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인이 MBTI를 좋아하는 이유
공감 능력 없는 ENTJ가 말하는 MBTI에 대한 고찰
한국사에서 중요한 주제 중 하나는 도자기다. 예술적인 가치도 중요하지만, ‘고려시대 상감청자’ ‘조선초기 백자’ ‘조선후기 달항아리’ 등 시기별 유행하는 것이 바뀌기 때문이다. 유행하던 것을 통해 그 시대의 사람들 특성을 유추할 수 있다. 그렇다면 미래 세대는 무엇을 통해 우리 시대를 파악할까? 많은 후보가 있겠지만, 한 나라에서는 유력한 것이 하나 있다. 2018년부터 대한민국을 관통하는 키워드는 MBTI다.
글. 김성지 기자 jerome@ditoday.com
대한민국은 원래부터 분류론을 좋아했다
처음 만나는 사람과의 대화를 어려워하지 않는 사람이 있는 반면, 이를 부담으로 느끼는 사람도 있다. 살다 보면 새로운 사람과 만나서 대화해야 하는 상황이 끊임없이 발생한다. 유대감이 생기지 않은 상대와 대화하는 것은 쉽지 않으며, 준비한 대화 소재가 끝났을 때 발생하는 정적은 분위기를 더욱 어색하게 만든다. MBTI는 말문이 막히거나 대화 흐름이 경직됐을 때 사용하기 좋은 소재다. 유튜브나 소셜미디어에는 MBTI 관련 콘텐츠, 일러스트레이션·디자인 등 각종 행사에서는 MBTI 관련 굿즈는 항상 빠지지 않는 것을 보면 그 인기를 가늠해 볼 수 있다.
‘구글 트렌드’가 집계한 국가별 MBTI 검색량은 2018년부터 한국이 압도적 1위다. 구글은 한국의 검색량을 100으로 치환했다. 이 수치에 따르면 홍콩은 17, 필리핀은 16이다. 이는 2022년 순위로 홍콩과 필리핀은 MBTI 검색량 2·3위다. 이처럼 MBTI를 향한 한국인의 사랑은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그렇다면 왜 1944년 미국 작가가 만든 ‘성격 유형 선호 지표’에 2020년대 한국인, 그중에서도 MZ세대가 열광하는 걸까?
형태는 다르지만 분류론은 언제나 우리와 함께 했다. 요즘은 기사를 스마트폰·PC 등 다양한 디바이스를 통해서 접할 수 있지만, 과거에는 신문이 유일한 수단이었다. 신문을 보면 당시 트렌드를 읽을 수 있었고, 만화·소설·칼럼 등 신문에 게재된 콘텐츠는 해당 분야에서 최고로 인정받았다. 그중 신문에서 가장 인기 있는 콘텐츠 중 하나는 ‘띠별 오늘의 운세’였다. 출생연도에 따라 12간지를 배정하고, 당일 운세를 예측했다. 이는 같은 해에 태어난 사람이라면, 모두 같은 운명을 지녔다는 의미기도 하다.
대한민국을 강타했던 또 다른 분류론은 성격이 혈액형에 의해 결정된다는 ‘혈액형 성격론’이다. 관상도 아닌 적혈구 표면의 모양으로 성격을 분류했다. 말도 안 되는 분류론이라 생각하는 사람이 있겠지만, 이는 전 세계 IQ 순위 3위·문맹률 최저를 자랑하는 대한민국에서 2010년대까지 가장 영향력 있는 분류론으로 인식됐다. 그리고 MBTI가 등장한 것이다.
A: 갑자기 이런 얘기 꺼내서 죄송한데… ENFJ세요?
B: 맞아요. 어떻게 아셨나요?
A: 사실 얼굴을 보고 바로 알았어요.
A: 제가 아는 ENFJ들은 웃는 상이 많더라고요.
A: 그들은 대부분 밝은 생각을 하고,
A: 밝은 에너지를 가지고 있거든요.
–일러스트레이터 ‘콕스’와 인터뷰 중에서-
한국인이 MBTI를 좋아하는 3가지 이유
1. 우열이 없는 MBTI
“혹시 AB형이세요?”라는 질문을 받는다면 다들 자신의 행동에 대해 돌아보게 된다. 혈액형 성격론이 대세이던 시절에는 O형으로 태어났다는 이유만으로 성격이 좋고, AB형이라는 이유로 괴상한 성격을 지녔다고 인식했다. 반면 우선 MBTI가 분류하는 16개 성격은 각자 다른 특징을 지니고 있을 뿐 우열이 없다.
