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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I/UX

[PEOPLE] 더 나은 디자이너가 되기 위해 지켜야 할 것

김성연 프로덕트 디자이너

<디지털 인사이트> 독자라면 한 번쯤 톡톡 튀는 노란색 섬네일에 시선을 뺏긴 경험이 있을 것이다. 센스 있는 섬네일에 흥미로운 글을 쓰는 김성연 디자이너는 글로벌 디지털 프로덕트를 만드는 픽소(PIXO)에 재직 중이다. 과거 그는 신선 식재료 브랜드 정육각에서 디자인팀을 리드하기도 했다. 이후 브런치에 디자인 윤리를 주제로 글을 연재하기 시작했고, 현재 2,000 명이 넘는 사람이 가입한 ‘인간을 위한 디자인’이라는 페이스북 그룹을 운영 중이다.

글 쓰는 디자이너, 참 매력적인 수식어다. 충만한 미적 감각과 그것을 글로 풀어내는 능력. 업무를 통해 얻은 인사이트를 기록하는 실무자가 늘면서 글 쓰는 디자이너도 눈에 띄게 늘었다. 브런치를 통해 그는 자기 자신을 브랜드화하는 데 성공했다. 이제는 노란 섬네일만 봐도 그가 생각날 정도니. 다양한 주제와 전문 지식을 토대로 한 글로 사람들에게 좋은 디자인이란 무엇인지 생각하는 환경을 만들어가는 그에게 묻고 답했다.

글. 김수진 에디터 soo@ditoday.com
사진. 김성연 디자이너 제공

한국 스타트업의 글로벌 디자이너


본인을 ‘한국 스타트업의 글로벌 디자이너’라고 소개하시잖아요. ‘한국 스타트업의 디자이너’와 어떤 차이가 있는지, 사용하는 언어나 업무 방식에서 다른 점이 있을까요?

국내 시장을 대상으로 일했던 경험과 비교해보면 크게 다른 점은 없어요. 다만 국내에서는 포커스 그룹 인터뷰를 통해 사용자와 직접 만나곤 하는데, 글로벌의 경우 사용자를 만나기가 어려운 환경 차이일 거예요. 그래서 앱스토어 리뷰를 꼼꼼히 읽는 편이에요. 사용자를 직접 만나지 못하지만 그들이 남긴 리뷰만으로 한 번씩 좋은 영감이 생기거든요. 회사에서는 외국 멤버가 있기 때문에 한국어와 영어를 함께 사용해요. 텍스트 커뮤니케이션할 때도 가급적 영어를 사용하려고 노력하고 있어요.  

지리적 한계와 관련해선 ‘UserTesting.com’이라는 웹사이트가 흥미로워요. 이 웹사이트는 조사하려는 목표에 맞는 질문을 설정한 후 그 요건에 충족하는 사용자를 모아요. 그렇게 하면 가설을 어느 정도 확인할 수 있거든요. 만약 미국을 타깃으로 한 서비스를 출시한다면 미국 국적의 사람들만 대상으로 설문을 진행할 수 있어요. 그렇게 하면 기존 페이지에 새로운 버튼을 추가했을 때 미래의 사용자에게 직접 피드백을 받아 그에 맞게 보완할 수 있는 거죠.

프로덕트(Product)는 일반적으로 ‘제품’을 의미하잖아요. 픽소에서의 프로덕트는 주로 앱을 의미하는데, ‘프로덕트 디자이너’의 프로덕트가 정확히 무엇을 지칭하나요?

프로덕트 디자이너의 ‘제품’은 주로 디지털 서비스를 지칭해요. 디지털 프로덕트에는 대표적으로 모바일 앱이 있는데 매일 사용하는 카카오톡, 토스, 배달의 민족 같은 서비스가 여기에 해당합니다. 웹 서비스나 차량 인터페이스처럼 컴퓨터와 사람이 인터랙션할 수 있는 수많은 디지털 접점이 여기 해당해요. 주로 프로젝트의 기획 단계부터 참여하고, 매출을 낼 수 있는 지점들을 고민하죠. 시각적인 작업을 아예 하지 않는 날이 많기도 해요.

구체적으로 프로덕트 디자이너는 어떤 일을 하는지, 예시가 될만한 프로젝트가 있을까요?

프로덕트 디자이너의 일은 크게 기획에 해당하는 ‘UX 설계’, 표면을 그리는 ‘UI 디자인’, 실제와 유사하게 동작하는 ‘프로토타입’ 제작으로 나눌 수 있어요. 최근에는 분야 간 경계가 허물어지는 추세라 앞서 말씀드린 세 가지 말고도 강점이 있다면 활용하는 분위기로 바뀌고 있어요. 예를 들어 브랜딩이나 UX 라이팅이 있어요. 제가 참여했던 프로젝트와 함께 자세히 설명드릴게요.

