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적으로 확산된 유연근무…”한국의 근무 환경은 어떨까?”
주요 국가별 지표와 비교한 한국의 유연 근무 도입 현황


전 세계적인 단절을 야기했던 코로나19가 세상을 휩쓴 후 몇 년의 시간이 흘렀다. 이제 더는 마스크를 착용하고 의무적인 거리 두기를 하지 않게 됐으며, 일상 속 많은 부분이 팬데믹 이전으로 회귀하고 있다. 예로 팬데믹 기간 내 한산했던 영화관 등 실내 엔터테인먼트 시설과 스타필드 등 복합공간은 연신 북적이는 인파로 가득해진 지 오래다.
그러나 팬데믹으로 야기한 모든 변화가 다시 제자리를 찾은 것은 아니다. 일부는 급격한 변화의 영향으로 팬데믹 전후가 다른 양상을 보이기도 하는데, 그 중 대표적인 것이 바로 ‘근무환경의 변화’다.
거리 두기로 실내에 많은 인원이 운집하지 못하는 상황에서도 기업의 이윤창출과 공공기관의 행정 업무는 필수적이었고, 이에 자연스레 팬데믹 기간 내 재택근무 등 다양한 근무 형태가 시험되고 도입되기 시작했다.
실제 취업 사이트 인디드의 조사에 따르면, 팬데믹 직전인 2020년 1월 전 세계 취업 시장에서 재택근무를 포함한 일자리 공고는 단 2.5%에 그쳤으나, 코로나19가 확산된 2021년 9월에는 약 7.5%로 3배 가까이 증가하기도 했다.
엔데믹 이후에도 국가에 따라 유연 근무를 유지하는 기업의 수는 적지 않은데, 그 바탕에는 팬데믹 기간 동안 유연 근무를 경험했던 근로자의 유연한 근무 환경에 대한 요구가 근로 시장에서 강하게 작용하기 때문을 해석된다.
오늘은 이처럼 국가별로 팬데믹을 거치며 변화한 다양한 근로 환경을 조명하고, 국내 근로 환경의 현주소를 확인하고자 한다. 과연 한국의 기업과 근로자는 유연 근무에 대해 어떤 입장을 보이고 있을까?
미국, 근로 시장에서 유연한 근무 환경의 중요도 높다

가장 먼저 살펴본 곳은 단연 세계 경제의 중심인 미국이다. 지난해 12월 발간된 미국 노동부의 고용보고서에 따르면, 같은 해 11월 기준 미국 내 사업체 월급 노동자의 수는 1억5708명에 달한다. 이처럼 많은 인구가 기업의 근로자로 일하는 미국은 단연 팬데믹 기간 동안 많은 변화를 겪을 수밖에 없었다.

팬데믹 이전 미국 내에서 재택근무를 실시하는 근로자의 비율은 19% 정도에 그쳤다. 이 수치는 팬데믹을 거치며 빠르게 상승했는데, 2021년 당시 재택근무 근로자의 비율은 44%까지 상승했다.
엔데믹 선언 이후로도 미국 내 재택근무 비율은 크게 감소하지 않았는데, 워싱턴포스트와 여론조사기관 입소스에서 실시한 조사에 따르면 작년 미국 내에서 전면 재택근무를 실시하는 근로자의 비율은 여전히 40%를 기록하고 있었다. 주목할 점은 전면 재택근무 외에도 사무실과 재택근무를 병행하는 ‘하이브리드 근로자’의 비율이 높게 나타났다는 사실이다.
같은 조사에서 하이브리드 근로자의 비율은 38%로, 전면 재택근무 근로자의 비율과 비슷한 수준이었다. 하이브리드 근로자와 전면재택근무 근로자의 비율을 합치면 무려 78%에 달하는 근로자가 유연한 근무 환경에서 과업을 수행하고 있는 것으로 분석된다.
이처럼 미국 내에서 하이브리드 근로자의 비율이 높게 나타나는 것은 하이브리드 근무가 근무 환경을 둔 기업과 근로자 간의 합의점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실제 엔데믹 이후 미국 내 기업에서 재택근무 비율을 축소하는 시도를 하지 않았던 건 아니다. 작년 8월 데이비드 솔로몬 골드만삭스 대표는 직원의 실적 저하를 이유로 주 5일 출근 정책을 시행하려 했으며, 메타, 아마존 등 미국 내 IT 대기업도 재택근무 비중이 높은 근로자의 사무실 복귀를 추진하고자 했다.
그러나 기업의 이와 같은 움직임은 재택근무에 익숙해진 근로자의 극심한 반대에 부딪히게 됐는데, 워싱턴포스트와 입소소의 동일 조사에서 재택근무를 실시하고 있는 근로자 중 37%는 “항상 재택근무를 하고 싶다”고 밝혔으며, 35%는 “대부분의 시간을 재택근무로 일하고 싶다”고 밝혔다. 전체 응답자 중 “재택근무를 거의 하지 않겠다”고 답한 비율은 단 5%에 그쳤다.
사무실 복귀에 반대하는 근로자의 비중이 높은 만큼 미국 내 기업은 이들의 목소리를 무시하기 어려운 상태다. 지난 달 미국 시카고대학과 미시간대학 연구팀이 인력 정보 회사 피플 데이터 랩스에 등록된 이력서 정보를 분석한 결과에 따르면, 2022년 근로자의 사무실 복귀를 100% 의무화한 스페이스 X는 이후 전체 근로자에서 고위직 근로자가 차지하는 비율이 15%로 눈에 띄게 감소한 것으로 드러났다. 같은 조사에서 근로자의 사무실 복귀를 의무화하되 하이브리드 근무의 형태를 띈 마이크로소프트와 애플의 경우는 각각 5%와 4%로 스페이스X에 비해 감소폭이 높지 않았다.
사무실 출근 강요를 이유로 해당 기업들을 떠난 고위직 근로자는 기존 기업에 비해 자율적인 근무 환경이 보장되는 경쟁사로 이직한 것으로 드러났다.
요컨대 팬데믹을 거치며 미국 내에서 자율적인 근로 환경은 기업 경쟁력의 근간이 되는 뛰어난 인재를 사로잡기 위한 필요 조건으로 자리 잡고 있는 것이다.
유럽 대부분 재택근무 활성화됐지만, 예외도 존재

