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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리에이터를 꿈꾸며, 라종민 모픽쳐스 기획 실장

그림이든, 영상이든 또다른 어떤 것이든 ‘나는 이런 콘텐츠를 만드는 사람이야.’라고 명확히 얘기할 수 있기를 바래요.

  • 진행. 한기훈 ‘한기훈 미디어커뮤니케이션 연구소’ 대표 khhan60@gmail.com
  • 사진. 포토그래퍼 주디 joonie7858@naver.com
라종민 모픽쳐스 기획 실장

디지털 인사이트 독자분들에게 본인 소개를 부탁드립니다.

안녕하세요, 영상 콘텐츠를 제작하는 모픽쳐스에서 기획 업무를 하는 라종민 실장입니다. 광고주 첫 미팅부터 촬영 전까지의 프리 프로덕션 과정을 총괄하고 있어요. 사실 학부 전공은 미술이었는데, 어떻게 하면 전시장에 걸린 내 그림 앞에 사람들이 오래 서 있도록 할 수 있을까 고민하다가 찾은 것이 영상이었어요. 스토리가 담겨있고 장면도 계속 바뀌니 한 컷의 그림보다는 시선이 좀 더 오래 머무르지 않을까 어린 마음에 생각했던 것 같습니다. 영상 배울 곳을 알아보던 중 방송, 영화분야 진출을 희망하는 지망생들이 모인 교회 영상팀에 들어가게 됐고, 영상 촬영부터 편집까지 배우며 10년 넘게 활동했죠. 이것이 계기가 되어 TVC를 만드는 아프리카픽쳐스에서 첫 사회생활도 시작하게 됐고요.

이어서 모픽쳐스에 대한 소개도 부탁드립니다.

모픽쳐스는 특정 장르나 매체에 국한되지 않고 전체 영상 콘텐츠를 제작하는 회사입니다. TVC, 기업홍보 영상, 캠페인 영상 등 다양한 작업을 하고 있죠. 2011년에 강성모 감독이 1인 회사로 창업했고, 저는 2014년에 합류해 올해로 7년째 같이 일하고 있어요.
모픽쳐스의 영상을 두 가지 키워드로 정리하자면 ‘공감’과 ‘다르게’입니다. 저희가 인터뷰 영상도 많이 제작하는 편인데, 인터뷰이의 마음속 이야기를 진솔하게 잘 끄집어낸다는 이야기를 많이 들어요. 그러다 보니 저희 영상을 보시는 분들도 그 안에 담긴 진정성에 많이 공감해 주시죠. 앞으로도 많은 사람이 공감할 수 있는 영상을 만들고 싶어요.
또 한 가지 키워드 ‘다르게’는 회사 초기 상황과 연결되는데, 작은 규모로 회사를 시작하다보니 초반에는 광고주 폭도 좁고 예산이 작은 프로젝트가 많았어요. 대신 상대적으로 클라이언트 간섭과 리스크는 적고, 크리에이티브 측면에서 자율성은 많이 주어졌습니다. 그래서 평소에 하고 싶었던 형식이나 아트워크를 많이 녹여낼 수 있었고, 그런 작업이 쌓이다 보니 ‘모픽쳐스는 다른 곳과 달리 아트워크나 아날로그적인 감성을 잘 활용하는 곳’이라는 색깔이 만들어진 것 같아요.

모픽쳐스의 대표 작품을 뽑아 주신다면?