1) 베이비 스토리

픽소의 대표 앱 ‘베이비 스토리’는 엄마가 아기의 성장을 기록하는 것을 돕는 앱이에요. 원래 월 단위 결제 시스템만 있었는데, 아기가 성장하는 데 걸리는 시간을 고려해 연간 단위 구독이 있으면 앱 잔존율(리텐션)이 더 높아질 것이라는 가설이 있었어요. 결국 우측과 같은 형태로 디자인을 개선했고 결과는 성공적이었어요. UX 라이팅과 시각적 위계에 관한 고민을 깊게 했던 기억이 나네요.

2) 그라픽

사용자가 콘텐츠를 쉽게 제작하고 공유할 수 있도록 돕는 앱이에요. 곧 출시를 앞두고 있어 제가 <디지털 인사이트>에 제공한 이미지는 시안 중 일부예요. 그라픽은 시장 조사와 경쟁사 분석 등 초기 단계부터 참여해 많은 걸 배웠던 프로젝트기도 해요. 그라픽의 전반적인 UX 설계와 UI 디자인, 브랜딩에 참여했어요.

3) 정육각

2017년 6월부터 약 2년 동안 신선 식재료 브랜드 정육각 전반의 UI/UX와 브랜딩을 디렉팅했어요. 당시 식재료 산업은 육류를 떠올리는 붉은색과 한자 등을 활용한 브랜딩이 유행이었어요. 저는 정육각이 IT를 베이스로 하는 특징을 살려 모빌리티 산업에서 주로 사용하는 라인 기법을 이용해 비주얼 아이덴티티(Visual Identity)를 구축했어요. 빠르고 정확한 이미지를 통해 축산업을 단순히 온라인으로 옮긴 모습이 아닌 유통과정을 혁신하는 브랜드라는 핵심가치를 보여주고 싶었죠. 리브랜딩 이후 2017년 4월 기준 MAU(Monthly Activity User) 1,000 명, 연매출 5억 원이었던 브랜드가 2018년 8월 기준 MAU 4,000 명, 연매출 25억 원을 달성했어요. 그리고 2019년 ‘가장 현실적인 디자인 혁신 기업’에 뽑히기도 했어요.

생각하는 디자이너의 브런치


성연 님의 브런치는 많은 사람이 보고 있어요. 시선을 사로잡는 노란색 섬네일부터 다양한 주제를 다룬 글로 이뤄져 있는데요. 브런치는 어떻게 시작하게 되셨나요?

디자인 포트폴리오의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서였어요. 디자인 포트폴리오는 시각적 측면이 강해 디자이너의 고민이나 철학을 모두 담기에 부족하다는 생각이 들었죠. 결과물보다 디자인 과정에서 고민했던 지점들을 기록하고 싶었고, 그것을 효과적으로 전달하기 위해 글의 형식을 택했어요. 브런치에 글을 쓴 이후로 페이스북 디자이너 커뮤니티에 공유하기도 하면서 다양한 디자이너 분들과 생각을 교류할 수 있어 좋은 계기가 됐죠.

브런치에 꾸준히 그리고 자주 글을 올리시는데, 업무와 병행하는 노하우가 있나요?

사실 브런치에 글을 쓰기에는 시간이 턱없이 부족해요. 그래서 업무와 연관 지으려 노력하는 편이에요. 예를 들어 이번 업무가 UX 라이팅에 관한 것이라면 우선 다양한 기사를 찾고 레퍼런스를 읽어요. 그 과정에서 자연스레 체득한 지식을 바탕으로 브런치를 쓰죠. 일종의 작업 과정을 회고하는 셈이에요. 그렇게 하니 어느 정도 병행이 가능했던 것 같습니다.

왜 노란색을 선택했나요?

브런치에는 ‘추천하는 글’이라는 시스템이 있어요. 처음에는 사람들의 주목도를 높이기 위해 노란색으로 통일했는데, 자연스레 브랜딩 효과를 얻었죠. 이제는 노란 섬네일을 보면 제 글인 줄 아는 사람들도 생겼어요.

착한 디자인과 그렇지 못한 디자인


바야흐로 착한 브랜드에 돈을 쓰는 시대다. 친환경과 윤리적인 소비가 결합한 착한 소비 트렌드가 주목받고 있다. 디자인 업계는 어떨까. 마찬가지로 ‘착한 디자인’에 주목한다. 그렇다면 그렇지 못한 디자인은 무엇인가? 그전에, 나쁜 디자인이라는 게 실제로 있을까? 편의성을 향상시켰다는 결과를 얻은 디자인이더라도 윤리적이지 못한 면이 내재돼있다면, 그것을 나쁜 디자인이라고 말할 수 있는가? 옳고 그름을 함부로 말할 수 없는 디자인 윤리에 대해 김성연 디자이너의 주관적인 견해를 들었다.  

