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적 발상과 디자인적 창의
예술과 디자인에서 창의성이란?
창의성 계발을 위한 문화예술교육의 의미와 그러한 교육을 통해 활용할 수 있는 예술적 발상과 표현, 디자인적 창의에 대해 알아본다.
창의성에 대한 몇 가지 질문
① 개인의 창의성은 왜 필요할까?
20세기는 이념과 종교, 인종 등 다양한 갈등이 분출된 시기였다. 두 차례에 걸친 세계대전이 오히려 과학 기술의 발전을 이끌었다는 아이러니 속에서 인류는 그동안 가려졌던 모순과 부조리의 깊은 수렁을 봤다.
이로 인해 개인은 세계를 향하던 시선을 자신의 내면 세계로 돌리게 됐다. 실제 삶이 이어지는 현장은 이것 저것 해볼 수 있는 가능성의 공간이라기보다는, 오직 이것 아니면 저것이라는 선택만 존재하는 곳이었다.
21세기는 더욱 개인적인 시대다. 특히 4차 산업혁명이나 인공지능 등으로 예기치 못한 미래가 언제든지 닥칠 수 있는 상황에서 세계라는 맥락은 개인의 내면을 보다 독립적이고 주체적으로 만드는 데에 기여해야 한다. 창의성은 그에 필요한 수단이자 기반이라고 할 수 있다.
② 기업에 있어서 창의성이란?
최근 세계 경제 중심부를 형성하는 기업은 애플이나 구글, 페이스북처럼 창의성을 핵심 가치로 내세우는 곳들이다. 제품 효용, 생산 효율, 품질관리 등은 여전히 중요하지만 그것이 기업 사이에 결정적인 차별점을 만드는 요소는 아니다. 또 개인의 내면을 향한 시선이 디지털 미디어의 확산에 힘입어 더욱 강화됨에 따라 인간 본성에 호소하는 마케팅 전략의 중요성이 늘어나는 추세다. 이에 따라 일부 기업에서는 예술지능(AQ·Artistic Quotient)을 직원 교육의 핵심으로 삼기도 한다.
③ 문화예술교육은 왜 필요한가?
먼저 ‘문화’와 ‘예술’을 따로 살펴보자. 문화는 예술보다 넓은 개념이다. 사회 구성원이 공유하는 삶의 방식과 가치관을 의미하는 행동 양식 또는 상징구조를 가리키며, 인간의 지적·정신적·창의적 활동으로 만들어낸 결과물까지 포함한다. 반면 예술은 아름다움을 구현하고 그러한 관점을 형성하기 위한 인간의 창조 활동을 뜻한다. 일반적으로 떠올리는 음악, 미술, 문학 작품이 그 사례다.
즉 ‘문화예술교육’은 예술을 중심으로 문화를 교육하자는 뜻으로 이해할 수 있다. 예술은 20세기 동안 개인의 내면을 바라보는 쪽으로 변화하는 데에 있어 가장 민감하게 반응했던 분야다. 이를 이해하려면 다양한 문화를 이해해야 하며 그 과정에서 감수성 계발에 긍정적인 영향을 줄 수도 있다. 문화예술교육은 사회 구성원들이 저마다의 가치를 공유하고 융합할 수 있는 능력을 키워주는 수단인 셈이다.
④ 예술과 디자인의 차이는?
흔히 예술은 내면의 주제를 밖으로 표현하는 것이고, 디자인은 외부의 문제를 제품으로 해결하는 것이라 말한다. 여기서 눈여겨볼 차이점은 디자인에는 ‘제품’이라는 매개체가 있다는 것이다. 즉 창의적 생각이 캔버스나 오브제를 통해 표현되는 데에 그치는지, 창의성이 발휘된 제품이 실질적 효과를 불러일으키는지가 포인트다. 달리 말하면 오직 심미적 아름다움만 전달하는가, 사용을 통한 심미적 아름다움을 만들어내는가에 초점을 맞추는 것이다.
⑤ 표현력과 창의성?
예술이라고 하면 그림을 그리고, 노래를 부르고, 춤을 추는 등 표현 방식을 떠올린다. 그러한 방식을 얼마나 능숙하게 다루는지를 가리키는 말이 표현력이다. 실제로 표현력을 높이는 일은 창의성 발휘에도 도움이 된다. 하지만 둘은 다른 관점에서 이해해야 한다. 표현력을 기르려면 기술적 요소와 관련된 노력이 필요하며 많은 예술가가 연습과 실패를 반복하는 이유도 그 때문이니 말이다.
