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도는 사라질 수 있을까?
최적화를 넘어, 사라지는 것을 지향해야 하는 서비스들

글. 박승원 와이어링크 TX그룹 TX 컨설팅 선임연구원
브런치. https://brunch.co.kr/@seung-park
몇 년 전, 한 IT 회사에서 길 안내를 해주는 펭귄을 소개한 적이 있다. 실제 펭귄이 아닌 증강현실(AR) 펭귄으로, 목적지 설정 후 지금 보고 있는 길을 카메라로 비추면 길 위에 펭귄이 나타나 길을 안내하는 일종의 내비게이션 서비스다. 사용자는 ‘전방 50m에서 우회전’과 같은 복잡한 안내 없이 펭귄을 따라가기만 하면 목적지에 도착할 수 있다.
당시 인터뷰를 진행했었는데, “디지털 맵의 궁극적인 목표는 사라지는 것입니다”라는 문장이 인상적이었다. 지도 없이 길을 찾을 수 있다면 지도는 필요 없다는 의미였다. 구글에서도 비슷한 시기에 AR 여우가 길 안내를 해주는 내비게이션을 선보였다. 지도로 길을 찾기 어려워하는 보행자를 위해 내비게이션에 AR 기술을 도입한 것이다. 하지만 현재 이런 서비스를 사용하는 사람은 많지 않다. 이미 완성된 기술인데, 크게 상용화되지 않은 이유는 무엇일까?

지도가 전달하는 길 찾기 경험
경험의 관점에서 보면 귀여운 캐릭터가 길잡이가 돼주는 내비게이션은 일반적인 내비게이션보다 좋은 경험이 될 수 있다. ‘500m 직진 후 좌회전’이라는 지시문을 따라 지도를 따라가는 것보다 실제와 동일한 화면 속 거리에 나타난 캐릭터를 따라가는 것이 훨씬 쉽고 즐겁기 때문이다. 심지어 이와 같은 서비스는 게이미피케이션(gamification)에도 용이하다.
게이미피케이션은 게임이 아닌 분야에서 문제 해결 과정에 게임적 사고나 요소 등을 적용하는 것이다. 내비게이션의 게임화라고 생각하면 쉽다. 게임화된 서비스는 참여자의 흥미를 유발하고 몰입도를 높인다. AR 내비게이션에서는 근처 상점의 쿠폰 등을 마치 게임의 보상과 같은 요소로 얻을 수 있다. 슈퍼마리오가 길을 지나가며 코인을 획득하듯, 지나는 길목에 있는 광고상품을 보상(쿠폰)의 형태로 습득하는 방식이다. AR 내비게이션은 기존 디지털 맵 서비스보다 더 쉽고 즐거운 경험을 제공할 수 있다.
그러나 간과한 사실이 있다. 지도를 보고 길을 찾기 어려워하는 사람들은 처음부터 지도로 길을 찾지 않는다는 점이다. AR 내비게이션은 기존 지도와 내비게이션보다 쉽고 재미있는 서비스이지만, 비교 대상이 잘못 선택됐다. AR 내비게이션의 경쟁상대는 기존 내비게이션이 아니라 ‘지도가 어려운 사람의 평소 길 찾기 수단’이다. 그것은 친구가 적어준 길치 맞춤형 안내문(지하철역을 나와서 50걸음 직진하면 보이는 편의점 끼고 오른쪽과 같은)일 수도, 길가에 붙은 이정표거나 친절한 동네 주민의 안내일 수도 있다.