먼저, 기아대책 식수지원 캠페인의 바이럴 콘텐츠 ‘1리터의 생명(1Liter for Life)’이 떠오르네요. 2013년도에 작업했던 영상으로, 온에어 1년이 채 되지 않아 국내 NGO 영상 중엔 처음으로 유튜브 조회수 100만을 넘겼었죠(현재 125만). ‘바이럴이 이 정도 파워가 있구나’를 경험했던 기억이 나는데, 특히 이 영상을 보고 프로젝트 관련 문의도 많았어요. 덕분에 국내에 있는 많은 NGO 단체와 미팅을 하게 됐었습니다.
대형 규모로 여러 팀과 협업했던 건으로는 인천공항, 라인프렌즈를 소재로 한 ‘Play Like A Champion!’편이 있는데요. 제2여객터미널 개장, 평창동계올림픽 등의 이슈를 라인프렌즈 캐릭터들이 새로운 공항에서 동계올림픽 종목들을 즐기는 모습으로 풀어낸 영상입니다. 그 밖에도 세이브 더 칠드런 모자뜨기 캠페인 영상을 저희가 두 번 정도 제작했는데, 털실로 만든 소품들을 스탑모션으로 연출해 모픽쳐스만의 색을 잘 보여줬던 포트폴리오라고 할 수 있겠네요.

‘1리터의 생명(1Liter for Life)’
‘Play Like A Champion!’

평소 영상 아이디어는 어떻게 얻으시는지 궁금합니다.

정말 어려운 일인데요(웃음). 매일 하는 일이면서 할 때마다 어려운 것이 있는데, 영상 아이디어를 찾는 것이 저에겐 그런 일 같습니다. 우선, 저는 정말 많이 찾아요. 제 아이디어가 나오기까지 서치가 차지하는 비중이 절반 이상인데, 필요하다면 책이나 영화는 물론이고 관련된 분들 인터뷰도 적극적으로 하고 있어요. 제가 느끼기에도 자신을 굉장히 괴롭히면서 아이디어를 찾는 스타일이지만, 기발하게 탁! 떠오르는 아이디어조차도 자료 조사에서 나온다고 생각합니다.

앞으로 꼭 만들어 보고 싶은 영상이 있다면 어떤 것일까요?

미술과 영상을 할수록 이 작업들의 종착점은 영화라는 생각이 들어요. 스토리는 물론 미장센, 개인의 생각들을 모두 담아낼 수 있으니까요. 사실 저는 모픽쳐스에 와서 스탑모션이라는 장르를 처음 알게 됐는데, 관련 작업을 하면서 해외 스탑모션 영상이나 관련 프로덕션을 많이 찾아보게 됐어요. 그중에서 웨스 앤더슨 (Wes Anderson) 감독의 영상을 많이 보게 되었는데, 특히 올스탑모션으로 제작한 애니메이션 <판타스틱 Mr. 폭스>가 인상적이었습니다. 동물 캐릭터들의 털 한 올 한 올을 아주 섬세하게 살려 표현 했거든요. 저도 제가 가진 생각들이나 작업의 소재들을 스탑모션 영화로 제작해보고 싶다는 생각을 해봐요. 예산이 가장 큰 걸림돌이긴 하겠지만, 좋은 기회가 연결된다면 크게 한 번 판을 벌려 마음껏 펼쳐보고 싶네요.

잊지 못할 인도 여행 기억이 있다고 들었어요.

앞서 짧게 말씀드린 것처럼 학부 때 비디오 아트에 관심을 가지게 되면서 그림 그리는 시간보다는 영상을 찍고 편집하는 시간, 그리고 이 영상을 보여주기 위한 장치로 설치물들을 만드는 시간이 더 많았던 것 같아요. 그러다 4학년 여름 방학에 갔던 인도 여행이 영상에서 돌아와 다시 페인팅에 집중하게 된 터닝 포인트가 됐죠.
낙타를 타고 사막을 횡단하는 사막 사파리가 인도 여행의 백미라 할 수 있는데, 제가 탄 낙타가 갑자기 발작을 일으켜서 그대로 땅에 떨어졌어요. 사막 한가운데라 병원을 갈 수도, 정확한 몸 상태를 알 수도 없었는데 소문이 퍼져 영업에 차질이 생길까 빨리 내보내려는 현지인들과 대치까지 했죠. 무사히 한국에 돌아와 한 달 동안 입원 후 보호대를 차고 학교에 다니게 됐는데, 도저히 영상이나 설치물 작업은 못하겠더라고요. 졸업전시회는 준비해야하고 어쩔 수 없이 페인팅으로 돌아왔는데, 막상 해보니 그게 너무 재미있었어요. 그동안 영상 작업한다고 제대로 못 했었는데, 막다른 상황에서 다시 시작하고 나서 그 매력이 너무 크게 다가오더라고요.

