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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노이즈는 사람들의 삶이 나아지도록 좋은 디자인을 하는 곳” 홍순기 대표

이노이즈, 플레이 그라운드 그 자체… 21년 간 700여개 이상 프로젝트에 흔적 농후

단순하지만 의미 있게 만들어라(Make it simple, but significant.)’ -Don Draper-
디자인은 문제에 대한 해결책이며, 예술은 문제에 대한 질문이다(Design is a solution to a problem, and art is a question to a problem)’ -John Maeda-

디자인은 더 이상 단순히 멋진 외관을 만드는 작업이 아니다. 사용자 경험(UX) 디자인 세계에서는, 작은 터치 포인트 하나가 고객의 마음을 사로잡고, 나아가 브랜드에 대한 충성도를 결정짓는다. 사용자 경험은 곧 인간의 경험이며, 매 순간이 놀라운 여정이 되도록 설계하는 데 무게를 둔다. 이들이 추구하는 디자인은 기능적일 뿐만 아니라 감동을 불러일으키는 스토리텔링이기 때문이다. 이 부분이 바로, 이노이즈인터랙티브(이하 이노이즈)만의 서사(書史)다.

2003년, 이노이즈는 웹사이트에서부터 모바일, TV, 자동차 등 새로운 경험에 대한 관심이 막 피어오르던 시점에 설립됐다. UX의 중요성을 직감한 홍순기 대표는 이성과 감성을 아우르는 새로운 경험과 디자인의 필요성을 느꼈고, 이를 실현하기 위해 직접 회사를 세우기로 결심했다.

강산이 두 번 바뀐다는 20여년이 훌쩍 지난 지금, 이노이즈는 UX/UI, 모바일 앱, 웹사이트, 브랜딩, 플랫폼 및 콘텐츠 운영, 그래픽 디자인, 모션과 광고 영상 등 다양한 분야로 오랜 노하우를 확장하고 있는 크리에이티브 에이전시로 진화했다. 30년 동안 디자인이라는 외길을 걸어온 그에게는 어쩌면 당연한 운명으로 점철되는 숙명일 수 있다. 도자의 도덕경에 나오는 ‘상선약수(上善若水)’라는 말처럼 가장 아름다운 삶은 물처럼 사는 것, 즉 디자인 속에서 디자이너로서의 삶을 살아내는 그다.

그리고, 이노이즈 입구에 들어서면 다음과 같은 글귀와 마주할 수 있다.

인생은 폭풍우 속에서 어떻게 살아남을 것인가가 아닌, 빗속에서 어떻게 춤을 출 것인가다

홍순기 이노이즈 대표(사진=디지털 인사이트)

이노이즈는 별도의 영업과 수행 조직을 구분하지 않는다. 임원 모두가 직접 프로젝트를 제안하고 계획, 수행하는 시스템이다. 이노이즈의 슬로건이 ‘Explore the Edge’라는 것만 봐도 고정된 틀이나 선입견 없이 매번 새로운 시각으로 디자인에 접근하려는 의지가 충만하다. 이는 시장 경쟁보다 스스로 한계를 넘어서며 차별화된 결과물을 만들어 내는 데 주력하고 있다. 이윤보다 사용자 중심 디자인을 만들어 내는 데 에너지를 집중한다.

홍 대표는 오랜 시간, 묵힌 이야기를 주섬주섬 풀어 기자에게 펼쳐 보였다.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그가 독자에게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는 앞서 언급했던 유명 디자이너 Don Draper와 John Maeda의 이야기와 다를 게 없다. 폭풍 속에서 살기 보다 빗속에서 춤추는 삶을 살기 바랄 뿐. 그런 마음으로 하루하루 임하고 있는 듯한 아우라가 온몸을 휘감는다.