MBTI가 유행하던 시절, ‘16Personalities’라는 웹사이트에서 검사를 진행했다. 검사를 완료하고 나니 ‘대담하면서도 상상력이 풍부한 강한 의지의 소유자’라는 설명과 함께 ENTJ가 나왔다. 이외에도 다른 설명이 너무나도 마음에 들었다. 스티브 잡스·고든 램지가 ENTJ라니? 당시 MBTI를 잘 모르던 나는 가장 좋은 성격으로 분류됐다는 도취감에 빠졌었고, 아랫것(?)들과의 차이를 즐기기 위해 타 유형 설명을 찾았다. 금세 내 착각이었음을 깨달았다.
▲열정적인 중재자 ‘INFP’ ▲사교적인 외교관 ‘ESFJ’ ▲논리적인 사색가 ‘INTP’ 등 나머지 15개 유형 모두 좋은 의미를 내포하고 있더라. 내 착각이 사라지긴 했지만 실망은 없었다. 모두 같은 내용이 아니라는 사실을 확인했고, 유형별 비슷한 면과 다른 면이 명확하면서도 일관성 있었기 때문이다. 이로 인해 이 검사에 대한 신뢰도가 높아졌고, ENTJ 설명을 더욱 자세히 읽었다. 설명에서 내가 추구하는 면과 내 현재 모습을 발견했고 나는 ENTJ에 대한 애착이 생겼다.
2. 내가 선택하는 내 유형
띠별 운세나 혈액형 성격론은 내가 선택할 수 없다. 내가 태어날 때 모든 것이 정해진다. 태어난 시기를 내가 결정할 수 없는데 이로 인해 운명이 정해지고, 고작 지름 8μm의 적혈구 표면으로 성격이 결정된다. 이에 반해 MBTI는 질문에 대해 스스로 선택한다. 물론 대부분의 사람이 진행하는 ‘16Personalities’가 정식 MBTI 검사는 아니지만 60개 질문이 존재하고, 이에 대해 7단계 중 하나로 대답해야 한다.
우리가 무료로 진행하는 검사가 ‘신뢰성이 있을까?’라는 의문이 들었고, 이를 해소하기 위해 어세스타(한국심리검사연구소)의 유료 MBTI 검사를 진행했다. 144개 문항에 이지선다 방식이었다. 여기서도 ENTJ가 나왔다. 검사를 진행할 때는 유료와 무료의 차이를 느끼지 못했지만, 결과 리포트를 받고 나니 돈의 힘을 체감했다. 4가지(에너지 방향 | 인식기능 | 판단기능 | 생활양식) 지표 중 자신이 선호하는 유형을 세부적으로 알려준다.
물론 유료 검사와 무료 검사에서 다른 결과를 받는 사람도 있다. 무료 검사라 할지라도 60개의 선택을 할 수 있고, 이로 인해 유형이 결정된다. 적어도 내 유형을 결정하는 데, 내 의사가 60번은 반영됐다는 의미기도 하다. 내가 A형이 되고, 용띠가 되는 데 내 선택이나 의사가 얼마나 반영됐는지를 비교하면 MBTI는 조금 더 즐겨도 되지 않을까 싶다.
3. 한국인의 토대는 성리학
종류는 달라도 어느 시대나 분류론은 인기가 있다. 한국인 왜 분류론을 좋아할까? 나는 그 이유를 성리학에서 찾았다. 대한민국은 종교의 자유가 있는 나라로, 천주교·기독교·불교 등 스스로 선택한 종교를 믿는 사람이 있으며 아무도 믿지 않는 무교인도 있다. 하지만 이 모든 사람의 정신과 사상을 이루고 있는 것은 성리학이다. 종교가 나무라면, 성리학은 나무가 자리 잡은 토양이라는 의미다. 정도전이 설계한 조선은 성리학 절대 국가였고, 정조와 실학자들의 등장 전까지는 성리학 이외는 이단 취급했다. 조선의 종교와 학문은 성리학이었고, 생각부터 행동에 모두 영향을 끼쳤다.
