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수인 대표, ‘토털 커뮤니케이션 그룹’ 와일리로 디지털 르네상스 증명하다
종합광고대행사 카피라이터 출신 CEO… 스스로 발전해야 “기다리면 안돼”
2006년, 디지털 업계에 첫 발을 내딛은 와일리(wylie)의 업력(業歷)을 보면, 2009년 모바일 사업을 장착을 필두로 퍼포먼스 광고, 금융/핀테크, 모빌리티 등 브랜드/플랫폼 전략 컨설팅, 플랫폼/채널서비스 구현과 운영, 광고마케팅 기획 및 실행 등 우리나라 디지털 기술의 A to Z와 궤를 맞추고 있다. 그렇게 와일리는 ‘토털 커뮤니케이션 그룹’으로 진화했다. 연 매출 308억원, 180여명이 넘는 기업의 대표의 입담이라고는 믿기지 않을 정도의 다소곳한 자세로 문장을 부드럽게 윤문하듯 대화를 이어갔다. 박수인 대표가 말하는 ‘와일리’, 그 이야기 속으로 들어가 보자.
글. 김관식 기자 seoulpol@wirelink.co.kr
섬네일. 손찬호 디자이너 / 매거진. 황철민 디자이너
사진. 전예영 작가
내내 비가 예보됐던 한 주, 박수인 대표를 만나러 가던 이날은 비가 확 뒷걸음질한 날이었다.
비 얘기가 나왔으니 말이지만, 기후는 오래도록 사람의 생활이나 인성에 큰 영향을 미쳐 왔다. 지중해성 기후는 맑고 온화해 그곳 사람은 긍정적이고 낙천적이다. 중북부 유럽은 흐린 날씨가 계속되면서 실내에 있어야 하는 날이 많아 사색적이고 냉정한 편이다. 이성적이고 합리적인 중시하는 문화를 추구하는 셈이다. 와일리의 기후는 어떨까.
와일리 사옥에 도착하자 더 많은 생각이 머리를 스쳤다. 무엇을 묻고 어떠한 답을 들을 수 있을까, 하는 궁금함과 기대도 기저에 깔려 있었지만 17년 동안 그를 감싼 기후는 그에게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 기후 변화에 어떻게 적응하며 대처했는지도 알고 싶었다.
한국무역협회 국제무역통상연구원이 2021년 발표한 ‘기업 벤처링 트렌드와 시사점’ 보고서를 보면 2027년 기준, 기업 평균수명이 12년에 불과하다고 나와 있다. 변화에 따라가지 못하는 기업, 단기 수익창출에만 몰두하면 오래 가지 못한다는 얘기다. ‘경제적 가치’와 ‘사회적 가치’를 동시에 추구하고 인간 중심 기업이 돼야 한다. 기업이나 인간 모두 건강하게 100세까지 살아내는 것이 화두가 됐다. ‘와일리’는 그 중심에 서있다. 디지털 기업을 대변한다.
이날 박수인 대표는 흰색 반팔 셔츠에 검정색 팬츠를 받쳐 입었다. 단아하게 쓸어 올린 머리칼 사이로 시원한 바람이 일었지만 그는 개의치 않고 털털하게 말을 이어나갔다.
박 대표는 와일리가 첫 걸음마를 뗀 그날을 잊지 못 했다. 얘기를 들어보니 이건 박수인 대표가 책임감과 사명감이 없었다면 오늘의 와일리는 영영 없었을 테다. 창업 전, 다니던 회사 사정이 어려워 수금과 급여지급이 어려울 때 그는 이대로 포기할 수 없어 10여명의 팀과 함께 그 프로젝트를 책임지고 완수했다. 이것이 와일리의 시작을 알리는 신호탄이 됐다니.
뒤에 자세히 언급하겠지만, 지금까지 그는 경영수업을 체계적으로 받은 것도 아니고, 오랜 시간 하나하나 더듬으며 나아갔다고 얘기했다. 그러나 늘 사물을 바라보고 팀원도 함께 성장할 수 있는 판단을 내렸다. 어떻게 보면 우리의 삶이 꼭 ‘교과서’대로 흐르지 않듯, 변화하는 상황에 따라 융통성을 발휘했다.
Theme 1. ‘미래전략실 등 다섯 개의 전략실’ 스탠바이, 와일리
자신을 빗대 ‘극I’(MBTI에서 내향적인 성격을 극단적으로 가리키는 신조어)라며 웃는 박수인 대표는 지난 해까지 직접 입찰 프레젠테이션(PT)을 소화할 정도로 ‘극E’의 면모도 갖췄다.
