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영하는 CEO 허승일의 告白, 그리고 Go-Back 스토리
-선택과 집중 미디어포스얼라이언스, 자회사 운영 등 조용한 성장세
-삼성그룹 공채 후 ‘3년 후 퇴사할 것’ 모두를 놀라게 한 당찬 소신과 이유
-홀어머니 위해 상고진학… 그의 운명바꾼 미술부
-온라인광고대행사 ‘컴퍼니(CommFunny)’, 자회사로 가볍고 빠르게 체질 개선
-스트레스와 고민은 짧게, 판단과 의사결정은 빠른 스타일
글. 김관식 기자 seoulpol@wirelink.co.kr
사진. 이재은 작가
장고(長考)가 며칠 동안 이어졌다. 허승일 미디어포스얼라이언스 대표는 무엇을 지향하는 CEO일까, 경영하는 데 있어 그가 생각하는 중심 추는 무엇일까? 미디어포스를 넘어 미디어포스얼라이언스가 지향하는 꼭지점은 어디일까? 영화 <냉정과 열정 사이>에 이런 대사가 있다. ‘그는 냉정한 듯 보이지만, 그 안엔 온통 열정으로 가득 차 있기도 하고, 열정으로 다가가는 순간에도 냉정이란 또 다른 감정이 숨어 있는 건 아닐까’. 그런 그가 바로 경영하는 CEO 허승일 대표다. 냉정과 열정은 물론 인연과 운명, 감정과 이성 사이를 오가는 그의 이야기를 손 닿는 대로 그대로 빚었다.
“요즘, 조금은 마음 편히 지내고 있어요.”
여유롭게 입을 뗀 허승일 미디어포스얼라이언스(M4A) 대표. 근황을 묻자 환한 미소를 지으며 기자에게 이렇게 답했다. 허나 그런 그의 음성은 100미터를 전력으로 달린 후 이제야 비로소 숨을 고르는 듯했다.
1995년 미디어포스 창업, 2012년 법인분할 후 현재의 반포에서 자리 잡을 때까지 디지털 에이전시 1세대로서 쉼 없이 뛰었으니 그의 속 깊은 푸념도, 긴 여정에 들인 사색도 조금은 이해할 수 있었다. 기자는 그렇게 짐작만 할 뿐, 그가 살아낸 시간의 시놉시스를 어찌 단 시간에 모두 읽어낼 수 있으랴.
먼저 미디어포스얼라이언스를 잠깐 독자 여러분께 소개하자면, 미디어포스얼라이언스는 국내 1세대 디지털 에이전시 ‘미디어포스’의 맥을 이은 ‘통합 디지털 솔루션 에이전시’다. 지난 2월, 한 디지털 에이전시를 방문했던 기자에게 모 대표가 이런 말을 했다. ‘한두 번 인연이 이어지면 자칫 소홀할 수도 있는 것이 세상사인데, 고객사와 더 높은 신뢰를 쌓기 위해 차별화와 새로운 트렌드를 적용하는 디지털 에이전시가 있다, 바로 미디어포스얼라이언스다’
실은 기자가 조금 각색한 면도 있다. 한 마디로 요약하면 이 얘기다. ‘고객과의 인연이 참으로 질긴 곳’이라는 것. 그 이면에는 비즈니스의 신뢰, 사람의 신뢰가 그림자처럼 따라다니고 있으니 어찌 그 인연 질기지 않을 수 있으리오. 기자가 생각하기에 허승일 대표가 비즈니스든 사람이든 신뢰를 누구보다 중요하게 여기는 이유는 우리가 사회의 근간을 이루는 공동체, 연합체이기 때문 아닐까. 우리는 나, 혹은 당신의 환경이라는 것을 그는 잘 알고 있을테니까.
이와 관련, 업계에 회자되는 모범 사례가 하나 있다. 미디어포스얼라이언스는 고객사인 신한카드와 2016년부터 현재까지 6년째 오랜 인연을 이어오고 있는 것. 미디어포스얼라이언스는 신한카드 PC/모바일 버전의 서비스 연동성과 완성도를 높이기 위해 대규모의 전담팀을 배치할 정도였다. 이후에도 줄곧 책임있는 업무 프로세스와 완결성을 인정 받아 대표 모바일 웹과 앱은 물론 신한페이판 앱, 신한마이카, 신한 오픈뱅킹 등 주요 서비스 구축을 이어오고 있다. 일반적으로 매 프로젝트마다 소모적인 경쟁이 일어나는 업계에서 믿고 일할 수 있는 곳과 안정적인 품질을 공급하며 장기적인 협업관계를 이어가는 이상적인 사례라는 점에서 허 대표는 고객사에 늘 감사하는 마음을 갖고 있다고 했다.
미디어포스얼라이언스는 이처럼 고객과의 신뢰를 형성하기 위해 ▲Trend Consulting ▲Business Insight ▲One-Stop Management 등 세 가지 모토를 세웠다. 허울만 좋게 내세우는 게 아니다. 국내 업계의 최신동향을 파악하는 건 허승일 대표가 이미 미디어포스 시절부터 중요하게 여기던 것 중 하나다. 고객이 알고 있는 것, 그 이상으로 트렌드를 제시하고 완성도를 높이는 건 고객의 고객을 위한 시도다. 그것이 바로 차별화다. 고객의 고객이 곧 우리 고객이라는 것이 허 대표에게 깊이 각인된 트렌드 포인트다.
미디어포스얼라이언스의 비즈니스 인사이트도 이 연장선상에서 살펴볼 수 있다. 무엇보다 그와 나눈 얘기를 들어보면 이 세 가지가 전 방위로 녹아져 얌체공처럼 퉁퉁 튀어나온다는 느낌을 받았으니까. 그건 무의식의 산출물이다. 오히려 대본을 받아든 것처럼 의식해서는 한 두 번은 나올 수 있겠지만 그 이후로는 자연스런 멘트를 기대하기 힘들다.
