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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러스트레이터로 살아가는 건” 위로를 그리는 버드얀 작가 이야기

‘깜보냥이’를 그리는 버드얀 작가를 만나다


때로 사람들에게 큰 위안과 행복을 주는 작품의 뿌리에는 우울과 불안이 있다. 마음의 재와 같은 어두운 감정이 때로는 위로의 원천이 된다는 사실은 우리가 마음의 어둠을 어떻게 가치 있는 무언가로 치환할 수 있는가에 대한 힌트가 되기도 한다.

찰리 브라운의 성격을 보여주는 단편. 어딘가 우울한 구석은 사람들이 찰리 브라운을 사랑하는 이유다(자료=Qoura)

세계적인 사랑을 받고 있는 ‘스누피’를 만든 ‘피너츠’의 작가 찰스 먼로 슐츠도 작품의 많은 부분을 작가 본인의 불안과 우울, 좌절에서 끌어왔음을 공공연하게 밝혔다. 어두운 마음이 위로의 시작이 된다는 유명한 예시인 셈이다.

일러스트레이터 버드얀 작가. 올해로 4년차를 맞은 작가는 위로를 위한 작업을 이어가고 있다(사진=작가 본인 제공)

국내에도 그런 마음의 재를 위로의 재료로 사용하는 작가가 있다. 2022년 서울일러스트레이션페어 참가를 기점으로 올해 4년차를 맞은 일러스트레이터 버드얀 작가다.

왜 그는 검은 고양이를 그렸나

버드얀 작가의 명함에 그려진 일러스트. 작가가 처음 그린 깜보냥이 일러스트다(자료=작가 본인 제공)

13일 잠실의 한 카페에서 만난 버드얀 작가가 건넨 명함에는 검은 고양이가 그려져 있었다. 작가가 그리는 작품들에 빠짐 없이 등장하는 검은 고양이 캐릭터 ‘깜보냥이’다.

명함에 검은 고양이가 그려져 있네요

제 작품의 메인 캐릭터인 깜보냥이에요. ‘마음이 타고 남은 재와 먼지가 뭉치고, 그게 시간이 지나 별이 됐다’는 문장에서 시작된 친구죠.

깜보냥이는 어떻게 탄생하게 됐나요?

스스로에게, 그리고 다른 사람들에게 위로를 주기 위해 만든 캐릭터에요. 지치고 외로운 어느 날 나에게 따뜻한 말을 건네는 친구 말이에요. 그런 위로를 가장 잘 건넬 수 있는 방법이 뭘까 고민했는데, 아무래도 역시 그림이더라고요. 그래서 깜보를 만들게 됐어요. 어떻게 보면 외로움에서 시작된 캐릭터네요.

버드얀 작가는 깜보냥이를 단단한 마음이 바스라져 떨어진 재가 모여 만들어진 존재라고 설명한다(자료=작가 본인 제공)

외로움의 형태란 다양한데, 왜 검은 고양이가 된 걸까요?

계획적으로 만들어진 건 아니에요. 마음의 재와 먼지가 뭉쳐진 존재를 상상했고, 또 가장 좋아하고 잘 쓰는 재료가 연필이었거든요. 그래서 연필로 검게 칠한 검은 고양이가 자연스레 만들어졌어요.

깜보냥이가 등장하는 작품이 많은데, 작품에 담아내는 공통적인 메시지 같은 게 있나요?

스스로 생각하는 위안을 담아내고자 해요. 주로 타인과의 비교처럼 불안에 대한 것들을 주제로 힘이 되는 이야기를 전하고자 하고 있어요.

<디지털 인사이트 282호>의 표지가 될 작품 <평화>를 설명하는 버드얀 작가(사진=디지털 인사이트)

<디지털 인사이트 282호> 표지를 맡게 됐어요. 표지 작품도 위로에 대한 메시지를 담고 있나요?

사건 사고가 많은 한 해를 보내고 있다고 생각해요. 그런 만큼 다들 불안하고 힘든 시간이었을 것 같았어요. 그래서 마음의 평화와 위로를 바라는 작품을 표지 작품으로 결정했어요.

일러스트레이터로 산다는 건

위로에 대해 많이 생각하고 있네요. 작가님도 외로워 본 적이 있나요?

재수를 했는데, 그때가 힘들었어요. 원하는 대학에 진학해 대학생활을 하는 친구들을 보며 멈춰있는 기분이 들기도 했고요. 시간이 지나며 단단해지는 계기가 됐지만, 당시에는 외로움에 대처하는 방법을 몰랐어요.

어떻게 이겨낼 수 있었던 걸까요. 원하는 대학에 합격했나요?

입시 결과가 크게 영향을 미치지는 않았어요. ‘엄마 밥’ 먹고 이겨냈어요.

엄마 밥이요?

따뜻한 집밥 먹고, 가족과 많은 시간을 보내는 게 힘이 됐어요. 그 경험이 사람들이 누군가와 함께 있다고 느끼게 해주고 싶은 계기가 된 것 같아요.

그럼 마음이 일러스트레이터가 된 직접적인 동기인가요?

그렇지는 않아요. 디자이너로 직장생활을 짧게 했는데, 좋아하는 그림을 그리며 살아가고 싶었어요. 살면서 ‘가장 나다운 순간’은 그림을 그릴 때였어요. 재수를 하며 다른 사람들의 속도나 모양을 신경 쓰지 않고 나답게 살아가는 태도의 중요성에 대해 깨달았기 때문인 것 같기도 해요.

