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렌드

“AI가 지배하는 세상이 온다면?” 기계공학과 출신 3D 아티스트를 만나다

3D 아티스트 SISI 인터뷰

SF 디스토피아 영화 속 한 장면 같은 <In My World>는 인공지능(AI)이 지배한 세계를 그린 작품이다. 3D 아티스트 SISI(본명 차시은)가 ‘챗GPT 열풍’을 보고 영감을 받아 제작했다. 기계공학을 전공한 덕일까. 묵직하면서도 섬세한 금속 표현은 그만의 장기다. 독특한 시선이 녹아 든 SISI의 작품 세계로 떠나 보자.

글. 장준영 기자 zzangit@ditoday.com
섬네일. 박민지 디자이너 mji@ditoday.com

<In My World>.

대학교 4학년, 꿈을 찾아 과감히 도전하다

안녕하세요, SISI님. 자기소개 부탁합니다.

안녕하세요, SISI로 활동하고 있는 3D 아티스트 차시은입니다. 3D 프로그램인 C4D를 이용해 가상의 스토리와 공간을 만들고 있으며, 상상과 부합하는 이미지와 영상을 위해 꾸준히 공부하고 있습니다.

대학생 때 기계공학을 전공했다고요?

어릴 때부터 과학을 좋아했고, 부모님의 권유도 있어 거부감 없이 기계공학과에 진학했습니다. 하지만 상상하던 것과 많이 다른 전공에 정말 하고 싶은 일이 무엇인지 깊이 고민하게 됐죠. 이후 그림 그리는 것과 예쁜 디자인을 좋아한다는 이유만으로 디자인공학을 복수 전공했지만, 얕은 지식으로는 진로를 바꿀 수 없다고 생각해 공대 계열의 대학원에 진학하기로 마음 먹었습니다.

그런데 디자인 쪽으로 진로를 바꿨습니다. 계기가 있나요?

졸업 학기를 앞두고 학부연구생 신분으로 대학원 생활을 준비하던 때였습니다. 어느 날 어머니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네가 진짜 하고 싶은 걸 하렴”. 그 말에 정신이 번쩍 들면서, 공대 대학원에 진학했다간 죽을 때까지 후회하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바로 데스크톱을 맞춘 뒤 3D 디자인 공부를 시작했습니다. 그렇게 원하는 것을 만들다 보니 어느 순간 자연스럽게 디자이너를 꿈꾸게 됐습니다.

가장 기억에 남는 순간은 언제인가요?

3D를 처음 배울 때입니다. 디자이너로서 기초를 쌓던 시기인데, 하루도 빠짐없이 강의를 듣고 C4D(3D 작업 툴)를 연습했습니다. 지금 보면 부끄러운 결과물을 매일 만들었지만, 제일 즐겁게 작업했던 시기입니다.

디지털과 기계를 작품에 녹이다

이번 <디지털 인사이트> 267호 표지를 장식하기도 한 AI 시리즈가 인상 깊습니다. 암울한 디스토피아 분위기를 강렬하게 표현한 것 같아요. 어떤 계기로 작업을 시작했나요?

챗GPT, 미드저니 등 AI가 대중에 녹아 들고 있는 지금, 인간과 기계 사이에 존재하는 회색지대의 혼란을 생각하며 만든 시리즈입니다. ‘AI가 지배하는 세계가 온다면?’이라는 질문에 대한 세 가지 관점을 각각의 작품으로 표현했어요. 먼저, AI 세계를 새로움으로 받아들이는 <New World>, AI 세계를 허상으로 보고 부정하는 <No World>, AI가 만들어가는 세상 그 자체인 <In My World>입니다.

각 작품에 대해 설명해주세요.

<New World>
소요시간: 5일
사용툴: C4D, Ae, Ps
<No World>
소요시간: 5일
사용 툴: C4D, Ae, Ps

<New World>와 <No World>를 묶어서 <N(o)ew World>로 부르는데요. ‘AI가 지배하는 가상 세계에서 살아가는 경험이 인간 입장에서 새로움일까 또는 공허일까’라는 의문을 담고 있습니다.

이를 표현하기 위해 VR 콘셉트를 활용했습니다. VR은 현실에 없는 것을 실감나게 보여주지만, 실체가 없는 허상에 불과하다는 점에서 이번 작품과 개념적으로 잘 부합한다고 생각했습니다. ‘AI가 주는 정보 속에서 살아간다는 것이 과연 우리에게 어떻게 다가올까?’라는 의문을 던지고 싶었습니다.