무엇보다 고객이 미디어포스얼라이언스와 손을 잡는 건 사업의 성공을 위한 것이다. 반대로 말하면 고객의 사업 성공 역시 미디어포스얼라이언스의 성공이라는 공식이 나온다. 원스톱 매니지먼트는 프로젝트의 완성도를 높이기 위한 소통과 업무 흐름의 플로우다. 이 세 가지가 톱니바퀴처럼 맞물려 미디어포스얼라이언스는 조용한 성장세를 타고 있다.
이처럼 빠르고 정교한 움직임은 곧 가시적인 성과를 나타냈다. 최근 열렸던 웹어워드코리아2020에서 NH농협카드 모바일웹이 ‘신용카드분야 대상’을, ‘하나은행 비대면서비스’는 정보서비스분야에서 대상을 차지했다. NH앱카드 올원페이도 스마트앱어워드2020에서 금융연계서비스분야 대상을 차지, 기술력과 차별화, 혁신 등을 인정 받을 정도니 그 실력과 쌓아온 인지도, 신뢰는 여전히 변함 없다는 것을 다시 한 번 입증했다.
그럼 이제부터 허승일 대표의 이야기를 꺼내볼까 한다. 그는 미디어포스시절, 그러니까 아이폰이 국내 상륙하기 전인 2007, 8년부터 모바일 퍼스트를 감지했다. 디지털 에이전시 등과 함께 모바일 벤처 연합체를 구상하기도 했다.
2011년에는 신문기사를 통해 이런 얘기도 남겼다. ‘늘 위기는 있기 마련이지만 이를 기회로 생각하고 변화를 모색했다’, ‘고객의 욕구를 시의적절하게 대응한 것이 생존의 비결’, ‘속도는 느려도 몇 십 년을 내다보는 기획력과 소통 중요하다’는 등의 메시지를 전했다. 하지만 기자가 주목했던 대목은 따로 있었다.
‘최근 미디어포스는 또 다른 기회를 맞고 있다. 스마트폰과 태블릿PC가 확산되면서 모바일 쪽에 무게를 두고 있다. (중략) 회사 규모가 커지면서 조직문화를 새롭게 정립하는 것도 중요하다’
당시 기사를 인용하면 2010년 기준 매출 170억원에 직원 170여명 규모는 당시엔 국내 최대 규모. ‘우리파이낸셜’부터 ‘미래에셋’, ‘르노삼성’ 등 굵직한 모바일 관련 프로젝트를 연이어 수주하며 미디어포스는 사세를 확장했다. 조직이 커질수록, 프로젝트의 알고리즘이 세분화될수록 빠른 의사결정과 대처능력은 조직은 물론 기업의 생존력에 필수다. 그렇게, 이때까지만 해도 거칠 것 없이, 소위 잘 나가던 미디어포스는 왜 법인분할이라는 결정을 할 수밖에 없었을까?
“하나의 미디어포스를 경영했을 때와 비교해보면 지금은 어떻습니까?”
“질의서에도 있었지만 예전에 미디어포스가 하나의 법인이었을 때 홀로 회사의 미래와 비전을 꾸려가야 한다는 중압감을 많이 받았어요. 책임감도 컸고요. 그때에 비하면 마음이 한결 가볍고 행복해요.”
허승일 대표는 가감 없이 처음부터 편하게 얘기를 풀었다. 모두가 궁금해 했을 것이고, 이제는 말할 수 있다는 얘기와 함께. 그에게 “필요하면 오프더레코드(Off-the-Record, 보도하지 않음을 전제로 하는 비공식 발언)를 요청해도 된다”고 말했지만 “굳이 그럴 필요도 없고, 감출 것도 없다”며 웃어 보였다.
이어 “다만 이 마음은 변함 없다. 그리고 지면을 빌려 다시 한 번 말하고 싶다. 지금 생각해도 당시 가장 미안했던 이가 있다면 우리 직원들”이라는 말에 테이블 위로 잠시 침묵이 흐르기도 했다. 기자는 순간 이 솔직한 감정을 기사로 어떻게 전달할까 고민했다. 그것이 그의 진정 어린 마음이었다. 이것이 훗날 미디어포스가 미디어포스얼라이언스로 그 정통성을 이어올 수 있었던 원동력이 됐고, 이를 바탕으로 전 직원이 하나가 돼 더욱 빠르고 효과적인 조직 퍼포먼스로 시너지를 내고 있기 때문이다. 이제 그 이야기를 해보려 한다.
검정 라운드 티셔츠를 깔끔한 재킷으로 받쳐 입은 그는 기자에게 시원한 음료를 먼저 권하며 지난 세월을 복기하듯 하나하나 테이블 위로 꺼냈다. 그렇게 허승일 대표와 2시간 남짓 인터뷰를 시작했다.
그 시절 ‘미디어포스’를 말하다
-그렇게 법인을 분할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는 무엇입니까?
누구나 생각이 다를 수 있잖아요. 대학 시절 동기 3명과 함께 15년 넘게 함께 해온 것도 기적이죠. 굳이 감출 것도 없으니 속 시원히 말씀 드리자면, 조금씩 서로의 지향점과 원하는 것도 달랐던 것이 큰 이유였죠. 충분히 그럴 수 있죠. 다만 지금 생각해도 당시 직원들에게 굉장히 미안했고, 지금도 미안한 마음을 갖고 있어요.
-창업 당시 대학 동기들과 뭉쳤지만 서로 출발점이 살짝 달랐다고 알고 있습니다.
