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X

지상파 첫 100% AI 드라마 만든 EBS의 AX 전략

저비용·고가치 콘텐츠로 수익성 개선

100% 인공지능(AI)으로 만든 드라마가 지상파 정규 편성표에 올랐다는 사실 알고 계신가요? 지난 4월부터 방영 중인 EBS의 ‘AI 드라마-부활수업’ 이야기입니다. 안중근, 소크라테스, 윤동주 같은 역사 속 인물을 AI로 되살린 교양 시리즈인데요. 사실감 있는 영상과 철저한 고증, 영화 같은 연출에 호평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국내 방송사가 AI를 활용한 지는 꽤 됐습니다. 이제는 웬만한 시사교양이나 예능 프로그램에서 AI로 만든 자료 화면을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죠. 하지만 어디까지나 제작비 절감 차원에서 일부 영역에 사용할 뿐, 콘텐츠 전체를 AI로 제작해 송출한 사례는 EBS가 처음입니다.

EBS는 이밖에도 다양한 AI 콘텐츠를 선보이고 있습니다. 1000부작을 목표로 기획된 장기 프로젝트 ‘AI 고전, 역사를 바꾼 100책’과 ‘EBS AI 단편극장’ 등 현재 한 주에 내보내는 AI 콘텐츠만 11편에 달합니다.

2026년을 AI 전환(AX) 원년으로 선언한 지 반 년도 안 돼 일어난 변화인데요. 성과도 가시적입니다. 회사에 따르면 AI 콘텐츠 제작비는 기존 대비 10~20분의 1로 줄었고, 이에 힘입어 2026년 흑자 달성이 유력하다고 밝히기도 했습니다.

많은 기업이 AX를 외치지만 비즈니스 성과를 내는 곳은 여전히 드뭅니다. 이런 점에서 EBS의 사례는 주목할 만합니다. EBS는 왜 이토록 AI 콘텐츠에 공격적인 걸까요? 그리고 이들의 AX 전략은 무엇이 다를까요? 지난달 열린 2026 프롬 컨퍼런스에 연사로 나선 김유열 사장의 이야기를 토대로 EBS의 AX 전략을 정리했습니다.

지난달 11일 대학로 예술가의 집에서 열린 2026 프롬 컨퍼런스에 참가한 김유열 EBS 사장(사진=디지털 인사이트)

EBS AI 전환에 속도 까닭

김 사장은 이날 ‘AI를 통한 방송의 가치혁신’을 주제로 발표했습니다. 그에 따르면, EBS가 AX를 추진 중인 이유는 광고 매출 급감과 콘텐츠 산업의 구조 변화 등 국내 지상파 방송사가 겪고 있는 고질적인 수익성 문제를 해결하기 위함입니다.

업계에 따르면, 지난 20여 년간 국내 드라마 제작비 규모는 10~20배 증가했지만 같은 기간 지상파 4사의 광고 매출은 5분의 1 수준으로 쪼그라들었습니다. OTT와 유튜브 등 디지털 콘텐츠 플랫폼으로 시청자와 광고주가 대거 넘어간 결과인데요.

비용과 가치로 구분한 콘텐츠 유형. 김 사장은 AI 덕에 저비용·고가치 콘텐츠를 만들 수 있게 됐다고 강조했다(사진=디지털 인사이트)

김 사장은 “지상파는 편성표 채우기도 벅차 재방송을 트는데, 유튜브와 OTT에선 24시간 새로운 콘텐츠가 쏟아진다”며 “기존의 콘텐츠 제작 방식으로는 시간 개념이 없는 디지털 플랫폼과 경쟁할 수 없다”고 했습니다.

그러면서 지금의 위기를 극복하려면 제작비 절감과 콘텐츠 개선이라는 두 가지 혁신을 동시에 이뤄내야 하며, “지금까지는 이 두 가지 가치가 상충됐지만 AI 덕에 시도할 수 있게 됐다”고 덧붙였습니다.

김 사장은 이를 ‘비용 혁신’과 ‘가치 혁신’이라는 용어로 표현했는데요. 이러한 의도는 콘텐츠에서도 잘 드러납니다. 앞서 소개한 부활수업과 AI 고전, 단편 극장 외에도 하반기 중 어린이를 위한 ‘AI 인물 한국사(가제)’와 1920~30년대 한국 단편소설을 영상화한 ‘AI 청소년 문학관(가제)’을 편성표에 올릴 예정인데, 이들은 모두 과거 이야기를 소재로 한다는 공통점을 갖고 있습니다.

여기에는 김 사장의 뚜렷한 원칙이 담겨 있습니다. 실사 촬영으로는 시도하기 어려운 콘텐츠를 만들어야 한다는 겁니다. 효율만을 위해 AI를 쓴다면 비용 혁신은 달성할 수 있어도 가치 혁신을 이끌어낼 수 없다는 설명이죠.

“기존 방식으로는 만들지 못했을 콘텐츠를 AI로 구현해야 비로소 가치 혁신이 가능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야 시청자도 만족시킬 수 있겠죠. 예를 들어 AI 고전 시리즈에는 세계 각국을 배경으로 한 역사 속 사건이 등장하는데, 이를 실사로 제작하려면 캐스팅과 로케이션, 미술, CG만으로도 막대한 예산이 들었을 겁니다. 현재 추진 중인 1000부작 프로젝트는 엄두도 내지 못했겠죠.”

