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주민 대표 “디지털 생태계, 이트란과 함께 이트라이브로 물들인다”
지난 해 매출 170억 돌파, 올해 200억 정조준 “이트라이브만의 지식과 경험을 체계화한 독자적 워크 플랫폼 구축 중, 품질과 퍼포먼스 동시 견인 추구”
이주민 대표와 이야기하는 동안 이런 생각이 들었다. ‘인간은 왜 자발적으로 고난에 뛰어들까?’ ’우리는 고난을 겪어도 정녕 파괴되지 않을까?’ 몇 번의 실패, 다시 일어서기 어려울 정도로 주저 앉으면서도 기어코 링 위에 일어선다. CEO의 길은 혼자 걷는 길이 아니기에 혹자는 매우 다이내믹하다는 수식어를 단다. 폴 블룸(Paul Bloom) 예일대 심리학 교수는 이렇게 정의했다. “우리의 뇌는 쾌락만큼 고통을 환대하며, 성장을 추구한다” 그와 인터뷰를 마친 후 깨달았다. 아, 그가 겪었던 지난 시간은 ‘최선의 고통’이라 쓰고, ‘정상적인 행복 레시피’였다는 것을. 그와 이트라이브, 더 듬직한 종족이 되어 돌아왔다. ‘블러드 컬러(Blood Color)’에 내재된 피를 부르는 이트라이브의 욕망 이야기다.
대표이사실에 붙은 ‘NEW CEO ROOM’ 문구
기자의 질문에 그가 나직이 내뱉은 독백
하루하루를 새로 취임한 CEO 마인드셋으로 임하겠다는 각오죠.
차분한 검정 빛깔의 윤기 나는 머릿결이 목을 살짝 덥고 검은 안경테가 그의 지성에 클래식한 분위기를 연출했다. 짙은 갈색 슈트는 모던한 그의 패셔너블함에 방점을 찍었다. 동화책에서나 만날 수 있던 넉넉한 웃음의 마음씨 좋은 키다리 아저씨가 현실에 존재한다면 이런 모습일까. 바로, 이주민 대표 얘기다. 그는 “한 번씩 단식하며 몸을 가볍게 만든다”고 말했다.
사무실도 접근성이 좋은데, 그 역시 접근성이 좋다. 누구나 격이 없고 어렵지 않게 다가설 수 있다는 것만으로 그가 어떤 사람인지 가늠할 수 있다. 주고 받는 카톡 한 줄, 상대에게 건네는 말 한 마디에도 존중이 녹아 있다. 테이블 위로 어린 아이처럼 수줍게 꺼내놓는 단어 하나하나도 신중함과 배려가 깃들어 있다는 것을 쉬 알 수 있다. 그는 말했다. “직원들이 저를 부끄럽게 여기고 있어요. 이트라이브에서 수치심을 담당하고 있습니다(웃음).”
부끄럽다니? 곧 나는 그 직원들의 마음 속에 감춰진 행간을 알아챘다. 편안한 마음에서 우러나는 존경과 애정의 또 다른 표현이라는 것을.
그러고 보면 그의 스타일은 내가 도저히 따라갈 수도, 흉내 낼 수도 없을 정도로 스타일리스트다. 오히려 그런 그가 부럽다. 그것도 용기가 있어야 한다. 기자는 그와 인터뷰를 마친 저녁, 온라인으로 옷을 한 벌 주문했다는 사실도 뒤늦게 고백한다.
이번에 소개할 디지털 에이전시 이트라이브(ETRIBE). 올해로 설립 19년차. 업계에서는 연차만큼 기술적 서사와 실력을 인정한다. 온라인 마케팅부터 메타버스, AR·VR웹 페이지 구축, 모바일 앱 개발, UI·UX 디자인 및 컨설팅까지 세상이 진화한 만큼 내부 역량을 강화했다. 한번 시동 걸리면 아우토반을 달리는 슈퍼카처럼, 그는 대학 때 우연히 만든 웹사이트로 온라인 기반 서비스를 런칭해, 관련 분야에서 가장 많은 이용자수를 유치하고 성공적으로 엑시트한 경험의 소유자이기도 하다.
어느 날 웹을 검색하다 이런 글을 발견했다. 디지털 에이전시를 두고 ‘다재다능한 탤런트’라 정의내렸다. 수 많은 인재가 새로운 기술, 디자인, 기획력을 무장해 고객의 다양한 요구를 해결하기 때문이란다. 나는 여기에 이 한 마디를 더 보태려 한다. 기술의 변화와 진화가 요구될 때마다 디지털 에이전시가 늘 앞장서서 이를 도입, 추진한 ‘디지털 기술의 첨병’이라고.
늘 공부하고 깨우치고 도전하는 것은 시간과 열정의 투자 없이는 행할 수 없는 부분이다. 그러니 한두 번 실패했다 한들, 기술적 경험의 몸집과 맷집까지 작아지는 것은 아니다. 기회는 또 한 바퀴 돌아 다시 찾아오기 마련이니까, 세상만사 그렇기에 늘 예열해 놓는다. 이주민 대표 얘기다.
그러던 그에게 어느 날 이렇게 메일이 왔다.
“질문이 너무 어렵습니다. 오늘 살살 (질문)해주세요~”
그렇게 느낄 만했다. 질문 가짓수만 50여개에 달했으니까. 하지만 모두 꺼내 놓을 생각은 없었다.인터뷰 역시 각본(질의서)대로 이뤄지는 경우는 거의 없으니까. 준비한 것을 모두 질문하지 못해도, 독자가 궁금해 하고 알고 싶은 것을 중심으로 보따리를 풀다 보면 끝을 향해 치닫는다. 또, 사람과 사람이 만나 얘기하는 무대기 때문에, 방향은 얼마든지 바뀔 수 있다. 이번에도 그랬다.
그렇게 약속 잡고 자리해 아이스브레이크겸 가볍게 하나 질문했다.
“요즘 어떻게 지내십니까? 올 초부터 바쁜 일정 소화하기에 여념이 없으시다고 들었습니다만.”
“연초부터 지난 해 성과를 고찰하고 새해를 계획하려는 움직임이 꽤 길었어요. 스스로를 돌아보고 반성하며 다양한 리더십도 구상하고 평가하는 시간도, 좇김 없이 진행해야 한다 생각했거든요.”
그의 첫 마디에 이트라이브가 올해 비전을 세우는 데 있어 무엇에 무게를 두는지 짐작할 수 있었다. 대개 대차대조표를 분석하며 시장의 승자가 되기 위해 일사불란한 움직임을 추구하는데 반해, 이주민 대표는 지난 성과를 분석해 땅을 더욱 고르고 다진다. 각 부서장의 리더십에 대한 다양한 의견을 반영해 새해 계획을 위한 초석으로 활용한다. 단기간의 승률보다 멀리 보고 나아간다는 생각이 뚜렷하다. 전투가 아닌, 전쟁에서 이겨야 그것이 바로 사업임을 잘 알고 있던 터.
