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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케팅

네이버를 떠난 이유(2)

떠난다는 용기, 새로운 것을 시작한다는 용기, 하고 싶은 것을 한다는 용기

어느 여름날, 과장님이 나를 불렀다. 그는 보도자료 쓰는 법은 물론 하다못해 이메일에 CC를 어떻게 넣어야 하는지까지 알려주던 어미새같은 선배였다. 그런 선배가 곤란하고 미안한 표정이다. 대충 느낌이 왔다. 

‘뭔가 부탁을 하려는 거구나.’

자기 대신 언론사 인터뷰 지원을 나가달라는 부탁이었다. 처음 표정을 봤을 땐 큰 부탁인 줄 알았는데 그 정도야 하는 마음……은 인터뷰 장소를 듣고 사라졌다. 바로 일산이었기 때문에. 회사는 분당에서도 정자동, 인터뷰 장소는 일산. 교통상황을 고려하면 차로 왕복 4시간이 넘는 부담스러운 일정이었다. 사실 거절할 수 있는 짬밥도 아닐뿐더러, 때마침 ‘오늘 담보대출’에 지쳐갈 때이기도 했고, 콧바람 좀 넣고 싶었다. 어차피 일은 늘 쌓이기만 하지 줄지 않기에 그거 다녀온다고 내 인생이 크게 달라질 것 같지 않았다.

그때까지만 해도 내 인생이 뒤흔들릴 만한 사건이 일어날 줄은 꿈에도 몰랐다.

곽백수 작가를 만나다

일산으로 넘어가기 전에 선배에게 관련 자료를 건네받았다. 매체는 <매일경제>와 <국민일보>, 인터뷰이는 곽백수 작가였다. 곽백수라고 하면 당시 지친 회사생활에 작은 숨통을 틔워주는 웹툰 ‘가우스 전자’를 연재하는 인기 작가였다. 평소 그가 어떤 사람인지, 어떤 경험적 배경이 있기에 이런 작품을 만들 수 있는지 궁금했기에 작은 기대를 안고 일산으로 향했다. 게다가 오늘은 혼자가 아니던가? 다들 막내 생활을 해본 사람들은 알겠지만 혼자 외근을 나간다는 것은 묘하게 설레는 일이다. 아이팟 셔플(옛날사람인증)을 꺼내서 귀에 꽂고는 택시에서 잠을 청했다. 

잠도 잘만큼 자고 음악도 지겨워질 때쯤 아파트 숲 가운데 위치한 공원이 눈에 들어왔다. 보통 작업실이나 카페에서 인터뷰를 하는데, 곽백수 작가는 특이하게 공원에서 인터뷰를 하자고 했다. 도착하니 곽백수 작가가 먼저 나와 기자들과 나를 반겼다. 그날따라 햇살이 너무 뜨거워서인지 인터뷰는 일사천리로 진행됐다. 자리를 파하려고 하는데 곽백수 작가가 우리에게 자리를 청했다. 평소 같으면 밀려 있는 일거리를 떠올리며 얼른 복귀를 했겠지만, 그날따라 이상하게도 몸이 평상으로 스르륵 옮겨가더라.

“고생 많으셨어요. 먼 길 오셨는데 딱히 대접할 건 없고 날도 좋은데 여기 평상에서 맥주나 한잔하고 가요.”

그렇게 시작된 평상 대화, 마냥 시답잖은 농담 따먹기 하다 끝날 줄 알았던 그 대화는 걷잡을 수 없는 방향으로 흘러갔다. 

곽 작가는 일반적인 직장생활을 한 번도 해 본 적이 없다고 했다. 의외였다. 어떻게 경험하지 않고 저런 에피소드를 그릴 수가 있을까 하는 의문마저 들었다. 그러나 그의 입에서 나오는 말들은 하나같이 ‘띵언’이었고 나의 가슴을 후벼팠다. 도사 같은 분위기로 행복에 대해 이야기하자 나는 입에서 끊임없는 탄식을 뱉어냈다.

발밑이 무너져 내리다

그가 우리의 마음을 뒤흔들어놓자 마침 나랑 동갑이었던 기자는 자신의 고민을 꺼내기 시작했다. 역시나 30대의 전염병과도 같은 퇴사, 결혼, 미래에 관한 이야기였다. 그러나 그도 안정적인 직장을 버릴 수가 없어 머뭇거리고 있다고 했다. 누구나 그렇듯 가슴에 사표를 품고 다니지만 품 안을 떠난 적은 없다고 했다.

