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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공간이 주는 삶은 무엇일까, 그걸 알아야 허무가 없어요”

‘당연함에 대한 당연한 고민’ 김사라 다이아거날 써츠 소장 인터뷰

성과, 지표, 노하우. 우리가 주목하는 것들입니다. 그러나 귀를 기울여야 할 게 정말 이 뿐일까요? 어떤 태도로 나의 업(業)을 대하고, 어떤 관점으로 살아가야 할지… 전문가의 삶에서 발견할 수 있는 건 이 같은 ‘방향에 대한 실마리’이기도 합니다. 사람-in은 그들의 생각과 태도, 이야기에 집중합니다.



대흥역 인근 사무실에서 만난 김사라 소장. 2015년 개소 이후 건축, 전시 등 다양하고 왕성한 활동을 이어오고 있다(사진=디지털 인사이트)

‘건축’은 ‘구축(構築)’이라는 오해. 경의선 숲길이 보이는 사무실에서 커피를 내리며 김사라 소장이 건넨 말이다. 산업 디자인으로 시작했지만 대량 생산과는 결이 맞지 않아 미국 유학길에 올랐다. 뉴욕에서 건축가로 일하다 한국에 돌아오니 ‘아파트’가 제일 먼저 보였더랜다. 다분히 대량 생산적 건축이었고, 제품을 줄 세우는 구축이었다.    

“구축을 기반해 효율성을 극대화한 무언가를 제공하는 것. 우리사회에서 건축이란 그랬어요. 불과 15년 전까지만 해도 한국의 건축은 ‘공학’일 따름이었죠.”

언젠가 TV에서 본 서울의 무수한 아파트에 놀라는 외국인들의 얼굴이 떠오른다. 건축의 사전적 정의는 ‘건물을 세우는 일’인데, 단순히 구축에 그치지 않는다면 김 소장에게 건축은 뭘까. 그가 낯선 사회에 나가 접한 건 뭘까.

“건축으로 명명한 걸 배우지 않았어요. 공간과 사람에 대해 탐구했죠. 한국에 돌아와 개소 전 마지막 실무도 사람과 건축에 대해 공부하는 시간이었어요.”

김 소장이 언급한 건 조병수 건축가와 함께한 시간이다. ‘땅의 건축가’로 불리는 조 건축가는 경험적 건축의 명사(名詞)와 같은 인물이다. 그런 조 건축가와 김 소장은 대표와 직원인 동시에 스승과 제자였다. 요즘 귀해진 ‘도제 방식’의 수련이다. 사람과 건축. 김 소장이 내내 연마한 건 관계성이다. 물질이 아닌 개념적 목적을 어떻게 구현할 수 있을까? “당연한 걸 당연하게 고민하는 게 시작”이라는 답이 돌아온다.

고민을 고민하고, 답을 찾아가는 것. 그게 김 소장의 건축이다. 사무실에는 그런 고민의 흔적이 조각처럼 은유적으로 부양한다(사진=디지털 인사이트)

무엇을, 왜 고민해야 하는지 그리고 어떻게 답을 찾아야 하는지. 그게 김 소장이 터득한 건축이다. 그에게 건축이란 건물이라는 물질의 구축이 아닌, 공간으로 삶의 형태를 직조하는 행위다.

건축, 공간에 대한 고민을 구현하는 업

2015년 ‘다이아거날 써츠(Diagonal-Thoughts)’ 개소 후 10년이 지났다. 건축사무소의 소장으로 꽤 오래 살았다. “소장으로서의 삶은 대화의 연속이다”라고 말한다.

“이해할 수 있는 만큼 이해하는 것. 그게 대화죠. 오는 길에 하늘을 봤나요? 정말 파랬어요. 하지만 우리 두 사람이 느끼고 생각하는 파랑은 다르겠죠. 건축은 그 이해의 간극을 좁히는 것에서 시작돼요.”

간극에는 클라이언트의 ‘원한다’는 생각도 포함된다. 건축가의 대화는 그들 스스로 무엇을 원하는지를 발견하기 위한 행위다.

클라이언트가 진정 무엇을 원하는지. 그 실마리를 찾아내는 것에서 건축은 시작된다고 김 소장은 말한다(사진=디지털 인사이트)

“클라이언트가 빨간 방을 원한다고 말해요. 그럼 정말 빨간 방을 원하는 건지 알아야 해요. 정말 물리적인 빨간 방을 원하는 걸 수도, 언젠가 빨간 방에서 경험했던 느낌을 구체화하고 싶은 걸 수도 있어요.”

스스로도 무엇을 원하는지 모를 수도 있다는 의미일까. 그렇다고 한다. 건축은 건물을 받는다. 보통 상상은 그 단에 그친다. 건물은 공간을, 공간은 삶을 결정한다. 사무실을 짓고자 하면서 사무실이라는 공간이 만드는 삶의 형태에 대해서는 간과하기 쉽다. 건축가는 그런 삶의 형태를 발굴한다.