성리학을 직관적이고 간략히 정의하자면 ‘중요한 것은 도덕과 명분이요, 모든 것은 규정할 수 있다’다. 이로 인해 한국인의 근간을 이루는 정신으로, 그 일례가 ‘나이’다. 외국인이 한국인과 대화를 하면 항상 갖는 의문이 있다. ‘한국은 왜 나이를 묻나요?’로 처음 만난 사이에 나이를 묻는 것은 한국인에게 너무나 당연하다. 상대가 나보다 위인지 아래인지 파악하고 그와의 관계를 명확히 해야 안정되기 때문이다. 이러한 성향으로 인해 모든 것을 규정하고 싶어 한다.
상대방의 나와의 위치를 명확히 하는 것만으로 안정감을 느끼는 한국인에게 MBTI는 신선한 충격이었다. 성격‧취향 등 테스트한 사람을 직관적으로 알려준다. 앞만 보고 한국인에게 나를 파악할 수 있는 시간을 제공했고, 상대방과의 관계를 형성할 때 좋은 가이드라인이 됐다. 상대방의 정보가 부족할 때, 그와 유사한 성향을 보이는 타입을 참고하며 정보 부족에서 오는 시행착오를 줄일 수 있다.
이는 비슷한 유형의 사람이 보편적으로 좋아하는 콘텐츠를 추천하며 동영상 서비스의 새로운 시대를 연 넷플릭스와 비슷한 알고리즘을 지녔다. 정확도가 높지 않은 분류론도 좋아했던 한국인인데, 이전보다 더욱 세분화되고 믿을 수 있는 MBTI를 어찌 거부할 수 있으랴?
지눌국사가 말씀했어요.
“극단에 치우치지 말라”
물론 MBTI는 전문가가 만든 것도 아니며, 스스로 답하기에 매우 주관적인 검사다. 그렇기에 MBTI의 정의는 ‘자기선호도’ 검사이지, 실제 행동 유형 검사가 아니다. MBTI 비판론자는 이러한 점을 강조하며 ‘나는 사람을 16개로 정의 내리는 게 싫어’라고 말한다. MBTI를 좋아하는 나조차도 사람의 성격은 정확히 분류할 수 없다고 생각한다. 사람의 성격을 분류하기 위해서는 약 80억 개 유형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이마저도 그다음 생명이 태어나면, 새로운 유형을 정의해야 할 것이다.
MBTI에 과몰입하는 MZ세대가 많지만, MBTI를 상대를 규정하는 프레임으로 생각하지 않는다. 비슷한 사례로 기업은 지원자의 데이터를 모르기에 이력서를 바탕으로 사람을 예측한다. 아무리 이력서에서 높은 점수를 받았더라도 면접에서 뒤집어지기도 한다. 이처럼 상대에 대한 정보가 충분하지 않을 때 MBTI라는 데이터를 활용해 그를 예측한다. MBTI로 예측한 상대와 실제 성격이 다르다면, 대부분의 사람은 자신이 직접 경험한 데이터를 신뢰한다. 무엇이든 맹신해서도 안 되고, 무조건적으로 배척해서도 되지 않는다. 적정히 균형을 이루는 선에서 즐겨야 한다.
나를 알고 너를 아는 척도
세월이 흐를수록 경쟁을 시작하는 연령이 낮아지고 있다. 이로 인해 현대인은 자신을 돌아볼 시간도 없이 열심히 앞으로 향해 나아간다. 그러던 중 잠시 유희 거리로 MBTI를 만났고, 나도 모르는 자신을 발견했다. 이를 통해 자신이 누구인지, 상대방은 어떤 사람인지에 관심 갖는 계기를 마련했다. MBTI는 직업·학벌 등 외적 가치로 사람을 파악하던 척도를 성격·선호도 같은 내적 가치로 바꿨다. MBTI도 다른 분류론처럼 지나가는 유행일지도 모른다. 이러한 변화를 불러온 것 자체로 의미가 있으며, 미래세대가 2020년대 한국은 MBTI 시대라 부르지 않을까 싶다.
평소 좋아하는 주제인 MBTI에 대해 구상을 하기 위해 마인드맵을 그리다 보니 어느새 발해까지 나왔다. 다시금 정신 차리고 내 생각 트리를 조선시대까지만 구현하기로 했다. 매번 스스로 나름의 논리는 탄탄하다고 생각하지만 이처럼 가끔 엉뚱한 상상을 한다. 이것이 ENTJ의 특징이었더라.
