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저하는 당신에게
사람들은 일을 하기 싫어한다.
01. 주저하는 당신에게
02. 다시 꺼내는 기획자 무용론
03. 커뮤니케이션의 정치
04. 프로젝트는 왜 성공하는가?
05. 비틀어보는 리더십과 팔로워십
내가 하는 일은 프로젝트를 수주하고, 몇 개월씩 일정이 정해진 일이 진행될 수 있도록 환경을 만드는 것이다. 다행히 일을 수주하고 회사 직원들에게 다음 주부터 일에 착수하자고 하면 8~9할은 “네?”라며 놀라거나, “아~네~”라는 반응이다. 이른바 프로젝트를 많이 경험한 시니어 매니저들마저도 반응은 비슷하다. 역할이기 전에 사람이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일을 하기 싫어한다. 오래전 경영학 수업에서 어느 선생은 ‘사람들이 원래 일을 하기 싫어해서 경영학이 탄생했다’라고 했다. 쉼 없이 움직이는 원자의 덩어리인 인간에게 직업적으로든 운동적으로든 움직임 자체가 주는 피곤함은 역설적이다.
이러한 성질을 제어하고자 태어난 고약한 학문이 경영학인 셈이다. 게다가 일을 하게끔 만드는 학문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일을 잘하게끔 만드는 지점에서 빛을 내더니 일을 되도록 많이 하게끔 하는 경지에 이른 이 학문은 악명 높은 시스템이 되고 말았다.
내가 하는 웹이나 모바일을 구축하는 일, 편의점을 운영하는 일, 기업이 자본시장에 진출하는 일, NASA에서 우주선을 발사하는 일까지 자본주의 사회의 모든 부분에서 이 시스템은 정제되고 대입되어 왔다. 즉, 어느 위치에 어느 조직에 있든 간에 사람은 일이 싫거나 최소한 하기 싫은 감수성은 같다는 얘기다.
문제는 일 자체의 하기 싫음이다. 조직이 있는 직업에서 일하기 싫음 이란 여러 해석을 낳을 수 있다. 경제학의 원리가 수학이 아니라 심리인 것처럼 일이 하기 싫은 이성적 이유 몇 가지를 찾아내기 전에 심리가 먼저 소환되는데 그중 하나로 두려움이 있다.
일의 착수에 직원들의 반응도 두려움이라 생각한다. 능력, 관계, 워라밸 등이 뒤엉킨 두려움이 밀려오지만 내적 갈등은 오래가지 못하고 종국에는 하기 싫은 감수성을 간직한 채 마지못해 일에 착수한다. ‘라벨’ 이 되려면 ‘워’ 가 있어야 한다는 합리 아닌 목적으로 말이다.
그 목적은 대체로 개인적인 부분에서 강력하게 작용한다. 회사의 목적이나 비전으로 하기 싫음이 좋음으로 바뀌는 경우는 드물다. 더구나 겨우 프로젝트를 착수하자는 지점에서 회사의 문장을 생각해내고 내적 갈등과 버무려서 입장을 정하는 직원이 있다면 그는 노동자를 넘어선 사용자의 반열에 가깝다.
아쉽게도 일의 시작에서 생각 나야 할 그 목적은 사태가 진정되고 나서야 ‘내가 이거 받고 이 일을 해야 하나’, ‘내 삶은 어디로’라는 형태로 나타난다. 그 찰나에는 하기 싫음을 전하는 두려움의 매질이 태도로서 반작용을 할 뿐이다.
눈부시게 복잡해 보이는 이 시스템에는 태도와 두려움을 입력하는 데이터베이스가 있다. 이 관계형 데이터베이스는 하기 싫은 자체의 태도보다는 마지못해서라도 일을 하는 두려움으로 작동한다. 그 작동 알고리즘은 단순하게도 계급이다. 싫은 말을 할 수 있는 존재, 때로는 나를 업신여길 수 있는 존재로 인해 몸이 움직인다. 이것만으로도 시스템 안에서 이익과 이익이 쉴 새 없이 충돌한다.
불행히도 시스템은 그것만 없다면 일이 좋아질 것 같은 어떤 이익을 혼자 누리도록 놔두지 않는다. 두려움이 입력되지만 두려움이 없는 이 시스템은 일이 싫은 사람들을 두려움으로 엮고 엮어야 돌아간다고 믿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두려움을 극복하라고 조언하고 극복하고자 애를 쓴다. 범죄가 아닌 이상 이기적인 목적을 추구하고 두려움의 칼을 입에 무는 한이 있더라도 사람들은 이 사악한 시스템 내에서 또 다른 시스템을 만들어 낸다. 아이러니하게도 그것은 조직의 신비로운 손길, 자신도 미처 알지 못한 동료들의 희생이 쌓은 언덕 같은 것이다.
자존심으로 뭉쳐 역사를 만들어 내며 살아갈지 언정 이러한 인간적인 면모가 없다면 사람들은 여지없이 시스템을 떠나기 마련이다.
시스템을 떠났다고 해도 우린 또 시스템에 맞닥뜨린다. 떠난다고 떠날 수 없는, 숙명은 빨리 받아들일수록 그다음을 상정할 수 있다. 누구나 좋은 동료를 만나고 신비로운 손길을 기대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누구나 입 밖에 내지 못한 힘겨움이 있다. 그렇기 때문에 다시 만나는 시스템에서 우리는 숙명적으로 전진해야만 한다. 스스로를 이상적인 레벨로 생각하더라도 발이 땅을 짚고 있다면 그 걸음은 큰 도약을 요구하는 것이 아니다.
시스템은 우리를 두려움으로 움직이게 했지만 우리의 걸음은 저마다 다른 투쟁의 방향이 있고 그것은 혁명적 성취만을 목표하지 않는다. 우리는 고착된 삶의 기술이나 스스로 쌓아온 태도와 싸워가며 세월 속에서 깨우치는 분투의 과정을 가야만 한다.
어쩌면 이것만이 시스템에서 시스템을 만들고 두려움을 해체하여 이상을 실현하는 데 가깝게 다가갈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