그와 나눈 얘기는 리더들에게 던진 쓴소리, 스스로가 증명하는 삶을 살아야 하는 이유, 자만 아닌 자기확신, 잘 풀릴수록 필요한 겸손, 주위의 배려 등 여러가지가 있었지만 결국 이 모든 과정을 관통한 키워드는 올해 17살이 된 고1 와일리를 대학공부까지 훌륭히 키워내려는 올곧은 ‘자신감’이었다.
그는 “올 1월부터 계획하고 예정했던 여러 전략 부분이 잘 마무리됐고, 일정에 맞춰 진행 중”이라며 “영업 현황이나 매출 등이 살짝 아쉬운 면도 있지만 하반기에 일이 몰리는 경우도 많아 그때를 대비해 탄력적으로 준비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와일리의 우수한 멤버는 예나 지금이나, 앞으로도 함께 할 것이라는 확신이 생겨 담담하게 미래를 맞을 자신이 있다”며 웃었다.
와일리언은 ‘와일리’와 ‘에일리언’의 합성어예요. 인간 그 이상의 유니크함으로 자유로운 발상과 세계를 지향하자는 의미를 담고 있죠.
내부 직원을 일컬어 ‘와일리언’이라 부른다고요.
“네. 외부에 처음 얘기하는 것 같은데요, 8월초 선포를 앞두고 와일리의 아이덴티티를 정립하고 있습니다. 그중 와일리언에 대한 부분을 소개하자면, 와일리와 에일리언의 합성어예요. 에일리언은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캐릭터지만 인간 그 이상의 유니크함으로 자유로운 발상과 세계를 지향하자는 의미를 담고 있죠. 와일리에서 일하는 이들은 어떤 사람일지 신비주의도 녹였어요.”
‘비욘드 와일리’ ‘넥스트 와일리’도 이와 유사하게 풀어낼 수 있지요?
“맞습니다. 이 슬로건도 우리가 우리 스스로를 뛰어넘어 또 다른 와일리를 준비하고 맞이하자는 것이지요. 시장의 경쟁 혹은 모델을 지향하는 것보다는 우리 스스로를 뛰어넘어 변화하고 성장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이건 제가 늘 강조하는 부분입니다.”
2006년 당시 와일리와 비교해보면 지금은 어떻게 진화했습니까?
“와일리의 시작을 2006년 새해 첫날로 보고 휴일 하루 뒤인 1월 2일, 바로 강남세무서에 뛰어 가서 사업자등록증을 냈죠. 그래서 그날이 저희 창립기념일이에요. 4명으로 시작했어요. 그때 회사명을 깊게 고민했던 것 같아요.”
와일리 사옥 내 1층 테라피에서 프로젝트 회의에 여념이 없는 와일리언들
왜죠? 뭔가 오래 기억할 수 있는 특별한 네이밍이 필요했다던가.
“제가 디지털 1세대거든요. 제가 세운 회사는 지속가능한 경영 속에서 꾸준히 성장하는 회사이길 바랐어요. 그러다 미국에 있는 출판사가 눈에 들어왔어요. 바로 200년 역사의 와일리(Wiley)였어요. 저희 와일리와 영문 스펠링이 달라요. 대한민국의 와일리는 통합커뮤니케이션 그룹으로 진화해 100년 그 이상 나아갈 겁니다.”
처음에는 ‘와일리랩(Lab)’이라는 사명으로 첫 발을 내딛었다. 정보를 수집하고 해석해 결과물을 창출하는 연구소의 느낌을 살리고자 한 것. 실행만 지향하는 조직이 아닌, 사전에 전략을 고민하고 연구하며 발전적인 방향을 제시하는 데 무게를 뒀다. 물론 대행사, 에이전시라는 수식어 속에 매몰되기도 원치 않았다.
시간이 흘러 법인으로 전환하면서 이 ‘랩’ 역시 와일리가 성장하는 데 ‘연구만 한다’는 느낌을 줄 수 있어 ‘랩’마저 뗐다. 미래 가치를 높이고 성장하는 데 방해요소가 될 수 있다고 본 것이다.
하지만 박수인 대표는 이 랩의 핵심인 ‘전략’과 ‘연구’ 키워드를 접은 게 아니었다. 아예 이를 한 단계 더 업그레이드해 사내 다섯 개의 전략실(인재전략, 경영전략, 사업전략, CX전략, 미래전략)로 조직을 새롭게 세팅했다. 그는 “급변하는 시대에 유연한 대처를 위한 준비 정도로 생각해달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정작 자신이 “창업할 줄은 꿈에도 몰랐고, 계획도 없었다”고 말했다.