이노이즈는 처음부터 ‘플레이 그라운드’ 그 자체였다. 마음 껏 휘젓고 놀고 한 바탕 소란 피웠으면 더 바랄 나위 없겠다”고 말한 홍순기 대표는 “그때나 지금이나 “디자이너 모두가 즐겁고 보람있게 일할 수 있는 곳을 지향하며, 지금도 그 정신을 유지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렇게 지난 21년 동안 700개 이상의 프로젝트를 수행하며, 40여 명의 디자인 전문가들과 함께 도전적인 프로젝트에 뛰어들었다.

문뜩 이것저것 알고 싶어진다. 그가 하고 싶었던 일은 무엇이었을까, 무엇이 그를 여기까지 이끈 것일까. 홍순기 대표는 “사실, 나는 물리학을 전공하고 싶었다”고 말해 깜짝 놀랐다. 하지만 홍익대 시각디자인학과를 입학했고, 그해부터 돈을 벌어 가계에 보탬이 돼야 했다. 그곳에서 운명처럼 맥(Mac)을 만나면서 그의 디자인 철학은 조금씩 날이 서기 시작한다.

홍 대표는 “오늘 인터뷰를 계기로, 이노이즈만의 맨파워와 차별화를 독자 여러분께 차분하게 이야기할 수 있을 것 같다”면서 “외부에서 비치는 이노이즈의 다양성과 혹시 모를 고정관념도 이번 기회에 다 해소할 것”이라며 웃었다.

그에게 빠르게 변화하는 IT 기술은 도구일 뿐이다. 그보다는 사람들이 어떻게 생각하고 반응할지에 관심이 많다. 디지털 미디어 분야의 디자이너로서, 업계의 신기술을 자연스럽게 접하게 되며, 클라이언트들이 먼저 새로운 기술에 대해 문의해 오는 경우도 많다고. 이를 통해 세상에 나오지 못한 ‘도태된 기술’에 대한 정보도 함께 쌓아간다. 기술을 힘들게 따라가기보다는, 이를 즐기며 활용하는 것이 중요하다 여긴다.

장마로 비바람이 한 바탕 몰아친 뒤, 30도를 넘나드는 무더위가 온 몸을 감쌀 즈음 학동에 위치한 이노이즈 사옥에서 “나의 삶이 세상 모든 존재에게 이롭기를”이라는 말을 늘 되뇐다는 홍순기 대표와 마주했다.

형태는 기능을, 기능은 사람을 따른다

이노이즈가 벌써 21살입니다. 이노이즈가 UX를 풀어가는 데 방법론을 보면 이노이즈만의 철학이 진하게 묻어납니다. 그 이유는 무엇에 기인한다고 보십니까.

이노이즈를 설립하기 전 당시 국내 최대 디지털 에이전시였던 FID에서 뉴미디어 사업본부장과 eBI 본부장으로 일할 당시의 어떤 약속 하나가 기인했다고 알고 있습니다.(당시 FID는 직원이 총 400여명일 정도로 거대한 디지털 미디어 에이전시였다. 홍순기 대표는 당시 사업본부장으로서 100여명을 리드하는 위치에 있었다.)

(사진=디지털 인사이트)

FID는 일본에도 진출했다. Lancome Japan UT 및 Localization과 같은 국외 UX 컨설팅 업무까지 수행했다. 또 국내 디지털 에이전시 중 최초로 전문적인 UX 컨설팅 조직을 만들어 주목도 받았다. 홍순기 대표의 말처럼, 당시 UX 전문회사가 거의 없거나 초기 단계였던 상황이었다. 이때, 당시 거의 사용되지 않던 ‘Customer Experience’라는 용어를 조직 내에서 처음으로 사용했고, UX와 더불어 CX 개념을 도입해 Ecommerce와 금융 분야의 프로젝트를 진행하기도 했다. 이들은 회사가 없어지자, 삼성전자, LG전자 등 대기업을 비롯 네이버, 교직, 구글, 스타트업 대표 등 다양한 영역에서 활발한 활동을 이어갔다. 홍순기 대표도 그중 한 사람이다.