지도가 어려운 사람들은 굳이 어려움을 감내하며 지도를 보려 하지 않는다. 그들은 이미 자신만의 대체수단을 찾아뒀기 때문이다. 귀여운 동물 캐릭터가 그것을 대체하기는 어려웠던 것으로 보인다.
최적화는 정답이 아닐 수 있다
AR 동물 캐릭터들의 길 안내는 기존 내비게이션의 자리를 대체하지 못했다. 그러나 ‘지도의 최종 형태는 사라지는 것’이라는 관점에서는 배울 점이 있다. 경험의 본질에 대한 날카로운 통찰이기 때문이다. AR 내비게이션은 최적화된 길 안내라고 볼 수 있다.
하지만 그것이 기존 지도나 내비게이션을 완벽히 대체할 수는 없었다. 기존 지도로 길을 잘 찾는 사람들은 굳이 친숙하지 않은 방법으로 넘어갈 필요가 없었고, 기존 지도로 길을 찾지 못하는 사람들은 이미 지도로 길을 찾고 있지 않았기 때문이다. 결국 누구에게도 더 나은 경험을 주지 못했다. 최적화된 서비스와 좋은 경험을 제공하는 것은 별개로 봐야 한다.
호텔 체크인을 빠르고 편하게 하기 위해 프런트 직원을 없애고 무인 키오스크로 운영하는 것은 좋은 최적화가 될 수 있다. 대부분의 현대인은 예약할 때 받은 QR코드를 사용할 줄 알고, 불필요한 대화를 원하지 않는 사람이 많기 때문이다. 무인 키오스크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하는 실수를 하지 않고, 전산에서 예약자 정보를 사람보다 빨리 찾는다. 그러나 무인 체크인 경험은 체크인의 본질적 목적 중 하나인 환영받는 경험을 제공하진 못한다.
호텔 프런트 역시 어떤 요소를 제공할 것인지에 따라 다른 경험을 디자인해야 한다. 단순히 빠른 체크인이 목적이라면 키오스크를 통해 최적화하는 것은 좋은 대안이 될 수 있다. 하지만 호텔에 도착하는 고객에게 ‘오면서 불편한 점은 없었는지’ ‘편한 휴식을 위해 필요한 것은 없는지’ 물으며 밝은 인사로 맞이해 주는 경험, 즉 환영받는 경험을 제공하고 싶다면 키오스크는 올바른 선택이 아니다. 밝은 얼굴로 환영할 수 있는 건 프런트 직원만이 가능하다.
최적화는 ‘더 편하고 빠르게’를 목표로 한다. 단순히 최적화만을 목표로 삼으면 제공하는 경험의 본질과 멀어질 수 있다. 더 빠르고 편리한 서비스를 제공할수록 고객과의 접점이 짧아지는 경우도 있다. 접점이 짧아지면 경험 시간이 줄어드는 결과를 가져온다. 신속한 서비스를 지향할 것인지, 또는 기억에 남는 경험을 제공할 것인지에 따라 집중해야 하는 영역은 다르다.
제공하고자 하는 경험의 성격에 따라 최적화가 정답이 아닐 수 있다. 좋은 경험을 제공하기 위해서는 참여자의 경험을 더 면밀히 살펴봐야 한다. 어떤 사람은 최적의 청소 경험을 위해 청소기의 선을 없애고 무게를 가볍게 만들기 위해 노력했다. 같은 시간 동안 다른 사람은 로봇청소기라는 제3의 대안을 제시해 청소 경험 자체를 완전히 소멸시켰다. 로봇청소기를 선택한 사람은 직접 청소할 필요가 없게 됐다. 이로써 사용자의 청소 경험은 최적화를 넘어 한 단계 다른 차원으로 넘어갔다.
식기세척기는 그 어떤 좋은 수세미와 세제보다 더 나은 설거지 경험을 제공했다. 설거지라는 경험 자체를 없앴기 때문이다. 줄이 꼬이지 않는 이어폰의 혁신은 줄이 사라진 이어폰이 등장하면서 끝나버렸다. 안드로이드는 높은 커스터마이징 자유도를 선사했지만, iOS는 커스터마이징하지 않아도 되는 세계 최고의 자동최적화를 선택했다. 분명 최고의 경험을 따라가다 보면 사라지는 것을 지향해야 하는 서비스나 상품들이 존재한다.
개인적으로 존경하는 한 교육재단의 국장님께서 청소년 멘토링의 지향점에 대해 말씀하신 적이 있다. 당시 국장님의 견해를 회고하며 글을 마치려 한다.
“청소년 멘토링의 초점은 대부분 ‘어떻게 하면 더 좋은 멘토링과 교육을 제공할 수 있을까?’에 맞춰지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러나 훌륭한 멘토가 되어주는 것도, 양질의 교육을 제공하는 것도 그 본질은 청소년들의 성장을 위한 것이지 않습니까? 진정으로 성공적인 멘토링이 이뤄지려면 청소년들이 멘토 없이도 스스로 성장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을 지향해야 합니다. 따라서 우리의 교육은 결국 사라지는 것을 지향해야 할지도 모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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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에디터이 재민 (youjam@ditoday.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