시간을 2000년 초반으로 돌려보자. 당시 한창 꿈 많고 미래에 기대가 부풀었던 그는, 웹 기반의 디지털 비즈니스를 표방하던 200여명 규모의 IT 기업에 재직 중이었다. 당시 매출과 규모 면에서 꽤 무게가 나갔던 기업이 갑자기 어려운 상황을 맞았다. 급기야 6개월 동안 전 직원 급여가 밀릴 정도로 어려웠다.
상황이 좋지 않으니 진행 중이었던 프로젝트도 멈출 수밖에 없었을 터. 게다가 당시 워킹맘으로 어려움이 많았지만 시작한 프로젝트는 책임감 있게 끝을 내고 싶었다. 회사에도, 고객에게도, 자신에게도, 동료들에게도 약속을 지키고 싶었다. “되게 힘들었어요. 마음도 몸도 지쳤지요. 제가 PM(Project Manager)으로서 참여했던 프로젝트는 마무리 짓고 싶은데 회사 사정이 좋지 않으니 방법을 찾지 못했어요. 그래서 대표님께 찾아갔죠. 월급은 둘째치고 이 프로젝트를 마무리하고 싶다고요. 회생이 어려운 상황이었지만 간곡히 말씀드렸죠. 뭐랄까, 이대로 멈추는 건 용납할 수 없는 자신과의 싸움 때문이었던 것 같아요.”
서울 강남구 학동에 위치한 ‘토털 커뮤니케이션 그룹’ 와일리 사옥
그간 울고 웃었던 모든 과정이 내가 대표로서의 자질, 혹은 역할을 잘 소화할 수 있는지에 대한 자격 시험 같았어요
Theme 2. 運命(운명), 偶然(우연)처럼 마주하다
회사는 어려울 수도 있고 갑자기 상황이 좋지 않을 수 있는데, 책임 있게 마무리하려는 생각이 앞섰던 것 같은데, 누구나 쉽게 생각하기 어려운 판단을 하셨네요. 방법을 찾으셨나요?
“오히려 대표님이 걱정하셨죠. 제가 계속 부탁드리자 ‘방법이 있다, 이 프로젝트를 박수인 대리(당시 직함)가 양도양수 받아 마무리하고 잔금을 받아 함께 참여한 멤버들에게 급여로 줄 수 있으냐?’고 물으시더라고요. 그때만 해도 저는 양수 양도가 뭔지도 몰랐으니 얼마나 막무가내였겠습니까.”
클라이언트도 동의했던가요?
“클라이언트도 처음엔 이 상황에 대해 많이 놀랐지만 이미 선금, 중도금이 나간 상황에서 마무리가 되지 않으면 곤란하잖아요. 오히려 제게 고맙다고 하시더라고요. 같이 진행했던 10명의 멤버도 제가 전부 설득했어요.”
멤버들도 믿고 따라줬네요.
“감사하죠. 결국 양수 받은 일을 모두 끝내고 잔금 청구하려보니 대기업은 개인과 거래가 어려워 사업자등록증을 낸 거죠.”
그렇게 와일리가 탄생한 거군요(웃음).
“네. 이렇게 마무리되고, 이후 기존 클라이언트분들이 저희한테 프로젝트 문의를 하셨어요. 어떤 분은 제가 어디로 이직하는지 묻고 거기서도 맡아달라고 말씀하시기도 했어요. 그래서 저는 창업과 동시에 입찰과 영업과 관련한 어려움은 크게 없었던 것 같아요.”
사실, 대표님은 운이 좋았다고 하셨지만 오히려 회사가 기울 때 그 자리를 떠났다면 지금의 와일리는 없었을 것 아닙니까? 그럼에도 프로젝트를 끝까지 완수하겠다는 생각 하나가 큰 차이를 가져 온 거네요.
“지금 생각해도 무슨 자신감과 책임감이었는지 모르겠어요. 막 100일이 지난 애를 떼놓고 나왔거든요. 하지만 저는 적어도 제가 출근했을 때는 ‘돈 벌러 나왔다’고 생각하지 않아요. 남편도 아이도 있고, 실질적인 가장이 있는 상황에서 제가 아이 맡기고 출근하는 이유가 돈 때문은 아니라고 자신을 설득했어요. 그러기 위해서는 부끄럽지 않도록 임해야 하는데 현실은 그렇지 못했던 거죠. 잘 마무리하고, 자신과의 약속도 지키고, 자랑스러운 아내와 엄마가 되고 싶었지요.”
