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하는 사람을 위한 블록체인은 없다, 코인원 블록스
사회 변혁의 시기에 따른 가상화폐 시장의 전망
일하는 사람을 위한 블록체인은 없다
‘가상화폐 거래소 폐지’라는 강수에 대한 가능성이 청와대의 발표로 일단락되기까지 거래소 폐지 및 가상화폐 시장 전반에 대한 논의가 줄 이었다. 반대 측은 주식 시장과의 유사를 들어 내로남불을 외치거나 현재 시장의 크기를 들어 혼란에 대해 우려했는데, 가장 다수 제시됐던 주장은 ‘국내 블록체인 산업이 죽을 것’이라는 의견이었다. 4차 산업혁명과의 연관에 대한 언급이 뒤이었다. 그 문장의 정체가 궁금해서, 우선은 가상화폐 거래소에 다녀왔다. 주식 객장이 물러난 여의도에 자리 잡은 ‘코인원 블록스’다.
코인원 블록스
거래소라기보다는 가상화폐 시장에 대한 정보를 제공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는 코인원 블록스는 문에서 오른편에 콘퍼런스 등을 진행할 수 있는 공간을, 왼편에 상담 창구를 마련해 두고 있었다. 두 공간을 분리하는 중앙 벽의 한 면을 상장된 가상화폐의 등락을 표시하는 전광판이 차지하고 있었다.
문의 맞은편 벽에는 각 가상화폐에 대한 정보를 담은 ‘명세서’가 비치돼 있었는데, 해당 가상화폐를 발행한 블록체인에 대한 소개부터 투자 현황까지가 세세히 적혀 있었다.
공간 중앙에 배치된 소파에 앉아 상장된 가상화폐의 명세서를 들여다보고 눈에 띄는 내용을 메모하는 한 두 시간 동안 세 사람이 거래소에 들어왔다가 나섰다. 40~50대로 보였다. 업무 중 잠시 짬을 내 나온 것인지 업무 관련 통화를 하는 고객도 있었고, 통장이며 지갑에 대해 상의를 나누다 돌아가는 고객도 있었다. 정확히 은행의 분위기였다. 평일 낮이라는 시간대를 감안하고서도 한산했고, 차분하고 정적이었다.
명세서를 열심히 들여다보고 질문을 던져도 블록체인은 막막했고, 온라인의 난리통과는 달리 주변은 한산했다. 가상화폐 시장에 얼마가 유통되고 있는지, 누가 어떻게 수익을 내고 있는지에 대해서는 대강의 예상치는 있지만 아직 확실한 통계는 없었다. 잘 보이지 않는 무언가가 만들어내는 잘 보이지 않는 것을 거래하는 잘 보이지 않는 사람들. 손에 잡히는 것을 찾고 싶었다.
블록체인
처음 블록체인의 개념에 대해 접했을 때 가장 먼저 놀랐던 점은, 저 시장에서 돈을 버는 방식에는 사람의 ‘노동’이 들어갈 틈이 없다는 것이었다.
비트코인의 예를 들면, 블록체인 비트코인에서 발행하는 가상화폐 비트코인을 얻는 방법은 크게 두 가지가 있다. 하나는 채굴(Mining)의 보상으로 획득하는 방법, 다른 하나는 보상으로 발행된 비트코인을 현금으로 사는 방법이다.
가상화폐 시장에서 돈을 버는 방식이 노동 및 생산과 전연 관계가 없다는 점은 그래도 받아들이기 쉽다. 가상화폐 시장의 방식이 증권 시장의 양상과 닮았기 때문이다. 돈을 투입해 증권을 구매하고 가격이 오르길 기다렸다 되팔아 이익을 남기는 흐름은 주식 시장을 비롯한 여러 증권 시장에서 현재까지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그러나, 이 시장 안에서 오고 가는 가상화폐가 발행되는, 가상화폐를 ‘버는’ 방식에 인간의 노동이 ‘전혀’ 필요하지 않다는 것은 완전히 다른 문제다.
암호를 풀고 그에 대한 보상으로 가상화폐가 발행 및 지급되는 흐름 안에서 사람의 노동이 틈입할 사이는 전연 없다. 큰 용량에 성능이 우수한 컴퓨터를 밤낮없이 켜두면, 프로그램이 보안 함수의 숨겨진 입력값 란에 온갖 숫자조합을 알아서 대입한다. 입력된 숫자 조합과 숨겨진 입력값이 일치하는 시점에 블록이 생성되고, 이에 대한 보상으로 발행되는 가상화폐는 컴퓨터 주인에 돌아간다.
이 컴퓨터 주인은, 일단 초기 자본을 투입했고 유지비로 전기세도 꼬박꼬박 내고 있을 테니, 노동(자)까지는 힘들더라도 자본(가)은 되는지 모른다. 그를 기업이라고 치고, 그를 그 기업의 대표로 바꾸어 생각해 보자. 그의 ‘사업’은, 보안에 기여해 돈을 버는 방식이기 때문에 우선 ‘실물’을 생산하지 않고, 인력을 더 필요로 하지 않기 때문에 일자리를 만드는 식의 ‘생산적인’ 부차 효과를 가지지 않는다. 사업을 위한 그의 투자는 더 효율적인 채굴을 위해 컴퓨터를 업그레이드하는 정도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을 것이다. 비트코인을 버는 과정에는, 노동하는 인간이 껴들 틈이 없다.