홍익대학교 시각디자인학과 92학번으로 입학한 그는 대학 시절부터 디자인에 대한 열정이 남달랐다. 특히, 당시 홍익대는 국내 대학 중 맥 스튜디오를 앞서 도입한 학교로, 그는 이 최신 기술을 접하며 디자인 역량을 키워나갔다. 당시 혁신적인 기술이었던 PC 통신을 접했던 때도 이 시기였다. 대학 은사였던 안상수 교수 주도로 PC 통신과 전자카페 등도 발빠르게 도입했다.

또 1990년대 초반은 편집 디자인과 광고가 주류였던 시기로, 웹이 아직 존재하지 않았던 때였다. 그는 이 시기에 <디자인 하우스>와 <한겨레21> 그리고 디자인 스튜디오에서 디자이너로 일하며 실무 경험을 쌓았다.

어렸을 때는 가난한 가정 형편 때문에 책을 많이 접할 수 없었지만, 중학교 시절 아버지가 전자제품 대리점에서 서점으로 업종을 바꾸면서 그는 비로소 책과 가까워질 수 있었다. 이때부터 책에 대한 애정이 깊어졌고, 책을 통해 세상을 이해하는 법을 배웠다. 그런 그는 대학 시절부터 그는 쉬지 않고 돈을 벌며 디자인 일을 이어갔고, 그 과정에서 편집 디자인, 광고, 그리고 미디어에 대한 다양한 경험을 쌓았다.

이러한 경험들은 그의 디자인 철학에 큰 영향을 미쳤으며, 지금까지도 그는 책을 여전히 사랑하며, 디자인과 비즈니스에 그 애정을 녹여내고 있다.

진로를 결정하신 대학 4학년 시절, 아버지가 돌아가셨다고 알고 있습니다. 미래를 향해 첫발을 내디딜 중요한 시기에 가장 믿고 의지했던 아버지의 부재에 대한 슬픔은 이루 말할 수 없을 것 같습니다.

다시 이노이즈 이야기로 돌아가보면, 대학시절 PC 통신과 맥을 접하면서 디자인을 바라보는 관점이 사뭇 달라졌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대표님이 생각하시는 이노이즈의 UX 디자인 영역은 어디까지로 볼 수 있습니까.

당시엔 UX라는 개념도 많이 사용하지 않았던 때고, 그것만 특화해서 생겨난 기업도 없었기 때문에 UX의 방향을 정의하고 추구하고 시장을 확대하는 첫 걸음으로서도 의미가 있을 것 같습니다.

이노이즈는 서비스 하나하나를 프로젝트화해 효율성과 능률을 모두 잡고 있다. 특히, 2019년부터 멀티캠퍼스(구. 크레듀)의 플랫폼 구축과 고도화, 운영 업무를 전담해 오고 있는데, 이 플랫폼은 단순한 구축에 그치지 않고 지속적인 운영과 개선, 컨설팅까지 포괄하는 복합 프로젝트다.

홍순기 대표는 “이노이즈는 긴 호흡으로 클라이언트와 함께하며, 브랜딩 업무와 컨셉트 개발, 개선 작업도 수행한다”며 “이러한 통합적인 접근 방식으로 인해 이노이즈는 클라이언트가 일반 운영 회사에서는 찾기 힘든 솔루션을 제공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이노이즈는 앞으로도 이러한 토털 서비스 중심 케어로 클라이언트를 차츰 늘려갈 계획이다.

사람 중심의 좋은 디자인 이야기

그는 이노이즈를 “토털 크리에이티브 에이전시”라고 정의한다. 디자인의 경계를 넘어 다양한 창의적 솔루션을 제공하는 기업이기 때문이다. 대부분 이노이즈를 디자인 회사로 알고 있고, 또 그렇게 알려져 있었지만, 돋보기를 들이대고 살펴보면 다른 해석을 내놓을 수 있다.

