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appy Rebirthday to You! 두 번째 인생 메신저 이야기
오종현 DDB코리아 디지털 미디어 플래너의 두 번째 인생!
안녕하세요, 월간 Di 독자분들께 본인 소개를 부탁드립니다.
누군가에게 저를 소개할 때 제 인생은 뇌종양 이전과 이후로 나뉜다고 얘기하는데요. 2014년 8월 뇌종양 이후 삶이 180도에 360도를 더한 540도로 완전히 바뀌었고 저 스스로를 세상의 중심에 두면서 살고자하는 오종현이라고 합니다.
지금은 대학교 교수이면서 대학원 학생이고, 디지털 미디어 플래너이면서 개인사업자 대표이자 자칭 ‘두 번째 인생 메신저’로 개인 브랜딩 하고 있습니다. 고등학교 때 화학이 좋아서 제2의 맥가이버 꿈을 안고 화학과에 진학했으나 어려움을 겪었고, 대학 졸업 이후 진로 고민하다가 2002년 루블에서 디지털 광고(당시는 인터넷광고)를 시작해 디트라이브, 리앤디디비, 비비디오코리아, 이노션월드와이드를 거쳤습니다. 디지털
광고 경력을 따져보니 어느새 18년 정도 됐네요.
처음에 어떻게 쓰러지게 되셨는지 여쭤봐도 될까요?
이노션은 광고인이라면 누구나 가고 싶어 하는 회사 중 하나잖아요. 비전공자로서 처음 입사했을 때는 스스로 뭔가 움츠림이 있었던 것 같습니다.
일반적으로 광고인이라 하면 말도 잘 하고, 쇼맨십이나 리더십도 있어야 하는데, 상대적으로 저는 그런 성격도 아니었고요. 그래서 이노션 생명연장을 위해 대학원 진학을 결심하고 2014년 연세대 정보대학원에 진학했습니다. 정보대학원은 2학점짜리 해외 대학 연수 과정이 있었는데, 그해 여름 미국 LA에 있는 USC 대학교에서 수업 도중에 쓰러졌습니다. 의식이 돌아온건 급하게 병원으로 달리고 있던 앰뷸런스 안이었죠.
지금 생각해보면 정말 운이 좋았던 것 같아요. 안전교육을 위해 강의실 내부에서 대기하고 있던 미국 경찰 덕분에 빠르게 대처할 수 있었으니까요. 물론 전 기억이 없지만. 미국 병원에서 MRI 검사 결과 뇌종양 의심 판정을 받았고 곧바로 한국으로 돌아와 세브란스 병원에서 9시간동안 수술을 받게 됐습니다. 다행히 종양은 90% 제거됐고, 총 28번의 방사전 치료까지 마쳤어요. 당시가 만으로 서른아홉, 마흔 때였네요.
당시에 얼마나 놀라셨을지 상상도 못하겠네요.
평상시에 건강하다고 자부하며 살던 사람이었어요. 사내 헬스장에서 운동하는 것도 나름 좋아했고, 연말 정산할 때 의료비 청구 내역이 하나도 없었거든요. 돌이켜보면 건강에 대한 자만심이 있었던 것 같아요. 수술 이후에는 그 때를 잊지 않기 위해 늘 짧은 머리를 하고 있습니다. 왼쪽에 수술자국 보이시죠? 원래 군대도 알고 가면 더 힘든 법이잖아요. 그래서 수술 전에는 뇌종양이 무엇인지, 수술은 어떻게 하는지 등의 정보를 일부러 안 찾아봤었죠. 대신 아내가 각종 암카페, 구글링을 통해 정보를 찾아보며 거의 석사 수준까지 됐지만요. 어쨌거나 수술 이후에는 암이라는 게 평생 같이 가야 할 친구라고 생각하며 스스로 잘 조정하면서 지내고 있습니다.
수술 이후 복직하셨던 것으로 아는데, 퇴사는 언제 하셨나요?
수술 후 6개월만에 병가를 마치고 이노션에 복직했는데, 출근 첫날 물론 전 사원을 모두 본 것은 아니지만 왠지 700여 명 넘는 임직원 중에서 신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나 제가 제일 건강한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왜, 광고인들의 공통된 톤 앤 매너 있잖아요? 뭔가 피곤에 찌들어 있는 듯한. 저도 다시 복직하고 캠페인을 하나 맡았는데, 3개월 만에 6kg이 빠졌죠. 더 이상 하면 안 되겠다는 싶어 퇴사를 고민했고 복직 다음해에 퇴사했습니다.