무엇보다 임직원이 늘 웃는 모습이 보고 싶은 열망 하나 때문이다. 스스로 하나하나 성취감을 느끼며 동시에 자산도 늘릴 수 있도록 세심히 신경 쓴다고. 그러다 보니 새해 계획이 조금 늦은 감도 있다며 머쓱해 했다.
-한해 농사인 만큼, 더욱 면밀하게 세우는 게 더 중요하다고 생각하신 것 같습니다.
“연말은 연말대로 바빴지요. 대부분의 기업이 하반기 중에 체계적으로 차년도 사업계획을 수립하잖아요. 하지만 저희는 연말연초 분위기를 흠뻑 흡수하고, 급하지 않게 올 한해를 계획하는 편입니다. 그러면서 1월 한 달 내내, 올해 어떤 사업에 집중하고, 우리의 무게 중심을 어디로 옮겨 사업을 진행할까 면밀하게 구상하는 거죠.”
-내부에서 오간 이야기, 몇 가지만 말씀해주실 수 있습니까?
“대단한 건 아닙니다. 이제 기업 성과에 대해 각 리더가 리더십을 갖고 몰입할 수 있도록 환경을 조성하는 데 집중했습니다. 아시다시피 저희가 2018년에 추진, 확장했던 신사업에 대한 손해를 만회하자는 노력의 연장선에서 안정적 재무 구조와 캐시 플로우를 확보하기 위한 다각적인 이야기가 오갔습니다.”(이트라이브는 2018년 당시 ‘판타 VR’이라는 브랜드로 VR/AR 콘텐츠를 개발, 확장하다 코로나19로 체감형 사업에 직격탄을 맞았다. 아무도 예상하지 못한 어려움이었지만 이트라이브는 이 마저 이겨내며 결국 다시 예전처럼 시장의 강자로 우뚝 서며, 그 경험마저 자산화했다. 이 대표는 수치로 이를 증명했다. 드라마틱한 ‘되치기’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단도직입적으로, 지난해 매출은 어느 정도였습니까?
“2021년에 창사 이래 처음으로 매출 100억을 돌파했어요. 상황이 녹록치 않았는데 그 100억이라는 상징적인 숫자가 그저 운이 아니었다는 것을 저희 스스로 증명하기 위해 지난 해까지 매우 도전적인 재무 KPI를 설정해 달려왔고, 작년에는 매출 170억을 기록했습니다. 올해는 200억 돌파를 목표로 삼고 있습니다. 외형적인 성장과 함께 내실도 탄탄하게 다져서 성장동력을 확보하는 데 주력했습니다.”
-코로나19 시절, 대부분의 기업이 많이 어려워했고, 기업 간 간극이 생기면서 격차가 더 벌어졌습니다. 동시에 비대면을 빨리 적응해 이를 새로운 성장동력으로 다진 기업도 있고요. 이것이 기업 성장에 밑바탕이 되기도하는데, 이트라이브는 흐름을 잘 잡아 높은 실적을 이뤄낸 것 같습니다.
“코로나19를 기점으로 온택트 채널이 확장되면서 저희도 덩달아 바빠졌어요. 그게 어쩌면 저희와 같은 업종에 몸담고 계신 분들이라면 공감하실 거라 생각해요. 우리 디지털 에이전시업은 디지털 기술의 변화에 영향을 많이 받고, 진입 장벽도 낮잖아요. 빨리 진입한 만큼 그 업에서 성장하기도 전에 이탈하는 경우도 많아요. 클라이언트와 사업물량 확보 실패가 주 원인입니다.
그 상황 속에서 저희는 잘 버티면서 조금씩 성장할 수 있었는데, 그 이유가 바로 저희가 몰입하고 헌신했던 고객의 인정이 있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해요. 이트라이브에 대한 기술적, 사업적 크레덴셜이 점차 증가하면서 불황이든 호황이든 저희를 찾아주시는 고객도 덩달아 늘고, 그로 인해 안정적인 사업 물량을 지속적으로 확보한 것이 주효하지 않았나 봅니다. 마침 어제(2월 21일)가 18번째 창립기념일이었습니다. 지금까지 고객과 우리 이트란(이트라이브 임직원 모두를 이렇게 부른다.) 모두에게 너무 감사한 마음뿐이죠.”
-얼마 전, 근처 카페에서 저와 차 한잔하며 얘기를 나눴잖아요. 그때 옆 테이블에 회의 중이던 직원분들이 우리를 신경 쓰지 않고 회의에 집중하는 모습이 기억에 남습니다. 대표님과 친구처럼 인사를 주고 받는 모습도 인상 깊었고요.
“저는 수평적인 조직을 추구합니다. 소통에 있어서는 조직 내 레이어가 최대한 얇아야 된다고 생각해요. 또한 소통의 방식 또한 구성원에게 가장 친숙하고 편한 방식으로 이뤄져야 하구요. 돌이켜보면 저의 정체성 자체도 권위와 위계와는 거리가 멀었던 것 같아요. 오죽하면 군대에서도 후임들에게 “내겐 경례도 하지 마라”고 말했을까요.
그만큼 경직되고 수직적인 기존의 조직문화에 대해 반감이 있었어요. 일종의 저항이었죠. 회사는 모두가 한 마음으로 뭉쳐 성장하고 성과를 내는 곳인데, 꼭 수직적일 필요가 있을까 싶었어요. 다른 말로 ‘리더십 패러다임 전환’이라고 부르고 싶습니다. 탄력적이고 유연한 사고(思考)의 조직은 구성원 간 원활한 소통을 전제해야 해요. 제가 불을 때야 합니다. 물론 기업마다 상황이 다르고, 조직의 방향성에 따라 수직적인 구조도 필요한 곳도 있을 거예요. 그냥 대표인 저와 이트라이브라는 기업의 DNA가 그런 걸 거부하는 구나,하고 생각해주시면 됩니다.
다만, 하이라키(Hierarchy, 조직이나 집단 내 계층적인 구조)를 마냥 부정할 수는 없기에 업무를 추진하는 데 있어 하이라키는 융통성 있게 인정하는 구조로 나아가고 있습니다.”
-수평적인 조직인데, 하이라키는 존중한다? 외교관 협상 수칙 1번이 ‘상대를 믿지 말라’인데, 2번이 ‘상대와 신뢰관계를 구축하라’ 거든요. 이 둘이 서로 상반되지만 함께 가야하는 ‘모순의 예술’과 유사합니다.
“네. 그렇게 말씀드리는 건, 사람마다 담당하는 업무의 권한과 책임이 다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수평과 수직적인 부분의 균형을 맞추는 것이 필요했고, 그 과정에서 힘든 부분도 있습니다. 직급의 단계를 줄이고, 보고를 간소화하며 빠르게 회신하고 대안을 스스로 찾는 노력을 이어가고 있어요. 이를 위해 월 1, 2회씩 전 직원이 한 자리에 모여 회사의 주요 아젠다를 즉시 공유하는 이트란 미팅(eTRAN Meeting)이나, 누구라도 대표이사와 직접 소통할 수 있는 보이스 투 CEO(Voice to CEO), MZ세대들 주도의 의사결정협의체인 주니어보드 등 구성원들과 직접적으로 소통할 수 있는 다양한 채널을 만들어 나가고 있습니다.”
