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렌드

아날로그의 나라, 일본의 공무원이 디자인 공부를 한다

행정을 디자인으로 혁신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 이 콘텐츠는 <디지털 인사이트>와 한국디자인진흥원의 제휴를 바탕으로 제작됐습니다.

직급이 낮을수록 기울어지는 겸양 도장(자료=요미우리신문)

‘도장 예절’이라는 말을 들어본 적이 있나요? 마치 인사를 하듯 직급이 낮을수록 도장을 기울여 찍는다는 ‘겸양 도장’으로 대표 되는 일본의 도장 예절 문화는 위계질서가 분명한 일본의 사내 문화를 잘 보여주는 예시입니다.

강철구 배재대 일본학과 교수는 한 칼럼에서 “일본의 아날로그를 대표하는 3가지는 팩스, 도장, 종이”라며 이르게 선진국 반열에 올라섰음에도 이상할 만큼 아날로그 적인 방식을 고수하는 일본의 경직성을 비유적으로 표현한 바 있습니다. 그의 말처럼 가정마다 팩스가 있고, 도장을 대체하기 위해 ‘디지털 도장’을 만든다는 일본은 단연 새로운 변화에 폐쇄적일 것만 같습니다.

그런데 이처럼 경직적이고 보수적인 일본이 관심을 가지고 연구하는 의외의 분야가 있습니다. 바로 ‘서비스디자인’입니다.

? 서비스디자인:  공급자와 수요자의 잠재된 욕구를 찾고 이를 만족시킬 수 있는 제품과 서비스를 개발하는 방법입니다. 사용자의 경험을 토대로 새로운 가치창출을 실현하는 다양한 방법론으로 산업과 사회 전 분야에서 활용되고 있습니다 .

일본 정부의 디자인 연구

우리나라의 ‘산업통상자원부’에 해당하는 일본의 ‘경제산업성’은 2018년 디자인 경영 선언을 발표한 이후 활발하게 디자인을 연구하고 있습니다.

이와 같은 일본 정부의 디자인 연구는 나아가 최근에는 ‘일본 내 서비스디자인 확산’이라는 목표에 집중하고 있습니다. 관련 연구도 활발하게 진행되고 있죠.

JAPAN+D의 구성(자료=이원교 서비스디자이너)

서비스디자인에 대한 정부의 관심은 일본 내 젊은 공무원 사이에도 퍼져, 디자인 방법으로 수요자 중심 정책을 실현하고자 하는 움직임을 일으켰습니다. 그중 대표적이 활동이 ‘JAPAN+D’입니다.

JAPAN+D?

JAPAN+D의 미션과 벨류(자료=이원교 서비스디자이너)

JAPAN+D는 20~30대의 일본 경제산업성 공무원들로 이루어진 디자인 혁신 조직입니다. 타 부처, 디자인 팜 등과의 의견 교환을 거듭해 2022년 3월 시작됐죠. 그렇다면 JAPAN+D는 어떤 일을 하고 있을까요?

? JAPAN+D가 하는 일

1. 정책 만들기
✅정책 입안 프로세스에 대한 디자인 접근 방식 도입 추진
✅새로운 지식과 경험을 조직에 축적하고 발신·공유

2. 조직 만들기
✅정책에 디자인 어프로치 도입을 추진하기 위한 횡단적인 조직 설치
✅디자인 어프로치 도입에 대해 대화·반주할 수 잇는 인재 등용
✅교육 프로그램을 통해 디자인 어프로치에 대한 이해도가 있는 직원 육성

일본과 한국, 디자인 정책 운영의 차이점

JAPAN+D에 대해 알아보니, 떠오르는 궁금증이 있습니다. “디자인 방법을 정책에 도입하자는 활동이 왜 경제산업성에서 추진되는가?”입니다.

수요자 중심의 정책을 디자인적 방법으로 개발하는 것, 한국이라면 행정안전부가 담당할 일입니다. 실제로 국내에서 정책을 서비스디자인으로 풀어나가는 시도를 하고 있는 국민디자인단은 줄곧 행정안전부의 예산으로 추진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일본은 한국의 산업부에 비할 수 있는 경제산업성이 그 일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한국은 산업디자인은 산업디자인진흥법의 영향을, 공공디자인은 공공디자인의 진흥에 관한 법률의 영향을 받습니다. 이에 따라 산업디자인은 산업부, 공공디자인은 문광부에서 담당하며 서로의 영역을 침범하지 않으려 조심합니다. 그래서 국내의 경우 행정을 디자인으로 혁신하는 일이라면 행안부, 문화를 디자인으로 혁신하는 일이라면 문광부, 이렇게 각 수요처의 관할로 추진됩니다.