<In My World>
소요시간: 5일
사용 툴: C4D, Ae, Ps

세 번째 작품인 <In My World>는 AI를 지닌 로봇이 자신의 데이터를 연결해 무수히 많은 가상 세계를 컨트롤하고 있다는 콘셉트로 제작했습니다. 여기에는 눈에 띄지 않는 작은 설정이 있는데, 왼쪽 상단에 새 한 마리가 로봇과 함께 모니터를 들여다 보고 있습니다. 이 새도 금속 재질로 이뤄진 로봇인데, 인간으로부터 등을 돌리고 AI의 편에 선 ‘자연’을 의미합니다. 다소 생뚱맞을 수 있지만, 어쩌면 자연 입장에서 환경에 더 도움이 되는 건 인간이 아니라 AI가 아닐까, 하는 생각을 담아봤습니다.

결론적으로 세 작품을 통해 AI가 지배하는 세상이 도래했을 때, 인간이 어떤 삶을 살아가게 될지 질문하고자 했습니다.

<CCTV, 무해한 실상>
소요 시간: 1주일
사용 툴: C4D, Ae

<CCTV, 무해한 실상>도 남다른 시선이 돋보이는 작품입니다.

일상 생활에서 의식하지 않고 지나친 것의 이면을 주제로 한 작업입니다. CCTV가 범죄수사 및 예방에는 유용하지만 동시에 개인의 사생활을 침해한다는 데서 아이디어를 얻었습니다.

CCTV의 붉은 렌즈가 섬뜩하게 느껴집니다. 작품에 대해 간략히 설명해주세요.

무언가를 ‘감시’한다는 점에서 CCTV가 마치 살아있는 기계처럼 느껴졌습니다. 실제로 CCTV 너머로 지켜보고 있을 누군가의 시선을 떠올리면 ‘살아있는 것’이 맞다는 생각도 들었죠. 그래서 CCTV를 자아를 갖고 움직이는 괴물이나 로봇으로 설정하자는 아이디어를 바탕으로 작업했습니다.

작품에 등장하는 CCTV는 초반에 각기 다른 곳을 바라보고 있지만, 고조되는 음악과 붉은 빛과 함께 일순 정면을 바라봅니다. 이는 독자로 하여금 여러 대의 렌즈가 모두 자신을 바라봄으로써 감시 당하고 있다는 사실을 직관적으로 느낄 수 있도록 한 연출입니다.

작업 당시 어려움은 없었나요?

아직 모르는 것이 많던 때라 전선을 하나하나 만드는 등 쉬운 길을 두고 돌아가기도 했습니다. 다행히 주변의 피드백을 통해 CCTV의 움직임을 최대한 기계에 가깝게 수정하며 밋밋한 모션을 보강하는 등 여러 시행착오를 거쳐 좋은 결과를 선보일 수 있었습니다. 처음으로 모델링부터 도맡아 한 작품이라 라이팅과 모션에 대한 이해도가 크게 높아진 기회이기도 했습니다.

작품에 담긴 시선이 독특합니다. 어떤 작품관을 갖고 있나요?

평소 품고 있던 다양한 질문을 시각적으로 풀어 나가는 편입니다. 다만, 모든 의문은 저마다 결이 다르므로 되도록 장르나 무드에 있어서 다양한 스타일을 활용하려고 노력합니다.

일러스트부터 3D 영상까지 다양한 종류의 작품을 만들었습니다. 어떤 툴을 주로 사용하나요?

C4D와 옥테인 렌더러, 어도비의 에프터 이펙트와 포토샵을 사용합니다. 영상을 만들 때는 C4D와 에프터 이펙트를 쓰고, 일러스트를 만들 때는 에프터 이펙트로 후 보정 뒤 포토샵에서 한 번 더 만져주는 편입니다.

이제 디자인 작업도 대부분 디지털화된 것 같습니다. 장단점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나요?

진입 장벽이 많이 낮아졌습니다. 제 경우만 해도 입시 미술을 배워본 적이 없어서 이런 프로그램이 없었다면 디자인 분야로 쉽게 도전하지 못했을 것 같습니다. 디지털 도구를 활용하면 상대적으로 짧은 시간 안에 좋은 퀄리티의 이미지를 만들 수 있다는 점이 가장 큰 장점입니다.

