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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케팅

당신은 브랜드를 가지고 있나요?

자신만의 브랜드를 가진 인디워커로

어학연수, 토익, 오픽, 한자검정시험, 한국어검정시험, 공모전, 재수강, 계절학기, 5학년 2학기, 자원봉사, 인턴까지… 지금 언급한 것들은 취직을 하기 위해, 더 정확히 말하면 스펙을 쌓기 위해 내 20대를 꽉 채운 기록이다.

사람마다 차이는 있지만 짧게는 1년에서 길게는 10년 가까이 스펙을 쌓기도 한다. 나 역시 20대에는 남들처럼 ‘스펙을 위해 쌓아야 하는 것’들을 하나씩 준비해 나갔다. 그리고 운 좋게도 남들이 부러워하는 직장에 취직할 수 있었다. 재수 없음 주의!

늘 얘기하지만, 취뽀는 잘난 순서가 아니다. 운이 따라야 한다. 회사와 나의 궁합, 또는 면접관과 나의 궁합 같은 것들이 맞아떨어졌을 때 기적이 일어난다. 나 역시 버티다 보니 얻어걸렸다.

취업준비 과정에서 내가 만들었던 ‘그놈의 스펙’은 면접을 다녀보니 실무에 필요한 능력을 가늠하는 잣대로는 부족했다. 애초에 스펙만으로 누군가의 진짜 실력, 또는 그가 제 역할을 잘 할 수 있을지는 판단하기 어렵다. (그래서 어느 정도는 운의 영역이라고 하는 것이다.)

게다가 조금 과장하자면 대한민국 대부분의 취준생들은 대동소이한 업무적 능력을 지니지 않았을까?(물론 개인이 가진 인성과 센스는 케바케, 사바사지만!) 본격적으로 차이가 나는 것은 대리라는 직함을 달고부터란 이야기도 있지 않은가. 누구는 붙고 누구는 떨어지는 것이 철저히 그들의 능력이나 실력에 따라 정해지지는 않는다. 다만 운이 조금 더 따라주는 이들이 있고 그렇지 않은 이들이 있을 뿐이다.

물론 직원을 채용해야 하는 회사 입장에서는 과정의 투명성을 위해 객관적 지표가 필요하다. 그게 곧 스펙이다. 채용 담당자 중에는 스펙이란 놈이 어쩔 수 없는 필요악이라고 하는 이들도 더러 있다. 다양한 활동을 통해 만들어진 스펙들을 보면서 이를 통해 지원자들의 최소한의 자질이나 성실성을 볼 수 있다는 것이다. 전부 틀렸다고 할 수는 없지만! 만! 만! 굳이 누군가의 성실성을 보기 위해 이렇게 긴 시간과 많은 비용을 취준생 모두가 들여야 하는지에 대해서는 여전히 의문이 남는다. 사회적으로 봐도 이는 낭비다.

취직 바늘구멍을 통과해 본 사람들은 공감할 것이다. 막상 회사에 가면 내가 그동안 쌓아왔던 스펙들은 사실 크게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것을. 물론 직업에 따라 다르겠지만 나처럼 홍보나 마케팅 업무를 하는 데 있어 2,355자나 되는 한자 자격증을 딸 필요도 없었고, 토익을 900점 이상 맞기 위해 종로의 좀비가 될 필요도 없었다. 좋은 회사일수록 카운터 파트너가 외국인일 경우 당연히 통역이 붙는다. 물론 잘하면 더할 나위 없이 좋겠지만 토익 900점과 의사소통은 상관관계가 적다는 것을 우리 모두 잘 알고 있다.

결국 지금의 스펙은 개인의 실력을 가늠하는 기준으로 적절치 못하다는 데 다들 공감할 것이다. 더 슬픈 것은 스펙을 쌓는 사람도, 이를 평가하는 사람도 이게 업무 능력을 평가하는 데 실효성이 없다는 것을 어느 정도 알고 있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여전히 우리 사회는 취준생에게 스펙을 요구한다.

# 그놈의 스펙

오늘도 여전히 대한민국의 취준생은 스펙 만들기에 여념이 없다. 문제가 있다는 걸 우리 모두 알지만 그래도 일단은 쌓고 본다. 마음 한구석이 저리다. 이는 지나온 자의 배부른 연민으로 보일 수도 있다. 100% 부정하고 싶지도 않다. 원래 사람은 화장실 들어갈 때와 나올 때가 다르니까. 그러나 이러한 나의 고민과 부채감 때문에 회사를 박차고 나와 이 문제를 해결해 보기 위해 모은 돈을 쏟아부었다면 조금은 진정성이 있다고 해도 되지 않을까? (물론 망했고 그 돈을 날렸기 때문이다.)

게다가 기존 스펙 만들기는 대학생에서 그 나이대가 더 내려갔다. 10대 때부터 동아리 활동이나 대회 입상, 논문 저술 등과 같은 스펙 만들기를 해야 하는 시대다. 이런 이야기를 입 밖에 꺼내기도 민망하지만, 모두가 다 알고 있지만 못하는 이야기이기도 한 지금의 관문 통과를 위한 스펙 만들기는 바뀌어야 한다. 우리 사회는 이제 다른 기준을 제시할 수 있어야 한다.