미술에서의 표현의 역사
이번에는 예술, 특히 미술에서의 발상과 표현의 역사를 통해 현대사회가 지향하는 디자인적 창의를 짚어보고자 한다.
초기 미술은 철저한 기술의 영역이었다. 카메라의 원리를 처음 실험한 사람도 미술가였다는 것도 많이 알려진 사실이다. 해부 또한 인체를 사실적으로 표현하기 위해 시도됐다.
과거에는 그림이 가장 경쟁력 있는 미디어였다. 그림은 대중에 대한 선전의 수단이었던 것이다. 미술가는 그림의 목적에 따라 사실을 과장하거나 왜곡하는 등 연출을 해야 했다. 투시도법이나 물감색 개발에 대한 고민은 이로부터 비롯됐다고 볼 수도 있다. 귀족과 종교단체를 투자자로 끌어들이기 위한 마케팅도 했을 것이다. 마치 현재의 영화제작업체나 CG개발부처럼 말이다.
인간은 항상 무언가를 표현하려고 한다. 대항해 시대에 무역을 통해 들어온 신기한 물건을 영원히 자랑하고 싶어하는 귀족들의 요구에 따라 정물화가 발전한 데서 알 수 있듯, 인간은 욕구를 표출하고 시각화하며 간직하려는 의지가 강하다. 미술은 그것을 가능케 했던 것이다. 하물며 그림을 직접 그리는 미술가들은 어떠했을까?
표현을 통한 창의성 발현의 사례를 살펴보자. 아래 ‘한스 홀바인(Hans Holbein the Younger, 1497~1543)’의 그림은 단순한 사실적 표현으로 구성된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이 그림에는 인간이 표현을 통해 어떠한 이야기를 담아내는지가 잘 나타난다.
시각적 형상를 정확히 재현하기 위한 기술, 재현된 형상에 담긴 사상적 목표를 표현하려는 시도. 이것이 20세기 이전까지 미술에서 추구하는 창의성의 방향이었다.
새로운 변화와 시도, 현대미술
현대미술 하면 떠오르는 이미지는 바로 ‘어려움’이다. 이는 아마도 ‘마르셀 뒤샹(1887년~ 1968년)’의 ‘Fontaine(샘)’이라는 작품에서 시작됐을 것이다. 마르셀 뒤샹은 ‘액자 속의 그림’, ‘좌대(받침대)위의 조각’이라는 기존 예술 개념에 반기를 들고, 소변기를 거꾸로 눕힌 뒤 그 아래 ‘R.MUTT’라는 작가 서명까지 새긴 작품을 미술 공모전에 출품했다. 이 작품은 세상에서 가장 유명한 작품 중 하나가 됐으며 현대미술의 새로운 혁명의 시작을 알리는 작품으로까지 평가받고 있다.
이러한 장난스러운 작품에 왜 그만한 가치가 있는지 이해하기 어려울 것이다. 현대미술을 대하는 사람이라면 “에이~ 이런 건 나도 하겠다!”, “이게 무슨 예술이야, 이런 걸 왜 하지?”, “미술은 어려워….”라는 말을 하기 마련이다.
창의성은 “새롭고, 독창적이고, 유용한 것을 만들어 내는 능력”이다. 그렇다면 단순히 소변기를 눕혀놓은 것이 어째서 미술사에 중요한 창의적 작품이 됐을까? 이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뒤샹이 활동하던 시기, ‘다다이즘(dadaism)’의 시대였던 1910년대를 이해할 필요가 있다.
뒤샹이 작품을 낸 전시는 미국 독립 예술가 협회에서 주관한 행사로, 좀 더 자유로운 미술을 지향하기 위해 6달러의 참가비만 내면 누구나 출품할 수 있는 전시였다. 그러나 뒤샹의 작품을 본 관계자는 당황할 수밖에 없었으며 그것을 전시장 한구석에 그냥 내버려 둬버렸다.
전시가 끝나갈 무렵 뒤샹은 해당 작품에 대해 논평을 하기 시작했다. 엄연히 등록절차를 거친 작품을 전시회 측에서 거부하는 일에 문제를 제기한 것이다.
“작가는 작품을 선택했다. 작품을 작품으로 만드는 것은 무엇인가?”
뒤샹은 작품의 권위를 만들어 내는 미술계의 권위주의와 지배적인 시스템을 비판했다. 뒤샹은 자신의 정체성마저 혁신의 대상으로 삼아 세상에 메시지를 전달하려 했고 그를 위해 미술을 이용했다. 뒤샹의 메시지는 현대미술의 대표적인 사조인 ‘개념미술(conceptual art)’로 발전했다.