그래서 지금도 그림과 영상, 두 가지 일을 병행하고 계시는데, 어려움은 없나요?

여러 어려움에도 그것을 뛰어넘는 즐거움이 있으니 할 수 있는 것 같아요. 작품 활동만으로 생활비와 작업비가 충당되는 극소수의 작가들을 제외하고 대부분의 작가는 겸업을 하는데, 그렇다고 해도 저 스스로 당당하게 ‘작가입니다.’라고 이야기하기에 많이 부끄럽긴 합니다. 시간적 투자나 집중도 측면에서 부족하다는 생각이 들거든요.
제일 어려운 점은 별도로 시간을 내야 한다는 것, 그리고 작업이나 전시에 필요한 비용을 알아서 충당해야 한다는 거에요. 대신 이 어려움을 전부 상쇄하고도 남을 만큼 좋은 점은 제가 정말 무언가를 창작하는 사람이라는 느낌을 직접적으로 받는다는 것이에요. 광고는 대개 누군가의 의뢰를 받아 하는 일이다 보니 저의 만족보다는 클라이언트의 만족을 앞에 두게 되는데, 그 아쉬움을 저만의 그림을 그리고 또 그걸 누군가에게 소개하는 데서 해소하는 것 같아요. 삶의 균형을 맞춰주는 과정이죠.

작가들에게 겸업이 일반적이라고는 해도, 일과 작업을 배분하는 것은 어려울 것 같은데요?

저도 두 일 사이의 우선순위를 두고 시간 배분하는 것에 능숙하지 못한데, 그래서 택한 방법이 일단 전시를 잡고 보는 거예요. 어찌 됐든 제가 외부와 공식적으로 계약을 맺으면 여러 사람들과 한 약속을 지키기 위해서라도 우선순위를 조절해 일하게 되거든요. 그런 기회들이 있어야 좀 더 집중할 수 있는 것은 사실이라, 정말 작업을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면 전시를 잡거나 주변 지인들과 프로젝트를 추진해요. 어찌 보면 일을 만들어서 조율해 나가는 셈이죠.

그렇다면, 화가로서 라종민은 무엇을 추구하나요?

사람들이 예술의 역할에 대해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많이 하죠. 저는 사람들에게 감동을 주는 것이야말로 예술이라 할 수 있다고 생각해요. 물론, 어느 작품을 본 후 사람들이 보이는 반응엔 온도 차가 있겠죠. ‘아!’ 하고 짧게 동조하는가 하면, ‘아~’ 하고 깨달음을 얻을 수도 있고, 아니면 ‘와~’ 하고 깊은 감탄을 할 수도 있으니까요. 그것이 무엇이 됐든 사람에게 자극을 주고, 그들로 하여금 감탄사를 뱉어내게 하는 것이 예술의 역할이라고 생각합니다. 저 역시 그 한마디를 듣기 위해 작업하는 것 같고요. 좀 더 나아가서 저는 그림을 그리며 스스로 힐링하는 부분이 있는데, 저와 비슷한 감정을 느끼셨던 분들에게 제 그림이 위로와 감동이 되면 좋을 것 같습니다.

최근에 진행하셨던 작품 활동이 궁금해지네요.

작년 6월에 약 7년 만에 개인전을 열었어요. 그전까지는 조금씩 그림을 그리거나 지인들과 프로젝트 성격의 작업들을 주로 했었는데, 왜인지 모르게 작년에 문득, ‘올해 개인전을 안 하면 앞으로 다시는 전시를 할 일이 없겠구나.’라는 불안감이 들었죠. 그래서 무작정 작업실을 구하고, 작업실을 열었다고 소문을 냈어요. 그랬더니 전시 의뢰가 들어 오더라고요.
아주 오랜만에 제대로 전시를 준비하다 보니 설레기도 했지만 스스로에게 불만족스러운 부분도 많았는데, 그럼에도 과정은 아주 즐거웠어요. 작품 완성에 대한 스트레스나 무언가 보여줘야 한다는 압박감 속에서도 그림을 그리며 콧노래를 부르는 제 모습을 발견하고 놀라기도 했죠. 다만 전시장이 광주여서 약간 아쉬움이 남아요. 작품을 통해 사람들과 소통하고자 전시를 하는 건데, 거리가 멀어 많은 분들께 보여드리기에는 한계가 있었거든요. 소통 측면에서 아쉬움이 남아 어떻게 해서든 올해에도 그런 자리를 만들어야겠다 생각 중이에요. 연말 정도에 다시 한번 개인전을 열어 볼까 계획하고 있습니다.