드디어 합격 소식을 고향에 계신 어머니께 전화로 전할 때 어머니가 혼잣말로 “끝났다”라고 하는 것을 들었다. 죄송하면서도 묘한 찝찝함이 있었는데 막상 취직을 해보니 역시나… 취직은 끝이 아니었다. 이대로 해피엔딩일 것만 같았던 인생은 여전히 다음 미션을 강요하고, 또 다음 미션을 ‘성공적으로’ 수행하기 위해 준비하는 나를 발견할 수 있었다.

게다가 평균 수명도 길어진다는데 나이에 들어서도 이 회사를 다니며 밥벌이를 계속할 수 있을 것인가에 대한 걱정까지 추가되면서 능력과 스펙, 일자리와 일거리 같은 이슈들에 고민이 깊어졌다. 그리고 앞서 말했던 것처럼 이러한 문제를 같이 해결해 보자는 취지로 동료를 모아 창업까지 했었다. 우리가 스스로 새로운 기준을 제시해 보겠다는 포부와 객기를 가지고!

우리의 화두는 크게 두 가지였다.

1. 스펙 대신 스킬로 밥벌이를 할 수 없을까? 학벌이 아닌 각자의 능력으로 입사할 수는 없을까?

2. 일자리는 점차 줄어드는데, 일자리를 늘리는 정책이 과연 맞을까? 아니, 정말 늘릴 수 있는 문제인가? 일자리가 아닌 일거리에 초점을 맞춰야 하지 않나?

스킬, 이른바 자신이 가진 능력으로 기회(돈벌이)를 얻고 삶을 영위하는 것은 어찌 보면 너무 당연한 이야기고 원론적인 이야기지만, 오히려 지금 우리 현실 사회에서는 판타지 같은 이야기다. 스킬이 들어가야 할 자리에 스펙(Spec)이라는, 정작 영어권에서는 사용되지 않는 언어가 대신하면서 이 현실은 오히려 판타지가 돼버렸다.

그래서 우리는 기왕 시작한 김에 제대로 된 판타지를 그려보고자 했다. 우주정복이라도 할 기세로.

# 스펙이 아닌 스킬로

당시 시스템의 이름은 스킬카드(Skillcard)로 정하고 우리는 다음과 같은 그림을 그렸다. 스킬카드는 단순히 서비스의 개념을 넘어 일종의 능력관리(Skill Management) 시스템을 구축하고 통합하는 것이 목표였다. 물론 우리는 이 시스템을 통해 다양한 서비스를 제공해서 밥벌이(우주정복)를 할 계획이긴 했다.

우리는 스킬카드를 통해 사람들이 자신만의 아이덴티티나 브랜드를 정립할 수 있도록 만들고자 했다. 이 시스템에 접속한 개인은 이곳에 자신의 경제활동과 관련된 경험들을 바탕으로 자신의 능력을 구체화하고 이를 제삼자가 한눈에 파악할 수 있도록 ‘스킬화’해서 등록할 수 있다.

이렇게 등록된 스킬은 운전면허증과 같은 ID카드 형식으로 제작되고, 온라인상에서 DB로 저장돼 언제 어디서든 타인과 공유할 수 있다. 또한 지속적으로 업데이트된 정보는 당신만의 살아 있는 ‘프로필’로써 상대방에게 원하는 정보만을 빠르게 취사선택해 상대에 따라 효율적으로 당신을 소개할 수 있게 된다.

다시 말해 스킬카드라는 시스템을 통해 경제활동을 하는 모든 주체들은 노동자로서의 타인과 구별되는 아이덴티티가 생겨나고, 마침내 자기만의 스토리가 탄생한다. 결국 그 누구와도 차별화된 자신만의 브랜드를 갖게 된다.

그리고 우리가 추가로 이끌어내고 싶었던 것은 스킬카드를 통해 사람들은 서로 연결된다. 시스템 안에서 새로운 기회와 연결되고 이를 통해 경험의 확장과 능력의 향상을 경험할 수 있도록 기획했다.

또 타인의 능력 현황을 살펴보면서 자신의 현재 역량을 점검하는 계기를 바랐다. 다만 이 과정에서 스킬의 단순 서열화나 경쟁을 위한 비교가 되지 않기 위한 장치들을 준비해 나갔다. 기회를 연결할 때 그 분야의 ‘제일 잘난 사람’과 연결해 주는 것이 아니라 예산과 난이도에 따라 ‘가장 적당한 사람’을 찾을 수 있게 하는 것이 양측을 위한 일이라고 생각했다. 최고가 아니라 최선의 선택을 하는 데 도움이 되고 싶었다.