이노이즈는 지금 껏 온오프라인 경계를 허물고 디자인과 크리에이티브의 범위를 확장해온 사이, 크리에이티브를 중심으로 모든 요구를 충족시키는 종합적인 서비스를 제공하는 기업으로 변모했다. 디지털 기반의 작업을 중심으로, 고객의 다양한 필요에 부응하며 사용자 중심의 접근 방식을 과감히 채택하기도 하는 등 실험적이면서 점진적으로 디자인로그를 시도하는 부분도 엿보인다. 이는 신선한 시도와 새로운 타깃을 찾아내기 원하는 고객들 사이에서 신뢰받는 파트너로 자리매김하는 데 일등공신이 되고 있다.

회사를 처음 세우고 임했던 첫 프로젝트의 기억도 생생했다. 이노이즈는 디지털 미디어가 흑백에서 컬러로 넘어오는 시기에 생겨났다. 홍순기 대표는 한 매체와의 인터뷰에서 “단순한 개발자 중심의 인터페이스로는 한계가 드러났다. 당시 휴대폰 화면에 표시된 아이콘들은 제조사마다 더 독창적으로 표현하고자 하는 욕구가 강했다”면서 “다만, 칩 성능이 떨어져 그래픽 이미지를 사용할 때 속도가 저하됐다. 그러나, 3D 디자이너들이 리터치한 아이콘은 시각적으로 풍부하면서도 빠른 구동이 가능했다”고 말했다. 이 경험 이후 홍 대표는 일종의 경험 디자인의 중요성을 제대로 느낄 수 있던 시간이었고, 이는 시각적 효과를 통해 제품의 성능 인식까지 개선한 사례라 할 수 있었다.

그런가 하면, 세간에 이노이즈는 견적이 다소 높다고 알려져 있지만 이건 오랜 시간 최상의 결과물을 내기 위한 시간과 혁신의 비용에 대한 오해가 굳어진 탓도 있다. 이노이즈 입장에서는 클라이언트의 전체 예산을 알지 못 하는 상황에서 고객이 원하는 최상의 결과를 끄집어 내고, 그에 합당한 비용이라 생각했고 청구했다.

그렇게 이노이즈는 한 번 일에 착수하면 무서울 정도로 고객과 시장 만족도를 끄집어 대는 데 능동적이다. 예를 들면, 고객이 원하는 시안을 A와 B로 산정했다 하면, 이노이즈는 여기에 더해 실무진이 바라보는 새로운 시각의 시안 C를 하나 더 디자인해 최종 제안하는 식이다. 그렇게 이노이즈는 온오프라인 경계를 넘나들며 비용을 넘어선 결과와 만족도를 끄집어 내기 위해 분주하다.

하지만, 홍순기 대표의 말을 빌리면 이렇다. 그동안 단가가 높았던 것은 사실이나 무조건 높은 단가만 추구하지 않기에 ‘이노이즈는 비싸다’라는 공식은 선뜻 동의하기 어렵단다. 일을 잘 하기 위해서도 그 정도의 비용은 필요했다고 판단했지만, 거꾸로 먼저 예산을 알려준다면 그에 맞춰 이노이즈 역시 얼마든지 방법을 찾을 수 있으리란 설명이다.

예산이 얼마든, 시장이 어떻든 이노이즈가 추구하는 명제는 딱 하나다. 바로 세상이 필요로 하는 ‘좋은 디자인’이다. 그리고, 그 기준은 ‘사람 중심 이야기’라는 사실이다. 그 과정에서 빚어지는 오해의 불순물은 이제 거두고 싶다는 게 홍 대표의 생각이다.