-‘주니어보드’는 무엇이며, 무엇을 주로 논합니까?
“일단 주니어보드의 출발을 아셔야 해요. MZ세대 구성원들이 자신의 의견을 과장하지 않고 날 것 그대로 꺼내놓는 것이죠. 그게 핵심입니다. 구성원들의 리얼하고 현실적인 의견을 전달할 수 있는 창구로서 특정한 문제가 발생하거나 어려움이 생기면 이트란의 힘으로 어떻게 해결할지 고민하는 거죠. 주니어보드는 경영진과 함께 경영에 대한 이야기도 나눕니다. ESG경영에 대해서도 논했고, 마침내 ‘2023 ESG 우수중소기업상’을 수상하기도 했어요. 이런 활동을 통해 수평적인 문화를 계속 독려하며 결과를 스스로 만들어 갈 수 있도록 하고 있습니다.”
인터뷰를 나누는 중에도 복도를 오가는 직원들이 틈 사이로 호기심 어린 눈길을 던졌다. 이주민 대표가 이 마저도 의식하지 않고 진지하게 임했다. 그런 그가 내게 이렇게 말했다.
“직원들이 저를 되게 부끄러워해요. (웃으며) 제가 생각해도 외모도 이상하고, 대표로서 품위도 없고, 허허실실 재미없는 농담들을 늘상 하고 다니니까요. 아마 대표이사란 직책자들이 흔히 갖고 있는 상(像)을 제가 갖지 못해서 그럴 거예요. 하지만 지금에와서 돌이켜보면 수많은 인간적인 허점과 단점을 가지고 있는 저라는 사람이 대표로 일하고 있는 그 자체가 좋고 나쁘고의 문제라기보다 이트라이브의 하나의 정체성이 되어 버리린 것 같아요. 대표가 이러니 회사가 수직적일 수 없는 거죠(웃음). 어찌되었든 이트라이브에서는 수평적인 조직문화가 그만큼 많이 녹아들어 있어요. 또 그런 문화를 선호하는 사람들이 한둘씩 합류하다보니 그것이 우리의 정체성으로 되어가고 있다고 봅니다.”
그런 그에게 빼놓을 수 없는 멋이 있다. 바로 ‘헤어’. 그를 마지막 봤을 때가 2022년 여름이었고, 노랗게 탈색해 허리까지 내려오는 장발이 매력이었다. 올해는 어깨에서 찰랑거리는 흑발의 치명적인 멋스러움이 배어있다. 그런 그가 신입 직원이 입사하면 늘 강조하는 것이 있다. 업계에서 가장 엄격한 헤어스타일과 복장의 기준을 고수한다고 알려져 있다. 바로, ‘태(態)’다. 그것 역시 이트라이브만의 정체성이며 기업문화다. 그런 그에게 “왜 빨간색 추리닝을 즐겨 입느냐, 온갖 행사마다 빨간추리닝이더라”고 물었고, 돌아온 대답에 기자는 입을 다물지 못했다. “편하고, 멋있으니까요. 이게 ‘이트라이브다움’이라고 생각해요.”
하긴, 넥타이도 이트라이브 설립한 이후로 매어 본 적이 매우 드물다고. 그 이유를 유추해보니, 이제 알 것 같다. 그에겐 멋 없고 불편하기까지 했으니까.
그런 그가 이렇게 덧붙였다. 자신이 시간에 녹아 드는 것처럼 회사도 어느 새 18살이 됐고, 그럴수록 늘 새로움과 자부심을 지켜나가야 한다고. 그러면서 없던 길도 만들어 가고 싶단다. 아니라 다를까, 마침 입구에 백투더퓨처(Back to the Future) 마지막 대사 ‘Roads? Where we’re going we don’t need roads(길? 우리가 가려는 곳은 길이 아니어도 돼)’ 문구가 걸려 있더라니.
-예전에 안부 차 연락을 한번 드렸는데 “제가 여기 PM으로 나와 있습니다”하고 아무렇지 않게 말씀하셔서 다소 의아했습니다.
“자신 있게 말씀드릴 수 있는 부분이, 이트라이브는 게임 개발, 인터랙티브 동화책 개발, 디지털 샤이니지, VR/AR, 메타버스 테마파크 등 신사업에 대한 다양한 시도를 해왔고, 그 경험이 자산이 됐습니다. 앞으로도 그 디지털 기술과 경험을 토대로 더 가치 있는 서비스 솔루션을 만들고자 끊임 없이 노력할 거고요. 그 신사업은 재무적으로나 인력, 시간 자원이 기존 사업에 비해 리스크가 있어요. 항간에 떠도는 얘기로 10개 중 하나만 성공해도 대박이라고 할 정도니까요. 재무적으로 달콤함을 맛 봤던 것도 드물고요.
이랬을 때, 신사업에 대한 책임을 누가 맡을 것인가, 하게 되면 저는 누구도 이걸 감당하기 어려울 것 같았어요. 제가 아끼고 사랑하는 직원에게 이걸 맡겼을 때, 그들이 받는 압박감과 부담은 이루 말할 수 없을 거예요. 90% 실패확률을 갖고 있는 사업이고, 그렇기 때문에 제가 잘 알고 책임질 수 있기에 PM을 맡아 진행하고 있습니다. 앞으로도 그럴 거예요. 근데 또 찾아보면 누군가가 하고 싶어서 두팔을 걷어 부친 이가 있을 수도 있으니 그때가 되면 생각이 달라질 수도 있겠죠(웃음).”
-말씀을 다시 해석하면 ‘감당할 수 있는 실패만이 성공을 불러올 수 있다’는 말씀 같습니다.
“네. 그 책임을 감당할 수 없는 가능성이 높은, 맥시멈의 리스크를 가진 사업은 대표가 직접 감내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저는 이미 경험을 통해 체감했어요. 실패했을 때 우리가 아무리 실패와 도전을 용인하고 권하는 문화를 중시한다해도 누구도 그 고통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어요. 먼저 당사자 자신부터 무너질겁니다.”
-리스크가 큰 신사업에 대한 압박과 부담을 알기 때문에 그걸 대표님께서 직접 짊어진다는 의미잖아요. 이해했습니다. 어제가 회사 창립기념일이었죠?
“원래는 이날, 전 직원이 에버랜드 놀러가기로 한 날이었어요. 근데 어제 눈비가 내려 날씨가 좋지 않아서 2주 뒤로 연기했습니다. 저희는 창립기념일 행사를 해본 적이 없어요. 하지만, 이제 우리가 가야 할 곳을 찾아 길을 만들어 걷는 사이, 또 어느 정도 회사가 안정되면서 사업을 확장하고 성장시키면서 줄곧 우리 스스로를 증명하고 있습니다. 이제는 성과 못지 않게 제대로 놀 줄 아는 여유도 한번 부려보고 싶었습니다. 그동안 이트란들께 너무 감사하고 미안했습니다. 참, ‘에버랜드’는 지난 해 각종 어워드에서 그랑프리를 수상하며 연이은 낭보를 울린 프로젝트인데, 우리도 고객이 되어 즐기기로 한 거예요.”