전시기획 일도 하셨었나요?

첫 직장이었던 아프리카픽쳐스를 그만두면서 대학원에 돌아와 원래 전공인 미술 공부를 다시 했는데, 막 졸업할 무렵 마침 집 근처 송도 트라이보울에서 고 백남준 선생님 특별전이 열렸어요. 처음에는 ‘백남준학(學) 한 학기 더 듣는다고 생각하자’라는 마음으로 자원봉사 도슨트에 지원 했었죠. 꽤 스케일 있고 유명한 작업들이 많이 들어왔었는데, 관람객이 많이 없어서 거의 온종일 작품을 보고 관련 책, 논문을 읽었던 것 같아요. 또 당시 자원봉사자들은 매일 보고서를 내야 했는데 관람객이 적었던 터라 거기에 작품 분석이나 관련 글을 써서 제출 했었죠. 그런데 그것을 보신 디렉터 선생님이 혹시 같이 일해볼 생각 없느냐고 제안해 주셔서 그해부터 코디네이터로 일을 하게 됐고, 마지막에는 어시스턴트 큐레이터로서 전시 기획 일 까지 경험할 수 있었어요.

그러면 그동안 어떤 전시를 함께 기획하셨는지 궁금합니다.
대략 3년 반 정도 일하며 여러 전시를 진행했는데요, 말씀드렸던 트라이보울 백남준 특별전을 시작으로 같은 해에 포항시립미술관 백남준 특별전 다음 해에 경남도립미술관에서 미국현대미술전, 그리고 그 다음 해에 올림픽 공원 내 소마미술관에서 열린 백남준 탄생 80주년 특별전이 대표적이라 할 수 있을 것 같아요. 비록 백남준 선생님이 살아 계실 때 직접 뵌 적은 없지만, 그분의 가장 가까운 곳에서 작업을 도왔던 이정성 아트마스터, 라파엘레 셜리(Raphaele Shirley), 노먼 발라드(Norman Ballard) 같은 분들과 함께 비디오 아트의 한 가운데서 일해보는 소중한 기회였어요.

현재는 예술가 백남준을 어떻게 바라보실지 궁금합니다.

우선은 너무 열렬한 팬이에요. 살아계실 때 왜 못 만나봤을까 하는 안타까움이 들 만큼 미술사적으로나 인간적으로나 굉장히 대단한 분이라고 생각합니다. 우리나라에서는 상대적으로 덜 부각되지만, 그 긴 미술사에 비디오 아트라는 장르를 처음으로 만드신 분이니까요. 개인적으로는 지금의 BTS나 봉준호 감독만큼 충분히 평가받아야 한다고 생각해요.
특히 저는 그분의 추진력과 통찰력은 정말 대단하다고 생각해요. 인류는 대중매체에 지배당하게 될 것이라는 조지 오웰(George Orwell)의 소설 <1984>에 대한 반항으로 1984년 1월 1일에 진행한 세계 최초의 인공위성 생중계 쇼 ‘굿모닝 미스터 오웰’, 그보다 11년 전인 1973년에 제작된 ‘글로벌 그루브’ 초반에 담긴 ‘앞으로 TV 가이드는 맨해튼 전화번호부만큼 두꺼워질 것’이라는 내레이션만 보더라도 알 수 있죠. 한참 백남준 관련 일을 할 때보다 요즘 더욱 와 닿는 부분이 있는데, 그래서인지 지금에 와서 연구하면 더 재미있는 예술가라는 생각도 듭니다.