레디메이드(ready-made) 사상과 창의성
기성품을 ‘선택’하고 관람의 시선을 바꿔 ‘제시’하고 서명을 통해 예술가적 사상을 담는 행위. 이는 애초에 갖고 있던 기능과 용도와 무관하게 관계에서 오는 ‘창의적 의미’를 부여할 수 있다는 사상을 불어넣었다. 피카소(1881년~)가 아인슈타인의 상대성이론에 의해 4차원이라는 세계관을 표방했다면, 뒤샹의 예술 활동에 직접적인 영향을 준 개념은 프랑스의 수학자·물리학자·천문학자·과학사상가인 ‘앙리 푸앙카레(Henri Poincare)’였다.
앙리 푸앙카레는 삼체 문제(三體問題, three-body problem)에 대한 연구로 “사물 자체가 과학이 아니라 사물 사이의 관계에서만 과학에 도달할 수 있으며 이들 관계 외엔 인식할 수 있는 실제는 없다.”라는 주장했다. 뒤샹은 여기에 영향을 받아 소변기라는 무의미한 사물도 전시 공간과 대중과의 관계를 통해 새로운 의미를 도출해 낼 수 있다는 개념을 미술로 표현한 것이었다.
뒤샹은 아름다움은 대상의 속성에 있는 게 아니라, 그것이 전달되는 과정에서 나타난다는 것을 제시했다. 이는 미학에서 미를 바라보는 입장과 유사한데, 그처럼 관계 속에서 미를 찾는 것은 현대에서 요구하고 있는 ‘디자인적 사고’와도 유사하다고 볼 수 있다.
디자인적 사고, 디자인으로 생각하기
전통 미술에서 아름다움을 표현하는 발상과 표현방법 그리고 현대미술에서 강조하고 있는 관계에서의 아름다움까지. 이제 기업은 ‘디자인적 사고(Design Thinking)’를 필요로 하고 있다. ‘똑똑한 소비자’, ‘참여군중’, ‘집단지성’으로 진화하고 있는 21세기의 소비자에게 아름다움을 전달하려면 일반 창의성과는 다른 점을 분명히 인식해야 한다.
디자인이 외부의 문제를 ‘제품’으로 해결하는 것이듯 디자인적 사고는 기업이 소비자가 직면한 혹은 직면할 문제를 제품이나 서비스를 통해 해결하려는 노력에서 필요한 창의적 발상이라 할 수 있다. 물론 개인적으로도 말이다.
캐나다 토론토 대학의 로저 마틴(Roger Martin) 교수는 자신의 책 『디자인 씽킹(Design Thinking)』에서 디자인 씽킹이 직관적 사고나 분석적 사고의 한쪽이 아니라 이에 대해 통합적으로 접근하는 사고법이라고 했다. 그리고 디자인적 사고의 접근방법을 아래와 같이 비교해 제시하였다.
위와 같은 디자인적 사고의 최종 목적은 미래의 사용자와의 공감(Empathy)이다. 사용자가 무엇을 원하는지, 그들의 생활에 무엇이 필요한지, 또 그들이 어떤 점을 좋아하고 싫어하는지 등을 속속들이 듣고, 느끼고, 이해해야 하며, 이를 동력 삼아 혁신을 위한 디자인 씽킹이 시작된다. 따라서 디자인적 사고란 디자인씽킹의 단계에서도 첫 번째의 영감(Inspiration)에서 시작한다고 볼 수 있다.
즉 디자인 씽킹이란 인간 중심 디자인(human-centered design) 방법론이다. 이를 위해서는 공감을 바탕으로 문제의 맥락에 접근하는 능력, 예술과 기술을 결합해 통찰을 만들어 내는 창조 능력, 그리고 복잡성을 조화롭게 하는 문제 해결 능력이 필요하다.
마이클 슈라지(Michael Schrage)는 “혁신은 개인적인 편향이라기보다는 사회적이다. (Innovation is more social than personal)”이라 말했다. 뒤샹이 소변기를 통해 사회적 관계에서 아름다움을 찾을 수 있다는 것을 제시한 데서 알 수 있듯, 혁신은 사회적인 아름다움을 끌어내는 것이다. 이러한 점을 알고 일반적인 창의적 사고와 비즈니스를 위한 창의적 사고가 무엇이 다른지, 디자인 씽킹은 무엇인지 생각해보는 것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