“건축은 클라이언트의 자본을 바탕으로 시작돼요. 공간에 대한 요구는 클라이언트의 권리죠. 건축과 공간의 구현을 통해 내가 어떤 삶을 살고 싶은가에 대해 적극적으로 요청해야, 건축가에게 제대로 된 서비스를 제공 받을 수 있어요. 용적률 법규대로, 그런 건 이제 AI에게 맡겨도 잘 해요.”

건축에도 유행이 있다. 쫓지는 않는다

우리는 왜 공간과 삶에 대해 사고하지 못할까. 김 소장은 사람들이 아파트 평면에 너무 길들여져 있다고 말한다. 문화적 풍요 이전에 찾아온 물질적 풍요를 꼬집는다. 빠르게 발전해 사회의 뼈대는 높아졌는데, 충분히 두꺼워지지는 못했다. 건물은 단지 매매와 재산의 수단. 어떤 형태의 아파트에 살게 될지, 이 공간이 나에게 어떤 삶을 야기할지 고민하기보다 얼마나 가격이 껑충 뛸까 생각한다.

“그래서 건축에도 유행이 있죠. 선구자가 있다면 그 말이 정답으로 맹신되기 쉬운 사회에요. 어디서 어떤 유형의 건물이 잘 됐다 소문나면 비슷한 건물이 서둘러 지어지죠.”

A 브랜드가 복합 공간으로 재미를 봤더니 어느 날 옆 동네에 B 브랜드가 비슷한 공간을 얹는 게 생각난다. 이런 행태에는 원함에 대한 고민이 옅다. 왜 우리가 건축을 의뢰하면서도 공간에 대한 욕망을 해설하지 못하는지 이해된다. 그렇다면 선구자의 정답을 따르지 않아도 될까?

“미국에서 좋았던 게 뭔지 아세요? 오징어, 꼴뚜기, 망둥어 다 있다는 거예요. 내가 누구인가를 드러내는 게 두렵지가 않아요. 드러내지 못하면 그게 존재감을 옅게 하지 않을까요? 사람도 그런데 브랜드라고 다르지 않겠죠. 따라갈 정답이 아니라 나에 대한 정답도 중요하지 않을까 싶어요.”

실패에 대한 두려움 때문이 아닐까. A 브랜드가 잘 됐다는 방식이 성공의 교본이 될 수도 있으니까.

“기업이 실패할 생각을 하면 안 되죠. 그래도 실패할 기회는 주어져야 마땅할 것 같은데. 실패한다고 기회와 비용, 시간이 아까운 건 아니에요.”

실패에서 뭘 얻을 수 있을까. 교훈일까?

새로운 시도가 두렵지 않다는 김 소장. 사무실 한 편에는 가득한 도전과 시도의 흔적이 있었다. 이날 그는 현재 준비 중인 작업물 여럿을 소개해줬다(사진=디지털 인사이트)

“시행착오가 있어야 ‘발견’을 할 수 있어요. 우리가 가장 잘 하는 게 그런 거예요. 새로운 시도가 두렵지 않고 즐거워요.” 김 소장은 이 말을 할 때 웃었다.

유행을 쫓는 걸 크게 공감하지 않아 보였다. 명확한 이유가 더 중요하기 때문이다. 건축에 대한 ‘개념적 사유와 근거’가 충분해야 한다. 그래서 김 소장은 유행을 크게 신경 쓰지 않는다. 배관이 보이게 시공된 천장, 노출 콘크리트가 떠오른다. 그게 멋지다고 생각하지 않게 됐다. 안도 다다오는 멋졌는데.

공간은 경험. 그래서 고민한다

직원들과도 이야기를 많이 하나?

“사무소에서 직원들이랑 이야기하다가 밤 새서 도면 그리고 그래요.

클라이언트도, 스스로도 우리가 이걸 왜 하나, 그런 고민에 빠지지 않기 위해서라고 한다.

“이 공간을 통해 전달될 무형의 가치는 무엇인지 분명히 알아야 허무가 없어요. 허무하면 지을 수가 없으니까요. 지을 수가 없으니, 도면도 그릴 수가 없죠.”

공간은 경험이다. 경험은 하나 같은 게 없다. 그래서 김 소장은 매번 처음부터, 새롭게 일한다. 괴롭지 않냐고 묻자 “괴로운 동시에 즐거운 고민”이라고 말한다. 클라이언트의 말과 정말 원하는 것 사이의 간극을 탐구하고 좁혀간다. 김 소장은 그 표현이 ‘오버 디자인’이 되는 걸 경계한다. 이미 현대인은 과잉 시대에 너무 피로한 상태니까. 클라이언트도 현대인이다. 무엇을 단순하게 완성해 건네줄 수 있을까. 그런 고민을 건축적으로 풀어낸다는 건 뭘까?

