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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I/UX

무명 글씨에서 전설적인 고전 서체가 된 고담 폰트 이야기

문화와 역사를 만들어 가는 힘을 증명한 폰트

여러분들은 요즘 어떤 폰트를 자주 보고 계시나요? ✍️ 우리 일상 속에선 무심코 스쳐 지나가는 많은 것들엔 폰트가 자리를 잡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 폰트들엔 더 나은 경험을 위해 디자이너들의 섬세한 고민이 담겨있는데요. 단순 보기에 예쁜 것을 넘어, 더 나은 사용자 경험을 위해 치밀하게 기획된, 타이포그래피 디자인의 현재와 미래를 모노타입이 소개합니다.


오늘날 현대 도시의 감성을 가장 잘 담아낸 폰트를 꼽으라면, 항상 고담(Gotham) 폰트가 끼여 있습니다. 이 글씨는 2008년 오바마 전 미국 대통령의 대선 캠페인에서 크게 주목 받았고, 이후 포스터, 광고, 브랜드 아이덴티티 등 다양한 분야에서 사용되며 21세기 가장 영향력 있는 산세리프체로 자리 잡았기 때문인데요.

하지만 고담 폰트는 컴퓨터 화면에서 시작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그 뿌리는 오래전부터 뉴욕 거리 곳곳에서 볼 수 있었던, 이름조차 붙지 않은 평범한 글자에 있는데요. 그렇다면 어떻게 이렇게 흔해 보이는 글씨가 전 세계적으로 사랑받는 시각적 언어가 될 수 있었을까요?

길거리 글자들에서 시작한 고담 폰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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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담의 뿌리가 된 20세기 초 뉴욕 거리 곳곳에 있던 글자들(자료=모노타입)

고담 폰트의 뿌리는 특별한 이름도 없었지만 늘 사람들의 주변에 존재하던 글자였습니다. 유리에 그려지고, 금속에 찍히고, 돌에 새겨져 있었죠. 전시 포스터나 향수병, 산업용 로고 작업에는 물론, 술집·이발소·꽃집 간판이나 엘리베이터 내부, 상점 진열창처럼 일상에서 흔히 마주할 수 있는 이름 없는 글자들이었습니다.

흥미로운 점은 이렇게 흔히 쓰였던 글씨들이 디자인 서적에선 거의 다뤄지지 않았다는 사실입니다. 하지만 서적에 다뤄지지 않았더라도 이 글씨들은 수많은 폰트 트렌드가 변화하는 와중에 늘 단정하고 현대적으로 보였으며, 결코 낡아 보이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이런 글씨들의 매력을 포착한 사람은 바로 미국의 전설적인 타이포그래피 디자이너인 조나단 호플러(Jonathan Hoefler)였습니다. 물론 그가 처음부터 글씨들의 매력을 알아본 것은 아닙니다.

호플러는 과거 초기 매킨토시 시절엔 컴퓨터에 있던 100여 종의 폰트만으로도 충분히 다양하다고 생각했지만, 1988년 그래픽 디자인 및 일러스트레이션 스튜디오인 푸시핀 그룹에 들어서면서 비로소 훨씬 더 방대한 폰트 세계를 접하게 됐죠.

푸시핀 그룹의 서고에는 수많은 활자 견본집이 있었고, 사라진 납활자와 사진식자 시대의 글자들이 마치 화석 기록처럼 보관돼 있었습니다. 이후 호플러는 밤마다 이 책들을 뒤적이면서 자신이 꿈꾸는 이상적인 폰트를 찾던 와중 마침내 깨닫게 됩니다. 자신이 찾던 해답은 오래된 전통 활자가 아니라, 손으로 직접 그린 글자, 레터링에 숨어 있었다는 것을 말이죠.