-그렇다면, 이제 이트라이브만의 시너지가 필요하겠네요.
“그렇습니다. 이트라이브만의 기업가치 중 하나로 ‘Better’가 있습니다. ‘Easy(명료함에 대한 지속적 창출)’, ‘Blood(초연결된 결속)’과 함께 우리만의 조직 문화 키워드이기도 해요.
저희에게 ‘Better’란 단순히 ‘더 나은’이 아닌, ‘효율에 대한 끊임없는 추구’를 의미합니다.
세상의 모든 고객사는 저희에게 무한정 시간을 주지 않고, 기다려주지도 않습니다. 효율은 우리에게 허락된 짧은 시간 내에 최고의 결과물을 완성해야하는, 품질과 생산성의 패러독스를 해결할 수 있는 유일한 무기입니다. 세상의 모든 혁신은 효율에 대한 궁극적인 추구의 결과물로서 탄생한다고 생각해요. 이상하게 들리실 수 있겠지만, 이트라이브에서는 노력을 최소화하고 짧은 시간에 최고의 품질을 내는 것을 ‘Better’라고 말합니다. 밤 새고 주말까지 일하면서 좋은 결과물을 만들었다면 그것은 우리 기준에서 고생한 것이지 ‘Better’는 아니예요. 오히려 만날 커피숍에 가 있고 하는 둥 마는 둥 일하면서도 작업물의 품질이 높다면 그것이 ‘Better’인 것입니다. 우리가 하는 모든 일은 끊임없는 개선의 여지를 품고 있음을 믿고 이를 추구하는 것이 이트라이브의 일하는 기준이고 방식입니다. 더 Better할 수 있도록 내부적인 시스템을 지속적으로 고도화해 나가는 것도 매우 중요하구요.”
-그 시스템 구축이 올해도 주요 미션이 될 것 같습니다만.
“Better를 달성하는 것이야 말로 서비스향상을 통한 고객만족과 직결되기 때문에 이 부분에 대한 시스템과 정체성을 명확히 하기 위해 저 역시 몰입하고 있습니다. 지난 연말부터 올 3월까지 이트라이브만의 지식과 경험, 노하우를 체계화할 수 있는 업무 플랫폼을 정비하고 있어요. 이를 통해 서비스전략, UI/UX설계 및 디자인, 프런트 엔드와 백엔드 개발 등 모든 직무영역에서의 업무 프로세스와 산출물이 자동으로 축적, 공유됩니다.
또한 AI를 통해 구성원들이 기존 데이터를 심층적으로 이해, 습득할 수 있도록 합니다. 이것이 안착되면 프로젝트의 성격과 서비스의 유형에 상관없이 모든 구성원들이 보다 Easy하게 높은 품질과 퍼포먼스를 유지하는 데 큰 도움을 줄 수 있어요. 그것이 곧 Better, 주어진 시간 내 최고의 결과물을 내는 데 결정적인인 역할을 할 것으로 기대하고 있습니다. 올해 안에 이것을 정착화하는 것이 목표입니다.”
-말씀대로 정착만 되면 높은 수준도 이어가고, 업무의 이질감도 줄일 수 있어 한층 안정적으로 임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프로젝트에 투입되는 자원을 아낄 수 있고, 그로 인해 비용도 절감할 수 있겠지만 그 아낀 시간과 자원을 키 콘텐츠와 핵심 서비스 개발에 더 집중시켜 고객의 비즈니스를 더욱 차별화시킬 수 있도록 구상하고 있어요. 물론 이는 저희의 실적향상까지 연결될 것이구요. 매출이 자꾸 언급되는 것 같아 미안하지만 그렇지 않으면 저 쫓겨나요(웃음).”
-이윤을 추구해야 하는 기업인데 매출은 당연한 거니까요. 참, 올해로 19년차에 돌입했는데, 이트라이브는 어떤 경로로 시작하셨습니까? 처음부터 창업에 뜻이 있었던 건가요? 대학시절 전공도 궁금하고요.
“저는 상경계열, 국제무역학과에 졸업생입니다. 대학 3학년 시절, 우연히 교양과목을 선택해야 할 때였어요. 뭘 들을까 고민하다 홈페이지 만들기 과목이 있더라고요. 처음엔 무심코 수강했는데, 여기에 신세계가 있는 거예요. 무(無)에서 유(有)를 창조하는 희열이랄까. 내 손으로 만든 웹사이트가 눈 앞에 떡하니 나오고 그것이 비즈니스 공간이 되는 게 정말 짜릿하고 재미있었습니다. 당시 교양과목에서 시험 삼아 만들었던 홈페이지가 제 운명을 바꾸었지요.”
-좀더 자세하게 말씀해주시죠. 궁금해서 현기증나려고 해요.
“제가 대학생 때 부족한 생활비를 과외로 충당하곤 했어요. 그런데 학생 한 명 구하는 게 정말 하늘에 별따기였어요. 그래서 별 생각 없이 과외학생 구하는 사이트를 하나 제작했죠. 왜냐하면 제가 서울사람이 아니니 소개받을 수 있거나 하는 끈이 없잖아요. 이게 과외 시장에 어필이 된 겁니다.”
-아, 감이 옵니다.
“온라인 상에서 학생과 과외선생님을 매칭시켜주는 시스템을 개발하고, 과외 중계를 통한 수수료를 주 수익으로 했어요. 당시 우리나라에서 과외선생님을 가장 많이 확보한 서비스로 키웠죠. 그걸 운영하면서 홈페이지도 직접 관리하다보니 웹마스터로서 A부터 Z까지 마스터하게 됐습니다.”
-그 시절에는 기획자, 디자이너, 퍼블리셔 등 분리하는 개념이 없었죠. 국가에서도 웹마스터라 해서 국비과정이 별도로 생겼을 정도로 이슈였어요.
“당시 웹마스터는 그걸 전부 해내야 하는 직무였습니다. 지금 생각해보면 교만이고 자만이었는데, 내 스스로 전부 할 수 있다고 자신감이 하늘을 찌른 거지요. 결국 누가 무엇을 요청하든 웹으로 얼마든지 만들 수 있다는 믿음도 생겼어요. 그래서 ‘과외 중개 서비스’를 개인사업자로 2년 운영하다 백엔드 개발과 서버 시스템, 아키텍처 구축을 배우기 위해 디지털 에이전시에 입사했어요. 거기서 2년여를 열심히 배우고 나와 설립한 회사가 바로 오늘 날의 ‘이트라이브’입니다.
지금생각해도 참 자만했죠. 고생도 많이 했어요. 하지만 그때의 희열과 감동, 경험은 지금도 제 소중한 자산입니다. 말이 무에서 유가 창조되는 것이지, 제가 그걸 직접 경험했으니 오죽했겠어요. 그래서 작은 일을 하나 하더라도 어떤 결과가 생길지 궁금해서 절로 몰입하게 됩니다.”