그들의 대화 속에서 나는 존재감 없이 듣고만 있었다. 입을 열었다간 눈물이 쏟아져 나올 것만 같았다. 목젖이 묵직해지고 갈증이 났지만 복귀해야 하니 맥주 대신 콜라를 한 모금 마셨다. 그냥 조용히 듣고만 있었다.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곽 작가가 말하는 행복에서 나를 찾을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냥 머리가 멍해지고 어지러웠다. 더운 날씨 탓이겠거니 했다.

그렇게 선문답 같은 대화가 끝나갈 무렵 곽 작가가 던진 마지막 말에 나는 결국 무너지고 말았다. 시간이 꽤 지난 지금도 그날의 공기와 그가 했던 말은 여전히 또렷하게 기억이 난다.

“요즘 친구들은 참 몰라. 지금 자기 발밑이 무너져 내리고 있는 걸 말예요. 내일에 있을 행복만 좇는 것 같아. 그런데 그거 알아요? 내일은 항상 내일에 있는 거?”

이 말이 귀를 타고 목구멍을 지나 심장에 꽂혔다. 택시에 올랐는데 오르자마자 다리가 풀리고 눈물이 쏟아지기 시작했다. 솔직히 이유를 알 수 없었다. 정확히 말하면 그때까지만 해도 몰랐다. 왜 눈물이 나는지를. 

내가 잊어버린, 내가 좋아하는 일

그 이야기를 곱씹으며 며칠을 보냈다. 나는 좋은 직장에서 열심히 일하며 차근차근 일도 배우고, 입사동기들과 몰려다니며 학생 때 기분을 내기도 하면서 아주 안정적(?)으로 잘 살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왜 그렇게 울었을까? 계속 곱씹어봤다. 그러다 회사 메일함에서 그 이유를 찾을 수 있었다. 디자이너가 보낸 기프트 카드 디자인 시안 메일이었다.

당시 대외 홍보를 위해 네이버 서비스를 이용할 수 있는 기프트 카드를 제작하는 것이 내 업무 중 하나였다. 중요도에 비해 손이 많이 가는 귀찮은 일이지만 이왕 배정받은 김에 더 잘하고 싶어서 요구사항이 많아졌고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담당 디자이너와 많은 메일을 주고받았다. 그가 보낸 메일에는 새로운 디자인 시안이 첨부파일에 담겨 있었다. 기존에 제작했던 것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세련된 카드 디자인이었다. 처음에는 마냥 뿌듯했는데 이내 며칠 전 내 눈물의 이유를 알게 되고 말았다. 내 마음 깊은 곳에 묻어둔 디자인에 대한 열망을 마주할 수 있었다.

취직하고 일 배우느라 너무 정신없이 지내다 보니 내가 언제 행복한지를 잠시 잊고 있었던 것이다. 이건 단순히 일의 양과 시간의 문제가 아니었다. 피곤하고 힘들지만 그래도 내 입꼬리를 올라가게 만드는 일이 무엇이었는지 잊고 살아왔던 것이었다. 

곽백수 작가의 말을 빌리자면 나는 막연한 내일의 행복을 위해 오늘을 희생시키는 사람이었다. 그리고 자연스럽게 ‘과연 나의 내일에는 행복이 있을까’ 하는 의문이 찾아왔다. 행복해지고 싶은 욕망은 이상한 곳에서 방향을 잃고 말았다. 그러나 여전히 그 욕망의 크기만큼 두려움이란 놈도 함께 찾아왔다. 아이러니하게도 행복해지려면 두려움을 만나야 했다. 

솔직히 당장 회사를 박차고 나온다고 무조건 행복해진다는 보장이 없었다. 잠깐의 방황을 제외하고는 30년이 넘게 가정, 학교, 회사로 이어지는 안전한 시스템 안에서만 살아온 인생이었다. 정해진 루트 안에서 그에 맞게 충실하게 살아왔다. 성실히 미션만 수행하면 궤도를 벗어나지 않고 예측할 수 있는 방향으로 갈 수 있는 삶이었다. 더 솔직하게 말한다면 지금까지 온실 밖에서 살아본 적이 없었다. 화초는 아닐지언정 비닐하우스 끄트머리에 몰래 붙어 있는 잡초마냥 끈질기게 발버둥을 쳐본 적도 없었다. 그렇게 시스템을 벗어난다는 것을 상상해 본 적도 없었기에 두려움이 함께 따라왔다.

단 하나의 이유

그날 이후 행복을 계산하기 위해 주판을 두드리기 시작했다. ‘온실을 벗어날 때 찾아올 두려움’과 ‘행복한 오늘을 만날 기쁨’의 크기를 재기 시작했다. 그러나 슬프게도 그만둬야 할 이유는 하나인데, 그만두지 말아야 할 이유가 너무 많았다. 