고담 폰트의 창시자가 주목한 레터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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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lexander Dux가 디자인한 포스터. 전체적으로는 화려하고 장식적인 현대풍 활자가 쓰였지만, 그 아래 적힌 “UNITED STATES TRAVEL BUREAU”라는 문구는 단순하면서도 강렬한 인상을 준다(자료=모노타입)

서체와 활자는 미리 만들어져 여러 번 조합할 수 있는 글자 시스템입니다. 반대로 레터링(Lettering)는 특정 상황에 맞춰 한 번만 쓰이는 글자를 직접 디자인하는 방식입니다. 100여 년 전만 해도 책 본문은 활자 조판으로 인쇄했지만, 표지나 삽화, 책등의 글자는 대부분 손글씨였습니다.

레터링은 매체와 제작자에 따라 고유한 전통과 스타일을 발전시켰습니다. 석판화 포스터, 지폐 위의 조각된 글자, 금박으로 장식된 상점 유리문 간판, 묘비에 새겨진 글자처럼 모두가 활자가 아닌 맞춤형 손글씨였죠.

또한 레터링과 활자는 늘 영향을 주고받아 왔습니다. 구텐베르크의 활자도 손글씨를 모델로 했던 것처럼 말입니다. 하지만 호플러처럼 산세리프 스타일 레터링을 본격적으로 서체로 만들려 시도는 그동안 많지 않았는데요. 아마 이 도전이 그를 폰트 디자이너로 이끌었을지도 모릅니다. 호플러는 레터링 안에서 탐험할 기회, 그리고 아직 채워지지 않은 공백을 보았습니다.

고담 폰트의 탄생 과정

뉴딜의 독수리, 이글 볼드의 등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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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로테스크와 지오메트릭 폰트. 그로테스크는 타원형을 기반으로 하고, 지오메트릭은 원형을 기반으로 한다(자료=모노타입)

산세리프 스타일 서체엔 크게 두 가지 계열이 있습니다. 그로테스크(Grotesque, 괴상체)는 타원형을, 지오메트릭(Geometric, 기하체)는 원형을 기반으로 하죠. 호플러가 매료된 글자는 두 계열의 장점을 합치면서도 단점은 피해간 스타일이었습니다.

푸투라 폰트처럼 간결하고 명확하지만 기하체 특유의 딱딱함은 없었고, 악치덴츠 그로테스크처럼 무게감과 친근함이 있으면서도 활자보다 훨씬 자연스럽고 즉흥적으로 보였습니다.

또한 헬베티카 같은 산업적 산물과 달리, 거리의 글자들은 더 현실적이고 믿음을 주는 힘이 있었습니다. 누군가가 ‘의도적으로 디자인한’ 것이 아니라, 마치 ‘자연스럽게 생겨난’ 것처럼 보였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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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딜 시대의 레터링과 이글 볼드. 좌측 국가회복관리국의 파란 독수리 엠블럼에는 손으로 그린 레터링이 장식이 사용됐다(자료=모노타입)

길거리에서 이런 특성이 가장 두드러진 시기는 루스벨트 대통령의 뉴딜 정책 때였습니다. 대공황 극복을 위해 설립된 국가재건청(NRA)은 통일된 시각 체계를 도입했습니다. 파란색 독수리 로고, 빨강·하양·파랑·검정의 강렬한 색 조합, 그리고 직설적이고 현대적인 산세리프 글자가 그것입니다. 이들은 상점 유리창, 상품 라벨, 배지에 쓰이며 뚜렷한 시각 언어를 만들어냈습니다.

1933년, 아메리칸 타입 파운더스(American Type Founders)의 디자인 디렉터 모리스 풀러 벤턴(Morris Fuller Benton)은 이 손글씨 스타일을 기반으로 이글 볼드(Eagle Bold)라는 활자를 선보였습니다. 그는 NRA 글자의 아르데코적인 성격을 더욱 강화했고, 원래는 둔각이던 M과 W를 날카로운 예각으로 바꿔 글자에 힘을 주었습니다.

이글 볼드는 흥미로운 모순을 지닌 폰트였습니다. 전체적으로는 기하적이지만, 일부 글자는 부드럽게 처리돼 있었죠. 호플러는 이글 볼드의 모든 부분을 좋아한 것은 아니었지만, 벤턴의 시도에서 큰 영감을 받았으며, 그 안에서 기하체와 괴상체의 경계를 넘어설 새로운 가능성을 봤습니다. 그리고 1992년 여름, 마침내 거리의 무명 글자들에서 영감을 받아 보편적이고 명확하며 흔들리지 않는 새로운 산세리프체를 만들기 시작했습니다.