-흔히 교양과목은 학점을 이수하기 위해 교양으로 듣고 잊어버리곤 하는데, 그 교양과목 하나가 대표님 인생을 바꾸고, 150명이 넘는 일자리를 창출한 거네요.
“그렇게 말씀해주시니 부끄럽긴한데, 결과적으로 인생을 걸 목표이자 미션을 찾아서 다행이라 생각합니다. 그렇게 현재와 인연이 됐네요. 저도 꿈에도 몰랐어요.”
-대표님은, 머릿속에서 일어나는 생각, 상상을 직접 현실로 부딪쳐보는 가치를 중요하게 생각하시는 것 같습니다. 아무 것도 하지 않으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법이죠. 혹시 이트라이브를 설립 후 첫 프로젝트 기억나십니까?
“하하하. 그럼요, 나다마다요. 주위 업계를 보면 설립할 당시 좋은 클라이언트와 함께 혹은, 이미 업계에서 명망을 얻고 있는 멤버들과 함께 시작하는 에이전시도 많아요. 제가 우리 회사에 부채의식이 좀 있는게, 내가 좀 더 잘나서, 좀 더 많은 클라이언트를 모시고 시작하거나, 창립 시점부터 지금의 멋진 분들과 함께 시작했다면 우리의 성장세가 더 일찍 시작될 수 있었을 거라 생각해요. 앞서 말씀드린 것처럼 정말 교만해서, 교만한 자신감 하나로만 시작했거든요. 그냥 딱 그것 하나뿐이었어요.”
-참, 첫 수주 프로젝트에 대해 말씀해주셔야지요.
“그때는 인터넷카페에 돌아다니며 ‘홈페이지 저렴하게 만들어드립니다’와 같은 게시물을 도배하던 수준으로 일감을 구해야하는 시절이었어요. 첫 고객은 동부이촌동의 한 부동산 가계였는데, 그때 홈페이지 구축비가 200만원이었어요. 굶어죽지 않을려면 뭐라도 해야하는 저로서는 금액과 상관없이 너무나 귀한 일감이었지요. 그 뒤로 한의원 홈페이지도 만들고, 그렇게 디자이너 한 명과 함께 시작했어요. 잠만 안 자면 일주일에 홈페이지 두세 개는 금세 만들 수 있었죠. 그러다가…”
-그러다가… ?
“우연히 서울대학교 지구환경과학부 홈페이지를 만들었어요. 100만원이든 200만원이든 최고의 결과물을 선사하자는 생각으로 철야정진도 마다하지 않았습니다. 비교적 짧은 시간에 타 학과에도 회자되는 멋진 사이트가 만들어졌어요. 지금 생각하면 그것이 ‘Better’였던 것 같아요. 결국 모든 게 입소문이 나 서울대학교 대부분의 학과를 도맡다시피 제작했고, 이어 연세대학교, 고려대학교도 제작하게 됐어요. 당시만 해도 그것이 지금처럼 볼륨이 크지는 않아 큰 돈은 돼지 않았지만 그게 쌓이니 큰 사업 기반이 되더라고요. 그렇게 시작했습니다.”
-말이 쉽지, 온갖 어려움을 이겨내면서 사업을 키운 거네요.
“단순하게, 저도 먹고 살아야 되고, 월급을 가져가야 하니까 어쩔 수 없었던 거죠.”
-그렇게 2006년에 이트라이브 사업자등록증을 내 초기 터를 닦았고, 신기술에 대한 관심과 열망, 사업화, 확장이 이어지며 오늘 날의 업계 베스트로 꼽히는 디지털 에이전시로 성장할 수 있었군요.
“업계 디지털 에이전시 대표님들과 만나 얘기해보면 모두 생각이 다릅니다. 어떤 분은 회사를 계속 성장시키는 그림을 그리고 계시기도 하고, 또 어떤 분은 빨리 엑시트하거나 팔아서 사회에 봉사하며 살고 싶다는 분도 계시지요. 모두 존중합니다. 저는 회사를 질적으로, 양적으로 끝 없이 성장시키고 싶어요.”
-사업이 확장되다 2017년 즈음, 잠깐 어려웠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물론, 당시엔 투자개념이었지만 정부도, 사회적인 분위기도 AR/VR에 대해 ‘블루오션’이라 연일 회자되던 시절이었습니다.
“말씀대로 사회적으로 분위기도 그렇게 달아올랐고, 정부도 새로운 사업 발굴차원에서 대대적인 지원이 많았던 시절이었어요. 모바일 게임 업계도 앞다퉈 관련 기술을 선보이기도 했으니까요. 2017년 12월에 당시 국내 최대 규모의 VR 테마파크를 온전히 저희 힘으로 개장했으니 그 전후 1년 이야기일 것 같습니다. 조금 희화화해서 말씀드리면 저는 불나방 같은 면이 있었죠. 사업성이 있다고 판단되면 불길 속이라도 맨몸으로 뛰어 들어야하는데, 어쩌면 대부분의 사업가 분들이 다 그러실 거예요. 그러니까 회사를 설립하는 결심도 하셨을 테고요. 저도 그중 한 명이고요. 어떤 비즈니스 기회에 대해 앞뒤 다 따지면 실행이 어려워져요. 결국 모두 놓칩니다. 저는 기회를 보면 뛰어드는 욕망이 있는 것 같아요. 90%의 리스크보다 10%의 가능성에 집중했던 거죠.”
-그러다 코로나19가 터졌죠. 그 누구도 예상하지 못 했습니다.
“정부도, 미디어도, 저 역시도 환경 변화에 대해 예상 못 했지만 변명하고 싶지 않아요. 사업 리스크는 그런 의외적인 면도 감안해야 하는 것이니까요. 아무도 그 미래를 예상하거나 하물며 현재를 재단할 수도 없고요. 하지만 그때 교훈을 발판 삼아 지금은 메타버스 사업과 함께 안정적이고 체계적으로 팀을 구축해 해나가고 있습니다. 옛날 같았으면 본부 한 팀을 통째로 꾸리고 난리가 났을 거예요.
지금은 ‘선택과 집중’에 포커스를 잡고 나아가고 있어요. 어떤 사업이든 어려움에 봉착하면 저는 그것을 ‘CEO 리스크’라 생각합니다. 저의 잘못된 선택으로 임직원이 고통 받으면 그건 분명 대표 잘못이에요. 리스크를 진단하지 않았고, 감내하는 수준도 파악하지 못 했으니까요. 출구전략도 세련되게 세팅해야 하는데 당시는 그렇지도 못했어요. 직원들도 박탈감, 상실감에 어려워했으니 저도 커다란 죄의식이 여전히 남아있어요. 그래서 제 방을 ‘NEW CEO ROOM’이라 부릅니다. 제가 한 번 더 회사에 CEO 리스크를 가져온다면 새로운 CEO로 대체한다는 의미죠. 유무형의 결실이 아예 없지는 않았지만 재무적인 상태가 망가졌으니 제 책임이죠.”
-신사업에 대한 아픔도 있었지만 신사업에 대해 도전을 멈추는 순간, 이트라이브의 성장판이 하나 닫혔다고 생각할 수도 있겠습니다.
