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明達路] 당색(黨色)으로 기약 없는 AI 법안
조선시대의 문신, 윤신지의 시가와 산문을 엮어 만든 시문집 현주집(玄洲集)의 제6권인 이순록(耳順錄)에는 청주 화양동 계곡에 놀러온 선비들의 행동거지로 당색을 단번에 알아맞춘 노승 이야기가 실려 있다. 산천을 두루 누비며 걸음걸이가 활달하고 차림새가 분방하며 중을 천대하지 않으면 남인이요, 산수를 존중하지 않고 걸음걸이가 거드름을 피우며, 중의 허물을 살펴 잔소리를 피워내면 십중팔구 소론, 산천전각을 대할 때마다 소중히 예를 다하며 중들과 담화하며 대화하길 좋아하면 노론이라 했다.
우리 한국인은 겉으로는 한민족, 백의민족이라 일사분란하게 ‘초록은 동색’이요, ‘가제는 게편’이라 목소리 높여 외쳐도, 막상 그 뚜껑을 열어 내부를 들여다 볼라치면 자당(自黨)과 타당(他黨), 자파와 타파, 찬파와 반파, 다수파와 소수파, 진보와 보수, 경상과 전라, 남과 북 사이가 차마 넘지 못하는 경계, 눈에 보이지 않는 요단강처럼 여겨지는 것도 사실이다.
옛부터 당색만 달랐던 것이 아니다. 차림새도 달랐다. 사상과 주장, 정책이 다른 만큼 당색에 따라 차림새도 저마다 차이가 있었는데, 노론가문의 부인은 머리쪽을 느슨하게 아래로 처지게 하는 반면, 소론은 머리 위로 바짝 들어올려 쪽을 찌었다고 한다.
그뿐만이 아니다. 저고리깃도 둥글면 노론, 모나면 소론이라니 차림부터가 이만하면 말 다했다해도 과언이 아니다. 차림새만 그럴까. 언행에서도 당색을 드러내야 직성이 풀렸던 우리 선조였다. 택당(澤堂) 이식(李植)이 오리의 종사관으로 있을 때 상전의 당색(黨色)을 살피는 데 말을 돌려 “율곡을 어떻게 보십니까?”하고 물을 정도였으니.
발명왕 에디슨의 첫 발명품은 바로 ‘전자 투표 기록기’다. 지금이야 국회 전광판에 전자표결기가 설치돼 특별한 것이 없어 보여도, 이 발명품이 등장했던 1869년은 획기적이었다. 하지만 미국 의회는 이 기계의 설치를 반대했다. 무조건 투표에 의지해 소수의 의견이 묵살 당하고, 다수의 의견이 횡포를 부릴 것이라는 이유 때문이었다.
즉, 표결에만 의지하면 토론이란 그저 있으나 마나한 형식에 지나지 않고, 다수파가 소수파의 비판을 받는 일도 없을 뿐더러 소수의 의사를 일부 추렴할 기회를 놓칠 것이라는 이유가 합당해 보인다.
이처럼 민주주의는 당색(黨色)을 지우고 토론과 협의로 의견을 좁혀가며 얼마나 이를 조화시키느냐에 달렸다고 해도 지나침이 없다.
세상이 생성형 AI로 발등에 불이 떨어졌는데, 아직 그 뜨거움 조차 인지하지 못한 곳이 있다. 바로 ‘대한민국 국회’다. 관련 AI법이 없어 데이터 활용을 포기하는 기업이 속출한다. 최소한 생성형 AI로 무엇을 할 수 있고 어떤 지원을 받는지 가이드라도 나와야 글로벌 빅테크와 견주지는 못하더라도 따라잡기 위한 시도를 할 수 있는데, 그럴 수가 없다. 국회가 AI 산업 법안 처리에 미온적이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국회는 매일 매일이 시끄럽다.
당색도 다를 수밖에 없고, 의견도 갈릴 수 있다. 허나, 국가 대소사에서는 서로 관심을 갖고 이견을 좁혀 인재와 과학, 무역으로 먹고 사는 대한민국의 걸림돌을 치우기 위해 365일 중 단 며칠 만이라도 집중해줬으면 하는 바람이 크다.
참고로, 인사이더몽키의 자료를 보니, AI 국가별 경쟁력 순위에서 미국이 1위, 중국이 2위, 이스라엘은 6위다. 우리나라는 그보다 한 단계 낮은 7위다.
*본 섬네일은 챗GPT에서 프롬프트를 활용해 그렸습니다.
seoulpol@wirelink.co.kr
뉴스콘텐츠는 저작권법 제7조 규정된 단서조항을 제외한 저작물로서 저작권법의 보호대상입니다. 본 기사를 개인블로그 및 홈페이지, 카페 등에 게재(링크)를 원하시는 분은 반드시 기사의 출처(로고)를 붙여주시기 바랍니다. 영리를 목적으로 하지 않더라도 출처 없이 본 기사를 재편집해 올린 해당 미디어에 대해서는 합법적인 절차(지적재산권법)에 따라 그 책임을 묻게 되며, 이에 따른 불이익은 책임지지 않습니다.
- 에디터김 관식 (seoulpol@wirelink.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