퇴사를 고민하고 있을 때 주변 반응은 두 가지였죠. 아이가 셋에 외벌이인데 미쳤다는 부류와 그만둘 수 있는 용기를 응원한다는 부류. 물론 후자는 어머니와 아내였고요.
생활적으로 달라진 점이 있다면 무엇인가요?
가장 크게는 생활 공간이 바뀌었는데요, 아파트에 살다 광교 근처에 땅을 사서 단독주택을 지었죠. 처음 6개월은 펜션에 놀러 온 것처럼 내 집 같지 않고 실감이 잘 안 났는데, 지금은 내 집만큼 편한 공간도 없어요. 집 앞 놀이터에서 아이들이 노는 모습을 보며 이사하길 잘 했다고 생각했습니다. 예전에는 아파트에 홀로 사시는 어머니께 마치 연간 제안처럼 함께 살자고 말씀드릴 때마다 단칼에 거절하셨거든요. 그런데 수술하고 어머니가 먼저 말씀하셨어요. 지금 살고 있는 아파트 정리하고 같이 살자고. 참 고맙고 감사했죠. 저희집 이름이 ‘따로가치’ 인데, 어머니, 부부, 아이셋 3대 6인이 사는 집으로 6명 ‘따로’ 지낼수도 있고 같이(가치) 지낼수도 있다는 뜻입니다. TV에도 2번 나왔어요.
정말 여러가지 결심을 하셨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러면 퇴사 이후에는 어떤 일들을 하셨을지도 궁금해지는데요.
40대 초반에 퇴사를 한 만큼 제 삶을 궁금해하는 사람들이 많아요. 아직 회사에 다니려면 다닐수있는 나이자잖요. 오종현이 잘 되면 나도 퇴사하고, 아니다 싶으면 계속 회사나 다니겠다는 친구도 많죠. 퇴사 후에 캐릭터 마케팅, 의류 브랜드 SNS 운영 등 여러 가지 일을 동시에 했는데, 어느 순간 ‘아, 이러다가 이도 저도 안 될 수 있겠다’ 싶었죠.
2017년에는 에어비앤비 호스트도 하게됐어요. 집 설계 당시 듀플렉스로 지어서 한집은 우리 가족이 살고 다른 집은 전세주기로 했는데 입주 10일 전에 예비 세입자가 계약을 파기했거든요. 다음 세입자가 들어오기 전까지 9개월 정도 했던 것 같습니다. 이전부터 가족들과 LG트윈스 원정 응원을 다닐 때 에어비앤비 게스트 경험이 있었는데, 역시 플랫폼 시대에는 판매자가 될 수도, 이용자가 될 수도 있음을 몸소 체험했죠. 또 이후에는 제 지인이 부탁하셔서 에어비앤비 운영 대행도 하게 됐고요. 지금은 월요일에 한국영상대학교, 화요일에 계원예술대학교 겸임교수로 강의하고, 수요일부터 금요일까지 DDB 코리아에서 근무하고 있습니다.
학교에서 강의를 하는 동시에 실무에서 전문직 생활도 하시고 나아가 에어비앤비 호스트까지, 참 다양한 일을 하고 계시네요.
예능 프로그램 ‘삼시 세끼’의 나영석 PD가 이런 얘기를 한 적이 있어요. 밥을 짓고 고기를 잡는 노동은 ‘나를 위한 노동’이라고. 나를 위한 노동이라는 말에 마음이 확 쏠렸던 것 같아요. 이노션이라는 좋은 회사에서 일을 하는 것이 자부심을 줄 때도 있었지만, 사실 그건 회사를 위한 노동이었죠. 물론 월급은 받았지만 클라이언트도 내가 선택할 수 없었고 말이죠. 그래서 지금 학교에서 하는 강의와 DDB 코리아에 출근해서 하는 일이 내가 선택한 일이 맞는지, 진정 나를 위한 노동인지를 끊임없이 스스로 검증하고 있습니다. 사실 저처럼 살기 쉽지 않은데 주변분들 덕분에 지금까지 매우 만족하고 있습니다.
나를 위한 노동이라는 말이 새삼 새롭게 느껴집니다. 그러면 주변 지인분들은 새로운 생활을 어떻게 바라 보고 계시나요?