창업 당시 남편분이 든든한 조력자였고, 지금도 그렇다고 들었습니다.
“맞아요. 그때 잔금처리하고 남은 돈이 조금 있었어요. 물론 제 밀린 급여보다 부족한 액수였지만 그 돈으로 창업했어요. 그게 오히려 목돈이 된 거죠. 월급을 제때 받았다면 어디 그냥 써버렸을 텐데 목돈이라 그걸로 사무실 얻고 그렇게 시작했어요.”
박수인 대표는 지금까지 “힘들었던 적이 전혀 없지 않았다”면서도 “큰 어려움은 없었다”고 말했다. 그렇게 그는 과거에 연연하지 않아 보였다. 다만 “어떤 고난이든 딱 내가 감당할 만큼만 온다”며 담담하게 웃었다. 그러면서 “지금까지 모든 울고 웃었던 모든 과정이 내가 대표로서의 자질, 혹은 역할을 잘 소화할 수 있는지 자격을 시험하는 듯한 기분이었다”고 했다. 어찌 성장통이 없을 수가 있을까. 돈이든 사람이든 오간다. 다만, 누가 언제 임하든 미래를 향한 와일리만의 DNA는 확실하게 인지할 수 있도록 하는 데 무게를 둔다고. 부족하면 그 부족함을 채우려는 생각을 우선하되, 그릇된 관념과 개념은 한쪽으로 치워버린다.
인터뷰가 있기 며칠 전에는 고객사 직원들에게 여성리더십에 대해 강의할 기회가 있었다. 고민 끝에 현실적인 이야기로 그들을 맞기로 했다. “내가 왜 출근하는지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부터 해보기로 했다”면서 “출산, 육아, 아이들 교육, 남편 뒤치다꺼리 등 여성과 엄마, 아내로서 챙겨야 할 것이 많지만 본인이 하는 일에 대해 본인이 의미를 찾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즉, 내가 희생해서, 혹은 가족의 희생으로, 이런 생각과 가치관을 극도로 경계해야 한다는 얘기다.
스스로 의견이나 주장이 있다면 이를 증명할 수 있는 노력이 있어야 한다고 얘기해요.
Theme 3. 증명하는 습관
이날 무엇을 강조하셨는지요?
“퇴근하고 나면 남편, 아이와 함께 있는 시간은 고작 두세 시간밖에 되지 않아요. 책임감 때문에, 그리고 뭔가 부족할까 싶어 관심이 잔소리가 돼요. 그렇게 시간을 보냅니다. 또 예민해지고요. 그래서 생각 자체를 바꾸자고 했어요. 잔소리보다 마음 속으로 ‘우리 아들 잘 돼라, 우리 신랑 잘 되라’하고 주문을 외우죠. 물론 쉽지 않고 도 닦는 기분으로 맞아야 합니다. 하지만 약속드릴 수 있는 건 갈수록 마음이 편해지고, 아이와 싸울 일도 없고, 아이 성적이 좋아지고 남편이 승진하면 제 덕분인 것 같고요.”
아이 잔소리를 멈춘다, 저도 올해 중학생이 된 딸아이가 있지만 이건 쉽지 않을 것 같은데요.
“생각만 바꾸면 돼요. 아이가 축구한다고 가정하면 부모는 감독이나 코치가 아닙니다. 볼보이 역할만 하는 게 좋아요. 볼이 경기장 밖으로 튀어나오면 다시 안으로 던져주고 응원하면 됩니다. 저한테 감독과 코치의 자격은 없어요. 아이마다 재능이 다르고 성공 기준도 다르거든요. 그걸 인정하는 게 중요해요.”
아이를 소유하지 말라는 얘기가 떠오르네요.
“맞아요. 같은 이야기입니다. 이 이야기도 리더십 강의 때 말씀드렸어요. 그중 다섯 분 정도가 눈물을 훔치시더라고요. 집 생각이 문뜩 떠올랐나봐요.”
그렇게 시작했던 사업, 지금까지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이 있다면 무엇입니까?
“늘 완만한 길을 내달릴 수록 ‘겸손함을 잃지 말라’는 말씀을 드리고 싶어요. 또 함부로 자기확신을 하지 않는 것도 중요합니다. 그래야 자만으로 이어지지 않아요. 저 스스로에게 하는 말이에요.”