그렇다고 돈을 좇지 않는다는 얘기가 아니다. 이윤보다 좋은 디자인을 추구한다는 뜻이다. 오랜 기간, 그 만큼 경험이 쌓은 경험을 최대한 끌어 올리는 데 중점을 둔다. 이노이즈는 그래서, 고객이 요청한 대로만 프로젝트를 진행하지 않는다. 대신, 임원들이 직접 프로젝트에 참여하며 고객의 숨겨진 니즈와 시장 상황을 파악하려 노력한다. 고객이 원하는 것 이상을 제공하려고 하고, 이를 통해 더 큰 가치를 전달하는 데 무게를 둔다. 관행대로 반복하는 것이 아닌, 매번 새로운 시각으로 접근하며 고객이 진정으로 필요로 하는 것을 찾아내는 것이 이노이즈의 강점이다.

지천명(知天命)에 이르면서 공자의 말처럼 순리에 순응하거나 하늘이 만물에 부여한 최선의 원리도 자각하면서 객관적이고 융통성을 갖추게 된 점도 눈에 띈다. 무엇이든 절대적인 기준으로 임하는 것이 아닌, 사례와 변화에 맞춰 방법을 찾는다. 그 사이, 홍 대표의 자신감도 배가 됐다.

(사진=디지털 인사이트)

비용보다 좋은 디자인을 추구한다는 것으로 이해가 됩니다. 고객 입장에서는 비용을 떠나 또 하나의 선택지를 받을 수 있다는 생각인데요, 이와 관련한 프로젝트가 있을까요.

홍순기 대표는 가치 철학으로 늘 ‘Non sum qualis eram(‘나는 어제의 내가 아니다’라는 뜻의 라틴어)’를 되뇐다. 매번 새롭게 삶과 프로젝트를 바라보고 임한다는 얘기다. 세상에 똑같은 프로젝트는 없고, 이는 우리네 삶도 마찬가지다. 그래서 이노이즈는 매 프로젝트마다 쉽게 가지 않는다. 때로는 직원들이 힘들어하지만, 익숙해지면 큰 동기부여가 되고, 이는 장기적으로 성공의 비결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는 자신과의 약속을 지켜온 듯, “습관과 선입견을 깨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매번 초심을 지켜야 하지만, 사실 초심이라는 것은 실체가 없고, 단지 지금의 마음을 유지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 역시 다양한 경험을 통해 여기까지 달려 왔지만, 앞으로 어떻게 될지는 세상 그 누구도 알 수 없다. 그러기에 이노이즈 역시 항상 이런 마음가짐으로 20년을 버텨왔고, 앞으로도 좋은 디자인을 추구할 수 있는 방안을 지속적으로 피봇팅(Pivoting, 기업과 산업 환경에 맞춰 전략과 모델을 변경하는 행위)하는 과정으로 오늘에 이르렀던 것이다.

그가 세상에 뿌리는 또 다른 씨앗

홍순기 대표는 2013년 인연을 맺은 국제구호단체 NGO 타이니씨드를 통해 인도와 미얀마의 마을들을 꾸준히 돕고 있다. 타이니씨드는 학과 선배이기도 한 故 석금호 산돌 의장이 세운 단체라는 걸 아는 이는 거의 없다. 석금호 의장과 함께 홍순기 대표도 씨앗을 뿌리고 있는 것. 이 구호단체는 생존과 삶이 불가능한 심각한 환경에 노출된 어린아이와 마을 공동체가 가난에서 벗어나 자립할 수 있도록 지원하고 있다. 현재는 황기석 라이트브레인 대표가 이사장을 맡으며 홍순기 대표와 NGO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홍순기 대표는 10여년 전, 미얀마의 고아원에 자전거를 기부하고, 이를 직접 조립해주기 위해 현지로 달려갔다. 처음에는 고아원의 아이들을 만나는 것이 두려웠지만, 현지에서 아이들과 소통하며 많은 것을 배웠다고.