최근 전시를 위해 제작한 목업. 1인 가구의 삶을 주제로 공간에 의도와 자유를 담았다. 창의 위치 또한 빛을 따라 움직이는 사람의 특징을 반영한 결과다(사진=디지털 인사이트)

다양한 답이 나온다. 재료의 사용, 구조의 형식, 재료와 재료가 만나는 디테일… 방법은 많다. 김 소장의 고민은 세밀하고 치열하다. 각진 모서리를 돌아 방에 가는 사람과 둥근 모서리를 거치는 사람의 경험은 다르다. 그런 작은 변화가 인식의 변화로 이어진다. 다이아거널 써츠의 고민과 탐구는 그렇다.

작업실에도 치열한 고민의 흔적이 즐비하다. 김 소장이 보여줄 게 있다며 사라진다. 돌아온 그의 손에 작은 건축 모형이 있다. “공간 자체가 경험이 될 수 있는 공간을 설계하고 싶다”는 온양 민속 박물관이 클라이언트다.

“건물은 지어진 순간부터 노후화가 시작돼요. 풍화를 겪으며 사람처럼 늙어가죠. 건물의 재료가 변화하는 과정을 통해 경험과 메시지를 줄 수 있다고 생각했어요. 10년 뒤에 제가 원하는 대로 건물이 변화할 걸 생각하고 설계하고 있어요.”

이 작은 오두막은 ‘전시가 없어도 전시가 되는 공간’인 셈이다. 공간 자체가 경험이 됐으면 좋겠다는 클라이언트의 요청이 실현되는 고민의 시각적 흔적이다.

고민도 매번 처음부터. 같은 프로젝트는 없는 거니까

사람들이 고민의 가치에 공감할 수 있을까. 그렇다고 답한다. 공간 경험의 가치가 나날이 주목되고 있다. 기업도 고민하기 시작했다.

“인식이 바뀌고 있어요. 로고, 제품 경험이 브랜딩의 전부라고 믿었다면, 이제 기업은 상품을 판매하는 공간에서 시작해 브랜드의 무형적·유형적 공간의 가치에 대해 생각해보고 있어요. 사회의 발전, 건축 교육의 발전 때문일 수도 있고요. 건축에 대한 사회적 인식과 소비자의 인식이 변화하고 있다고 할까요.”

공간 경험을 강조하는 플래그십 스토어들이 여럿 떠오른다. 인식의 발전인 동시에 짐짓 이 또한 유행은 아닌지 기우도 생긴다.

“유행이 나쁘다고 생각하지는 않아요. 뭐랄까요. 그건 계속 존재하는 것 같아요. 주도하려고 애쓰지도, 따라가려고 애쓰지도 않아도 되지 않을까. 그런 생각이에요. 끌어가는 게 맞는 브랜드가 있을 거고, 그게 맞지 않는 브랜드도 있을 테니까요. 60만원짜리 향수를 사는 사람과 13만원짜리 향수를 사는 사람은 다를텐데. 13만원짜리 향수를 구매하는 사람은 선두이기 보다는 검증된 걸 원하는 사람일 수도 있지 않을까요? 그게 브랜드에 투영될 수 있는 거니까.”

주도할 수 없는 사람들은 하지 않아도 된다는 말일까.

“유행은 한시적인 거니까요. 끝이 있기 마련이죠. 유니클로를 봐요. 아무도 유니클로를 유행이라고 하지 않지만, 많은 사람들이 입잖아요. 그건 의미가 있는 것 같은데. 결국 기본에 대한 고민으로 돌아오는 게 아닐까요. 우리가 뭘 원하는지 분명하게 알아야 한다는 사실. 그게 공간에 대한 이야기라면 저랑 같이 고민하면 되는 거고요.”

하라 켄야의 <Ex-formation>. 김 소장은 하라 켄야의 단어에 착안해 안다는 것을 지나치게 쉽게 생각하는 태도를 경계해야 한다고 전한다(자료=hara.ndc)

기본으로 돌아온다. 김 소장은 건축을 대하는 자신의 관념이, 작업하는 방식이 그렇다고 말한다.

“새롭게 시작할 때마다 처음부터 고민해요. 당연한 거 다시 물어보고, 당연한 거 다시 생각하고. 클라이언트, 브랜드, 건물… 다 달라요. 시작하면 고민하는 거죠. 하라 켄야가 책에서 ‘엑스포메이션(Ex-fomation)’이라는 단어를 썼어요. 제가 가르치는 학생들에게도 많이 읽어보라고 하는데, 우리가 대화의 주제에서 뭘 모르는지에 대해 집중해야 한다는 거예요. 우리가 너무 쉽게 안다고 한다는 거죠. 사고가 날카로워질 때까지 다듬어야 하는 거예요. 내가 무엇을 놓치고 있을까. 뭉툭하게 생각하는 건 뭘까. 빨간 방은 정말 빨간 방인가. 그런 거.”