사내에서 직원분들에게는 주로 어떤 말씀을 해주십니까?
“스스로 의견이나 주장이 있다면 이를 증명할 수 있는 노력이 있어야 한다고 얘기해요. 물론 100을 한다고 해서 100 모두를 증명하라는 얘기가 아니에요. 그 과정에서 엄청난 노력과 최선의 선택이 필요한데, 그 과정은 오롯이 공유되거든요. 소통이 된다는 거죠. 그러한 증명 과정 없이 ‘회사가 날 인정해 주지 않아’ ‘동료가 내 의견에 따라주지 않아’하고 불평해봐야 아무 소용이 없어요. 늘 증명하는 습관을 들이자는 얘기를 합니다.”
넓게 해석하면 와일리만의 경쟁력과 차별화를 증명하는 것으로 볼 수 있겠어요.
“맞습니다. 저도 그런 와일리와 와일리언이 됐으면 바람입니다.”
아직 닥치지 않은 미래에 너무 큰 걱정은 하지 않았으면 좋겠어
Theme 4. 컨설팅부터 개발까지 내부에서 모든 과정 소화
박수인 대표는 이 대목에서 의미 있는 멘트를 던졌다. 그동안 대표로서의 외부 활동을 최대한 자제해 왔던 터였다. 이제 생각이 바뀌었다. 인간 박수인보다 대표 박수인은 기업을 대표하는 사람으로서, 또 와일리의 브랜딩을 위해 적극적인 외부 활동도 가시화할 것이라 말했다. 박 대표는 “우리 와일리언이 그걸 원하고, 시장에 우리 목소리를 더욱 내야 한다”며 “그렇지 못하다는 건, 제가 제 할 일을 찾아 못 하는 것 아닐까 생각해 이제부터 대표 박수인도 외부에서 함께 뛰고 있다는 걸 보여줄 것”이라 목소리를 높였다.
와일리의 경쟁력은 내부 역량에 있다. 컨설팅부터 개발까지 내부에서 전 과정을 소화한다. UI/UX 퍼블리싱, 웹/앱 개발 등 관련 프로젝트는 내부에서 기획과 진행을 도맡는다. 때문에 결과물 이후도 클라이언트는 담당자와 소통하기 용이하다. 플랫폼 구축 후 마케팅 전담팀이 붙어 높은 효율을 위해 퍼포먼스에 뛰어든다. 전략을 제시하고 실행에 옮기며 결과에 이르기까지 물 흐르듯 원팀이 된다. 한 마디로 ‘토털 커뮤니케이션 그룹’을 증명한다.
앞서 경영수업 같은 건 없다고 하셨는데, 트렌드를 짚는 나만의 루틴이 있습니까?
“제가 저녁형 인간이라 밤 12시 이후 새벽 2시까지는 저만의 시간을 갖습니다. 이때 장르와 플랫폼을 가리지 않고 많은 콘텐츠를 소화해요. 또 매일 30분 이상은 독서에 집중합니다. 다양한 주제의 글을 사람을 공부하며 깨달음을 찾아요. 인생도 경영과 같아서 지식과 정보를 얻으며 사색하고 답을 찾고자 해요. 책도 회사 책상에서만 읽는 게 아닌, 집 거실, 소파, 침실 등 각각 여러 장소마다 책이 놓여 있어요. 골고루 편식 않고 읽는 편입니다.”
인재 영입도 이어지고 있다고 들었습니다만.
“와일리는 그동안 모든 프로젝트를 내부에서 직접 수행하며 책임감, 사명감, 그리고 인재의 중요성에 대해 깨달았어요. 와일리의 그동안의 행보는 내부 아이디어인 경우가 많았습니다. 와일리언이 해보고 싶은 것, 가보고 싶은 곳이 있다면 이를 적극 뒷받침합니다. 2009년 아이폰 상륙 전에 저희가 아이팟터치 모바일 앱 개발을 시도했던 것도 내부 아이디어와 실행력이 받쳐줬기 때문이거든요. 이 DNA를 가진 곳이 바로 와일리입니다. 대행, 혹은 대대행 구조로 가서는 빠르고 이상적인 혁신을 거두기 어려워요. 많은 시도와 시행착오를 거치면서 내재화하는 데도 집중하고 그러기 위해서는 그만큼의 인재도 갖춰야 하고요.