유럽 또한 팬데믹의 영향에서 자유로울 수 없었는데, 프랑스 싱크탱크 장 조레 재단과 여론 조사기관 IFOP의 연구에 따르면, 팬데믹을 겪으며 유럽 내에서 재택근무를 실시하는 근로자의 비율은 지속적으로 상승해 2022년에는 적어도 주 1회 재택근무를 실시하는 근로자의 비율이 각각 독일 51%, 이탈리아 50%, 영국 42%, 스페인 36%로 대부분 미국과 비슷하거나 높게 나타났다.
특히 독일의 경우 팬데믹 전과 비교했을 때 재택근무 근로자의 비율은 거의 4배 가까이 상승했는데, 독일 연방 노동부에 따르면 2019년 당시에는 67만4000명의 직원만 재택근무를 실시했으나, 2022년에는 재택근무 근로자의 수가 228만5000명으로 전체 근로자의 약 6%까지 상승했다.

영국의 경우 2023년에도 유연 근무의 비중이 높게 나타났는데, 여론조사기관 입소스에서 실시한 조사에 따르면 2023년 영국에서 주 1~4일을 사무실에 출근하는 형태로 유연 근무를 실시하는 근로자의 비율은 45%였으며, 사무실에 주 1회 이하로 출근하거나 전면 재택근무를 실시하는 근로자의 비율은 13%였다.
전면 사무실 출근으로 근로하는 근로자의 비율은 42%였는데, “전면 사무실 출근을 선호한다”고 응답한 비율은 22%를 기록해 실제 전면 사무실 출근 근로자 비율과 선호도 측면에서 큰 간극을 보였다.
다만 이처럼 대부분의 국가에서 유연 근무가 활성화되고 있는 반면 앞선 IFOP의 연구 결과에서 프랑스는 다른 유럽 국가 대비 독특한 양상을 보였는데, 2022년 당시 프랑스 내 적어도 주 1회 재택근무를 실시하는 근로자의 비율은 단 29%에 그쳤으며, 주 2~3회 재택근무를 실시하는 근로자 비율도 14%로 낮았다.
소니아 르빌리앙 프랑스 릴 IESEG 경영대학원 교수는 이와 같은 결과에 “프랑스인은 대부분 변화를 꺼린다. 고정관념일 수 있지만, 사실이기도 하다”고 밝히기도 했다.
종합해보면 유럽 내에서도 유연 근무가 적극적으로 도입되고 있는 상태지만, 일부 국가에 한해서는 대부분 국민 기조 등의 영향으로 유연 근무 확산에 더딘 양상을 띄는 특이점을 보이기도 한다.
한국, 근무 환경을 두고 기업과 근로자 간 입장차 커
그렇다면 한국은 어떨까? 지난해 11월 한국경영자총협회에 공기업을 제외한 매출 50대 기업을 대상으로 실시한 재택근무 조사 결과에 따르면, 2022년 72.7%에 달했던 재택근무 시행 기업의 비율은 58.1%로 감소했으며, 팬데믹으로 재택근무를 시행한 적 있으나 현재는 중단한 기업의 비율은 38.7%에 달했다. 프랑스와 같이 유연 근무 도입에 보수적인 경향을 보인다고 풀이할 수 있다.