블록체인을 기반으로 한 프로그램의 총칭인 디앱(DAPP. Decentralized APPlication)의 기반 블록체인 플랫폼 이더리움의 공동 창시자 조셉 루빈은 ‘유가증권의 토큰화’를 언급하기도 했는데(2017년 11월 웹 서밋 콘퍼런스), 이는 블록체인의 데이터 분산 저장 방식을 가능한 한 많은 소프트웨어의 기반 기술로 자리 잡게끔 하고 싶다는 기획을 드러낸 것으로 읽힌다. 제작자의 기획이 현상에 영향을 실제로 미치는가는 다른 문제지만, 여하간 이더리움을 기반한 디앱이 꾸준히 등장하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만일에 블록체인이 대다수 프로그램의 기반 플랫폼이 된다면, 적어도 프로그램을 만들고 유지하는 데는 최초 개발자 이외의 고용 인력은 더 필요하지 않게 된다. 프로그램 내에서 발생하는 데이터를 정돈하는 역할을 여러 채굴자에 분산해두었기 때문이다.
블록체인을 4차 산업혁명을 이끌 기폭제 등으로 부르는 것도 이 점에서 비롯한다. 4차 산업혁명의 정확한 정의는 아직 결론 나지 않았으나, 기계학습과 인공지능 등을 필두로 컴퓨터 한 대가 수십, 수백의 전문 인력을 대신하는 현상 전반을 가리키는 것이라는 데는 대개 의견이 모인다. 컴퓨터로 대체될 수 있는 전문 인력의 수를 폭발적으로 증가시켜 생산 ‘효율’을 높인다는 데 블록체인의 기폭제로서의 의의가 있다.
이것이 건강한 방식으로 작동할 수 있는 사회는 거칠게 말해 맑스의 공산주의 사회밖에 없다. 능력에 따라 일하고 필요에 따라 분배받는 사회가 먼저 이룩되지 않고서야, 우리는 반드시 돈을 벌어서 밥을 사야 한다. 생산은 기계가 대신하고, 전문적인 지식이 필요한 업무는 인공지능이 대신하는데, 돈을 벌어야 한다. 일이 없는데 돈을 벌어 밥을 사야 한다면, 선택지는 세 가지다. 자급자족하든지, 저 컴퓨터를 사서 사업을 하든지, 일이 아닌 방식으로 돈을 벌든지.
그런 의미에서 주식 시장이든 가상화폐 시장이든 ‘투기’가 가능한 시장은, 그 시점에서는 마지막 보루일 지도 모른다. 4차 산업혁명 자체가 인간의 노동이 필요한 일의 폭을 극히 줄이는 결과를 예비한다면, 저 사태에서 컴퓨터를 살 돈이 없는 보통 사람이 돈을 버는 방법은 바로 저것, 투자 혹은 투기의 방식밖에는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블록체인이 아니라도
블록체인을 기반한 프로그램은 앞으로 한동안, 어쩌면 4차 산업혁명이 완연히 도래해 현대판 ‘러다이트 운동’ 같은 것이 일어나기 전까지는, 기술이 사장되는 식의 변화를 겪지는 않을 것 같다. 가상화폐 시장이 등락을 반복하더라도, 플랫폼 내에서 발행 가상화폐가 전혀 사용되지 않는 블록체인 및 디앱의 경우 별 영향 받지 않을 수도 있다.
그래도 블록체인이 막 시작 단계에 들어선 지금쯤, 오해나 막연한 이상향을 불러일으킬 수 있는 지점에 대해 한 번 짚고 넘어갈 필요가 있을 것 같다. ‘탈중앙화’에 대한 것이다.
블록체인이 처음 등장했을 때 내세웠던 가장 큰 가치는 데이터의 공증에 ‘제3자’가 끼어들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블록체인은, 정보를 만들어내는 모두가 정보를 복제해 가져서 정보가 독점 혹은 조작될 위험을 제거할 수 있다는 데 방점을 두어 홍보됐다. 채굴자가 생성한 블록을 신뢰하고 이전 블록에 연결할지를 일반 사용자가 결정할 수 있게 함으로써 이를 유지할 수 있다는 설명이 잇달았다.
그러나 ‘채굴 프로그램’과 이것을 이용해 집단으로 채굴을 진행하는 ‘채굴장’의 등장으로, 집단화한 채굴자가 세력을 이루면서 기술의 고도를 기반으로 안전히 유지되는 탈 중앙체제에 대한 막연한 기대는 어느 정도 무너졌다. 집단화한 채굴자에는 ‘공급량을 조절할 수 있는’ 힘이 부여됐고, 이를 통해 가상화폐 시장에서 가상화폐의 가격을 결정할 권한이 이들에 주어질 가능성이 열렸기 때문이다.
실례로, 비트코인에서 떨어져 나온 비트코인 캐시의 경우, 집단 채굴 활동을 벌이던 채굴 세력을 저지하기위해 비트코인이 특정 채굴 프로그램을 사용해 생성한 블록을 사용자(의 지갑으)로 하여금 거부하게 만든 데 반발한 채굴자 집단이 따로 설립한 블록체인이다. 일반 사용자가 채굴자 세력에 대항할 방법이 있다는 점이 드러난 사례이기도 하나, 기술만으로 완연한 탈중앙화를 그리기에 어렵다는 점을 짚어볼 수 있는 예이기도 하다.
사회 변혁의 시기에도 사람들이 움직이는 큰 양상은 자주 반복됐다. ‘평등’을 외치는 사회주의 혁명조차 주도 세력이 자신을 누군가의 우위에 두면서 갈등과 대립, 대항의 양상으로 흘렀다.
어떤 새로운 것이건, 그것과 관계하는 사람들은 어제와 크게 다르지 않은 그 사람들이다. 어제와 크게 다르지 않은 사고를 하는 그 사람들이 관여하고 참여하고 이용한다. 무엇을 만들건, 기획뿐 아니라 개발 과정과 유지에서 지금 여기 정말 사는 사람들이 제외되지 않았으면 하고 바라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