저는 창업 전 삼성그룹 공채로 일을 하고 있었어요. 그곳에서 퇴사하고 미디어포스에 합류했을 때는 저의 목표가 명확하게 서 있던 상태였지요. 나머지 두 친구는 재학 중에 창업한 사례예요. 미디어포스에 합류하기 전 취업 경험이 있던 제가 기업문화를 만들고 사업 플랜을 계획하는 등 CEO로서 대부분의 역할을 도맡다시피 했어요. 함께 한 이들도 성격이 좋고 착해서 제가 생각하는 바를 이해하고 호흡을 잘 맞춰줬기에 오래도록 지탱해 올 수 있었지요.
-조직이 커질수록 혼자 도맡아 가기에는 여러 가지로 부담이 컸을 것으로 보이는데요.
서서히 매출이 높아지고 회사 규모가 커지면서 제가 감내해야 할 여러 일이 많이 생겨났어요. 업계나 직원들의 기대도 높아지며 제가 책임지고 추진해야 할 일이 많아졌지요. 그렇게 2000년대를 맞이하고 2009년, 2010년, 2011년을 넘겼어요. 2012년이 되자 또 다시 새로운 조직 프레임이 필요했어요. 여러 가지로 시스템을 전환해야 할 시기였거든요. 저는 분명 기회가 우리에게 있다고 봤고, 이를 토대로 제2의 도약이 필요했던 시점이었습니다. 여기서 점핑하지 못하면 결국 추락하지 않을까, 하는 부담이 없었다면 거짓말이겠죠. 그만큼 제게는 모든 것이 절박했고, 절실했어요.
-그 과정에서 세 분 사이에 여러 이야기가 오갔던 것이었군요.
비전과 목표 설정 등 많은 이야기를 주고 받던 어느 날이었어요. 멤버 한 명이 이러더라고요. “나는 학교로 돌아가겠다. 지분 정리를 해주면 좋겠다”고 했어요. 충분히 그럴 수 있죠. 우리 셋이 같은 날 태어나서 같은 날 죽는 것이 아니니까요. 그래서 저는 그 자리에 있던 다른 멤버 한 명에게 ‘그 친구는 가고픈 길 가게하고 우리가 이제 계획한 대로 미디어포스를 더 키워가자’고 제안했죠.
-그런데 무엇이 문제였습니까?
그런데 그가 이렇게 말했어요. 우리가 함께 시작했으니 끝낼 때도 함께 끝내든지, 아니면 같이 쭉 함께 가자고 했어요. 하지만 저는 그럴 수는 없었어요. 순간 그 너머에 이런 것도 보이더라고요. 조직의 비전을 만들고 새로운 목표를 설정해 빠르게 추진해야 하는데 과연 우리가 앞으로 그럴 수 있을까. 그리고 이것이 우리 세 사람의 문제였다면 그대로 갔을 테지만 조직을 생각하면 도저히 같은 방향으로 가기 힘들 것이라고 봤어요. 그래서 저는 이렇게 얘기했어요. ‘나는 여기서 아웃되도 상관 없으니 미디어포스가 셋으로 찢어져서는 안 된다. 믿고 따라준 미디어포스 직원들에게 실망을 안겨줄 수는 없다. 그러지 않았으면 좋겠다’고요. 하지만 두 사람의 의견대로 결국 1/3씩 갈라지게 됐어요.
-그래도 ‘미디어포스’를 살리고 비전도 하나로 챙겨야 하는 대표로서 고뇌가 살짝 느껴집니다.
모두 사업이나 경험이 부족하고 능숙하지 않다 보니 생긴 결론이겠죠. 저는 마지막 순간까지 분할을 막으려고 노력했지만 그렇지 못해 여러 가지로 안타깝게 생각합니다. 사실, 이 부분은 지금 저희 직원들도 몰랐더라고요. 시간이 지나 지금의 반포동 사옥으로 이전하고 난 뒤 어느 날 점심 먹다가 얘기가 나왔는데 모두 놀라더라고요. 모두 제가 주도해 쪼개진 것으로 알았다고요. 오해도 할만한 상황이었죠.
-처음부터 이런 얘기를 했다면 어땠을까요. 경영 하다 보면 많은 일이 일어날 수 있으니까요. 그게 꼭 누구의 잘못도 아니고요. 다만, 당시 상황을 직원들도 제대로 알아야 하지 않았을까 싶어요.
그 당시에 이런 얘기를 할 수 없었어요. 그보다도 직원들의 불편함을 최소화할 수 있도록 잘 정리하는 데 힘썼어요. 한 3년여를 그렇게 보냈을 거예요. 지금은 깔끔하게 정리를 끝냈습니다. 어찌됐든 저는 직원들에게 제일 미안했습니다.
-미디어포스 시절부터 대표님께서는 모바일과 기업 간 협업의 중요성을 꿰뚫어 봤고, 마침내 옐로모바일과 같은 모바일 벤처 연합체를 비즈니스 모델로 구상하셨다고요.
네. 당시 제가 줄곧 지향했던 비즈니스 모델은 옐로모바일이었어요. 그 형태로 몸을 작고 영향력 있게 쇄신하고 시장의 지배력을 강화할 수 있는 회사가 돼야 한다는 생각이었어요. 사실, 이런 부분도 멤버 두 명에게 부담이 됐을 것이라 생각해요.
-시장에서 이제 ‘미디어포스얼라이언스’ 브랜드가 많이 정착됐죠?
클라이언트 입장에서도 많이 혼란스러웠을 것 같아요. 결국 우리가 어떠한 모습을 보이느냐에 따라 고객이든, 시장이든, 임직원이든 스스로의 눈에 보이는 대로 잘 평가해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이제 ‘미디어포스’라고 하면 ‘얼라이언스’를 많이 떠올려 주시는 것 같아요.
알려지지 않은 얘기지만 허승일 대표는 삼성그룹 공채에 합격 후 신입사원 오리엔테이션에서 악수를 청하며 덕담이 오가던 임원과의 자리에서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저는 3년 후에 퇴사할 겁니다.”
