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明達路] 언어의 조탁(彫琢)
언어의 진정한 민주화를 위해 필요한 것들
1970년대 영국의 어느 가난했던 노부부가 추운 겨울, 차디찬 방 침대 한켠에서 안타깝게 세상을 떠났습니다. 정부의 난방 수당 지급 공고문 용어가 너무 어려워, 이를 지원 받을 수 있다는 사실을 몰랐기 때문입니다.
1995년 고베대지진. 당시 외국인 사상자가 대피 안내문을 제대로 읽거나 인지하지 못해 수 많은 사상자가 발생합니다. 이후 일본은 쉬운 일본어(やさしい日本語)를 표방, 지속적인 개선을 이뤄갑니다.
2005년 10월, 히로사키 대학(弘前大學)이 유학생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 결과, 알기 쉬운 일본어로 대피 안내를 접한 유학생의 이해도는 자그마치 95.2%였습니다. 결국, 일본의 쉬운 공공언어 정책은 사회적으로 큰 반향을 불러 일으켰습니다. 일본어에 능통하지 않은 이 누구나 도움돼야 한다는 걸 제대로 인지했던 결과죠.
특히, 이 프로젝트는 2011년 동일본 대지진을 겪으며 각종 지침을 확대하기에 이르고, 하나의 매뉴얼로 사회 곳곳에 정착합니다.
미국, 영국, 벨기에, 인도, 일본 등지에서는 오래 전부터 공공분야 등지에서 쉬운 글쓰기를 표방해 왔습니다.
그러한 사회적 움직임에 기업이 주목했고, 디지털과 만나면서 더욱 쉽고 촘촘한 글쓰기를 시도하기에 이릅니다. 동시에 하나의 산업으로 주목 받게 돼죠. 혹자는 이 산업을 제2의 르네상스 운동에 비유하기도 하는데 이렇게 보는 시각도 무리는 아닙니다.
쉬운 공공언어 정책이나 행동(다음)을 부르는 UX 라이팅의 목적은 결국 몇 가지의 공통분모가 있습니다. 바로, 언어의 민주성, 낮은 진입장벽, 정보의 평등권 실현, 알 권리 보장, 국가(기업) 산업생산성과 경쟁력 확장입니다.
하지만, 쉬운 언어사용으로 인한 사회가 변혁을 이루기 위해서는 앞서 사례처럼 안타까운 발화점(사건)이 늘 존재합니다. 하지만 그로 인해 공감대가 형성되고, 여론이 조성되면서 정책적으로 입안될 수 있는 여지가 있다는 건 명약관화(明若觀火)한 사실입니다.
언어는 주어와 목적어가 있습니다. 혼잣말이 아닌, 상대와 주고 받는 이야기 툴인 것입니다. 독자(고객)을 위해 쉽게 쓸 수 있다는 건, 어려운 일이고, 어렵게 쓴다는 건 쉬운 일입니다. 그래서 시대가 변화하고 진화할 수록 쉽고 실용적인 글을 작성하기 위한 기자와 UX 라이터는 더욱 섬세한 글을 써내려가야 하는 것입니다.
독자(타깃), 구조, 디자인, 표현, 나아가 구두점과 문법의 일관성, 평균 문장 길이, 수동태보다 능동태, 기술적 용어의 설명, 목록의 적절한 사용, 명료한 제목, 적절한 글자 크기와 선명한 글씨체 등을 종합적으로 고민해야 합니다.
좋은 글은, 이해가 쉽고, 다음에 무엇을 해야 하며, 원하는 바를 이룰 수 있도록 적절히 도와주는 글입니다.
하루에도 수 없이 주고 받는 언어들. 그 때마다 한겹 한겹 떼어보면, 그 안에는 계급과 서열, 갑을병정의 산물이 녹아 있기도 합니다. 이용자가 아닌 제공자 중심 용어와 서술어, 권위의식이 돋아 있는 주어, 지나친 문장 생략, 처음 접하는 용어 등 불친절하기 짝이 없죠. 어느 덧 그 고름이 조금 씩 사라지고 있음을 감지합니다. 건강한 사회의 척도는 언어에 묻어나기 마련입니다.
따라서, 더 쉬운 언어를 위해 내달려야 합니다. 비대면이 정착하고, 세대 간에 직접적인 소통이 주춤하면서 텍스트로 소통하는 비중이 더 높아졌습니다. 때로는 오해가 생기기도 하고, 정보를 이해하지 못해 수혜를 받지 못하거나, 굳이 하지 않아도 되는 이동을 해야 할 때가 많습니다. 이때 언어는 누구나 금세 이해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만큼 진입 장벽을 낮춰야 합니다. 언어를 보면, 당대의 사회적 흐름을 들여다볼 수 있습니다. 민주화의 또 다른 척도가 되기도 하지요.
저 역시 글 만지는 일을 하다보니 효과적인 글, 바른 글은 무엇이며, 기사를 어떻게 풀어써야 할지, 한 술 더 떠 언어로 소통하는 UX 라이팅이란 무엇을 의미하고 사용자에게 다가가기 위해 무엇을 우선해야 하는지 여러 자료를 많이 찾아봅니다. 그러다보면 문장 하나 하나가 개인과 사회에 미치는 영향은 상상을 불허할 정도라고 느낄 때가 한두 번이 아닙니다.
앞으로, 디지털 시대 언어는 어떠한 방향으로 나아갈지 궁금합니다. 중요한 건 더 쉬운 언어, 더 명확한 언어를 한시라도 바삐 정착시켜 사각지대를 없애야 한다는 사실입니다.
쉬운 언어의 그 수혜자는 바로 나 자신, 혹은 우리가 될 테니까요.
seoulpol@wirelin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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