얼마 전, 시퀀스 마케팅 부문 강화를 위해 이노션 출신의 윤평강 상무와 디블렌트 출신 정재우 ECD를 영입한 것, 그리고 다섯 개의 전략실 배치와 홍보 전담 인력을 채용한 것도 같은 맥락인가요?
“네. 그렇게 보시면 될 것 같습니다. 한 가지 확실한 건, 와일리는 지금 이 순간에도 진화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말로만 토털 커뮤니케이션 그룹이 아닌, 행동으로 증명해야죠. 직접 해보지 않으면 허상이에요.”
그런 차원에서 대표님이 생각하시는 훌륭한 선생님, 혹은 바이블이 무엇입니까?
“프로젝트와 클라이언트라 생각해요. 유통업이 주인 클라이언트를 만났을 땐 유통업을, 제조업 클라이언트로부터는 제조업을, 자동차 관련 클라인언트에게서는 모빌리티를 알게 되고 공부할 수 있어요. 저희는 기업 래퍼런스를 하나로만 집중하지 않습니다. 좀더 넓게 시야를 확보해 거시적으로 나아가고 있어요. 저는 예민해지려 노력하고 있어요. 민감한 것과는 다르죠. 좀 더 나은 결정을 위한 감각이에요. 바로 인사이트죠.”
“늘 걱정했던 일이 생각 외로 많이 일어나지 않았어요.”
인터뷰가 끝나갈 즈음 박수인 대표는 이렇게 말했다. 또, 17년 전의 자신에게 어떤 말을 해주고 싶으냐는 질문에는 “수인아, 아직 닥치지 않은 미래에 너무 큰 걱정은 하지 않았으면 좋겠어”라며 용기를 북돋우고 싶다고 했다. 리더급 직원들에게는 “늘 동료들의 말을 경청하고, 반드시 피드백을 줘야 한다”고 강조하기도 했다.
박수인 대표는 디지털 업계에서는 보기드문 카피라이터 출신의 CEO다. 영어강사로 일하다 광고에 대한 열망으로 25살에 광고창작과에 다시 입학, 종합광고대행사의 카피라이터로 새로운 길을 내딛었다. 카피라이터 시절, 카피 하나에 열정이 폭발해 한계를 잊고 자신을 쏟아붓기도 했고, 짧지만 강렬한 문장을 위해 꾸준한 관심과 열정도 놓지 않았다고. 자신과의 싸움 그 이상을 바라보고, 치열한 경쟁에서 앞서나가지 않으면 금세 뒤쳐지는 밀림 같은 곳이었기 때문이었다.
이 모든 경험이 디지털 업계에서 오늘의 와일리를 만들고 지금까지 성장할 수 었었던 초석이 됐다. 자신을 믿고 한발 한발 나아갔기에 아날로그에서 디지털로 변화하는 시점에 와일리를 설립하고, 빠르게 변화하는 디지털 세상에 맞서 웹앱 구축/개발, UIUX 전문 디지털 에이전시를 넘어 광고마케팅까지 디지털의 처음부터 끝까지 책임지는 토탈 커뮤니케이션 그룹으로 성장시킬 수 있었다.
그는 “우리 와일리언은 힘든 일을 하고 있다”면서 “자신에게도, 가정에서도 모두가 프라이드를 느낄 수 있도록 더 뒷받침하겠다”고 약속했다. 훗날 시간이 지나 “그 친구, 참 괜찮았어”라는 말 한 마디면 너무 감사할 것이며 웃는 박수인 대표. 그와 얘기를 나누며 “삶이란 어떤 일이 벌어지길 기다리는 것이 아니라, 어떤 일을 하는 것”이라고 했던 말이 오버랩됐다. 와일리가 선두에 서서 디지털 르네상스를 리드하는 것, 이 시장이 더 넓어지기 위한 초석이 되리라 믿는다. 와일리는 세상에 없던 새로운 ‘판’을 만들고 있다.
와일리는 어떤 회사?
와일리는 사람과 사람, 그리고 사람과 소통하는 디지털 세상의 행복한 경험을 제공하기 위해 디지털 마케팅 최고 전문가들이 최적의 솔루션을 만들어 가는 통합 커뮤니케이션 그룹입니다. 와일리는 100년의 계획을 갖고 있다고 말합니다. 그 만큼 우리의 다음 세대까지 와일리의 문화와 정신, 열정이 이어지길 고대하는 것이겠지요. 단지 좋은 회사에 머무는 것이 아닌, 위대한 기업으로 발돋움하고자 고객사와 임직원의 성장을 돕는 디지털 트랜스포메이션 기업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