그는 이처럼 남다른 포스(Force)로 창업에 필요한 물질적, 정신적 가치를 배우기 위해 그 입사하기 어렵다는 삼성그룹 공채에 입사했고, 시원스레 퇴사했다. 그리고 그 포스를 바탕으로 미디어포스를 창업했다.
허승일 대표의 2020년 10월 25일, 페이스북을 보면 고인이 된 이건희 전 삼성그룹 회장에 대한 명복을 빌며 인상 깊은 글을 남기기도 했다. “혈기 넘치던 시절, 막연한 재벌에 대한 반감과 기성세대에 대한 선입견으로 그를 대한 적이 있었다. 신입사원 시절, 용인 창조관에서 그와 그의 부친의 서적 예닐곱 권을 필독하라 했을 때 어렵게 들어온 곳이지만 박차고 나갈까 잠시 고민했다. 3년만에 퇴사 후 20대에 창업하면서 태워버리고 싶던 그의 경영사상이 내겐 피가 되고 살이 됐다. 나 뿐이랴. (중략) 아직 눈을 감기엔 이른 나이다. 그만큼 모든 에너지를 쏟아 붓고 가는 것 아니었을까.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라고.
허승일 대표의 ‘선택과 집중’
-‘사명(社名)’에 ‘얼라이언스(Alliance)’라는 단어를 붙인 이유가 살짝 감이 오긴 합니다만.
네. 짐작하시는 것이 맞습니다. 우선 ‘얼라이언스’는 제가 오래도록 좋아하던 단어예요. 이전 동업자들하고도 얼라이언스를 기반으로 서로 양보하고 협업하고 이해하려고 노력 많이 했고, 그들도 그렇게 서로에게 다가섰고요.
또 다른 이유는 당시 추진했던 사업이 세 가지 트랙이었어요. 하나는 내부 자체 프로젝트, 즉 (선물하기 등) 플랫폼에 중점을 둔 비즈니스였죠. 또 하나는 스타트업 지분투자, 마지막 하나는 기존 사업인 에이전시를 비롯 마케팅 제조 등 라인업의 확장이었어요. 휴대폰 제조와 디자인을 총망라해 이 세 가지를 중심으로 확장할 계획이었어요. 그러다 보니 그런 유대관계와 전문성으로 조직관리에 시너지를 내고 자체 브랜드를 키우고 마케팅 파워를 내기 위해서는 결국 우리가 ‘얼라이언스’라는 연대감과 동맹의식을 공유해야 해요. 또 기업과 기업, 사람과 사람이 만나 성과를 내기 위해서라도 수평적인 파트너십을 정립할 수 있는 얼라이언스는 중요한 조직문화를 이루는 한 축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미디어포스얼라이언스’도 어느새 9년이 지났네요.
-‘미디어포스얼라이언스’는 확실히 ‘선택과 집중’에 무게를 두는 것 같습니다. 즉, 가야 할 것(Go), 버려야 할 것(Back)을 빨리 결정해 실행한다는 느낌을 받았어요.
그간 저도 생각이 많이 바뀌었어요. 이유가 있습니다. 당시 추진했던 사업이 다 잘 된 것은 아니고 성과도 있었지만 시대가 워낙 빠르게 변화하고 있잖아요. 물론 결과론일 수 있겠지만 그때 그 신규 서비스들을 지금 우리가 끝까지 추진했어도 결국에는 쉽지 않았을 것이라 봐요. 냉정하게 보면 카카오나 네이버 등 이쪽 서비스에 특화된 기업이 시장을 빠르게 잠식하고 있잖아요. 분할하는 과정에서 아깝게 몇몇 신사업이 중단되기도 했지만 지금 보면 차라리 잘 됐다고 봅니다. 무조건 외형을 키우고 덤벼들기보다 우리가 잘 하는 것, 할 수 있는 것에 집중하고, 시장을 면밀히 살펴 방향을 잡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선택과 집중을 하게 된 배경에는 갈수록 치열해지는 경쟁도 자리하고 있을 듯 합니다.
맞습니다. 자체 서비스라는 것은, 조금 떨어져서 보면 시장 속 치열한 경쟁을 스스로 이겨내야 함을 의미합니다. 결국 유한한 자원과 시간, 여유 속에서 경쟁하려면 선택과 집중을 해야 한다는 계산이 나오죠. 빠르게 움직이고 대응해야 해요. 그래서 내부의 마케팅 사업분야를 독립, 분사시켰어요. 원래는 그룹의 개념처럼 에이전시 사업분야를 크게 마케팅과 디지털 에이전시 기능을 통합한 지주회사 개념의 그림을 그렸는데 그와 유사한 옐로모바일도 좋지 않게 끝났잖아요. 여러 관계자와 지인을 만나보니 이 부분도 생각하지 못한 어려움이 많았음을 알았어요. 결국 파이낸스(재정)의 문제인데, 이를 해결하지 않으면 쉽지 않다고 봤어요. 한번은 옐로모바일로부터 역제안을 받았지만 당장은 거부했어요. 더 지켜보고 싶었거든요. 지금 와서 보면 결국 이 시장은 개개별로 더 전문화된 시스템으로 가야 한다고 생각해요. 내가 당장 모두 포용해 시너지를 내는 게 아닌, 아예 브랜드를 모두 독립시켜 각자 그 분야에서 전문성을 확보하고 동시에 브랜드에도 집중해야 한다고 봅니다.
-분사한 온라인 광고대행사 이름이 어떻게 되죠?
네. 컴퍼니(Comm+Funny)라는 자회사입니다.
-(다소 놀란 표정으로) 사명이 컴퍼니(Company)라고요?
아뇨. F+U+N+N+Y, 컴퍼니(Comm+Funny)입니다. 약간 감성을 입힌 사명이지요(웃음).
-아, 그 심오한 뜻을 눈치 못 챘습니다(웃음).