초창기의 불안정한 시도였던 타입페이스 X

1992년, 호플러는 기억 속에 남아 있던 손글씨인 산세리프 스타일을 바탕으로 대문자 세트를 그려냈습니다. 그리고 이 작업물에 ‘타입페이스(Typeface) X’라는 이름을 붙였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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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나단 호플러의 1992년 첫 번째 시도였던 타입페이스X(자료=모노타입)

그는 벤턴처럼 기하체와 괴상체의 장점을 결합하려 하는 동시에, 화려함보다는 단호하고 명확한 서체를 만드는 데 초점을 두었습니다. 이글 볼드가 넓고 좁은 글자 폭의 리듬을 가진 것과 달리, 타입페이스 X는 글자 폭을 일정하게 맞춰 안정감을 주었고, 전체적으로는 산업용 활자에 가까웠습니다. 특히 O는 기하체처럼 원형에, S는 괴상체처럼 타원형에 가까웠습니다. 단순해 보였지만 섬세한 조정이 숨어 있어 차가움 대신 따뜻함이 느껴졌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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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입페이스 X의 최종 교정본, 1993년. 조나단 호플러의 원고와 주석이 작성돼 있다(자료=모노타입)

하지만 1993년 최종 교정 과정에서 문제가 드러났습니다. 벤턴의 이글 볼드는 작은 글자 크기에서 오는 한계를 피하기 위해 아예 18pt 이하에서는 쓰지 않도록 했는데, 호플러는 타입페이스 X의 굵은 획이 이 문제를 해결해 줄 것이라 믿었습니다. 그러나 고해상도 프린터로 인쇄해 보니 그렇지 않았습니다.

작은 크기에선 날카로운 획이 뭉개졌고, M과 N은 외곽이 지나치게 좁아 보였으며, A와 V의 뾰족한 각은 불필요하게 넓은 여백을 만들었습니다. 둔각으로 바꾸면 문제를 줄일 수 있었지만, 그러면 큰 크기에서의 날카로움이 사라져 버렸습니다. 결국 타입페이스 X는 더 이상 나아가지 못했습니다.

이후 호플러는 <스포츠 일러스트레이티드>와 <뉴욕 타임스 매거진>의 의뢰로 녹아웃 폰트 패밀리 개발에 집중했고, 1994년 한 해를 그 프로젝트에 쏟았습니다. 그런데 같은 해, 타임스 빌딩 근처에서 호플러가 마주친 한 간판이 타입페이스 X의 운명을 바꾸며, 훗날 고담 폰트가 다시 태어나는 계기가 됐습니다.

새 협업과 새 출발로 찾아온 기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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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욕시 8번가 625번지에 위치한 포트 오소리티 버스 터미널의 건물 정면에 있는 문자 디자인은 조나단 호플러가 수년간 추구해온 ‘이름 없는 서체 스타일’을 정확하게 담아내고 있다(자료=모노타입)

뉴욕 8번가 625번지에 있는 포트 오소리티 버스 터미널 외벽의 커다란 간판, “PORT AUTHORITY BUS TERMINAL”. 호플러가 오랫동안 찾아 헤매던 바로 그 무명의 서체 스타일이 여기에 있었습니다. 이 글자는 1950년에 건물과 함께 만들어진 것이었고, 1979년 확장 공사 후에도 그대로 보존됐습니다. 이후 호플러는 1949년 공사 현장 표지판이나 1964년 뉴욕 만국박람회 건축물에서도 같은 글자 스타일이 사용된 것을 발견했습니다.

