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치지 않는 광고 Pathfinder
당당한 광고인과 양심적인 클라이언트를 바라며.
Park Sun Mi
지치지 않는 광고인 박선미 대홍기획 상무/본부장
잘 만든 광고 하나가 열 품목 부럽지 않게 기업 매출로 연결된다지만, 그런 광고가 어디 쉬이 만들어질 수 있을까. 단순히 제작 비용을 많이 들인다 해서 모두 통하는 것도 아니고 말이다. 이름만 대면 누구나 알고, CM을 따라 흥얼거릴 수 있는 광고를 수없이 만들어온 그녀가 그래서 더 대단해 보였다. 하지만 그런 그녀의 시선이 향하는 곳은 단순히 대박 광고만이 아니었다. 2017년 마지막 인사이트 리더, 박선미 대홍기획 상무/본부장의 이야기를 들어보자.
먼저 월간 DI 독자들에게 본인 소개를 부탁한다.
올해로 광고계에 들어온 지 27년 차가 됐고, 대홍기획이 광고 회사로는 네 번째다. 1992년도에 광고회사 카피라이터로 입사해 지금까지 한 우물을 파고 있다. 돌이켜보니 광고계가 굉장히 흥했던 호황기부터 IMF 외환위기, 그리고 주요 채널이 온라인으로 넘어오던 일련의 시대 분위기를 모두 겪었다. 중간에 몇 개월간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팬시 분야의 사업을 한 경험도 있었지만, 다시 광고로 돌아와 2000년도에 대홍기획에 차장 카피라이터로 입사했다. 그리고 CD를 거쳐, 현재는 ECD로 크리에이티브 솔루션 본부장을 맡고 있다.
대홍기획은 어떤 회사인가?
1982년도에 설립된 롯데그룹의 인하우스에이전시다. 전통적으로 롯데가 워낙 제과나 음료 등 유통업계에서 강세를 보여온 만큼 대홍기획 역시 관련 분야의 광고와 함께 성장해왔다. 즐겁고 유쾌한 광고, 소비자에게 공감을 주는 광고를 많이 만들어 왔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그룹 계열사이긴 하지만 최근에는 내부 광고주보다 외부 영입한 광고주가 조금 더 많은 상황이고, 특히 회사의 성장세는 외부 광고주 영입에서 높게 나타나고 있다. 여전히 성장을 지속하고 있는 회사로, 대형 광고 회사이지만 시대의 흐름과 변화에 따라 내부적으로 다양한 솔루션을 가져가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지금까지 한 광고 중 기억에 남는 몇 편을 소개해 달라.
아주 오래전 썼던 라네즈 ‘만지고 싶은 피부’ 캠페인과 설화수 캠페인, ‘자기 전에 씹는 껌’ 자일리톨 껌 론칭 광고, ‘휘바휘바’ 캠페인 카피, 그리고 나뚜루 아이스크림 론칭 캠페인 등이 있다. 물론 지금까지 진행했던 모든 광고가 자랑스럽다고 말하긴 어렵지만, 정성을 많이 들였던 광고를 꼽자면 자일리톨 껌 캠페인과 ‘미녀는 석류를 좋아해’를 들 수 있겠다. 자일리톨 캠페인 중 ‘휘바휘바‘ 캠페인은 카피를 생각할 때 핀란드 대사관에 전화를 걸어 어렵게 관계자와 대화하다 찾아낸 단어였고, ‘미녀는 석류를 좋아해’는 네이밍부터 직접 생각한 캠페인이라 특히 기억에 남는다.
디지털, 테크 분야에 많은 관심을 두고 있는 것으로 안다. 해당분야에 관심을 갖게 된 계기가 있다면?
