없다

우리는 신체의 모든 부분을 완벽히 통제할 수 없습니다. 우리 몸엔 의지와 상관없이 움직이는 근육이 있는데, 이를 ‘불수의근’이라 합니다. 대표적인 불수의근은 심장으로, 기절해도 심장은 계속 움직입니다. 소화를 위한 장기의 근육들 역시 불수의근입니다. 뇌를 근육이라 보긴 어렵지만, 통제할 수 없는 신체 일부라는 점에서 불수의근과 동일합니다. 신기한 사실은 뇌가 불수의근을 통제한다는 것입니다.

뇌가 신체 움직임을 통제한다면 정신적인 부분은 어떨까요? 우리의 생각은 의지대로 움직이고 있을까요? 뇌는 iOS(애플의 독자 운영체제)와 같이 작동합니다. 안드로이드는 사용자에게 높은 자유도를 주지만, iOS는 그렇지 않습니다. iOS는 사용자에게 최적의 경험을 주기 위해 스스로 해결하는 것이 많습니다. iOS 사용자는 정해진 위젯 프레임 안에서만 배경화면을 조정할 수 있고, 램(RAM) 관리에 접근할 수 없습니다. 지금은 가능하지만 이전엔 폴더 관리도 직접 할 수 없었습니다. iOS는 언제나 완벽한 자동 최적화를 지향해, 사용자가 굳이 관여하지 않도록 접근을 차단했습니다.

신체가 하드웨어라면 뇌는 신체와 정신을 제어하는 OS(운영체제)입니다. 뇌는 생명 유지와 정신 활동을 위해 많은 부분을 스스로 통제합니다. 그래서 때론 자유 의지와 직관적 판단이 관여할 틈이 없습니다. 에너지를 최소한으로 소비하는 빠른 판단을 위해 심사숙고하는 과정을 생략하기도 합니다.

뇌의 최적화 관련 심리학 이론

지각은 우리가 보고, 듣고, 맛보고, 만지는 등 자극을 받아들이는 과정을 의미합니다. 지각은 선택적으로 이뤄져 우린 모든 경험을 지각하지 않습니다. 지각한 모든 것을 의식적으로 처리하지 않는 거죠.

셜록 홈스는 <보헤미안 스캔들> 에피소드에서 왓슨에게 이런 질문을 합니다.

“자네는 현관에서 이 방까지 계단이 모두 몇 개인지 알고 있나?”

셜록과 왓슨은 2층에 거주하고 있었습니다. 둘 다 현관에서 2층으로 올라가는 계단을 못해도 수백 번은 봤습니다. 왓슨은 대답하지 못한 반면, 셜록은 정확히 17개라는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셜록은 왓슨에게 “자네는 그냥 봤지만, 자신은 관찰했기 때문에 알고 있다”고 말합니다.

이처럼 보이는 것과 보는 것은 다릅니다. 왓슨은 계단이 보였을 뿐이고, 셜록은 계단을 봤습니다. 둘 다 계단을 지각했지만, 왓슨은 계단에 의미를 부여하지도 관찰하지도 않았습니다. 똑같은 것을 봤지만 지각이 다르게 일어난 거죠.

‘칵테일파티 효과’라고 불리는 재미있는 실험이 있습니다. 시끄러운 칵테일파티 중, 옆 테이블의 대화에서 자신의 이름이 들리면 자연스럽게 귀는 그 테이블을 향합니다. 동일한 소음 속에서도 본인과 관련한 이야기는 부각돼 들립니다. 뇌는 자신에게 의미 있는 정보에 가중치를 두고 더 열심히 지각하기 때문이죠.

‘부주의 맹시’ 현상을 검증한 실험도 있습니다. 실험 참가자에게 패스 연습을 하는 농구 선수들의 영상을 보여주며, 그들이 패스를 몇 번이나 했는지 물어봅니다. 영상 중간에 난데없이 고릴라가 등장해 춤을 추고 지나가도, 고릴라를 눈치채는 사람은 별로 없습니다. 다들 패스 횟수를 세는 데 집중하고 있기 때문이죠. 동일한 영상을 보여주며 패스 횟수를 물어보지 않으면, 그제야 고릴라의 존재를 알아봅니다.

‘부주의 맹시’ 실험 영상, “흰 옷을 입은 사람들의 패스 횟수를 세어보세요”(출처. Daniel Simons 유튜브)

지각은 선택적으로 일어납니다. 눈이나 귀로 같은 자극이 들어와도 마음먹기에 따라 지각의 정도는 다릅니다. 그래서 본인과 관련한 정보들은 다른 자극보다 강하게 지각됩니다.