디자인의 영역은 계속 확대되고 있습니다. 과거 매력적인 생산품을 만들어 제품의 부가가치를 높이는 역할에 국한되었던 디자인은 이제 더 안전하고 편안하고 풍요로운 삶을 추구하기 위한 역할을 요구 받고 있습니다. 이에 따라 디자인과 관련된 활동은 산업부, 행안부, 문광부 등 필연적으로 다양한 부처에서 나타나고 있습니다. 그러나 해당 수요처의 관할 영역에서 일어나는 디자인의 사정에는 산업부가 관여하지 못하고 있는 현실입니다.

일본은 디자인이 개입해야 할 일이라면 산업이든 문화든 경제산업성이 담당합니다. JAPAN+D는 경제산업성 내의 젊은 공무원, 특히 디자이너를 중심으로 정책을 디자인하기 위한 전문성을 갖추려는 노력을 하고 있는 경우입니다.

사회문제 해결에 디자인의 개입?

점점 복잡해지는 사회문제(사진=medicalrepublic)

부처별로 나뉘어 전문적 디자인 방법에 대한 이해와 통합 조정의 체계 없이 운영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습니다. 더해서 정책은 점점 더 복잡하고 까다로운 ‘사악한 문제(Wicked problem)’를 다룹니다. 사회문제는 특정 부처가 책임지고 추진할 수 없는 애매한 성격의 과제인 경우가 대부분이죠.

우리의 생존과 번영에 있어 절대적이고 시급한 문제라고 해도 이해관계가 복잡하게 엮여있는 과제는 중요하게 다뤄지지 않습니다. 여러 부처에 나뉘어 추진되는 특성 때문에 예산심의에서 밀려나거나 소홀하게 관리되고는 합니다.

세계 여러 나라가 오래전부터 시도하는 복잡한 사회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디자인이 한국에서는 실현되지 않는 이유가 이와 같은 정부의 역할 분담 시스템에 있다고 볼 수 있는 것입니다.

디자인 정책의 운영 체계, 어떻게 개선해야?

우리 정부의 방식은 기업에 비유하자면 제품의 홍보 업무를 홍보 부서가 하는 것이 아니라 제품과 서비스를 만드는 각 사업 본부에서 알아서 각자 해결하고 있는 것과 유사합니다. 당연히 좋은 결과를 기대하기도 어렵습니다.

일본처럼 산업부가 모든 디자인 관련 업무를 일괄해서 하면 해결 될까요? 이해관계가 복잡한 사회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디자인 정책이라면 일본의 방식으로도 해결될 수 있을 것 같지 않습니다. 그렇다면 디자인 정책의 체계를 개선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디자인 정책 개선을 위한 방안

1. 통합 디자인 관리 기관 설립
디자인 관련 업무 분산 예방 및 전략적 디자인 관리를 위한 통합 기관 설립
통합 기관의 산업, 문화, 행정, 사회문제해결 등 다분야의 디자인 전략 수립·실행
관련 부처와의 연계 및 협력 강화

2. 다부처 간 협력 체계 구축
다부처 협력을 위한 규정 및 지침 마련
협력 프로젝트의 실행 및 모니터링
협력 성과의 평가 및 피드백 시스템 구축

3. 디자인 국가 전략 수립
디자인 중장기 로드맵 설정
국가 목표와 연계된 디자인 프로젝트 추진
전략의 집중 추진을 위한 예산 및 자원 할당

4. 디자인 교육 및 인식 개선
디자인 관련 교육 프로그램 개발 및 실행
디자인의 중요성을 알리는 캠페인 및 홍보
전문가 양성을 위한 국가 자격 제도 강화

5. 효과적인 모니터링 및 평가 시스템 도입
정책 및 프로젝트의 성과 측정 지표 설정
정기적인 모니터링 및 평가 수행
평가 결과를 통한 지속적인 개선 및 조정

문제의식을 가져야

디자인 정책을 개선하기 위해 마련된 방안을 따르기만 하면 될까요? 물론 전보다 진보 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가장 중요한 것은 ‘문제의식’을 가지는 것입니다.

아날로그적이고 폐쇄적일 것이라 여겼던 일본이 오히려 한국보다 서비스디자인을 정책에 도입하기 위해 적극적으로 노력하는 듯 보이는 것은 결국 문제의식의 여부에서 야기된 차이입니다. 복잡한 사회 문제 해결 등 여러 정책을 디자인 적으로 풀어나갈 수 있는 나라로 거듭나기 위해, 문제를 인식하고 이를 해결하기 위한 적극적인 고민이 필요한 시점입니다.

? 원문 링크: 일본의 젊은 공무원들이 서비스디자인을 공부하고 있습니다. (윤성원 한국디자인진흥원 수석연구원)

  • 에디터이민호 (treewords@ditoday.com)

성장하는 실무자를 위한
단 하나의 뉴스레터

뉴스레터 구독하기
하루동안 안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