서울일러스트페어에 참가했던 버드얀 작가의 부스. 작가는 일러스트페어에서 팬들과 소통하고 마음을 주고 받을 수 있어 감사하다고 말했다(자료=작가 본인 제공)

일러스트레이터로 살아간다는 건 어떤가요?

장점과 단점이 명확하죠. 내가 그리고 싶은 것, 생각하는 것을 자유롭게 그릴 수 있고, 그게 내 마음에도 들고 사람들도 좋아해주면 행복해요. 일러스트페어에 꾸준히 참가하는 것도 사람들이 주는 감사한 마음을 피부로 느낄 수 있기 때문이고요.

단점은 무엇이 있을까요?

아무래도 안정성이 없다는 것이죠. 불안한 마음이 있을 수밖에 없어요. “이 직업으로 100살까지 먹고 살 수 있을까?” “계속 내 그림을 사람들이 좋아해줄까?” 그런 고민이 들기 마련이죠.

그런 불안은 어떻게 다스리고 있어요?

생각을 비우려고 해요. 책을 읽기도 하고, 판타지 장르를 좋아해서 반지의 제왕 같은 영화를 몰아보기도 하고요. 요가나 달리기도 주기적으로 해요.

불안을 다스리는 방법은 많은데, 가장 중요한 건 ‘루틴을 만드는 것’이라고 생각해요. 정해진 시간에 일어나고, 꼭 해야 하는 작업을 정해 지키고… 그런 일이요. 고민은 결국 다 나중에 대한 생각들이에요. 고민하기 보다 지금 주어진 일을 해야 해요. 그게 버틸 수 있는 힘을 만들어요.

꾸준히, 계속 그려야 한다

단단한 마음이네요. 불규칙한 수익에 대한 걱정은 없나요?

아직 많이 벌기는 어렵고요(웃음). 생활할 수 있는 최소한은 맞추려고 하고 있어요. 사이드잡으로 어린 학생들이 다니는 미술학원에서 강사로 일하고도 있고요. 이 일은 돈이 아니라 사랑을 먹고 사는 명예직이죠. 돈이 왜 안될까 생각하면 힘들어요. 좋아하는 일에 큰 돈까지 바라지는 않아요.

돈에 초연할 수 있을 만큼 이 직업이 가진 매력이 있는 걸까요?

가장 큰 힘이 되는 것도, 가장 큰 매력도 사람들이 주는 사랑이에요. 때로는 제가 표현하고자 했던 것보다 그들의 마음에 더 크게 와닿을 때도 있더라고요. 그럴 때도 감사하고 좋아요. 사람들에게 힘이 되고 있다는 것을 느끼면 행복하죠.

종종 일러스트페어 같은 곳에서 편지나 메시지를 받을 때가 있어요. 멀리서 찾아오는 팬을 만날 때도 있고요. 그런 경험을 할 수 있다는 게 정말 큰 매력이죠.

힘들 때는 없나요?

기획이나 계약서도 혼자 해야 하니까 힘들긴 하죠. 회사 생활을 하며 생가는 인연이나 동료가 부러운 적도 있었어요. 일러스트레이터는 방에서 혼자 작업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니까요. 그럴 때 가족이 힘이 되기도 하고, 일러스트페어를 나가면서 생기는 다른 작가분들이나 팬들과의 인연이 힘이 되기도 해요. 늘 반갑고 감사하죠.

전업 일러스트레이터를 꿈꾸지만 불안해서 시작하지 못하는 경우도 많아요. 그들에게는 어떤 이야기를 해주고 싶어요?

꾸준히, 계속 그려야 한다고 말하고 싶어요. 동시에 사람들의 말에 저항할 수 있어야 해요. 일러스트레이터는 그리는 것보다 보여주는 게 더 어려운 직업이에요. 사람들의 생각이 두려울 때도 있고, 작품에 대한 질문이 부담스러울 때도 있을 거예요. 일러스트페어 같은 곳에서 지나가는 사람이 무심코 툭 던진 말이 아플 수도 있고요.

그런 말에 저항할 수 있어야 해요. 많은 사람들이 본다면 분명 나를 좋아해주는 사람도 있어요. 어쩔 수 없는 걸 담아내지 말고, 계속 나아가는 게 중요해요.

2022년 일러스트페어에서 스티커로 제작됐던 작품인 <러브>. 많은 사람들이 스티커를 좋아해준 경험으로 버드얀 작가는 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작품을 애정해주고 있음을 깨닫게 됐다(자료=작가 본인 제공)  

사람들의 사랑을 체감하는 순간이 오지 않으면 어떡하나 걱정하는 사람들도 있을 거예요.

초연하게 작업하다 보면 그 순간은 분명 찾아와요. 그걸 기다려서는 안돼요. 내가 좋아하는 걸 열심히 하는 마음이면 돼요.  

버티는 마음이 중요한 거네요. 그런 초연함 때문일까요, 작가님의 앞으로가 기대되네요.

깜보냥이처럼 따뜻한 작가로 기억되고 싶어요. 작업도 다양하고 꾸준하게 할 거예요. 13일에 출간된 <서점을 그리다>에도 참여했어요. 일러스트레이터가 생각하는 서점에 대한 이야기를 모은 도서죠. 10월 말에는 사람과 동물의 공존에 대한 메시지를 담은 전시 ‘행복하개’에도 참여해요. 다양한 활동으로 계속 찾아 뵐게요.

  • 에디터이민호 (treewords@ditoda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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