이 글자 스타일은 겉보기엔 소박했지만 놀라울 만큼 정교했습니다. 특히 S와 B처럼 복잡한 글자도 군더더기 없이 세련되게 다듬어져 있었습니다. 호플러는 여기서 한 가지 중요한 원칙을 얻었습니다. 바로 대문자 A의 꼭대기는 뾰족한 삼각형이 아니라 평평해야 한다는 것. 이 작은 깨달음이 훗날 고담 폰트의 중요한 특징으로 이어졌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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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9년 포트 오소리티 버스 터미널 공사 안내 게시판과 1964년 뉴욕세계 박람회에 설치된 포트 오소리티 헬리패드의 공사용 레터링(자료=모노타입)

이후 호플러는 녹아웃, 호플러 타이틀링, 벨라크, 머큐리 같은 다른 서체 작업에 몰두하면서 마음속에서는 언제든 타입페이스 X를 다시 시작할 기회만을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 기회는 2000년에 찾아왔죠.

뉴욕에서 활동하던 유명 타이포그래피 디자이너 토비아스 프레어 존스와의 협업 덕분이었습니다. 두 사람 모두 이름 없는 산업 글자들에 매력을 느꼈습니다. 토비아스는 도로 표지판 글자를 토대로인터스테이트 서체를 디자인했고, 당시 호플러는 챔피언 고딕과 녹아웃으로 19세기 후반 고딕 활자의 정신을 이어오고 있었죠.

그들의 첫 공동 작업은 펜타그램의 그래픽 디자이너, 마이클 비에루트의 요청으로 진행된 미국 뉴욕의 현대 건축 아이콘인 레버 하우스의 맞춤 폰트 제작이었습니다. 이어서 GQ 매거진이 “현대적이고 간결한” 폰트를 원한다는 요청을 하면서, 포트 오소리티의 간판은 마침내 고담 폰트로 다시 태어날 기회를 얻게 됐습니다.

GQ와 함께한 고담 폰트의 본격적인 시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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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0년 8월 GQ 산스로 개발된 고담 폰트의 첫 번째 프로토타입(자료=모노타입)

2000년 여름, GQ 매거진의 의뢰로 호플러와 토비아스 프레어-존스는 포트 오소리티의 간판을 기반으로 새로운 폰트를 만들기 시작했습니다.

가장 큰 과제는 소문자 디자인이었습니다. 거리의 글자들에는 소문자 예시가 거의 없었기 때문에, 팀은 대문자의 성격을 이어받으면서도 완전히 새로운 소문자를 직접 창조해야 했습니다. 처음 만든 소문자는 크기가 작고 상단부가 길어 다소 복고적인 느낌을 주었지만, 크기를 키우고 자간을 조정하며 e, f, g 같은 글자 형태를 손보면서 점차 현대적인 인상을 갖추게 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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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른쪽의 텍스트 샘플에서 볼 수 있듯이, 지나치게 작은 소문자, 높은 상승부, 느슨한 자간은 불필요한 향수를 불러일으키는 인상을 줬다(자료=모노타입)

이 과정에서 탄생한 고담 Light는 Bold의 힘과 명확함을 유지하면서도 한층 우아하고 가벼운 분위기를 더했습니다. 처음엔 Light, Bold, 그리고 그 사이 굵기 두 가지로 시작했지만, 곧 Italic과 Condensed 버전으로 확장됐습니다.

특히 Condensed에서 O의 형태를 직선에 가깝게 할지, 타원형으로 할지를 두고 많은 논의가 있었는데, 최종적으로는 타원형을 선택했습니다. 이는 독일의 DIN 서체와 차별화하면서도 고담 폰트만의 따뜻한 개성을 더해주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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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담 Thin과 고담 Black 활자 견본(자료=2003년 Hoefler Type Foundry 활자 견본집 7호)

2001년에는 디자이너 제시 레이건이 합류해 더 얇고 더 굵은 굵기를 추가했고, 고담 Condensed는 처음 4종에서 9종으로 확대됐습니다.

고담 폰트 패밀리 확장과 완성

2000년대 초, 잡지와 신문 편집팀은 좁은 칼럼에 적합한 서체를 원했습니다. 이 요구에 맞춰 고담 폰트는 Narrow와 Extra Narrow 버전으로 확장됐죠.