그는 이 활동을 통해 소중한 의미를 하나 깨달았다. 처음엔 막연히 자신이 그들에게 힘이 되어줄 것이라는 생각이 지배적이었다. 그러나 그곳 아이들은 교육을 통해 가난을 극복하고자 했고, 홍 대표는 그들의 열망을 지원하기 위해 노력했다. 그 사이, 자신이 이들에게 생각지도 못 한 큰 위로를 받았다며 그 전까지 자신이 얼마나 오만했는지 뉘우쳤단다. 그는 “이곳 아이들에게 뭘 해주려는 생각을 했다는 자체가 너무 부끄러운 순간”이었다며 “오히려 나를 안아주는 느낌이어서 눈물이 날 지경이었다”고 말했다.

이후에도 꾸준히 타이니씨드를 통해 NGO 활동을 이어오고 있다는 그는 “봉사에 대한 진정한 의미와 이들을 위한 관심과 지원이 얼마나 소중한지 다시 한 번 깨닫고, 앞으로도 이 활동을 이어갈 예정”이라며 NGO 활동이야말로 자신에게 큰 보람이자 세상을 감사하게 생각할 수 있는 통로라고 강조했다. 뿐만 아니라 서울대병원 기부는 물론 건국대학교와 상허문화재단 장학금 기부 등 파도파도 선행만 쏟아져 나온다.

그에게 세상을 감사하게 생각할 수 있는 건 내부에도 존재했다. 30년 넘게 디자인을 해오고, 경영을 해왔지만 늘 임직원들에게 배울 게 있고, 그 과정이 감사하고 즐겁단다.

이노이즈를 검색하다보면 평균 근속년수에서 가장 멀리 떨어져 있는 2주차 인턴사원과 주고 받은 이야기가 나온다. ‘좋은 디자인이란 무엇일까?’하는 주제로 이어진 문답인데, 역시 그에겐 공짜가 없었다. 그는 이렇게 말했다. “내가 인터뷰 응해주면, 너는 내게 뭐해줄래?”

인턴사원이 뭐가 있겠습니까. 그래서 꼭 그걸 얻어서 밸런스를 맞추려는 게 아니라 숨겨진 깊은 의도가 있을 것 같은데요.

기자와 인터뷰 중인 홍순기 대표. 인터뷰를 막 시작했을 때 즈음이다. 20여분이 흐르고 질의서 없이 대화를 주고 받았다. 그는 이날 “우리는 각자의 존재 자체로 행복하고 건강하게 지내야 한다”고 강조했다.
(사진=디지털 인사이트)

그와 얘기를 나누다 보면 참 끈끈한 사람이라는 느낌마저 든다. 으레 형식적인 질문을 해도 인간적인 희로애락이 묻어난다. ‘인문학을 했으면 어땠을까?’하는 생각도 들고, 한편으론, 중고교 선생님이나 대학 교수도 그에게 어울리는 직함인 듯싶다. 의도를 알아차렸는지 “앞서 말씀드렸듯, 제가 대학 4학년 때 아버지가 돌아가셨지만 머릿속에 아버지상이 남아 있질 않다”며 “좋은 디자인은 알아도, 좋은 아빠가 무엇인지 잘 몰랐다. 그래서 책을 찾아도 없더라. 마침 그때 휴넷 강좌 중 ‘행복한 아버지 학교’라는 것이 있었는데 그때 이 문구가 제일 기억남는다”면서 ‘아빠가 행복해야 아이도 행복하다’고 말했다.

예전과 삶 자체가 다르다고 설명할 정도다. 이후 그는 자신의 행복을 위해 인생 궤도를 다시 맞춰나갔다. 경영관련 서적도 탐독해 내실을 키우고, MBA 과정도 밟았다. 그리고 또 하나 빼놓을 수 없는 것, 바로 요가와 명상이다. 특히 그는 5년 전, 요가와 명상을 처음 접하며 완전히 다른 삶을 살아가고 있다고 강조했다. 아예 요가와 명상 안내자 과정까지 수료했다.