“맞습니다. 저는 AR/VR 비즈니스를 회사에 안착시키고 있는 중이고, 기술 중심의 용역 사업 또한 고부가가치 사업모델로 전환·확장하는 것이 저희 미션 중 하나예요. 신사업은 초기자본을 많든 적든 투입해야 하고, 그 경험이 자산이 됐다고 말씀드렸잖아요? 2021년 9월 하반기에 메타버스와 AR/VR 전담 조직도 세팅했어요. 저희 리더들이 깜짝 놀랐죠. 신사업이었으니까요. 그래서 제가 리더들에게 부탁을 했죠.”
-어떤 부탁이었습니까?
“제가 조건을 몇 가지 걸었어요. 하나, 회사 차원에서 자금을 투자하는 일은 없을 것이다. 매출을 만들어 시작하겠다고 약속했고, 둘, 크게 시작하지 않겠다. 또, 안정적인 매출 중심으로 사업의 안정성을 확보할 때까지 조금씩 천천히 늘려가겠다고 말이죠.”
-그렇게 설득을 하신 거군요. 지금은 몇 명으로 구성돼 있습니까?
“그렇게 몇 가지 확약을 하고 진행했지요. 기존 제 성향이었다면 아마 30명 내외의 조직을 세팅했을 겁니다. 하지만 과거 비싸게 치른 교훈이 있으니, 노력해서 사업 하나 궤도에 올려놓고, 또 추가적으로 자원과 인재를 확보해서 가볍지만 신중히 쌓아 올라가고자 합니다. 현재 신사업은 7명으로 구성돼 있어요.”
-점진적으로 매출과 시장을 넓혀 사세를 확장한다?
“네. 메타버스로 신사업을 다시 시작했지만, 이제는 메타버스를 넘어서 VR/XR/MR과 3D 영역의 가능성을 더욱 확장시키는데 주력하고 있어요. 올 2월까지 MX(메타버스 익스피리언스)팀으로 조직을 운영했는데, 2주 전 CTS(컬처 테크놀로지 스쿼드론)라 해서 기존 사업에서 완전히 독립된 조직으로 운영하고 제가 최종 의사결정에 참여하고 있습니다. 자체적으로 사업을 발굴하고 수행하느라 저희 CTS부서원들이 노고가 많았는데요, 이제 3년차에 접어들면서 조직적으로도, 사업적으로도 안정적인 궤도에 올라섰습니다.”
-자회사와 유사하지만 독립적인 자본과 투자, 이윤으로 운영한다는 방식이죠?
“회사의 메인 비즈니스 영역으로부터의 지원없이, 신사업 부서가 독자적으로 사업의 지속가능성을 확보했다는 것이 중요합니다. 또 한편으로 기존 사업영업과의 연계성도 점점 더 구체적으로 부각되고 있어요. 메타버스에 대한 시장의 기대와 우려가 어떤 방식으로 전개될지에 대한 전망과는 별개로, 우리 디지털 에이전시도 이제 메타버스가 가져온 새로운 디지털 경험을 어떻게 활용할 것인가 고민해야 해요.
인류는 3D라는, 익숙하면서도 생소한 디지털 경험을 맛 본 거고, 이로 인해 2D 세상이었던 웹이나 앱 서비스에서도 대중의 눈높이와 기대가 달라졌어요. 인간은 언제나 좋은 경험을 욕망하니까요. 이트라이브는 메타버스나 AR/VR이 기존 기술과 서비스에 서로 융합되고 새롭게 재창조될 때 생기는 가능성에 주목하고 있어요. 디지털 서비스 매력적으로 구현할 기술 중 하나로 자연스레 활용되는 것이죠. 저희 CTS에서는 정부지원과제 2건과 관련 공공사업 2건을 진행하면서 새로운 기술요소에 대한 이종배합의 가능성을 증명하고 있습니다.”
-기술 융합의 시대, 내일 일어날 일을 누구도 예상 못하는 상황에서 교훈 만큼 많은 부분에 있어 빠른 회복을 가져오려 노력하셨고, 올해 훌륭한 결실을 맞고 기존 사업 간에 밸런스도 여러 노력으로 빠르게 대처하신 부분도 눈에 띕니다.
“저는 이트라이브에 있어도 훌륭한 임직원이 많이 모여 감사하지만, 사업적인 부분에서도 축복 받았다고 생각합니다. 신사업으로 인한 고통은 제 성향상 살면서 한 번은 호되게 겪었어야 했던 일이기도 했지요. 그래도 나이 60~70세가 되서 겪는 것보다 한 살이라도 젊을 때 빨리 겪고 털어냈으니 이 만한 자산도 없지 않겠습니까?”
-이것이 이트라이브만의 또 다른 DNA가 됐을 것 같습니다. 그럼, ‘이트라이브(ETRIBE)’ 사명(社名) 어떤 뜻을 담고 있습니까?
“저희 업(業)의 속성을 전통적인 방식으로 구분한다면 크게 세 가지, 즉 기획, 디자인, 개발 직무로 정리할 수 있어요. 이 세 개의 직무가 서로 이질적이기 때문에 디지털 에이전시마다 핵심역량을 이 중 한두 가지에 집중해 나름의 경쟁력을 다져가고 있구요. 하지만 이트라이브는 설립 초기부터 전략적, 창의적, 기술적 역량 확보를 모토로 삼고 이 모든 직무에 대한 스페셜티를 동시에 발전시켜 나가고 있어요. 이른바 IT서비스에 대한 풀 서비스 프로바이더로서의 정체성을 추구하고 있는 것이죠.
그러기 위해서는 다양한 영역에서 상이한 직무를 가진 사람들끼리, 어쩌면 뇌 모양과 피 색깔까지도 다른 전문가들끼리 하나의 부족, 종족처럼 결속하며 시너지를 만들어내야만 해요. 그래야 공동의 마스터피스가 만들어질 수 있으니까요.
그런 의미에서 ‘TRIBE’란 단어를 떠올렸어요. 우리가 실제 혈연으로 이어진 가족은 아니지만, 공통의 목표를 향해 함께 달려가는 같은 종족이자 부족인거죠. 이트라이브의 컬러도 최고의 결속과 유대를 상징하는 피색, 즉 진한 레드예요. 저희는 ‘블러드 컬러(Blood Color)’로 부르고 있구요. ‘E’는 디지털 세상을 상징하는 단어인 Electronic에서 가져왔어요. 지금은 여기에서 더 나아가, 평범의 범주에서 완전히 벗어난, 별나고 기이한 방식으로 우리만의 길을 만들어 나간다는 의미로 익스트라 오디너리(Extra Ordinary)의 ‘E’로 내세우고 있어요.”
-그럼, 빨간색 추리닝을 즐겨 입으시는 것도… (웃음)
“맞습니다. 이트라이브만의 컬러이기 때문입니다. 평상시도 즐겨 입지만, 특히 회사의 중요한 행사마다 꼭 챙겨 입어요. 저만의 의관(衣冠)인거죠. 저희 회사 블로그에도 그 사진 있을 걸요?(웃음)”
-네. 봤습니다.