반대로 구도나 색감 등 기초를 놓칠 수 있다는 점은 유의해야 합니다. 저도 여전히 공부를 통해 ‘보는 눈’을 키우고 있습니다. 디지털 도구를 통해 디자인 작업이 간단해졌지만 이를 뒷받침하는 기본적인 디자인 이론은 꾸준히 공부해야 합니다.

다양성과 협업, 새로운 단계로

<Merry Christmas, Klaus>
소요 시간: 약 2주
사용 툴: C4D, Ae

<Merry Christmas, Klaus>는 앞선 작품들과 분위기가 다릅니다. 더 따뜻하고 부드러워요.

크리스마스가 올 때마다 주기적으로 보는 영화가 있는데, 바로 <클라우스>입니다. 개인적으로 너무 좋아하는 작품이라 엔딩을 재해석했어요. 주인공인 요한이 자신의 친구 클라우스를 기다리는 장면인데, 쓸쓸한 분위기는 덜어내고 크리스마스 특유의 따뜻함과 설렘을 더 담았습니다. 영화에는 없는, 테이블 위에 놓인 선물 상자나 벽난로 위의 사진을 통해 클라우스와 함께 했던 시간을 추억하려 했습니다.

영상 작업이다 보니 어려움도 있었을 것 같아요.

가장 어려웠던 부분은 모션을 잡는 일이었습니다. 영상보다는 이미지를 더 많이 만들어왔기 때문에 자연스러운 트렌지션 및 장면 순서를 설계할 때 끊임없이 수정을 거쳤습니다. 그래도 정말 좋아하는 영화를 주제로 작업했다는 점에서 당시 번아웃이 왔던 저를 다시 일으켜준 의미 있는 작품입니다. 또 작업 스타일의 큰 변환점이 되기도 했는데요. 이전까지는 유리나 금속 재질에 치중된 작업을 했다면 이번 작품을 통해 좀 더 사실적인 무드를 좋아하게 됐습니다.

<Boat>
소요 시간: 약 1 달
사용 툴: C4D, Ae

팀 COMMA를 꾸려 릴레이 CG 작업을 진행했어요. 어떤 의도로 기획된 프로젝트인가요?

오랜 독학에 지쳐 협업을 해보고 싶다는 생각을 할 즈음, 유튜브에서 악동뮤지션의 낙하 릴레이 CG를 보고 팀 COMMA를 모집했습니다. 뮤지션 죠지의 곡 ‘Boat’에 맞춰 각자 릴레이 CG를 만들었죠. ‘자유를 찾아 흘러간다’는 노래 가사처럼 ‘Leave, Adventure’라는 키워드를 잡고, 7명의 아티스트가 아트웍을 만들었습니다.

SISI님께서 맡은 부분에 대해 설명해주세요.

직장인이 회사를 뛰쳐나와 우주선을 타고 떠난다는 콘셉트로 작업했습니다. 영상을 보면 고층 빌딩 사이를 우주선이 날아다니고 그 주변으로 서류가 휘날리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뒤로 갈수록 노을이 지는 모습을 통해 시간의 흐름을 표현했고, 서류 뭉치를 뒤로 하고 떠날 때의 후련함과 해방감, 그러나 그 끝에 있는 찜찜함을 표현하고자 했습니다.

현재 작업 중인 작품이 있다면 소개 부탁합니다.

한 언론사가 주최하는 공모전에 당선돼 NFT 발행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작품명은 <For Sale, True Love>입니다. 원래도 밖에 잘 나가지 않던 제가 코로나 거리두기로 인해 완전한 집순이가 된 이후 새로운 사람과의 관계를 만들어감에 있어 생긴 두려움과 낯섦을 계기로 만들었는데요. 독자들이 영상을 통해 관계에서 오는 상처를 너무 무겁게 생각하지 말고 ‘게임 한 판 졌다’며 가볍게 훌훌 털어낼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앞으로 어떤 디자이너가 되고 싶은가요?

꾸준한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 뭐든 금방 흥미를 잃는 성격인데 인생에서 처음으로 제법 오래, 자발적으로 공부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꾸준히 공부할 힘’이 있는 디자이너가 되고 싶습니다.

  • 에디터장준영 (zzangit@ditoday.com)

성장하는 실무자를 위한
단 하나의 뉴스레터

뉴스레터 구독하기
하루동안 안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