Special Edit
7인 7색, DIGITAL iNSIGHT
(Feat. MBTI)
ISFP 김관식 편집장
구름 위의 코끼리
육지에서 가장 큰 동물인 코끼리는 누구보다 온화하며 세심하다. 그렇기에 주변의 감정을 살피고 관리한다. 코끼리가 지나간 발자국은 작은 동물들의 웅덩이가 되기도 하고, 배설물은 곤충의 보금자리가 된다. 항상 많은 것을 관리하는 <디지털 인사이트> 코끼리 편집장은 자신만을 신경 쓸 수 있는 곳을 찾는다. 그렇게 찾은 곳인 푸른 하늘과 하얀 구름만 있는 곳에서 거닐곤 한다.
ENTJ 김성지 기자
공능제 수달
짐작할 수 없다. 어떤 때는 누구보다 뜨겁지만, 때로는 무서우리만큼 냉정하다. 딱히 낯을 가리지 않는 스타일이라 사교성이 좋다고 보이지만, 사실 사교성이 좋은 건 아니다. 상대가 악어든, 재규어든 신경쓰지 않는 수달처럼 단지 남을 신경 쓰지 않기에 거리낌 없이 지내는 것이다. 가끔씩 너무 타인에게 공감을 못해 스스로 걱정될 때가 있다. 더 솔직히 말하면 걱정하지 않는다.
ESFJ 신주희 기자
미친 텐션 비글
살면서 내성적이라는 얘기를 들어본 적이 있을까? 텐션 끝판왕이자 리액션 부자로 주희 기자가 E라는 사실은 만난 지 5초면 알 수 있다. 이 사람은 일할 때도, 밥 먹을 때도 흥이 넘친다. 이 비글에게는 채찍은 필요 없다. 단지 흥이 식지 않을 기름만 필요할 뿐이다. 단계별 계획은 물론, 주변 동료들을 이끄는 추진력 등 부족한 면이 없다. 판만 잘 깔아준다면 알아서 미쳐날 뛸 것이다.
INFJ 이재민 기자
단호한 독수리
현재 상황을 가장 직관적으로 판단하기 위해서는 재민 기자의 미간을 보면 된다. 배려심‧이해심이 많은 사람으로 그를 둘러싼 모든 상황을 객관적으로 바라보며, 상황에 맞춰 꼭 필요한 곳을 집어준다. 절대 입 발린 소리를 하지 않는다. 다소 독하게 들릴 때도 있지만, 곰곰이 생각해 보면 맞는 말이다. 누가 어디서 무엇을 하든, 독수리 같은 재민 기자는 놓치지 않고 알고 있다.
INTJ 유해인 디자이너
집요한 여우
내가 아는 사람 중 J 함유량이 제일 높은 사람으로, 해인 디자이너와 약속을 잡기 위해서는 최소 한 달 전에는 예약을 해야 한다. 물론 예약을 한다고 무조건 되는 것 또한 아니다. 각박한 일정 속에서도 테트리스처럼 잘 끼워 넣어 어떻게든 마감 기한을 맞춘다. 심지어 남들보다 많은 일을 처리하지만 야근은 사치다. 때로는 집요하게, 때로는 현명한 여우 같은 모습이 있다.
ISTP 황철민 디자이너
결국 이기는 너구리
확실한 건 이 사람은 내성적이라서 I가 나온 것이 아니다. 꾀돌이 같은 철민 디자이너는 어떤 기자가 부탁을 하든 잘 맞춰 준다. 하지만 이는 크나큰 착각으로, 결국은 그가 의도한 대로 된다. 물 흐르듯 자신이 원하는 상황을 만든다. 모든 상황을 합리적으로 판단하면서도 누구보다 자유롭다. 이래서 ‘너구리 같다’고 표현이 생겼나 보다.
INFP 손찬호 디자이너
모두를 연결하는 고양이
고양이는 까칠함의 대명사지만, 간혹 별종이 숨어있다. 강아지보다 더 순둥순둥한 개냥이가 존재한다. 그의 표정을 보면 뚱해 보이지만, 누구보다 감성적이고 다정하다. 어디까지나 고양이라는 것을 잊어선 안 된다. 디자인도 패션도 스타일리시한 찬호 디자이너에게 자신만의 영역을 확실히 확보해 줘야 한다. 그렇다면 알아서 감성 한 스푼이 더해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