이어 2005년 디자이너 사라 소스콜네가 합류하면서 토비아스 프레어-존스와 함께 Narrow와 Extra Narrow를 비롯해 총 66종의 방대한 스타일을 완성했습니다. 이 과정에서 숫자, 기호뿐 아니라 그리스 문자와 키릴 문자까지 포함하며 글로벌 사용 환경에도 대응할 수 있게 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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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날 고담 폰트는 영화 포스터부터 영화 및 TV 홍보물에 이르기까지 스크린 전반에 걸쳐 등장하며, 그 인지도와 인기를 증명하고 있다(자료=모노타입)

2002년 공개된 고담 폰트의 샘플북은 곧 뉴욕 전역에서 사용하기 시작했고, 얼마 지나지 않아 할리우드 영화 포스터와 예고편에서도 쉽게 볼 수 있었습니다. 2013년에는 미국영화협회가 영화 예고편 등급 표시의 표준 서체로 고담 Bold를 공식 채택하기도 했습니다.

또한 2004년 7월 4일, 자유의 탑 기초석에 새겨진 고담 폰트는 9·11 이후 뉴욕의 회복과 끈질긴 생명력을 상징하는 서체가 됐습니다. “고담 폰트는 어제 만들어진 것도, 내일 사라질 것도 아닌 서체”라는 평처럼, 시대를 초월한 도시의 상징으로 자리 잡은 것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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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욕 시장 블룸버그, 뉴욕 주지사 파타키, 뉴저지 주지사 맥그리비는 옛 월드 트레이드 센터 부지에 고담 폰트로 쓰인 자유의 탑 주춧돌을 놓았다(자료=로이터)

대통령의 서체이자 정치계의 언어가 된 고담 폰트

2007년, 당시 상원의원이었던 오바마 전 미국 대통령이 대선 캠페인에서 고담 폰트를 사용하면서 고담은 전 세계의 주목을 받게 됐습니다. 디자이너 스콧 토머스와 존 슬라빅은 디자인 가이드라인을 통해 캠페인 메시지에 일관성을 부여했고, 솔 센더가 만든 로고와 함께 정치 커뮤니케이션의 새로운 시대를 열었습니다.

그 후 고담 폰트는 백악관의 공식 서체가 됐으며, 2012년 오바마 재선 캠페인에서도 다시 활용됐습니다. 2014년 설립된 오바마 재단 역시 고담 폰트를 사용했습니다. 이후 고담 폰트는 점차 당파를 가리지 않고 정치 캠페인의 표준 서체로 자리 잡았고, 2018년 미국 중간선거에서는 50명 가까운 후보가 고담 폰트를 선택했습니다. 그 결과 AP 통신은 고담 폰트를 “10년의 글자”라고 부르기도 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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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년 11월 6일 아이오와 주 시더래피즈에서 버락 오바마는 고담 폰트의 물결 속에서 선거 유세 연설을 하고 있다(사진=AP/Paul Sancya)

2011년에는 MoMA가 고담 폰트를 영구 소장품으로 등록했습니다. 프랭크 로이드 라이트의 낙수장(Fallingwater), 초창기 매킨토시와 함께 전시되며 “좋은 서체는 뉴욕 현대 미술관 컬렉션에 들어야 한다”는 큐레이터의 평가를 입증한 것이죠.

이렇게 고담 폰트는 현대의 전설적인 고전 서체로 인정받게 됐습니다. 뉴욕 거리의 이름 없는 글자에서 출발해 결국 백악관과 세계 무대의 언어가 된 것입니다. 어찌보면 이 과정 자체가 하나의 특별한 디자인 전설이라 할 수 있는데요.

한 번에 완성된 것이 아니라 수많은 시도와 실패, 그리고 재발견을 거치고 다듬어지며 탄생한 고담 폰트는 명확함, 단호함, 그리고 친근함이라는 시대적 요구에 응답했습니다. 동시에 고담 폰트는 디자인이 단순히 시각적 장치에 머무르지 않고, 문화와 역사를 만들어 가는 힘이 있다는 것을 보여준 증거이기도 합니다.

👉 원문 링크: 무명 글자에서 현대의 고전으로: Gotham 이야기

  • 에디터김동욱 (jkkims@ditoda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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