“아, 보셨구나. 역시 모르는 게 없으시네요. 제가 보내주신 질의서도 훑어봤는데 직원이 감귤 보내온 것도 질문에 있던데 이걸 어디서 보신 거지?하고 깜짝 놀랐습니다. 이제 우리 회사가 두 세대가 공존하는 회사가 됐어요. 친구 동생 같던 회사였는데 조카나 딸, 아들뻘 직원도 있지요.”
-그만큼 이트라이브가 오랜 시간 호흡을 길게 가져갔다는 의미겠죠.
“이제 두 세대가 공존하기 때문에 세대 간 간극이 당연히 존재할 겁니다. 세대 간 용어와 사고도 다르니 이 부분을 극복해보자, 해서 마련한 게 앞서 언급했던 ‘주니어보드’입니다. 날 것이 중요하다는 차원에서 가감 없이 이야기하고 공유하고 인정하고 소통하는 거죠. 주니어보드가 현재 4명으로 구성돼 있는데, 부서를 대표해서 1명씩인 거죠. 부서별 가장 나이 적은 멤버로 구성했는데, 본인 또래 집단 등에서 흔히 주고 받을 수 있는, 정제하지 않은 이야기를 주고 받습니다. 함께 꺼내 테이블에 펼쳐넣고 고민해보는 거죠. 아젠다가 주어지면 그들의 시선과 사고로 사물을 보고 의견을 주고 받습니다.”
-애플, 구글 사내문화를 보면 농담따먹기를 권하잖아요. 그 속에 생생한 아이디어가 숨겨져 있다고요. 걸러지지 않은 이야기 속에 아이디어를 캐치해 발전시키는 것, 이것이 추후 어떤 결과를 가져올지 아무도 모르는 거니까요.
“스몰토크가 중요한 사례는 얼마든지 있어요. 편한 대화나 농담 속에서도, 그 자간과 행간 속에 보석 같은 인사이트들이 숨어 있어요. 조직에서 그것들을 발견할 줄 아는 습관을 길러야 해요. 서로 좀더 나은 곳으로 나아가자는 데 목적이 있으니 계급장 떼고 서로의 생각과 아이디어를 존중하고, 일상의 날것으로부터 유의미한 인사이트를 포착해야 해요. 주니어보드에서 취합한 내용을 제게도 공유해달라고 요청드리고 있죠.”
-대표님 말씀을 듣다 보면, 대표라는 자리가 사업에 있어 순간 판단과 실행력도 중요하지만, 경영에 있어 내부 목소리도 경청해야 하고, 의견이 올라왔을 때 충돌하지 않게끔 조정하고 피드백하는 역할도 중요하다 느낍니다. 그런 면에서 볼 때, 숙고해야 하는 부분도 있을 것이고, 때론 힘들거나 어려운 부분이 있거나 그러지 않으신가요? 어떠십니까?
“평소, 제 아내가 그런 이야기를 많이 해요. 힘들지 않냐고. 하지만 정말 하나도 힘들지 않아요. 아마, 창업한 세상의 모든 대표님들이 그러실 거예요. 그게 힘들면 대표를 맡을 수 없죠. 제가 특별히 회복탄력성이 좋아서가 아니라, 그게 나의 일이고 사명이라는 잠재의식으로 인해 자연스레 습득한 저의 사고와 행동 루틴이라고 생각해요. 지금까지도 그랬고, 앞으로도 여유가 없겠지만, 할 일이 없어 여유가 많아진다면 그만큼 더 스스로 감당하기 어려웠을 겁니다.”
-그렇게 오래 활동하기 위해서 특별한 운동이나 루틴이 있을 것 같은데요. 어떻습니까.
“단식과 명상을 꾸준히 합니다. 단식은 몸을 맑게 유지하기 위해, 명상은 생각을 맑게 유지하기 위해 하고 있어요. 또 오랜 시간 지켜왔던 루틴 중 하나가 바로 저만의 일에 몰입할 수 있는 시간을 확보하는 거예요. 그래서 아무도 없는 토요일에 근무를 하는 편이예요. 주중에도 일찍 귀가하는 날은 거의 없지만 그게 힘들다고 느껴본 적도 없고요. 그래서 제가 ‘꼰대’ 소리를 듣나봐요. 저희 집에서도 아이들이 힘들다고 할 때마다 ‘No Pain, No Gain’이라는 말만 무한반복하는 꼰대 중에 꼰대인 아빠죠.
그런데 그 말이 꼰대의 말인 동시에 만고의 진리이니 어떡해요, 모든 수단과 방법을 동원해서라도 저희 아이들이 그걸 믿게 만들고 싶은 거죠(웃음). 이런 꼰대다보니 제가 직원들의 여러 고충을 충분히 이해하지 못하고 있을 거예요. 미안하죠. 앞으로 직원들의 어려움을 공감할 수 있도록 더 섬세하게 다가설 생각입니다..”
-이트라이브는 어떤 인재를 선호합니까?
“저는 ‘애티튜드(태도, Attitude)’가 본질이라고 생각해요. 아주 천재나 바보가 아닌 이상 대부분 사람들의 인텔리전스는 대동소이합니다. 큰 차이가 없는 거죠. 결국 타인과의 확연한 격차를 만들어내는 것은 바로 ‘애티튜드’예요. 특히 ‘열정’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요즘 세대에게 ‘열정’이란 말이 어떻게 희화돼 통용되고 있는지 잘 알고 있어 오히려 조심스럽긴 합니다만, 자신을 갈아넣어 희생하라는 의미가 절대 아니예요. 저는 열정을 명확한 목표의식을 갖고, 높은 몰입감으로 끊임 없이 도전하는 자세라고 정의하고 싶어요.
제가 예전에 읽었던 《그릿(Grit)》 이라는 책에서는 이 단어에 대한 최근의 회의적인 인식을 의식해서인지 ‘열정’을 ‘그릿’이라는 말로 대체해 사용하고 있던데, 저는 열정을 대체할 수 있는 단어를 아직 찾지 못했어요. 어떠한 환경에서도 흔들리지 않고 목표를 향해 나아가는 것, 바로 그 열정을 갖춘 이가 우리 이트라이브의 인재상이라고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하드워킹(자신과 시간을 희생해 목표만을 향해 나아간다는 의미)과는 다른 이야기이니 오해하지 않으시리라 믿습니다.(웃음)”
-대표님의 좌우명이나 마음 속에 품고 있는 한 문장이 있다면 무엇입니까?
“헨리포드가 이런 말을 했습니다. ‘가능하다고 생각하든, 불가능하다고 생각하든 당신의 그 생각은 항상 옳다’고요. 우리는 가능 혹은 불가능한 부분에 대해 근거를 찾고 이유를 붙여 자신의 당위성을 확보합니다.
저는 가능하다는 명제를 믿고 그에 대한 이유를 찾고 싶어요. 가능하다 믿는 순간 작은 시작이라도 하게 됩니다. 저는 굉장히 큰 사명감을 갖고 일을 추진하는 카리스마형 CEO가 아닙니다. 제가 내린 작은 의사결정조차 과연 올바른 판단이었는지 조마조마해 하고 끊임 없이 의심하죠.