괜찮습니다.
- 디지털마케팅 대행사 ‘컴퍼니’ 바로가기
-스타트업 투자는 어떻게 됐습니까?
네. 두 곳 모두 상장했습니다. 한 곳은 상장 후 자금회수가 완료됐고, 나머지 한 곳은 최근 상장했어요. 데이터 테크 회사예요. 프로그래매틱 광고 스타트업인데 정확히 10년 걸렸어요. 개인적으로는 그런 데이터 테크를 미디어포스에서 하고 싶은 마음이 있었어요. 그러기엔 현실적 한계와 동업자 간의 견해차이로 내부에서 꽃을 피우기가 쉽지 않았지요. 그러다 보니 안에서 잘 할 수 있는 것(웹에이전시, 광고마케팅 등), 외부에서 잘 할 수 있는 것(액셀러레이터, VC 등)을 구분해 추진하고 있어요. 아직 그 회사도 더 크게 성장해 갈 길이 멀지만 제가 관여할 일은 전혀 없고 주주로서 남아 있을 뿐입니다.
-사실, 오늘을 위해 하루 날 잡아 대표님 페이스북 타임라인을 쭉 살폈습니다. 기자는 여기서도 기사거리를 찾아내야 하니까요. 마침 지난해 크리스마스이브에 남긴 글을 보니 직원이 드린 선물에 무척 행복해 하셨어요.
아, 보셨군요. (웃음) 네. 22년차를 맞은 CEO의 소중하고도 소소한 행복 중 하나죠. 예전에는 잘 몰랐어요. 당연히 뭐 주나보다, 하고 생각했는데, 이제 그런 것이 소중하게 느껴져요. 저도 직원들에게 세세하게 마음을 표현하려 신경 씁니다. 꼭 자리를 만들어서 시상하는 등 약간의 보여주기식의 그런 행사보다는 이제 작지만 소중한 정을 느낄 수 있는 진심 어린 표현이 중요하다는 것을 알았어요. 그러던 와중에 직원에게 그런 선물을 받으니 기분이 업(Up)됐던 거죠.
-그런데 대표님, 아까부터 궁금한 게 있어요. 대학 때부터 취업보다 창업할 생각을 하신 겁니까? 삼성이라면 누구나 가고 싶어하는 곳이잖아요. 주변의 만류도 있었을 텐데요.
저는 처음부터 창업을 생각했어요. 삼성그룹 공채 입사 후 디자인을 전공한 동기 대부분 삼성전자 쪽으로 방향을 틀었는데, 저는 삼성중공업을 가겠다고 했어요.
-모두가 ‘예’, 할 때 대표님은 ‘아니요’ 하신 거네요.
그렇게도 볼 수 있는데 저는 새로운 분야에, 나 홀로 가서 내가 원하는 그림을 마음 껏 그려보고 싶었어요. 기대대로 굉장히 좋은 경험을 많이 했죠. 비행기, 배, 중장비 등 이런 걸 누가 언제 디자인해 보겠어요? 헬기 타고 출장도 가고 크루즈 타고 유럽에서 대서양도 건너봤지요. 아, 자사 배치를 위해 인사팀 교육이 있었을 때가 떠오르네요. 인사팀 이사님이 신입사원에게 꿈과 포부를 묻는 자리가 있었어요. 저는 이렇게 답했어요. ‘3년 후 퇴사할 계획입니다’라고요. 그 말을 들으시고는 얼굴 빛이 빨개지시더라고요. 젊은 혈기였지만 솔직하게 말씀드렸어요. 그러고 나서 주위에서도 퇴사를 결정했을 무렵 ‘어렵게 입사해서 왜 퇴사하느냐’고 만류했어요. 어휴, 말도 못할 정도였어요.
-그럼 삼성을 선택했던 이유가.
삼성이라는 일류기업에 입사해 조직경영과 기업철학 등을 경험하고 배우고 싶었어요. 지금도 그렇지만 그 당시만 하더라도 삼성만큼 우리나라에서 시스템화된 조직은 드물잖아요. 또 그때는 삼성이 제2의 창업 마인드로 접어들었던 시기라 관련 혁신도 배울 수 있었고요. 한동안 스타트업처럼 밤새워 일했고, 성과도 냈어요. 그리고 저 자신과의 약속대로 3년을 꽉 채웠던 그 해 퇴사했습니다.
-퇴사 후 삼성이라는 간판을 걷어내고 본 세상은 어떻게 느껴지던가요?
인터넷의 빠른 보급과 멀티미디어로 넘어가던 시기였고, 온라인 마케팅과 웹사이트 구현해내야 하는데 그런 프로그래머는 있었지만 그 디자인을 구현할 기업이 없었어요. 홍익인터넷, 클릭 등 일부 기업이 대형화돼 나아가고 있었죠. 그래서 이쪽 시장을 비전 있게 봤고, 선배들이 이미 자리한 곳보다 내가 잘 할 수 있고, 내가 리더가 될 수 있는 시장을 만들고 싶었어요. 그때만 해도 온라인은 미개척지였어요. 그래서 맨손으로 뛰어든 거죠. 한번은 우연찮게 사주를 본 일이 있는데 그때 저는 ‘안정적인 것보다 새롭고 도전하는 것을 좋아한다’고 얘기했어요. 외모만 보면 점잖고 공무원 같은 스타일이지만 속은 전혀 그렇지 않아요. (단호한 표정으로) 도전하는 걸 더 좋아하고, 그런 결정의 순간이 오면 저는 언제든 ‘도전’을 선택할 겁니다.
-말씀을 가만히 들어보면, 삼성그룹 인사팀 임원에게 ‘3년 후 퇴사하겠다’는 멘트를 던진 것도, 약속대로 퇴사한 것도, 또 미디어포스 공동 창업에서 미디어포스얼라이언스로 이어지며 선택과 집중으로 내실을 키웠다는 것도 참으로 쉽지 않은 여정이었습니다. 저 같으면 삼성중공업에서 쭉 눌러 앉지 않았을까 싶어요.