‘생각하는 디자이너를 위한 옐로북’부터 ‘팔리는 디자인을 디자인합니다’, ‘디자인 고민’까지. 제목들이 성연 님을 자연스럽게 디자인 윤리에 관한 고민을 하게끔 만들었다는 생각이 드는데요. 디자인 윤리를 깊게 생각하게 된 계기가 있으신가요? 

몇 년 전, 구글의 디자인 윤리학자였던 트리스탄 해리스의 TED 영상을 보게 된 것이 시초였어요. 그는 우리가 주로 사용하는 ‘무한 스크롤’이나 ‘당겨서 새로 고침’같은 인터페이스가 가진 중독성에 대해 설명했어요. 그 영상을 보고 굉장히 충격받았던 기억이 나요. 제가 사용하고, 디자인하기도 하는 인터페이스에 그런 속성이 있는 줄 몰랐던 거죠. 이후로 인터페이스를 대하는 태도가 달라졌어요. 디지털 프로덕트는 특성상 많은 사람에게 영향을 끼치기 때문에 신중할 필요를 느꼈죠. 그 이후로 실리콘 밸리를 중심으로 확산되는 디자인 윤리에 관한 글을 공부하게 됐어요. 그러다 커뮤니티까지 만들게 됐어요.

▲스펙트럼콘 2020 캡처 화면

최근 디자인 스펙트럼이 진행한 ‘스펙트럼콘 2020’에서 디자인 윤리의 정의에 대해 “내가 하는 디자인이 다른 사람에게 영향을 끼친다는 것을 의식해야 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이러한 행동이나 습관을 갖기 위해 갖춰야 할 것이 있다면 무엇일까요?     

현실적으로 어렵죠. 저도 잘 못 지키는 경우가 많아요. 다만 디자인을 하는 데 있어 완벽하게 중립적인 상태란 존재하지 않는다고 생각해요. 현실 속 디자인은 대부분 조직의 이익이나 특정 의견의 지지에서 출발하니까요. 이로 인해 피해를 받는 쪽이 생기기도 하고 이익을 보는 쪽이 생기기도 해요. 의도와 다르게 의아한 결과가 나오는 경우도 많죠. 그렇기 때문에 모든 면에 윤리적 잣대를 들이대는 것은 체력적으로도, 정신적으로도 소모가 큰 일이에요. 중요한 것은 실무에서의 유연함이라고 생각해요.

그래서 제가 추천하는 방법은 다음과 같아요. 지켜야 하는 10개의 가치를 모두 잃지 않으려 애쓰는 것보다 정말 잃고 싶지 않은 한두 가지를 지키기 위해 노력해보는 거예요. 또한, 윤리적인 부분에서 자신이 속한 조직과 맞지 않는다고 느낄 때는 조직의 딜레마에 대한 평가를 섣불리 내리지 않는 게 중요해요. 주변 사람들과 문제의식을 공유하고, 사람들의 신뢰를 점진적으로 얻어나가는 것이 멀리 봤을 때 더 나은 방법이라고 생각해요.

일반적인 사용자의 경우 비윤리적인 디자인의 가장 큰 피해자가 될 수밖에 없다고 생각하는데요. 그렇다면 사용자는 어떤 자세나 마음으로 디자인을 바라봐야 할까요?  

비윤리적인 디자인의 대표적인 예로는 ‘다크 넛지 패턴’이 있어요. 다크 넛지란 인간의 심리적 취약점을 악의적으로 이용하는 인터페이스를 말해요. 예를 들어 강렬한 색의 버튼에 크게 무료라고 쓰여있고 아래 작고 희미한 글씨로 과금 정책을 써놓는 경우가 속해요(Bait and Switch). 최초 가격으로 결제를 마치고 난 후에 가격이 큰 폭으로 차이가 나는 경우도 마찬가지예요(Hidden Costs). 탈퇴를 일부러 어렵게 꼬아놓은 경우도 있고요.