2009년에 중국 상하이에서 개최된 뉴욕페스티벌에 심사위원 자격으로 참가를 했었는데, 당시 우리나라에서 상을 받으러 온 분들이 엄청난 걸 가지고 왔더라. 그 중 하나가 심장 소리를 사용한 크리에이티비아(Creativia)의 ‘리슨(Listen)’ 캠페인으로, 칸 라이언즈에서 수상하기도 했던 작품이다. 당시에 이 광고를 처음으로 접하고나서 너무 놀라고 충격을 받았는데, ‘저런 캠페인을 우리나라에서도 하고 있고, 앞으로 디지털 시대에 통하겠구나’라는 생각을 했었다. 이때를 기점으로 디지털 분야에 대한 관심이 더 생겼고, 해당 분야에서 활동하는 많은 사람들과 네트워크를 쌓으려 노력했다.
스마트폰이 막 확산되던 2012년에는 디지털 분야에서 직접적인 경험을 쌓기 위해 인턴생활을 하기도 했다. 최근에는 디지털 퍼포먼스에서 앞서가는 대홍을 알리기 위해 나름대로의 노력을 하고 있는데, 그 일환으로 3년 전부터 준비해 작년까지 대홍 ICS(Innovative&Creative Show, 이노베이티브&크리에이티브 쇼)를 총괄 기획했었다. 대홍 ICS는 스타트업이나 중소 디지털 회사의 기술과 대홍기획의 아이디어를 결합한 혁신적인 디지털 마케팅 사례를 제안하는 쇼로, 그 결과 대외적인 상을 받기도 했다.
10여 년 전 ‘광고는 죽었다’는 말이 있었다. 지금의 광고는 어떤 모습이라고 생각하는가?
요즘은 한마디로 광고를 규정할 수 없는 시대라 대답하기가 참 어렵다. 이제 누군가에게 나를 소개할 때 ‘광고 만드는 크리에이터입니다’라고 말하지 않는다. 이는 스스로 업에 대한 규정을 새로 해야 하는 시대가 되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내가 하는 일이 어디서부터 어디까지를 커버할 수 있는지 설정해야 할 텐데, 이 역시 쉽지 않아 나는 ‘Pathfinder’라는 표현을 자주 쓴다. 멋있게 해석하면야 먼저 나가 탐색을 하는 사람이지만, 동시에 방황하는 모습을 내포하기도 하는 단어다. 어디로 가야 할지 모르기에 남들보다 조금 앞서서 주변을 살펴보며 찾아가는 중이다. 오늘날의 광고를 두고 ‘뭔가 새로운 주목거리를 만드는 것, 몰입하게 만들고 행동하게 만드는 것’이라고 막연하게 얘기하기도 하지만, 사실 지금 광고의 모습은 그만큼 형태가 없다. 한마디로 규정하기란 쉽지 않은 것 같다.
어떤 모습으로든 계속해서 광고는 변화하고 진화할 것이다. 그것의 형태를 이렇다 구체적으로 예측할 순 없지만, 분명한 것은 디지털 혹은 그 무엇이 됐든 사람의 가치가 더 강화될 것이라는 점이다.
그렇다면 10년 뒤 광고는 어떤 모습일까?
어떤 모습으로든 계속해서 광고는 변화하고 진화할 것이다. 물론 그것의 형태를 구체적으로 예측할 수 없지만 분명한 것은 디지털, 혹은 그 무엇이 됐든 결국 사람의 가치가 더 강화될 것이다. 디지털이 발전하면 할수록 아날로그적인 감성, 인간적인 인사이트를 던질 수 있는 것들이 광고의 소재가 될 것이라고 확신한다. 크게는 그런 모습으로 변화해 나갈 것이고, 현업에 있는 분들이 함께 풀어나가야 할 숙제라고 생각한다.
디지털 프로젝트나, 프로덕트 이노베이션 등의 일을 하다 보면 클라이언트들이 합당한 대가를 주지 않는 경우도 있다고 들었다. 어떻게 개선해야 할까?