사람은 모르는 겁니다. 편집장님이라면 또 다른 선택을 하셨겠지요. 여하튼 저는 새로운 길을 개척하고 걷고자 하는 성격입니다. 질의서에도 있지만 다시 태어나도 저는 ‘창업’을 선택할 거예요. 어떤 길을 가든, 무슨 일을 하든지요. 회사를 경영하는 분들은 대부분은 타고난 그런 기질이 있으신 것 같아요. 저만 특별하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웃음).
냉정과 열정 사이
-혹시 부모님의 영향을 많이 받은 편인가요? 믿고 지원하고, 아이들의 선택을 존중해주시고, 그런 가정환경이었는지요?
과거까지 얘기하면 굉장히 길어지는데.
-그럼 짧게 부탁드려요.
제가 국민학교(현 초등학교) 4학년 때 신문사에서 재직하시던 아버지가 돌아가셨어요. 저는 삼형제 중 막내였는데, 아무 것도 모르고, 아무 생각도 없었죠. 대신 형님들이 어머니를 돕고 학비를 벌고자 새벽에 신문배달하고 열심히 사는 것을 늘 직접 두눈으로 보고 자랐어요. 두 형님은 공부도 굉장히 잘했고요. 그런 환경에서 자라 저도 자연스레 집안을 일으키고자 했어요. 나 역시도 뭔가를 해야겠다고 생각했죠. 그리고 또 하나 꼽자면, 저는 어려서부터 누구의 간섭 없이 방목되다시피 자랐고 그만큼 생각도 자유로웠어요. 형님들도 제게 훌륭한 아버지이자 스승이었죠. 그리고 홀어머니를 위해서라도 내가 잘 돼야겠다고 다짐했어요. 그래서 어머니 몰래 상업고등학교에 지원했죠.
-(깜짝 놀라며) 네? 어머니 몰래 지원하셨다고요?
네. 빨리 졸업해 금융권이든 어서 취업하고 싶었거든요. 이 사실을 아신 어머니께 엄청 혼났습니다. 저는 그때 그 결정이 맞다고 생각했거든요. 아무튼 어렵게(?) 경기상업고등학교를 입학하게 됐어요.(1923년 개교한 경기상업고등학교는 90년대 당시에도 상업고등학교 가운데 명성이 높은 학교였으며 지금의 경복고와 비견될 정도로 인지도가 높았다. 제11~16대 국회의원이자 20대 정부 제1장관이었던 김영구 씨와 10대 건설부 장관이자 부총리 태완선 씨, 야구해설가 이용철과 배우 정우성도 이곳 출신이다.)
참, 운명이라는 녀석은 얄궂다. 사람의 인생을 자기 맘대로 바꿔놓는다. 하지만 그 운명을 누구도 거스를 수는 없다. 타고난 운명은 팔자다. 허승일 대표에게도 전혀 생각하지 못했던 운명의 손길이 기다리고 있었다. 우연히 고등학교 특별활동 시간이 다가왔다. 부서를 선택해야 했다. 그는 중학교 시절 미술 선생님이 ‘우리 승일이, 그림 잘 그리네’하며 칭찬했던 한 마디가 떠올라 미술부를 택했다. 어느 날 선배들이 그를 보며 ‘방과 후 남으라’고 말했다. 군기가 바짝 들었던 그는 몇 가지 테스트를 거쳤고, 마침내 선배들이 이렇게 말했다. “너, 아예 우리 미술부로 나와”
이후 그는 특별활동이 아니라 아예 미술부원으로 활동했다. 하지만 그의 머릿속에는 ‘미술은 내게 사치’라는 생각이 떠나질 않았다. 빨리 취업해 돈을 벌어야 했다. 막상 들어가보니 경기상고 미술부가 굉장히 유명세를 탔고 있다는 걸 알았다. 오래 전부터 도제방식의 미술교육을 비롯해 각종 대회에서 늘 수상패를 거머쥐었던 것. 그 명맥을 주변 학교에서도 인정했던 셈이다. 선배들도 대부분 홍익대 미대에 진학했다. 허 대표는 이때 깨달았다. “아, 나도 대학을 가야겠다.”
마침내 국민대 시각디자인학과에 진학한 그는 대학 수업외 현장에서의 다양한 경험과 대회 수상을 받았고, 장학금으로 학자금 걱정도 덜었다. 그렇게 운명은 그에게 ‘미술’이라는 기회를 던졌고, 그는 이를 토대로 자신의 길을 개척해 남들과 다른 자신 만의 길을 걷고자 했고, 마침내 오늘에 이르렀다.
-만약 경기상고에 진학 후 미술부와 인연이 없었다면 지금 대표님을 어떻게 상상하면 될까요?
재미있는 질문입니다(웃음). 계획대로라면 은행원이 됐겠죠. 임원 정도는 지낼 수 있었겠지만 그것보다는 지금이 훨씬 좋고 다행이라고 생각합니다. 지금도 그때의 나를 이끌어준 운명에 대해 감사하게 생각합니다. 그리고 이전부터 반장을 줄곧 맡고, 전교 회장, 임원 활동을 했던 것이 리더십을 배울 수 있었던 좋은 기회였던 것 같아요. 그것이 창업으로 이어지면서 지금 이렇게 편집장님과 자리하고 있네요. 학습으로 배운 것이 아니라 주변이 저를 키우고 깨닫고 책임감도 느끼고 그렇게 성장하면서 피와 살이 됐던 것 같습니다. 저는 어렸을 때의 어렵던 가정환경이 제겐 큰 스승이었다고 생각합니다. 오히려 제가 지금처럼 풍족한 환경에서 태어났다면 저는 지금처럼 될 수 없었다고 봐요.