실제 많은 국내 기업이 팬데믹 종료 후 점차 사무실 출근으로 돌아서고 있는 상태인데, 카카오는 지난 해 4월 사무실에 출근하는 ‘오피스 퍼스트’를 시행했으며, OTT 기업인 티빙 또한 사무실 출근으로 돌아섰다. 야놀자 또한 팬데믹으로 전면 재택근무를 실시할 당시 “코로나 종식 이후에도 재택근무를 유지할 것”이라는 입장을 밝혔으나, 작년 이를 번복하고 4월부터 재택근무와 사무실 출근을 병행하는 하이브리드 근무로 돌아섰다.
이처럼 유연한 근무 환경의 필요성을 체감하지 못하고 팬데믹 종료 이후 사무실로 근로자를 불러들이고 있는 국내 기업에 대해 가상 오피스 기업인 오비스의 정세형 대표는 지난 해 디지털 인사이트와 진행한 인터뷰에서 “국내 시장은 감시 분위기가 만연하다. 눈 앞에 직원이 보이지 않는다면 놀고 있을 것이라 생각하고, 더욱 엄격한 성과 기준을 부여한다”고 언급한 바 있다. (관련 인터뷰: 업무 공간의 디지털 전환, 한국은 어디까지 왔을까?)
다만 국내는 프랑의 사례와는 차이가 있는데, 프랑스가 변화에 경직적인 국민 기조의 영향이라면 국내의 경우는 근로자는 유연 근무를 희망하고 있으나 기업이 완강히 유연 근무를 거부하는 상태다. 사실상 근로자와 기업이 근로 환경을 두고 교착 상태에 놓인 셈이다.

일례로 작년 초 카카오 판교아지트에서 진행된 기자 간담회에서 노조는 뚜렷한 원칙 없이 변경을 거듭해 결국 사무실 출근으로 이어진 근무제 변경에 대해 불만을 전한 바 있으며, 야놀자 등 전면 재택 근무를 철회한 여러 기업 또한 근로자의 강한 반발에 부딪히고 있는 상태다.
국내 근로 환경, 과연 어떻게 변화할 것인가
앞서 미국의 사례에서 확인할 수 있듯 유연 근무는 경쟁력 있는 인재를 포섭하는 데 있어 필수적인 요소로 자리 잡고 있는 상태다. 국내 또한 유연 근무에 대한 근로자의 관심이 두드러진 상태이므로, 기업 측면에서도 단순히 “사무실에 앉아야 일을 한다”는 발상 보다는 인재 유출을 막고 기업 경쟁력을 증대하기 위한 측면에서 유연 근무의 필요성을 재고해볼 필요성이 촉구되고 있다.
특히, 여러 전문가가 유연 근무의 확산이 단순히 근로 형태의 변화를 넘어 삶의 질에 영향을 미치며, 나아가 사회 전반의 패러다임을 변화시키는 중요한 요소로 작용한다는 해석을 내놓고 있는 만큼, 앞으로도 기업과 근로자 간 유연 근무 확산의 필요성에 대한 논의는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실제 지난 3월 서울지방고용노동청에서 열린 일·생활 균형 세미나에 따르면 정부 또한 출산율 상승 등의 차원에서 유연 근무를 적극 권장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작년 국내에서 유연 근무를 통해 근로한 근로자의 비율은 전체 임금노동자 중 단 15.6%에 그쳤다. 같은 세미나에서 전체 노동자의 47%가 유연근무제를 희망하고 있다는 내용이 이어져 기업과 근로자 간 유연 근무에 대한 의견 조절이 여전히 난항을 겪고 있음을 엿볼 수 있었다.

일각에서는 과거 이미 대부분의 국가에서 시행하고 있던 주5일제의 국내 도입이 많은 반대에 부딪혀 2003년 8월에서야 근로기준법 개정안의 국회 통과를 통해 이뤄졌던 점으로 미뤄 국내 근로 환경의 변화는 상당히 경직적일 것으로 전망하고 있기도 하다. 과연 향후 국내 근로 환경은 어떤 양상으로 변화할 것인지, 귀추가 주목되는 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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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에디터이민호 (treewords@ditoday.com)
- 섬네일손 찬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