지각만 제멋대로, 아니 ‘뇌’멋대로일까요? 기억도 뇌멋대로이며, 같은 경험이 같은 기억으로 이어지진 않습니다. 계단을 관찰했던 셜록은 계단 수를 기억했지만, 계단을 단지 보기만 했던 왓슨은 기억하지 못했습니다. 이와 같이 기억은 의미를 부여한 대상에 대해서만 형성됩니다. 정확히 말하면 우리는 의미를 부여한 대상만 떠올릴 수 있습니다.

의미를 부여하지 않은 대상은 뇌에 저장되더라도 떠올리는 건 어렵습니다. 왓슨은 계단 수를 기억하지 못했지만 계단 위치와 모양 등은 알고 있었습니다. 왓슨의 기억 속에 계단이 있었지만 계단 수 같은 상세한 정보는 인출할 수 없었던 거죠.

우리가 기억하는 모든 것이 장기기억으로 되진 않습니다. 만일 셜록이 계단 수를 물어보기 위해 방으로 들어오기 전 계단을 잠시 세어본 것이라면, 한 달 뒤 왓슨이 계단 수를 다시 물어봤을 때 대답하기 어려울 겁니다. 어떤 작업을 하기 위해 잠시 유지하는 기억을 ‘작업기억’이라 합니다. 컴퓨터를 예로 들면 램 또는 클립보드로 비유할 수 있습니다. 장기기억과 작업기억뿐 아니라 단기기억, 의미기억, 절차기억, 맥락기억 등 기억을 분류하는 방식도 다양합니다.

기억은 목적과 상황에 따라 다른 형태로 저장됩니다. 몸으로 익힌 기억은 말로 설명할 수 없지만 몸이 기억하고 있습니다. 자전거를 타는 과정을 설명할 수 없어도 자전거는 탈 수 있습니다. 운동을 잘하는 것과 잘 가르치는 것이 다른 이유도 기억의 작동원리에서 발견할 수 있습니다.

뇌의 최적화에 대한 심리학적 사고

분명 공부한 내용인데 시험 당일 기억나지 않거나, 공부한 것과 다르게 기억나 곤란했던 경험이 있을 겁니다. 지각과 기억의 작동 방식을 보면, 뇌는 완전무결하게 작동하지 않습니다. 능력이 부족해서일까요? 작동 방식에 결점이 있다고 하더라도, 완벽하지 않다고 치부할 순 없습니다. 완벽의 정의에 따라 달라질 수 있기 때문입니다.

뇌는 우리의 삶을 완벽히 최적화하고 있습니다. 보이는 모든 것을 지각하고 기억한다면 우리의 인지자원은 남아나질 않습니다. 드라마나 영화에 종종 등장하는 완전기억능력은 과연 우리 삶을 더 윤택하게 만들어줄까요? 뇌는 의도적으로 기억을 지우기도 하는데, 이를 심리학에선 억압이라는 방어기제로 설명합니다. 일상생활에 영향을 미칠 정도로 괴로운 기억은 떠올릴 수 없도록 해버리는 거죠. 진정한 치료와 극복을 위해 해당 기억을 꺼내야 하는 순간이 올 수도 있지만, 뇌는 당장의 생존을 위해 유리한 방식대로 작동할 뿐입니다. 원래 작동 방식과 원칙대로 움직일 뿐이죠.

인간의 판단과 의사결정도, 지각과 기억도 완전무결하게 이뤄지지 않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심리학을 알아야 합니다. 논리적 추론만으로 인간을 파악하는 것은 한계가 있기 때문입니다. 인간과 뇌는 논리적으로 작동하지 않습니다. 다양한 오류의 가능성이 있고, 완벽함보다는 효율성을 추구합니다. 그러나 그것이 나쁘다고 볼 순 없습니다. 생존과 적응에 유리한 방식이니까요. 뇌의 최우선 과제는 생존과 적응이지, 논리적 추론과 이성적 판단이 아닙니다. 이 부분을 혼동하면 본능을 거스르는 방식을 자꾸 기대하게 됩니다.

뇌는 우리가 평생 써야 하는 OS입니다. 윈도우의 작동원리를 익히고 잘 관리하면 오래 사용할 수 있듯이 뇌도 마찬가지입니다. 물론 윈도우를 쓰기 위해 모든 프로그램 파일이 무슨 기능을 하는지 알 필요는 없죠. 어떤 방식으로 작동하는지에 대해 초점을 맞추면 됩니다. 우리의 목표는 심리학 전공지식이 아니라 심리학적 사고법이니까요.

심리학은 특별하고 대단한 비법 같은 ‘기술’이 아닙니다. 하지만 아주 강력한 사고의 틀이 되기도 합니다. 뇌가 작동하는 방식을 알게 된 우리는 심리학적으로 생각할 수 있게 됐습니다. 이젠 마음대로 움직이지 않는 뇌를 미워하지 않을 수 있겠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