사실 저처럼 퇴사를 고민했더라도 실제 실행으로 옮긴 사람은 없는 것 같습니다. 아직까지는 그저 예의주시하고 있는 것 같아요. 쓰러지기 9개월 전 이노션 재직 당시, 국장님이 똑같이 쓰러지셔서 수술을 하셨는데, “아이고, 어떻게 하지?”라고 저 역시 말했지만 똑같이 일했거든요. 2014년도 8월에 쓰러지고는 더 이상 광고 회사에서 제2의 오종현이 나오면 안 된다는 흡사 사명감으로 주변 사람들에게 ‘그렇게 살지 마, 금방 탈나.’라며 암과 건강에 대해 이것저것 말했어요. 그런데 어느 순간 깨달았죠. ‘사람은 쉽게 변하지 않는구나!’라는 사실을요. 저 역시도 그랬고. 그런데 브런치나 암 환자 커뮤니티에 저 잘 살고 있다는 글 하나만 올려도 사람들의 반응이 아주 뜨거워요. 얼굴도 모르는 사람들로부터 응원과 위로의 반응을 얻으며, 내가 잘 사는 게 우리 가족 잘 사는 것 만큼이나 암 환자들에게는 힘이 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앞으로도 더욱 잘 살아야겠다 생각하고 있고요.
미디어 플래너를 시작하셨던 당시와 현재의 차이점이 있다면 무엇인가요?
미디어 플래닝이 점점 힘들어지고 있다지만 반대로 생각해보면 그만큼 재미있는 분야이기도 합니다. 예전에는 TV 광고만 잘 만들면 되는 시절이 있었습니다. TV에 광고가 나올 정도의 기업이면 좋은 기업이라는 인식이 있었던 시절이죠.
제가 일을 시작했던 2002년 당시, 인터넷 광고라 하면 약간은 소외를 받았습니다. 대부분의 인터넷 광고 활용도가 TV CF를 잘 바이럴 하는 수준에 그치기도 했고요. 사실 매체 플래너로서 18년 경력의 3분의 2는 PC 기반의 경험이었는데, 모바일로 전환된지도 이미 오래입니다. 그럼에도 디지털 광고의 장점은 여전히 타깃팅이 가능하다는 것이겠죠. 타깃팅의 조건이 다양하고, 플래너들도 많이 있다 보니 저 역시 공부를 해야겠다는 의지가 많이 생깁니다.
예전에는 대형 종합광고대행사는 백화점처럼 없는 것이 없는 클라이언트를 위한 풀 서비스 제공, 디지털 독립 대행사는 아웃도어 전문점같은 해당 분야에서 전문적인 서비스를 제공한다고 비유를 많이 했었는데요 요즘은 춘추전국시대로, 다양한 디지털 플레이어들이 혼재 돼있습니다. 이제 실제로 해보지 않으면 예측하기가 점점 힘들거든요. 저는 이 시기에 테스트와 검증을 반복하며 애자일스럽게 사는 것이 맞다고 생각합니다.
조금 더 광고에 대한 질문을 드려볼게요. 그동안 담당하셨던 광고 캠페인 중에 가장 기억나는 사례를 소개해주세요.
전 광고제 수상 경력은 없지만 유명 광고제 수상 프로젝트는 규모가 크고 개인 역량 반영이 쉽지 않은 경향이 있어요. 개인적으로는 이노션 재직 당시 진행한 기아자동차 ‘아임레이어(I’m layer)’ 캠페인이 기억에 남습니다. 레이가 신차가 아닌 만큼, 유지 캠페인으로 진행됐는데 실제 레이 차주를 선정해서 다양한 테마별 컬러로 데칼했고, 당시 카카오톡에 비해 인지도 낮았던 라인 메신저와 제휴를 맺어 네이버 자체 이벤트를 진행하는 등 한정된 예산 대비 효율이 아주 크게 올랐던 기억이 있습니다. 그때 함께 일했던 협력업체 실장님과 인연이 연결되어
현재 계원예대에서 강의도 하고 있고요. 그야말로 연결시대에 살고 있음을 몸소 체험했답니다.
디지털 광고 분야는 굉장히 빠르게 변화하는 만큼 트렌드를 따라가는 일도 쉽지 않을 것 같은데요, 최근 디지털 광고에서 가장 중심적인 화두는 무엇인가요?