국가적인 정책이나 지원책이 있었으면 좋겠다. 현재 정부에서 다른 뉴미디어 사업 같은 것도 많이 하는 걸로 알고 있고, 스타트업이나 디지털 회사들의 수익에 대해서도 다양한 연구를 한다고 들었다. 하지만 실제정책화 되지 않는다면, 지금처럼 광고 서비스 영역에 머물 것이다. 최근에는 상생에 대한 이슈가 부각되고 그만큼 외부 기업과 협업하면 좋은 것들도 많은데, 이것이 보장되려면 우선 정책이 뒷받침되어야 할 것이다. 그렇지 않다면 적어도 계도적인 방안이라도 있었으면 좋겠다. 우리가 하는 일은 지적인 수익으로 연결되지 않는가. 아이디어를 냈는데, 금방 모방되기 일쑤다. 광고인은 당당해지고, 클라이언트는 조금 더 양심적이었으면 좋겠다. 현업에 있는 사람들만이라도 먼저 의식 개선이 필요하지 않을까 싶다.
해외 광고도 자주 챙겨 보는 편인가?
광고제 수상작들은 트렌드를 파악하기 위해서라도 일부러 보고 있는데, 그 밖에도 유튜브에서 다양한 디지털 클립을 보는 편이다. 이를테면 디지털에서 인기 있는 영상은 조회 수가 왜 높은지, 분명 완성도는 떨어지는데 매력도가 높은 것들은 왜 그런지 파악하기 위해서다. 키워드 검색으로도 찾아보고 있다. 해외의 것을 보다 보면 나라별로 감성에 차이점은 있는 것 같은데, 그럼에도 사람이 가진 인사이트는 만국공통이라는 생각이 든다. P&G의 땡큐맘(Thank You, Mom)은 아이디어도 좋고, 누가 봐도 공감대를 형성하며 좋은 광고라는 데에 이견이 없지 않나. 진정성에 대한 문제와도 연결되는 것 같다.
https://www.youtube.com/watch?v=_tcgDe6PwFA
해외 광고 회사 중 관심 있게 지켜보는 곳이 있다면?
에이케이큐에이(AKQA)와 드로가5(Droga5) 두 곳에 관심이 많다. 드로가5는 문제해결(Problem-Solving)의 관점으로 제일 앞장서있는 업체라고 생각하는데, 그런 면에서 가끔은 존경스럽기까지 할 때가 있다. 또 전에 일본에서 열린 어느 세미나에 참석해 에이케이큐에이의 CCO(Chief Creative Officer)인 이나모토 레이의 강연을 들었던 적이 있는데, 사람의 감성을 디지털에 최적화시키는 데에 있어 사람을 중심으로 체험화 한다는 것에 감동을 받았었다.
최근 아날로그의 가치가 부각되고 있다. 신문, 잡지 등 종이매체도 생명력을 지속할 수 있을까?
최근 사보협회 커뮤니케이션 대상 심사를 맡은 적이 있다. 웹진 외에도 오프라인 매체가 굉장히 많았는데, 협회장님께 앞으로 이런 사보나 인쇄물에 대한 업계 전망을 어떻게 하고 계시는지 여쭤봤더니 의외로 많은 분들이 종이 매체에 대한 선호도가 있다고 말씀하셨다. 사람이 살아있고 존재가치를 느끼는 한 종이에 대한 가치는 유효하다고 본다. 나 역시 아날로그 세대에 걸쳐있긴 하지만, 책을 디지털로는 못 읽겠다. 종이 매체가 사양의 길로 접어들 것이라는 얘기는 이전부터 한참 있었지만, 이것은 사실이 아닌 것 같다. 미디어에 따라, 그 역할을 누가 어떻게 키워가는지에 따라 상황은 달라지지 않을까.
광고 ‘회사’를 바라보고 들어오는 사람은 직장인일 뿐이다. 규모는 중요하지 않다. 어딘가에 들어가 실력만 키워라, 그렇다면 길은 생길 것이다.
많은 이들이 꿈꾸는 대홍기획, 입사하기 위해서는?