그렇다면 백남준 이외에 가장 좋아하는 화가는 누구인가요?

네덜란드 화가로 알려진 히에로니무스 보스의 그림을 아주 좋아해요. 1450년에 출생했음에도 이미 초현실주의적인 작업을 했고, 그래서 20세기 초현실주의 운동에 영향을 끼쳤다고 평가받는 작가죠. 활동 당시보다 후세에 더 유명한 천재 작가로 불려요. 개인적으로도 영향을 많이 받았고요. 그런데 사실은 그냥 꾸준히 자기 작업을 하시는 분들은 누구나 다 존경스럽고 멋있어요. 다수든, 소수든 누군가의 감탄을 끌어낸다는 것은 정말 대단한 일이니까요.

영상 기획자, 큐레이터, 작가 중 더 매력적인 것은?

자기 작업을 하는 작가가 물론 매력적이긴 하지만, 크게는 영역별 소재만 달라질 뿐이라고 생각해요. 주위에서 그동안 왜 이렇게 다른 영역의 일을 해왔냐는 질문을 하기도 하는데, 영상이라는 소재로 기획하는 게 지금 제가 모픽쳐스에서 하는 일이라면, 미술품을 가지고 기획하는 것이 큐레이터의 일이라고 생각해요. 작가로서 작품 전시를 준비하는 것 역시 결국엔 자신을 기획하는 일이죠. 다루는 소재만 다를 뿐 무언가 기획을 한다는 관점에서 그 결은 같다고 생각합니다.

지난해 뉴욕에 다녀오셨는데, 어떤 활동을 하셨나요?

5년 전, 한 달간 머물렀을 때의 기억이 좋아 지난해 가을에도 휴가를 내서 다녀왔어요. 백남준 전시를 같이했던 디렉터 선생님이 뉴욕에 계시는데, 그분께 가서 뉴욕과 뉴욕 근교에 있는 미술 작품들을 보고 다녔죠. 한동안 전시 준비한다고 제 작업만 보다 보니 남이 해 놓은 작업들이 너무 보고 싶었거든요. 눈 뜨면 밥 먹고 밖으로 나가 종일 미술품을 보고, 돌아와 그날 본 것에 대해 이야기하는 생활을 3주 정도 했어요.
뉴욕 어포더블 아트페어(Affordable Art Fair)는 지금도 기억에 남는데, 사람들이 미술품을 가깝게 생각하고 전시나 페어를 축제처럼 즐기는 모습이 너무 보기 좋았거든요. 사실 국내 전시장에서는 사람들이 작품 앞에서 여러 가지 잣대로 평가를 한다는 느낌을 받을 때가 있는데, 뉴욕에서 본 사람들은 그저 순수하게 작품 그 자체를 감상하는 듯한 인상을 받았어요. 물론, 저 역시 작가와 작품을 분석하던 버릇이 있었는데 이번에는 다 잊고 즐기면서 힐링하고 왔네요.

끝으로 앞으로 10년 뒤 본인의 모습을 그려본다면?

저는 크리에이터이고 싶어요. 제 업을 소개하면 사람들은 아주 크리에이티브하고 주도적으로 에너지를 발산하는 모습을 기대하지만, 사실 일을 하면서 이따금 느끼는 어떤 헛헛한 감정들이 있어요. 물론 이 또한 기획의 일부라고 생각하죠. 분명 주어진 여건과 환경에 순응해야 하는 요소들이 있으니까요.
크리에이티브를 다루는 일을 하고 있지만 ‘나는 크리에이터인가?’라는 질문에 늘 막히곤 해요. 이 답을 찾고 싶어 전시와 영화를 보고, 개인 작업도 하며 나만이 할 수 있는 콘텐츠를 찾고 있죠. 10년 뒤에는 그림이든, 영상이든 또다른 어떤 것이든 ‘나는 이런 콘텐츠를 만드는 사람이야.’라고 명확히 얘기할 수 있기를 바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