-때로는 냉정하게 판단해야 할 때가 분명히 있잖아요. 사람인 이상 자꾸만 뒤를 돌아보며 미련 갖기도 하고, 판단을 미루고, 그런 부분은 특히 CEO에게 있어 경계해야 할 부분인 듯해요.
네. 어떻게 보면 냉정할 수도 있겠지만 위기가 닥치면 사실 더 냉정해야 해요. 감정을 빼야 하죠. 그래야 합리적으로 판단할 수 있어요. 빠른 의사결정도 필수입니다. 분할할 때처럼 설사 모두 잃어버린다 하더라도 다시 시작한다는 생각이 우선 들어요. 어려서부터 그런 것에 단련됐기 때문 같아요. 낙담만 하거나 패배주의 같은 사고는 사양합니다. 빨리 현실을 딛고 일어서는 게 급선무니까요.
-자녀분들도 대표님의 좋은 부분을 닮아갈 것 같은데요.
저는 이렇게 생각해요. 먼저 아빠인 제가 살아온 길과 환경을 아이들에게 강요하고 싶지 않아요. 아이들도 각자 자신이 걸어야 할 길과 환경이 다르니까요. 누구와 비교해서 사는 인생보다 아이들도 각자 자기가 갖고 태어난 운명이 있을 거에요. 그걸 믿고 지켜주고 싶은 게 아빠의 마음입니다. 아이들의 판단에 맡기려고 해요.
-20년 전, 혈기왕성한 그때의 나 ‘허승일’ 대표에게 한 마디 한다면요.
한참 바쁠 때였네요. 아내가 만날 울면서 집에서 기다리곤 했죠. 그땐 그럴 만한 이유가 있었다고 생각하지만 미안하게 생각해요. 하지만 큰 꿈을 이루기 위해서는 버텨내야 할 것도 있다고 봅니다. 그때의 제게, 오늘의 저는 이렇게 말하고 싶어요. ‘지금 잘 하고 있어. 지금처럼만 해. 대신 주변에 상처주지 말고.’
-상처 주지 않으셨잖아요.
아니에요. 미디어포스에 있었던 직원들과 동업 창업 멤버들도 알게 모르게 제게 상처를 많이 받았을 거예요. 제가 그때는 앞날을 위한 비전과 목표를 세워야 한다는 생각 밖에 없었고, 그러한 입장 때문에 상처를 많이 줬어요. 가정도 마찬가지였고요. 지금 와서 후회되는 건 주변을 좀 더 이해하고 그 과정을 좀 더 세련되게 대처했으면 어땠을까 해요. 내 스스로 그럴 수밖에 없다고 합리화도 하곤 했어요.
-대표님도 상처를 많이 받았지 않습니까. 살면서 상처는 누구나 주고 받기도 하지만 그 정도는 모두가 겪을 수밖에 없는 일 아닌가요.
아니에요. 윗사람이 받는 것과 또 다르죠. 그들이 더 힘들었을 거예요. 저는 최종의사결정자로서 책임이 있기 때문에 직원과는 입장이 달라요. 그리고 저는 실패나 상처에 무딘 편이에요. 빨리 빨리 봉합하고 새 살이 날 수 있도록 신경 쓰는 편입니다.
건강한 산업 생태계를 지향하다
-주변에 대표님의 진심이 충분히 전달됐을 걸로 생각합니다(웃음). 자, 질문을 바꿔보겠습니다. 요즘 웹기획자나, 개발자, UI·UX 디자이너 등 인력이 많이 필요하다고 합니다. 하지만 최근 디지털 산업의 큰 축이 되는 디지털 에이전시는 인력난을 그 어느 때보다 크게 느끼고 있습니다.
저희는 개발자보다는 디지털 퍼포먼스를 낼 수 있는 웹기획자를 꾸준히 채용 중인데요, 말씀처럼 채용이 쉽지 않아요.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예전에는 관련 학원을 거쳐 웹기획자 과정을 이수한 분들이 취업, 재취업 과정으로 입사했거든요. 그런데 어느 순간 관련 교육기관에 웹기획 과정이 없어지고, 이게 UX디자인, UX전문가 양성과정으로 편입되다보니 ‘아, 이건 디자인의 몫인가 보다’하고 누구나 생각하게 된 거죠. 그만큼 웹기획자의 정체성이 모호해 전문성을 부여하기도 애매해 졌어요. 새로운 유입도 어렵고, 기존 인원은 이탈하고. 근본적인 대책이 필요하고요.
-생각보다 상황이 녹록치 않습니다.
특히 금융 분야에서 UX 영역과 웹기획이 중요해지고, 그 프로세스는 복잡하기 때문에 이를 책임 있게 맡아 진행할 인력이 중요합니다. 그래서 금융 분야에 무조건 신입을 채용해 투입하기가 어려운 면도 있긴 해요.
-실력을 떠나 연차 등 등급에 따른 인재 배치를 요구하는 것도 대처가 어려울 텐데요.
맞습니다. 그래서 관련 프리랜서를 쓰지 않을 수 없어요. 인력 전문 구인 업체를 통하기도 하고요. 특히 금융 분야는 그런 인재 등급을 요구해요. 사실, 등급이라는 것이 경험과 연차가 쌓이면 절로 올라가는 것이잖아요. 어떻게 보면 실력은 두 번째라는 것이지요. 일단 클라이언트가 요구하는 스펙에 맞춰야 하는 거죠. 우리 내부에서 보면 실력이 충분한데 등급이 맞지 않아 일을 진행할 수 없는 경우가 있어요. 상황이 그러해도, 저희는 우선 웹기획은 일부 대학과 연계돼 그들을 우선 채용합니다. 기획은 관련 학과나 학원도 없다 보니 채용박람회나 전시회가 있을 때 저희도 꼭 참석해 채용하기도 한답니다.