일단 당장 생활비를 벌 여력이 없었고, 동료들에게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무엇보다 우리 이모 같은 이사님이 날 이렇게 예뻐해 주는데 그녀에게 등 돌릴 용기가 차마 나지 않았다. 우리같은 애정결핍이들에게 주로 나타나는 전형적인 행태 아니겠는가 게다가 입사동기들이랑 4층 카페에서 700원짜리 커피를 마시며 수다를 떠는 시간도 잃기 싫은 잔재미였다. 업무적으로는 네이버 산지직송(현 프레시윈도)이란 새로 나온 서비스를 가장 먼저 홍보하는 기회도 잡았고, 회사 내에서 가장 좋아하는 서비스였던 네이버 스포츠를 배정받으면서 동기부여도 됐다. 

그래도…… 그래도…… 그래도 결국에는 사표를 썼다. 대학원 진학에 이어 이것이 바로 내가 저지른 두 번째 이기적인 선택이었다. 앞서 밝힌 것과 같이 다녀야 할 이유는 많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단 하나의 이유로 퇴사를 했다. 철저하게 나만 생각했다. 조금 이상한 계산기를 썼다. 단순히 현재의 일이, 직장이 싫은 것은 아니었다. 그러나 곽 작가를 만난 이후부터 막연히 마음속에 품고 있었던, 포기했던, 잊은 척했던 것이 선명해졌기 때문이었다. 몸은 죽을 것같이 피곤해도 하는 내내 ‘뇌가 열리는’ 일을 하고 싶어졌다.

뇌가 열리는 희열을 주는 일을 명확하게 정의 내리기는 힘들지만 최대한 내가 할 수 있는 언어를 총동원해 본다면, 바로 사람들이 열광하는 크리처(creature)를 만드는 것이다. 그것이 그림이든 글이든, 유형의 제품이든 무형의 서비스든 간에 사람들의 욕망을 읽어내고 이를 구현할 때 나는 뇌가 열리는 느낌을 받는 사람이다.

다시 말해 사람들에게 사랑받는 무엇인가를 만들어내는 일을 하고 싶은 것이었다. 누가 애정결핍이 아니랄까 봐 사람들이 가진 열망이나 그들이 가고자 하는 방향을 읽어내고, 그 열망과 방향이 만들어낸 사회적 욕망을 구체화하고 이를 프로덕트와 일치시키는 작업이 바로 그것이다. 현실적으로 내가 가질 수 있는 직업으로 표현한다면 브랜드 기획자, 마케터, 소설가, 시나리오 작가 정도가 되지 않을까?

그래서 지금은 어떻게 사냐고? 어렵게 모든 종잣돈으로 주식에 투자했지만 자금의 반을 날렸고 결국 디자인 유학을 유보(포기는 아니다, 여전히.)했다. 이때 느낀 것이 확실히 우리네 삶이 드라마나 영화처럼 마냥 해피엔딩은 아니란 것을 깨닫는다.

그래서 지금도 열심히 직업인으로서, 지망생으로서 사람들이 좋아하는 브랜드나 작품을 만드는 작업에 열중하며 살고 있다. 다행히도 좋은 브랜드를 만나 일을 할 수 있었고, 보고 배울 것이 많은 그것이 타산지석일지라도 동료들을 만나 매일 성장하며 살아가고 있다.

특히 최근에는 드디어 고민만 하던 창작을 시작하게 됐다. 아직 어설픈 것 투성이지만 사람들에게 사랑받는 작품(을 넘어 브랜드)를 만든다는 생각에 매일이 설렌다. 게다가 운이 좋게도 네이버 웹소설에 연재한 지 일주일 만에 베스트리그로 승격하는 횡재도 경험했다. (작품이 궁금한 분들은 네이버 웹소설 ‘미래에서 돌아온 그림자’를 찾아보시길!)

그렇다. 내가 네이버를 떠난 이유는 ‘사랑받는 것’을 만드는 사람이 되고 싶어서 ‘사랑하는 사람들’의 걱정을 뒤로하고 ‘사랑하는 회사’를 떠난 것이다. 그리고 지금도 여전히 꿈을 꾸고 있다. 언젠가는 사람들이 열광하는 ‘무엇’을 만들어내는 날이 있을 거란 기대는 아직 아무것도 이루지 못한 내게 오늘을 살아가는 원동력이 되고 있다.


그놈의 마케팅
저는 가장 세속적인 일을 하는 마케터입니다

저자. 신영웅
출판사. 넥서스BIZ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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