그는 요가와 명상을 통해 삶에 순응하며 삶이 나를 통해 살게 하는 방식을 살아내고 있다. 홍 대표는 “로저 키이스(1942~2020)의 시 가운데 이 구절을 좋아합니다. ‘삶이 당신을 통해 살게 하라.’ 내가 새똥을 맞거나 사고를 당하거나, 허리에 디스크가 오면 흔히 ‘재수가 없어서’라며 남의 탓을 하지만 이러한 것을 나의 삶으로 받아들일 때 우리는 모두 만족하고 행복할 수 있다”라며 웃었다. 그러면서 “오늘을 무사히 넘기면 그 자체로 감사한 하루가 된다. 신호등 만들어준 사람에게 고마워하고, 주변에 있던 안전 운전한 이들에게도 감사함을 느낄 수 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그러면서 매일 자신에게만 습관처럼 질문한다고 들었습니다. 무엇을 질문하십니까?

지분이 지닌 의미는 크게 중요하지 않다는 말씀으로 해석합니다.

마지막으로 그에게 ‘나만의 인생 네 컷’을 물었다. 아버지가 돌아가셨을 때, 딸 아이가 태어났을 때, 요가와 명상을 시작했을 때, 그리고, 지도자로 첫 요가 수업을 했을 때를 꼽았다.

홍순기 대표가 하루 중 가장 많은 시간을 보내는 곳. 단순해 보여도 이 공간에서 수많은 이노베이션이 피어났으리라. 레오나르도 다빈치도 이렇게 말했잖는가. ‘단순함이란 궁극의 정교함이다’라고.
(사진=디지털 인사이트)

경험으로 피운 제품

홍순기 대표는 디지털 인사이트(디아이투데이) 독자에게도 하고 싶은 말이 있다고 했다. 홍 대표는 “농담처럼 들릴 수도 있지만, 사람들은 자신의 존재가 충분하다는 것을 알고, 행복을 느끼길 바란다”라고 전했다. 그는 “만남을 전제로 하지 않더라도, 자신의 존재 자체로 충분함을 인식하고 행복하게 지내는 것이 중요하다”고 덧붙였다.

이어 “여러분과 제가 언제, 어디서 만날 기회가 있다면, 그때 더욱 행복한 상태로 서로를 대할 수 있을 것”이라며 “그러므로 우리는 각자의 존재 자체로 행복하고 건강하게 지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 메시지는 사람들에게 자신의 존재가 충분하다는 긍정적인 인식을 심어주고자 하는 의도를 담고 있다.

마지막으로, 2013년, 디자인 현장 세미나 수업을 참관했던 한 교육생이 남긴 블로그의 글을 우연히 봤다. 이 글에서 글쓴이는 “홍순기 대표는 변화에 대응할 수 있는 유연함, 일과 삶, 고객과 기업, 디자인과 비즈니스, 기술과 인간, 사랑과 우정 사이의 균형, 그리고 사람을 강조했다”면서 “그는 ‘예측보다 빠른 것이 변화의 속도’라고 말했다. 예측이 잘못됐다는 걸 깨달을 때는 이미 모든 것이 늦기에, 변화의 속도에 맞춰 유연한 사고를 갖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고 적었다.

그러면서 ‘경험이 곧 제품’이라는 말로 끝맺었다. 그렇다. 경험이 제품이다. 그리고 이노이즈가 ‘경험 디자인’ 그 자체다.

디자이너와 경영자의 경계를 분주하게 넘나드는 홍순기 대표는 자신의 역할과 영역을 굳이 정의하지 않는다. 그는 경영과 디자인의 균형을 맞추는 데 중점을 두면서, 고객과 시장이 원하는 경험 디자인을 효율적으로 실현하고 기업의 지속 가능성을 높이는 데 주력한다. 그렇기에 ‘내일도 고객과 웃으며 만날 수 있으리라’는 믿음은 그가 경험으로 증명해낸 필요조건이 있었기에 가능했던 명제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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