그러다 일단 그 결정에 맞춰 작은 것부터 실행해 나아가면서 상황에 따라 방향성을 순간순간 조정해나가는 방식을 선호해요. 불가능한 이유야 수 없이 많겠지만 가능한 이유 단 하나를 찾아 작은 첫 걸음을 떼 보면서 성장을 일구길 바라고 있습니다. 그 단 하나의 이유가 인생을, 세상을 바꿀 수 있다고생각합니다.”
-MBTI가 어떻게 되세요?
“공인기관에 두 번이나 돈 내고 해봤는데 모두 ENFP가 나왔어요.”
-지금 휴대폰으로 찾아보니, 활동가 유형이네요. 외부활동에 적극적이고, 열정적이며 활동적이라고 나와있습니다. 아이들은 어떻게 됩니까?
“아들 둘입니다. 대학교 2학년, 그리고 고3이죠.”
-친구 같겠습니다.
“완전 친구예요. 술도 함께 마시고, 게임도 하고, 이성친구 얘기도 나누고 시시덕거리며 지냅니다(웃음).”
이 더위에도 직원들을 으스러지게 껴 안고
-이주민 대표 아버님께서 직접 그에게 보낸 메일. 그는 늘 아버지의 말씀을 떠올리며 하루를 시작한다고.
감동 왕창 먹여 주며 사는 동안
한 번은 남의 가슴 불을 당기는 방화범이 되어 보거라.
-자신에게 영향을 미친 인물이 있다면 누구를 꼽을 수 있습니까?
“저의 아버지가 먼저 떠올라요. 제가 가장 존경하는 분이자 저의 가장 친한 친구예요. 이트라이브의 빅팬이기도 하시구요. 사장의 도리를 글을 적으셔서 종종 보내주시는데, 회사 설립 초기에 적어주신 이 문장을 늘 가슴에 품고 있어요. “이 더위에도 직원들을 으스러지게 껴 안고 감동 왕창 먹여 주며 사는 동안 한번은 남의 가슴 불을 당기는 방화범이 되어 보거라.” 지금까지 회사를 운영해오면서 이 말씀은 저에게 명령이자 칙령이었어요. 대표서로 저의 영원한 미션이구요.
사업가 중에서는 자포스 창업자 토니 셰이(Tony Hsieh)에게 매혹됐어요. 안타깝게 세상을 떠났지만 행복한 직원들이 행복을 파는 회사로 알려진 자포스가 아마존에 매각되며 빅테크로 성장했잖아요. 자포스만이 갖고 있는 세계 유일의 기업 문화, 고객과의 강한 유대관계, 탁월한 비즈니스 모델, 리더십 등은 제가 두고두고 배우며 마음에 새기고 있습니다. 신발을 매개로 고객에게 유쾌한 경험을 선사하잖아요. 얼마나 짜릿합니까.
《아마존은 왜 최고가에 자포스를 인수했나》(북로그컴퍼니)라는 책을 2015년에 구입했는데 너무 많이 읽어서 책이 너덜너덜합니다. 비니트 나야르가 쓴 《직원 우선주의》(21세기북스)라는 책도 눈 여겨 볼 내용이 많습니다. 10년 넘도록 읽고 있는데, 그때마다 새로움이 다가옵니다.”
-책을 읽는 환경에 따라, 필요성에 따라 새로운 것이 눈에 들어오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하는데, 저 역시도 책을 반복해 읽을 때마다 다른 것을 배우고 느낍니다. 참, 아버지가 시인이시라고요. 말씀을 듣다 보면 책의 내용을 많이 인용하셔서 아버지의 영향을 많이 받으신 것 같습니다.
“네. 전직 교사셨고, 현직 문학가세요. 아버지 영향을 받아서 제가 시를 굉장히 좋아하고 즐겨 읽었습니다. 하지만 회사를 설립하고 나서는 시나 소설을 읽은 경우가 거의 없어요. 일상을 챙겨야하니 먹고 살기 위해 회사일과 관련된 책들만 찾게 되더라고요.”
-아버님 성함이 어떻게 되시죠?
“이, ‘제’자 ‘우’자(이제우 님)를 쓰십니다. 올해 83세이시지만 여전히 왕성히 활동하고 계신 영원한 문학청년이십니다.”
-혹시 10년이 지난 2024년, 이트라이브는 어떤 기업으로 변모해 있을까요?
“저희 장기목표에 해당하는데요, 저희가 직접 만든 자체 디지털 서비스가 사회 곳곳에 꽃을 피워 최소한 지금의 메인 비즈니스와 동급 이상으로 성장하길 바랍니다. 세상에 기여할 수 있는 IT서비스를 붕어빵 찍어내듯 만들어내고 또 성공시키는 기업, 모든 사람이 손꼽는 대표적인 서비스를 만든 기업으로 자리매김했으면 하는 바람이있습니다.”
-그럼 10년 후에 제가 한 번 더 찾아 뵙고 얘기 나누겠습니다. 그때는 이런 질문을 드릴 수 있을 것 같습니다. ’10년 전, 목표로 했던 그 꿈을 이루셨다고 보십니까?’하고 말이죠. 마지막으로 이 기사를 보고 있을 고객(독자)분들께 한 말씀 해주시죠.
“이트라이브는 대한민국 디지털 에이전시의 정점을 목표로 달려가고 있는 IT기업입니다. 그 목표를 이루기 위한 메인 타깃은 바로 고객과 내부직원이구요. 고객과 직원 모두를 행복하게 만들 거예요. 기대를 넘어선 퍼포먼스로 고객을 초과 만족시키고, 직원들의 정신적·물질적 행복감을 독보적인 상태까지 끌어올리고 이를 지속시키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할 겁니다. 그것이 우리가 이 업을 영위하는 이유입니다. 우리 이트라이브의 모습을 늘 지켜봐주셨으면 합니다. 감사합니다”
-이제 끝났습니다. 장시간 좋은 말씀 감사합니다.
“이제 끝났군요.”
이주민 대표는 이 멘트를 끝으로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연출 사진 촬영에 응했다. 사실, 몇 번이고 인터뷰를 고사했던 그였지만 취지를 설명하며 “이제 이트라이브가 어떤 회사인지 고객과 임직원에게 알려야 할 때”라고 설득했다. 무슨 말을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른다며 걱정을 나눴던 그였지만 이 역시 기우에 지나지 않았다. 그리고 이주민 대표와 이트라이브에 대해 깊이 이해할 수 있었던 시간이었다.
창조의 씨앗은 실패하는 것, 잘 못 하는 것, 좋은 평가를 받지 못하는 것으로 싹을 틔울 수 있다고 했다. 자연계처럼 회사나 조직도 다양성을 끌어안아야 오래 간다고 했다. 이트라이브, 다양한 이트란이 모인 곳, 그래서 오래오래 오레(Olé, 잘 한다는 스페인어)할 것이라는 기대감이 온 몸에 감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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