이렇게 축적된 연결을 통해 사람들이 성장할 수 있도록 돕고 싶었다. 앞서 말한 것처럼 기회가 편중되지 않는다면 상대적으로 경험이나 스킬이 부족한 이들도 기회와 만나게 될 것이다. 이를 통해 능력의 향상, 이른바 ‘스킬업’하게 되고, 더 다양한 작업, 동료, 직장 등과 같이 새로운 기회를 접하게 된다. 이러한 순환구조를 통해 개개인의 몸값은 올라가게 될 것이라 기대했다.

# 독립 노동자 인디워커의 시대

어떤가? 우리가 꿈꿨던 시스템이 너무 싸이파이(Sci-fi)한 상상이라고 여겨지는가? 우리는 멀지 않은 미래에 일어날 일이라고 생각했고, 특히 요즘과 같은 시대적 상황에서는 피할 수 없는 흐름이라고 봤다. 그리고 6년이 지난 지금 이는 점점 더 현실로 나타나고 있다. 우리와 형태는 다르지만 같은 고민을 가진 이들이 회사를 만들고 시장에 나타나고 있다. 드디어 인디워커(Indie Worker)의 시대가 열리게 된 것이다.

여기서 인디워커는 인디펜던트 워커(Independent Workers)의 내 맘대로 줄인 말이다. 인디뮤지션(Indie Musician)이나 인디영화(Indie Movie)를 떠올려 보면 쉽게 이해될 것이다. 말 그대로 특정 조직에 속하지 않고 자신의 능력을 바탕으로 주체적으로 경제활동을 하고 있는 노동자를 뜻한다. 얼핏 프리랜서와 비슷해 보이는데, 엄밀히 따지면 프리랜서도 인디워커의 범주에 들어가는 노동형태 중 하나라고 보면 된다. 인디워커 ⊃ 프리랜서, OK?

요즘같이 실업률이 급증하고, 정부와 일부 대기업이 주도하는 일자리 정책만으로 현재 고용 시장의 판도를 바꿀 수 없는 저성장이 정상이 돼버린 뉴노멀(New Normal) 시대가 장기화되고 있다. 어쩌면 인디워커의 확장은 이러한 시대적 변화에 따른 노동 형태가 진화한 하나의 형태일지도 모른다.

맥킨지의 연구에 따르면 2019년 기준으로 인디워커의 규모는 미국과 유럽 15개국 노동인구의 20~30%(1억 6,000만 명 수준)에 달한다고 하며, 인디펜던트워커전문 연구기관인 MBO 파트너스는 2021년까지 미국 전체 노동인구의 절반 수준인 46-48% 정도가 인디워커가 될 것으로 전망했다. 서구사회에서는 인디워커의 성장과 관련한 고용시장의 변화를 단순히 위기로 받아들이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기회로 이해하고 진화해 나가고 있다. 이러한 변화에 안착하기 위해 인디워커들이 새로운 경제주체로서 자리 잡을 수 있도록 다양한 노력을 이어가고 있다.

거기에 반해 현재 우리의 모습은 어떠한가? 지금 이 자리에서 대한민국의 실업률이나 고용에 대한 지표를 굳이 들이대지 않더라도 ‘좋지 않다’는 것 정도는 삼척동자도 안다. 그러나 상황이 이러한 데 비해 우리의 대처는 조금 아쉽다. 일부 대기업에 의존하는 일자리 창출이나 공무원 수를 늘리는 방식의 일자리 확대 정책을 실행하는 것만으로 이러한 세계적인 흐름을 피해 갈 수 있을까?

앞에 언급한 것들의 방향이 틀렸다는 말이 아니다. 그것은 또 그것대로 지속적으로 가져가야 할 것이다. 지금 발등에 불 떨어진 사람들을 감싸는 것도 정부가 해야 할 일이기에. 또 한낱 얕은 지식으로 현 정부의 정책 전부를 비판하는 것은 장님이 코끼리 만지는 격일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런 의견을 제기하는 것은 일자리를 늘리는 것, 다시 말해 숫자 맞추기에 급급해서는 안 된다는 이야기를 하고 싶을 뿐이다.

이제는 일자리가 아닌 ‘일거리’를 만들고 공유하는 것에 대해 고민해야 한다. 여기서 놓치지 말아야 하는 것은 안정성이라는 키워드로 대표되는 고용 형태가 아닌 고용인과 피고용인의 관계 설정과 같은 더 근본적인, 그래서 더 건드리기 어려운 부분들을 살펴야 한다.

‘평생직장’이라고 하는 어쩌면 고대 유물이 될지도 모를 놈을 억지로 붙잡고 있는 것보다는 더 확률이 높은 승부가 아닐까? 자신만의 브랜드를 가진 인디워커가 되어보는 것 말이다. 그리고 나는 그런 도전을 하는 이들이 보다 안전하게 착륙할 수 있도록 도울 수 있는(돈 벌 수 있는) 욕망을 오늘도 꿈꾼다.

당신은 자신만의 브랜드를 가지고 있나요?


그놈의 마케팅
저는 가장 세속적인 일을 하는 마케터입니다

저자. 신영웅
출판사. 넥서스BIZ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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