대표작은 없다. 나는 그런 건축가다

골자는 돌고 돌아 ‘당연한 걸 당연하게 물어보고 고민하는’ 행태로 회귀한다. 김 소장은 고민이 제일 어렵고 오래 걸리는 일이라고 한다. 대화하고, 고민하고, 생각이 정립되면 쌓아 올리는 과정 자체는 간결하다. 고민할 게 없다. 내가 이걸 왜 하는지 묻지 않아도 된다.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책상이 북적하다. 펼쳐진 도록이 몇 권, 작업한 모형도 여럿 올려져 있다.

“동료들이 작업실을 ‘연구소’라고 놀려요. 리서치도 하고, 전시도 해요. 지금도 직원들 다 현장에 나가 있어서 저 혼자 있는 거예요. 다양하게 활동 하니까 상업과 비상업의 경계에 대해 묻기도 해요. 그런데 뭐, 다 상업이죠. 상업 자본에 근거한 거니까. 건축이라는 업이 가진 뉘앙스, 남들은 고민하지 않아도 저는 고민하는 지점이 있으니까 비상업적인 이미지로 비춰지는 거 같기도 하고. 제가 고집스러운 부분도 있죠.”

그런 질문이 불편하지는 않은지 물으니 그렇지 않다고 답한다.

“상업과 비상업을 구분 지을 수 있는 업이 아닌 것 같기도 해요. 이 작업들의 이면에는 늘 투입되는 자본과 그 자본과의 사투가 있으니까. 무언가를 구축하기 위해 필요한 이야기들인 거죠.”

건축가란 어떤 사람인 걸까. 김 소장의 말대로 예술적, 비상업적이라는 생각도 편견일 수 있겠다. 적어도 그 경계에 대해 고민하는 사람은 아니다.

“건축가. 그건 인류의 공간적 경험을 계속해서 발견해주는 사람인 것 같아요. 윈스턴 처칠이 ‘우리는 우리의 건물을 만들고, 그 후에 건물은 우리를 만든다(We shape our buildings, and afterwards our buildings shape us)’고 말했어요. 좋아하는 말인데, 그만큼 어떤 환경에 있는지가 중요하다는 거죠. 그래서 생각하는 일도, 만드는 일도 굉장히 치밀하게 해요. 소비자가 건축가의 작은 의도를 고민할 일은 없겠죠. 모서리가 왜 둥근지, 그런 건. 하지만 그런 디테일이 주는 작은 경험의 변화. 그리고 그 변화가 야기하는 인식의 변화는 공간에 대한 경험에 영향을 준다고 생각해요.”

이사가 잦았던 어린 시절 탓에 인간이 환경에 얼마나 큰 영향을 받는지 단단하게 믿는다는 김 소장. 기업과 브랜드가 공간과 건축을 어떤 의미로 생각하길 바라냐고 물었다.

저는 성실한 인터뷰이는 아니네요. 그 질문에 쉽게 대답할 수 없네요.”

기업, 브랜드 모두 클라이언트다. 건축은 ‘서비스업’이다. 그들에게는 그들의 욕망이 있고, 그욕망을 건축가가 어떤 방향으로든 의도해 조립하지 않겠다는 선언이다. 저마다 다른 욕망을 현실에 가장 원했던 그대로의 형태로 구현하는 게 건축가란 직업이니까.

그렇다면 김사라는 예술가가 아니라 단호히 건축가인가?

김사라. 그는 건축가다. 어떤 건축가인가 하면, 당연한 걸 당연하게 고민하는 그런 건축가다(사진=디지털 인사이트)

“김사라는 건축가입니다. 건축가라고 불리는 게 좋아요. 다양한 건축가가 있으니까, 이렇게 당연한 걸 당연하게 고민하는 건축가도 있는 거죠.”

바람을 묻자 건축을 통해 사람들의 인식의 변화를 이끌어낼 수 있는 건축가로 기억되고 싶다고 말한다. 무언가란 어떤 목표나 주제인 걸까. 그는 계속 작업을 이어가며 찾아가야 될 것 같다고 말한다. 개소만 10년차가 된 베테랑이지만 아직도 “대표작은 없다”고 말한다. 무엇 하나 스스로 규정해 닫아버리지 않고, 자신의 세계를 열고, 계속해서 더 보여주고 생각하게 하고 싶은 그런 사람. 김사라는 그런 세계를 가진 건축가다.

  • 에디터이민호 (treewords@ditoday.com)
  • 섬네일강다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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