‘사용자를 생각하게 하지 마!’의 저자 스티브 크룩은 사용자가 웹이나 앱을 읽는 것이 아니라 ‘훑는다’고 표현해요. 웹 페이지는 정지된 책이 아니라 필요에 따라 언제든 링크될 수 있도록 만들어졌기 때문이죠. 웹 서핑 과정에서 사용자는 일종의 오토파일럿 모드가 돼 판단은 무의식에 맡기게 돼요. 그렇기 때문에 사용자에게 다크 넛지나 중독적인 인터페이스를 항상 경계하는 것이 좋다고 말할 순 있겠지만 이 부분은 제품을 설계하는 쪽, 즉 디자이너의 윤리 의식이 훨씬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렇다면 이익을 우선으로 생각하는 기업에 종사하는 디자이너로서 ‘이익을 추구하는 디자인’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이익을 추구하지 않는 기업은 생존이 어렵고 구성원을 지킬 수 없죠. 저는 자본주의 사회에서 기업이 이익을 추구하지 않는 일은 불가능하다고 생각해요. 다만 사람들이 점점 가치소비에 눈뜨기 시작했고, 덩달아 기업도 이윤을 추구해나가는 과정에서 ‘어떻게’에 관심을 갖는 과도기 단계라고 생각합니다.

기업이 악의적으로 이익을 벌어들이는 행위는 당연히 견제 받아야 한다고 생각해요. 만약 이런 부분에 대해 문제의식을 느낀다면 개인보다는 단체에 들어가는 것을 추천해요. 개개인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힘이 약해요. 앞서 디자이너는 대부분 중립적이지 않은 환경에서 디자인을 하게 된다고 말씀드렸어요. 때문에 자신이 처한 환경에서 이것만큼은 ‘양보 못해!’라고 생각하는 것이 있으면 좋을 것 같아요. 물론 그 가치는 보편타당하고 지킬만한 가치가 있어야 하겠죠. 그렇게 버티다 보면 주위에서 왜 저걸 가지고 저렇게 버틸까라고 궁금해하는 사람이 생길 것이고, 결국에 내가 붙들고 있는 가치가 주목받는 시점이 온다고 믿어요.

▲스펙트럼콘 2020 캡처 화면

디자이너의 사회적 책임에 대해서도 견해가 궁금해요. 성연 님은 어떤 책임의식을 갖고 디자이너의 소양을 다하시고 싶으신지, 궁극적으로 디자인을 통해 어떤 의미의 발전을 이루고 싶으신지 듣고 싶습니다. 

윤리적인 디자인을 적용할 수 있는 분야는 다양합니다. 그중 제가 일하는 테크 분야에 관해 말씀드릴게요. 테크 분야는 빠르게 성장 중이지만 그 이면에는 많은 윤리적 문제점이 생기고 있어요. 예를 들어 소셜미디어의 인터페이스는 중독적이에요. 이 앱은 아동 심리 전문가들이 만든 것이 아니라 영리한 설계자들에 의해 만들어졌어요. 해마다 아이들이 소셜미디어를 처음 접하는 시점은 어려지고 있어요.

넷플릭스 다큐멘터리 ‘소셜 딜레마’에는 소셜미디어가 탄생한 시점과 미국 10대의 자살률 상승을 비교하는 그래프가 나와요. 최근 제가 운영하는 그룹에서는 ‘스냅챗’의 뷰티 필터에 비친 자기 사진을 갖고 성형외과로 가는 10대들이 사회문제가 된 기사가 포스팅돼 논쟁이 벌어지기도 했어요. 이처럼 기술과 관련 있는 문제점은 더 많이 생겨날 것이고 인터페이스를 만드는 디자이너들의 책임감은 더 무거워질 수밖에 없어요. 저의 책임의식은 ‘인간을 위한 디자인’이라는 그룹을 통해 논의할 수 있는 분위기를 만들어가는 것이에요. 한국에서도 생산적인 담론과 실천이 많아지는데 기여할 수 있으면 좋겠네요.

성연 님의 롤 모델이 궁금해요. 그리고 가장 좋아하는 이론이 있으신지 궁금합니다.

디터 람스를 가장 좋아해요. 그가 디자인한 브라운 제품은 애플 디자인의 철학적 원천이기도 하죠. 디지털 인사이트에도 기고했던 적이 있는데, 디자인에 관한 10계명(<디지털 인사이트> 2020년 12월 호 120~123p) 중 여섯 번째 원칙을 제일 좋아해요. ‘좋은 디자인은 정직하다’. 저는 디터 람스가 과시적인 디자인으로 헛된 약속을 하지 않는 디자이너라고 생각해요. 이 부분을 진심으로 배우고 싶어요. 그의 디자인에는 순수함이 주는 숭고한 가치가 있거든요.

<디지털 인사이트> 독자들에게 디자이너로서 꼭 챙겨야 할 것이 있다면 말씀해주세요.

최근 들어 디자이너의 사회적 책임감이 중요해지기 시작하는 시점인 것 같아요. 우선 무언가를 실천하기 전에 주제에 대해 활발하게 토론할 수 있는 환경을 마련했으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거창한 것들을 이뤄내기 위해 힘을 쏟는 것보다는 비슷한 생각을 하는 사람들을 찾아 적당한 발걸음을 유지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모두 지치지 말고 재미있게 디자인하면 좋겠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