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워싱턴에서 만난 베네치아의 대표 르네상스 화가, 티치아노(Titian)

티치아노는 그의 그림에 엔티크함을 담았음은 물론, 그가 추구하던 모던한 감성도 함께 담았다.

미국, 유럽의 서양 회화 전문 미술관을 자청하며 문을 연 워싱턴 국립 박물관(Washington National Gallery). 링컨 기념관부터 국회의사당으로 이어지는 내셔널 몰의 중간쯤에 위치한 이 미술관은 워싱턴을 방문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들르게 되는 곳이다. 좋은 위치인 이유도 있을 테지만 레오나르도 다빈치, 라파엘로, 모네, 르누아르, 고흐 등 미술을 잘 몰라도 이름은 익숙한 화가들의 유명 작품들이 전시돼 있기 때문. 책에서 본 작품들을 진품으로 본다는 것도 물론 즐거운 일이지만 한 시대를 이끌었던 유명 서양 화가들의 작품을 볼 수 있다는 것도 빼놓을 수 없는 즐거움이다. 그중의 한 사람이 베네치아의 대표 르네상스 화가 ‘티치아노’다.

조반니 벨리니, 신들의 연회(The Feast of the Gods), 1514/1529, 캔버스에 유화
작자미상(티치아노 화풍 추종자), 알레고리(Allegory), 연대미상, 캔버스에 유화
티치아노, 파토모스의 전도사 세인트 존(Saint John the Evangelist on Patmos), 1547, 캔버스에 유화

1913년에 밀라노에서 탄생한 패션 브랜드

99세로 생을 마감하기까지 무려 70년 이상 그림을 그린 화가 티치아노. 정확한 출생연대는 남아 있지 않지만, 대략 1400년 후반에 태어났다고 짐작하고 있다. 그 시대를 생각한다면 장수도 보통 장수를 한 게 아닌 셈인데, 그 이상으로 놀라운 점은 세상을 떠나는 순간까지도 붓을 놓지 않았다는 점이다. 이는 단순히 그림에 대한 열정만을 나타내는 것이 아니라, 끝날 줄 몰랐던 그의 명성을 드러내는 부분이기도 하다. 15세기 피렌체, 16세기 초 로마에 이어 16세기 중엽, 베네치아가 서양 미술의 중심지로 떠오를 당시, 그 중심에는 베네치아의 대표적 화가, 바로 티치아노가 있었다.

대부분의 서양 화가들은 그들의 화풍을 좋아하는 유력인사나 귀족들의 후원을 받아 데뷔하고 작품활동을 이어갔다. 그러나 티치아노는 처음부터 개인 화실을 오픈해 독립적으로 활동했다. 교황이나 군주 등 유력인사들의 작품을 의뢰받아 그리기는 했지만, 어딘가에 소속이 됐다거나, 특정인의 지속적인 후원을 받은 적이 없었다. 때문에 그림을 그리는 대상, 인물을 선택하는 것도 본인의 의지였고, 의뢰인의 요구에 상관없이 본인의 의지대로 그림을 그렸다. 당시에는 거의 찾아볼 수 없을 만큼 독립성을 누린 예술가였다.

그것이 가능했던 이유 중의 하나는 그의 작품에 한계가 없었다는 점이다. 스승인 조반니 벨리니(Giovanni Bellini)가 죽은 후 티치아노는 그의 뒤를 이어 베네치아 공식 대표 화가로 자리매김하게 된다. 그 후 그는 초상화, 우의화, 누드화, 종교화, 신화화 등 장르를 불문하고 다양한 작품을 그렸을 뿐만 아니라 각각의 작품들이 독창성과 작품성 면에서도 독보적이어서 여러 사람으로부터 작품의뢰가 끊이지 않았다. 때문에 오랜 시간 주체성을 가지고 자신만의 작품활동을 이어갈 수 있었다.

거울을 보고 있는 비너스 (Venus with a Mirror)

티치아노가 활동했던 르네상스 시기의 미술이 추구했던 것은 ‘과거의 클래식함으로 돌아가자’는 것이었다. 티치아노는 그의 그림에 엔티크함을 담았음은 물론, 그가 추구하던 모던한 감성도 함께 담았다. ‘거울을 보고 있는 비너스’ 속의 비너스는 15, 16세기 초 메디치가문이 사랑했던 화풍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는 전형적인 자세를 취하고 있다. 반면 거울 속에 비친 자신의 모습에 취해있는 비너스의 표정에서 느껴지는 모던한 아름다움과 관능미는 티치아노가 즐겨그리던 여성 누드화의 분위기를 고스란히 뿜어내고 있다. 비너스가 덮고 있는 와인색 벨벳은 하얀 살색과 대비돼 여성미를 더욱 강조하고 있다.

작자미상(티치아노 화풍 추종자), 큐피트의 눈을 가리는 비너스(Venus Blindfolding Cupid),1560/1570, 캔버스에 유화
티치아노, 라누치오 파르네세(Ranuccio Farnese), 1542, 캔버스에 유화
티치아노, 거울을 보는 비너스(Venus with a Mirror), 1555, 캔버스에 유화
티치아노, 여성의 초상화(Portrait of a lady), 1555, 캔버스에 유화

얼굴이 아니라 사람을 그리는 초상화

화가의 명성을 확인하는 척도 중 하나는 얼마나 많은 사람이 자신의 초상화를 그 화가에게 의뢰하느냐이다. 티치아노의 초상화는 유난히 인기가 많아서, 화가가 그림을 그릴 사람을 선택할 정도였다고 한다. 그는 초상화를 그릴때도 자신의 의지대로 그렸기 때문에 미화하기보다는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생동감 있게 그렸는데, 이 때문에 당대 고위직에 있었던 사람들은 티치아노의 초상화를 하나쯤 갖고 싶어 했다.

그중 교황 바오로 3세의 손자 ‘라누치오 파르네세(Ranuccio Farnese)’의 초상화 역시 흥미로운 작품이다. 초상화 속 파르네세의 나이는 12세였다. 당시 그는 할아버지에 의해 베네치아로 보내져 12세의 나이에 이미 몰타의 기사가 돼 있었다. 14세에 나폴리의 대주교(Archbishop)가 되고, 이어 볼로냐의 주교(Bishop), 밀라노, 라벤나 그리고 성 천사의 성의 대주교가 된다. 그리고 35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난다. 티치아노가 초상화를 그릴 당시에는 파르네세의 앞에 놓인 인생이 어떻게 펼쳐질지까지는 알 수 없었겠지만, 당시 어린 소년에게 떠맡겨지다시피 한 역할의 무게는 알 수 있었을 것이다. 때문에 티치아노는 파르네세의 작은 어깨 위에 지나치게 크고 무거운 망토를 얹고, 미묘한 표정을 그대로 초상화에 담아 그가 짊어지고 살아가야 할 것이 얼마나 무거운지 표현했다.

관람안내

  • 주소. Art gallery in Washington, D.C., United States of America
  • 관람시간. 월요일~토요일 오전 10시 ~ 오후 5시/ 일요일 오전 11시 ~ 오후 6시
  • 전화. (202) 842-6905
  • e-mail. access@nga.gov
  • 에디터디지털 인사이트 (ditoday.websmedia@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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