평소에 이 질문을 참 많이 듣는데, 그럴 때면 회사를 바라보고 들어오는 사람은 직장인일 뿐이라고 답한다. 반대로 광고 그 자체를 바라보고 일을 한다면 회사는 열려있다. 어딘가에서 광고를 하고 있고, 실력이 있다면 작은 곳에서 광고를 시작했다 하더라도 대홍기획에 못 들어올 이유는 없다고 생각한다. 대홍기획도 직원들의 입사와 퇴사에 일정 패턴이 있는데, 30% 이상의 직원들이 작은 스튜디오에서 들어오는 편이다. 그런 친구들은 조직력으로 성장한 것이 아니라 스스로 다양한 경험을 하고, 일당백을 하던 경우가 많아 오히려 개인기가 강하다고 생각한다. 광고와 관련된 어딘가에 들어가 실력만 키워라, 그렇다면 길은 열릴 것이다.
광고를 오래 할 수 있는 비결은?
어떤 일이든 ‘일은 자신의 신념과 같다’고 생각한다. 즉, 광고를 내가 가장 좋아하는 일이라고 믿어야 한다. ‘광고의 매력은 매일 새로운 일을 할 수 있는 것’이라는 기분 좋은 마법을 스스로에게 걸어보는 거다. ‘오래 하자’ 라고 결심하며 일하는 것이 아니라, ‘내가 좋아하는 일을 매일매일 새롭게 해보자’라고 믿고 즐기며 한다고 할까. 그러다 보니 27년차가 되어 간다.
광고가 아닌 다른 분야에서 해보고 싶은 일이 있다면?
70대가 됐을 때 재즈 트럼펫터가 되리라는 다짐으로 지금 열심히 배우고 있다. 일본 덴츠(Dentsu)에 친한 ECD가 있는데, 재즈 피아노를 하는 카피라이터이다. 일본에 갈 때마다 연락하면 그분이 늘 재즈바로 초대를 하시는데, 자그마한 바에 피아노와 잼을 할 수 있는 연주공간이 있다. 사장님 역시 덴츠에서 오디오 PD를 하시던 분으로 그곳 분위기가 너무 좋았다. 정식으로 트럼펫을 배운 건 올 여름부터였다. 비 내리는 어느 우울한 날, 종로에 있는 학원을 다니다가 우연히 빌딩 옆 작은 간판 하나를 보게 됐는데 음악학원이었다. 입구를 찾아 올라가 원장님께 트럼펫에 관심이 있다 하니 그 자리에서 트럼펫을 꺼내 보여주며 한번 불어보라고 하셨다. 남들은 어렵다고 하는데 바로 소리가 났고, 당장 시작하겠다는 결심은 없었는데 왠지 모르게 빠져들어 본격적으로 배우게 됐다.
하고 싶은 광고를 하라. 광고 분야는 예전처럼 광고 그 자체를 잘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누가 더 오래할 수 있는가의 싸움이 됐다.
마지막으로 후배 광고인들에게 한마디 남긴다면?
하고 싶은 광고를 하라고 말해주고 싶다. 광광고 분야는 예전처럼 광고 그 자체를 잘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누가 더 오래 할 수 있는가의 싸움이 된 것 같다. 다른 분야도 마찬가지겠지만 특히 내 맘대로 잘 안 풀리는 경우가 많고 스트레스가 높으며, 하루에도 수십 번씩 퇴사를 고민하기도 하는 곳이 광고계라고 생각한다. 클라이언트가 요구하는 광고만 하게 된다면 내가 하고 싶은 광고를 못 하게 될 것이다. 재능기부가 됐든, 다른 선제적인 형태의 일이 됐든 앞서도 말했듯 내가 하고자 하는 광고를 하며 균형을 잘 맞추는 것이 중요하다. 지치지 않는 광고인이 되기를 바란다.
(자세한 인터뷰 내용은 디아이매거진 12월호를 통해 만나보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