AI 고전, 역사를 바꾼 100책 ‘자유론’ 편의 한 장면(자료=EBS)

교육성 콘텐츠에 AI를 활용했다는 점도 눈여겨볼 만합니다. 여전히 AI 콘텐츠에 대한 시청자의 시선이 곱지 못한 상황에서 “좋은 교육 콘텐츠를 더 만들기 위해 AI를 사용했다”는 명분은 보는 이의 공감을 얻는 데 도움이 되기 때문입니다. 실제 EBS는 AI 콘텐츠 자문위원회를 별도로 두고, 내용 감수뿐 아니라 방송이 인간에게 미치는 영향까지 점검하고 있습니다.

“전 직원 동시에” AX 전담팀 안 뒀다

비용 혁신과 가치 혁신을 목표로 시작된 EBS의 AX. 성과도 나오고 있습니다. 김 사장에 따르면, 현재 실사 기반 AI 콘텐츠의 제작비는 기존 대비 10~20분의 1, AI 애니메이션은 43분의 1 수준으로 줄었습니다. 동일한 예산으로 콘텐츠를 수십 배 더 많이 만들 수 있게 된 셈입니다.

빠르게 성과를 낼 수 있었던 비결을 묻자 김 사장은 AI 전담팀을 따로 두지 않았다는 점을 꼽았습니다. 성공적인 AX를 위해선 무엇보다 조직 구성원 모두가 AI 마인드를 지녀야 하는데 전담팀을 만들면 변화가 자칫 그 팀 안에 갇혀버릴 수 있다는 이유에서입니다. 대신 EBS는 단순하지만 효과적인 방법을 택합니다. 전 직원이 AI로 콘텐츠를 직접 만들어보는 겁니다.

“지난해 초 사장인 저부터 임원진까지 한 명도 빠짐없이 AI 연수를 받았습니다. 직접 영상을 만들고 음악도 작곡하고 편집도 하면서 AI로 콘텐츠를 제작한다는 것이 무엇인지 실감할 수 있었죠. 전 부서가 AI 콘텐츠를 하나라도 직접 만들어봐야 AI를 회사의 기본기로 만들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연수를 마친 EBS는 곧바로 실전 테스트에 돌입했습니다. PD와 카메라맨, 그래픽 디자이너, 엔지니어를 한 명씩 선발해 각자 AI 도구만으로 콘텐츠를 만들게 한 겁니다. 한 사람이 기획·연출·촬영·작곡·편집을 모두 도맡는 ‘1인 제작’ 프로젝트였죠. 결과물은 무조건 방송에 내보낸다고 못박아 실전처럼 임하도록 했습니다.

석 달 뒤 결과물을 받아 든 김 사장은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습니다. 콘텐츠의 완성도도 완성도지만, 무엇보다 직무간 품질 차이가 거의 없었기 때문입니다. 특정 직군만 콘텐츠를 잘 만들 수 있다는 통념이 깨진 것이죠. 해당 결과는 EBS가 AI를 전사로 확산하는 강력한 명분이 됐다고 김 사장은 설명했습니다.

EBS AI 단편 극장 스틸샷. (좌측 위부터 시계 방향으로)토토와 친구들의 세계 탐험, 마인드 게임, 휴먼 AI 법정에 서다, 이비스의 사람공부. 모두 한 명이 기획하고 제작한 콘텐츠다(자료=EBS)

이 같은 1인 제작 프로젝트를 통해 세상에 나온 프로그램이 지난해 6월 공개된 AI 단편 극장입니다. 이처럼 지난해에만 전사 AI 연수를 거쳐 실제 콘텐츠 송출까지 빠르게 실험한 EBS는 올해를 AX 원년으로 선언하고 AI 활용 영역을 넓혔습니다. 콘텐츠 제작은 기본이고 업무 자동화 영역까지 AI를 들인 것이죠.

EBS AI 콘텐츠 현황. 이미 교양 드라마뿐 아니라 광고, 애니메이션, 학습, 뮤직비디오 등 다양한 영역에 AI를 쓰고 있다(사진=디지털 인사이트)

EBS에 따르면, 현재 편성센터, 사업센터, 영상아트센터 등 전 부서가 AI 콘텐츠를 만들고 있으며, 바이브 코딩으로 업무도 자동화하고 있습니다. 김 사장은 “마치 IT 회사처럼 일하는 중”이라며 “연말에는 사내 해커톤을 열어 우수 프로젝트를 전 부서에 접목할 계획”이라고 말했습니다.

김 사장은 AI 시대에 방송사는 업의 정의를 다시 생각해야 한다고 했다(사진=디지털 인사이트)

그렇다면 EBS는 AI를 어디까지 활용할 계획일까요. 김 사장은 방송사의 ‘파괴적 혁신’을 비전으로 제시했습니다. 그는 “방송 산업의 대전환이 시작된 지금 EBS가 교육 방송사에서 벗어나 앞으로는 교육 미디어 전문 그룹(EMS)로 나아가야 한다고 생각한다”며 AI가 애니메이션은 물론, 영화, 교육, 게임 영역의 진출 기회를 열어줄 것이라고 전망했습니다.

EBS의 AX 전략에는 눈에 띄는 점이 많습니다. 명확한 목표를 세운 뒤 경영진 주도 하에 전사적인 AI 도입을 단행했습니다. 이를 통해 조직 전체에 AI 마인드를 심을 수 있었죠. 또 콘텐츠 가치를 극대화하는 방식으로만 AI를 활용해 소비자 수용도를 높이고 있습니다. 구체적인 실행 전략은 저마다 다르겠지만, AX 성과를 고민 중인 조직이라면 참고할 점이 있어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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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에디터장준영 (zzangit@ditoda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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