-웹기획자를 자체 육성한다고 봐도 되나요?
네. 여러 가지로 챙겨야 할 것이 많고, 이들도 어느 정도 있다 이직을 하더라도 우리 산업 생태계를 놓고 보면 꼭 필요한 일이고, 인재들이라고 생각합니다. 또, 지금의 디지털 에이전시가 예전과 달라서 복지와 근무여건이 상당히 좋아졌습니다. 하지만 대기업에서 주는 혜택과 복지는 저희가 따라가기 힘들기 때문에 계속 함께 하기는 어렵겠죠. 주어진 조건 안에서 최선을 다 할 생각입니다. 한 가지 더 바람이 있다면 이런 인력에 대한 부분 등 디지털 에이전시와 관련한 일을 한국디지털기업협회에서 이제는, 조금 더 나서서 리드하면 어떨까 생각합니다.
여기서 잠깐, 허승일 대표의 답변처럼 국내 디지털 에이전시 근무여건은 예전과 확연히 달라졌다. 야근도 없고, 육아휴직도 절대 눈치 보지 않는다. 근속연수 휴가 및 보너스, 복지(물론 보편적 복지를 의미하지만 이 역시 높은 수준에 속한다.)도 상당 수준이다. 대기업과 비교하면 부족하게 여길 수 있다.
하지만 대한민국 상위 100개 기업을 놓고 본다면 상위 20% 안에 꼽을 수 있는 근무환경이다. 지금도 그렇지만 예전에는 관련 대기업에 경력직으로 이직하기 위해 디지털 에이전시에서 근무하는 이도 상당수였다. 그만큼 디지털 에이전시는 산업을 이루는 근간이면서 인재를 양성하고 배출하는 기관으로서도 역할을 마다하지 않았다. 오늘 날의 비대면 등 디지털 혁신이 요구되던 환경 속에서도 늘 먼저 출발선에 섰던 곳도 당연히 디지털 에이전시였으니 어찌 주변에서 이들의 인재를 놓 수가 있겠는가.
이제 그 이면에 놓인 에이전시의 어려움도 한 번쯤 듣고 건강한 생태계 조성을 위해 무엇이 필요한지 한번 공론이 필요하지 않을까. 최근에는 이 시장에 사람이 부족하다는 걸 클라이언트도 알다 보니, 무조건 경쟁 PT만을 요구하지 않는다. 현 상황에서 투입되는 인재가 어느 정도인지를 살필 정도라고 한다. 외주사 노임단가도 10여 년 전과 비교해 정체돼 있다. 업계에서는 ‘물가상승률만큼은 반영돼야 하는 것 아니냐’는 웃픈 얘기도 돈다. 이가 없으면 잇몸으로 버틴다하지만 이 역시도 한계가 있지 않을까.
-대표님과 대화를 나누다보니 두 시간이 훌쩍 지났습니다. 마지막으로 저희 독자들과 <디지털 인사이트>에 한 마디 해주신다면요?
<디지털 인사이트>가 지금처럼 앞으로도 우리 산업에 필요한 이야기를 많이 다뤄 주셨으면 해요. 또 그런 이야기 하나하나가 콘텐츠가 되고 많은 사람에게 알려지면 산업이 발전하는 데 밑거름이 될 수 있잖아요. 그 과정에서 독자 여러분도 지금처럼 많은 응원 부탁드리겠습니다. 오늘 기회가 닿아 많은 이야기를 나눴는데 미디어포스얼라이언스는 산업의 근간을 이루는 디지털 에이전시로서 건강한 산업 생태계를 선도하기 위해 노력하겠습니다. 지켜 봐주세요.
유쾌하다. 허승일 대표와는 인터뷰라기보다 담소에 가까운 분위기에서 많은 이야기가 오갔다. 미디어포스얼라이언스는 훌륭한 사례를 지속적으로 창출하는 데 전사적으로 움직일 각오다. 미디어포스얼라이언스는 지금도 마찬가지지만 앞으로도 디지털 에이전시 산업과 MZ세대를 아우르는 하나의 킬러 콘텐츠로 역할하고 있다. 그들이 향하는, 바라보는 방향과 시선은 분명 건강한 산업군일 테니까. 그리고 오랫동안 꿈을 그리는 사람은 마침내 그 꿈을 닮아간다고 하지 않던가.
*미디어포스얼라이언스(M4A)가 궁금해?
미디어포스얼라이언스는 디지털 에이전시 업계의 리딩 기업으로 손꼽힌다. 온라인 기반의 4대 마케팅 채널(웹/모바일/광고&마케팅/SNS)을 중심으로 기업의 온라인 비즈니스를 통합적으로 대행하는 대표적 ‘온라인 종합 대행사’다.
2012년 5월, 미디어포스에서 새롭게 단장한 ‘미디어포스얼라이언스’는 디지털 시대 새로운 변화에 대응하고 MZ세대와 소통하기 위해 더욱 스마트한 에이전시로 변모했다. 온라인 기반 토털 서비스를 기반한 전략 수립과 창의적인 아이디어로 고객에게 최상의 퀄리티를 제공한다.
무엇보다 디지털 에이전시 1세대 기업으로서 수많은 프로젝트를 성공적으로 수행한 축적된노하우와 기술이 강점으로 꼽힌다. 더욱 정교하게 프로그래밍돼 가는 디지털 서비스에 대응하는 등 e-business 컨설턴트, 모바일 전문가, UI 전문가,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온라인 광고 AE, 모션그래퍼 등 풍부한 경험과 노하우를 지닌 전문가 집단이 상주하고 있다.
최고의 품질과 경험적 지식을 서비스하는 온라인 분야의 전문가 집단 ‘미디어포스얼라이언스’의 고객을 향한 열정의 DNA는 건강한 산업 생태계의 필수요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