디지털 안에도 굉장히 여러 분야가 있고, 하나 따라가기도 벅찰 때가 많죠. 어쨌거나 작년 하반기 다르고, 올해 상반기 다를 만큼 성장하고 있는 유튜브가 대세인 것 같습니다. DDB에서의 업무도 3분의 2는 기업 동영상 콘텐츠를 매체 플래닝 하는 게 대부분이니까요. 지난 3월 초에 다녀온 Think with google 세미나에서는 ‘Personal Prime Time’이라는 키워드가 등장하기도 했습니다. 프라임 타임은 TV 광고 시절 시청률이 높은 프로그램에 붙는 광고 시간대를 말하는데 유튜브는 전혀 다른 맥락입니다. 내가 원하는 영상을 찾아보고, 또 그건 개인의 취향이죠. 즉, 사람마다 관심사가 다르고 그렇기에 각자의 프라임 타임이 존재한다는 것입니다. 어떻게 보면 플랫폼 사업자들의 양날의 검인 것 같기도 한데 내가 좋아하는 콘텐츠, 관심 있는 콘텐츠로만 둘러싸일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 말은 나의 관심사가 아닌 다른 콘텐츠를 접할 기회가 제한적이라는 것과 같고요.
앞으로 더 해보고 싶은 일이 있다면 무엇인가요?
저처럼 사는 사람을 ‘자발적 슬래시(/) 직업 주의자’라고 합니다. 개인적으로 제가 명함을 만든다면 ‘디지털 미디어 플래너/겸임교수/에어비앤비 호스트’ 등으로 쓸 테니까요. 슬래시가 많아진다는 건 그만큼 일을 통해 내가 하고 싶은 것을 하고 있다는 뜻일 겁니다. 시대가 점점 그렇게 변해가고 있는 것 같기도 하고요. 그래서 앞으로 슬래시를 더 늘리면 좋겠다는 생각을 합니다. 그것이 무엇이 될지는 모르겠지만 지금까지 했던 것과는 다른 일을 해보고 싶어요. 광고 경험이 있으니 40대에는 이 분야의 일을 하겠죠?
그런데 50대에도 이 일을 할 수 있을까라는 생각을 해요. 학교에서 강의도 하고는 있지만 인문학 등의 학문과 달리, 이 분야는 빠르게 변화하고 그만큼 꾸준히 뭔가를 해야만 하니까요. 아팠던 이후로는 두뇌에 대한 관심을 갖게 되어 국가공인 브레인 트레이너 자격증도 취득했습니다. 헬스장에 있는 PT 트레이너가 훈련을 통해 신체의 활용 능력을 향상시켜주는 사람이라면, 브레인 트레이너는 훈련을 통해 두뇌 활용 능력을 향상시키는 걸 돕는 사람이죠. 학생 대상으로는 집중력 향상, 직장인 대상으로는 스트레스 관리, 어르신 대상으로는 치매 예방 등 다양하게 도움을 줄 수 있을 것 같아요.
디지털 광고 이야기는 워낙 잘 하는 사람도 많지만, 이 분야에서 뇌종양 걸린 사람은 몇 명 없잖아요? 그런 생각에 최근에는 ‘뇌, 브레인 깨우는 채널’이라는 유튜브 채널을 개설하기도 했어요. 앞서 말한 것처럼 워낙 요즘 트렌드이기도 하지만, 어쨌거나 이제는 제가 스스로 뭔가 해봐야 알 수 있는 시대니까요.
어느덧 마지막 질문입니다. 지금까지의 경험을 토대로 앞으로 미디어 플래너가 되고 싶어하는 학생들에게 조언을 해주신다면?
학교를 나가도 대부분 학생들은 마케터가 되고 싶어 하지, 광고 기획자가 되고 싶어 하는 학생은 적었던 것 같아요. 드라마나 영화에서 광고가 소재로 한창 쓰여 이미지가 좋았던 10년 전과는 또 다르더라고요. 아무튼, 앞서도 언급했지만 최근 저는 연결의 시대에 살고 있음을 몸소 체험하고 있습니다. 이노션에서 나오고 2, 3년 동안 브런치에 글을 올린 게 작가가 될 수 있는 기회를 줬고, 에어비앤비를 시작한 게 계기가 되어 운영 대행도 하고 있죠.
끊임없이 연결되는 시대인 것 같습니다. 예전에는 유명인이거나, 특별한 무언가가 있는 사람이어야 연결이 됐지만, 이제는 다른 것 같아요. 인터뷰를 하고 있는 지금도 연결이 연결이 되어 마련된 자리니까요. 요즘엔 그래서 지금 내가 무언가 하지 않으면 3개월 뒤에 연결될 것이 없다는 생각으로 열심히 살고 있습니다.
가득 담긴 롤링페이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