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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케팅

어떤 초기 설정이 사용자의 선택을 받을까?

글. 서승환 딜라이트룸 섭스크립션 팀 프로덕트 오너 stephan@delightroom.com

기본값이라고도 불리는 ‘프리셋’은 응용 프로그램 내 초기 설정 또는 설정값을 의미한다. 새로운 기능을 출시할 때 기본값을 어떻게 할지에 대한 고민이 생기기 마련인데, 사용자 인터뷰나 리서치 자료 등을 통해 사용자가 가장 원할 만한 설정값을 프리셋으로 지정한다. 출시 이후 해당 프리셋에 익숙해지면 그대로 두는 경우도 있다.

그러나 사용자의 첫 행동을 지정하는 프리셋의 강력한 힘을 잊어서는 안 된다. 무엇을 프리셋으로 지정하느냐에 따라 목표로 삼는 지표가 크게 오르내릴 수 있다. 특히 신규 기능이 힘을 쓰지 못하고 있다는 느낌이 든다면 프리셋을 검토해 봐야 한다. 알라미의 최근 사례를 예로 들어 이 과정을 설명하고자 한다.

① 연 구독 출시

알라미의 프리미엄 기능 구독 상품은 ‘월 구독’ ‘연 구독’ 총 2가지다. 월 구독이 먼저 출시됐고, 뒤이어 연 구독이 나왔다. 알라미는 여러 가격 세트를 실험군으로 두고 실험을 진행했고, 가장 효과적인 가격 세트를 일괄 적용했다. 실제로 높은 개선의 폭으로 실험군들이 이겼다.

② 월 구독에 대한 재조명

알라미 사용자들은 연 구독만을 강조한 구매 화면으로 인해 월 구독의 존재를 인지하지 못했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알라미는 지난해 구매 화면을 개선했다.

이미 높은 연 구독률과 함께 중장기적으로 연 구독 지표를 지켜보는 상황이었기에, ‘월 구독을 부각할 필요가 있을까?’라는 고민이 있었다. 하지만 월 구독 존재가 기존 구매 화면에서 가려졌다고 판단해 개선 작업을 진행했고, 놀라운 지표 변화를 확인할 수 있었다.

그건 바로 연 구독의 큰 이탈 없이 월 구독률이 대폭 증가한 것이다. 즉 연 구독 예정 사용자에게 월 구독을 인지시켜 월 구독률을 높인 것이 아니라, 구독을 고려하지 않은 이탈 예정 사용자를 월 구독자로 추가한 것이다. 이는 월 구독의 힘을 재조명하는 계기가 됐다.

③ 연 구독 출시 1년의 도래

연 구독 출시의 효과는 단기적으로 판단할 수 없다. 구독 생애 주기가 1년에 달하기 때문에, 최소 1년 동안 지켜봐야 그 효과를 알 수 있다. 실질적 효과에 맞춰 연 구독의 절대적 가격이나 월 구독과의 상대적 조화를 조정해야 할 수도 있다.

알라미 연 구독 가격은 월 구독의 12개월 요금보다 30% 저렴하다. 연 구독은 가격 측면에서 월 구독의 8.4개월치에 해당하는 사용자 생애 가치(LTV)를 지닌 셈이다. 연 구독자 일부는 구독 이후 환불하기 때문에, 이를 고려하면 LTV는 더 낮아진다.

또한 연 구독은 사용자가 한 번에 부담하는 금액이 크기에, 무료 체험 전환율(Trial CVR)이나 무료 체험 이후 결제로의 전환율(T2P CVR)이 월 구독보다 낮다. 그렇다면 연 구독은 월 구독보다 얼마나 더 큰 LTV와 낮은 전환율을 보일까? 그래서 우리는 결과적으로 높은 매출액을 달성했을까?

1년이 되는 시점에 맞춰 LTV와 구독 전환율 각각을 추정치가 아닌 과거 데이터(Historical Data) 기반으로 산출해 비교했다. 이를 통해 알라미만의 소중한 데이터를 얻었다.

• 연 구독이 월 구독보다 N배 높은 LTV를 보이는 반면, M% 낮은 전환율을 보였다.
• N값은 추정치와 유사하게 나왔고, 확실히 연 구독 LTV가 우수했다.
• M값은 예상보다 낮았고, 사용자는 연 구독을 부담스러워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④ 프리셋에 대한 조명

우리는 등잔 밑에 늘 자리하던 ‘프리셋 = 연 구독’에 대한 의심을 갖게 됐다. 연 구독을 첫 출시할 때도 프리셋은 무조건 연 구독이었고, 이후 가격 테스트의 가격 세트 역시 기본 설정값은 전부 연 구독이었다.

만약 프리셋이 월 구독이었으면 어땠을까? 결제 이후의 구독 유지율은 후행 지표라, 프리셋이 무엇이냐에 따른 영향을 덜 받았을 것 같았다. LTV는 프리셋이 무엇인가에 상관없이 N값 그대로일 거라 예상했지만, 무료 체험 전환율은 프리셋에 엄청난 영향을 받을 것이라 확신했다. 연초에 구매 화면 개선 작업으로 월 구독이 전환율에서 갖는 힘을 새삼 확인하지 않았던가.

사용자가 요금 부담을 느끼는 연 구독을 프리셋으로 하는 것과 부담이 적은 월 구독을 프리셋으로 하는 것, 둘 중 어느 것이 더 높은 매출액을 이룰까? 구독 건수는 월 구독이 프리셋인 실험군에서 더 많이 나올 텐데, 연 구독 LTV가 N배 높다는 것까지 고려했을 때 어느 것이 매출액을 증가시킬지 쉽게 판단이 서지 않았다.

⑤ 위너 선정

각 대조군과 실험군에서 연 구독과 월 구독 건이 발생했다. 프리셋으로 설정한 대로 건수가 많았다. 즉 프리셋을 연 구독으로 설정하면 연 구독이 월 구독보다 건수가 많았고, 프리셋을 월 구독으로 하면 월 구독 건수가 연 구독보다 많았다.

건수 중 월 구독 건수는 그대로 월 구독 가격을 곱한다. 연 구독 건수는 연 구독 가격을 곱한 후, 12로 나눠 월 매출로 환산하고 여기에 N배를 곱한다. 월 구독보다 N배 더 구독이 유지될 것이기 때문이다. 이렇게 계산하면 대조군과 실험군 각각에서의 매출액이 최종적으로 산출된다.

⑥ 실험군에서의 30% 증대

프리셋이 월 구독인 실험군에서는 30% 내외의 매출 개선폭을 나타냈다. 안드로이드에서 개선율이 높았고, 국가별 서로 다른 개선폭을 보였다. 운영체제(OS) 및 국가에 따라 프리셋의 영향력과 연 구독 요금 부담의 정도가 달랐을 것이다.

승리의 짜릿함도 잠시, 아찔함이 동시에 밀려왔다. ‘프리셋의 강력한 힘을 놓치고 있는 다른 화면이 있는 건 아닐까?’ ‘알람 해제를 위한 미션·벨소리·볼륨 크기 등 과거에 특정 이유로 설정한 프리셋들이 과연 현재 최적값일까?’라는 의문이 들었다. 간단한 실험만으로 전반적인 리텐션(전체 사용자 중 일정 기간 내 앱을 재사용한 사람의 비율)을 크게 늘릴 수 있을 것 같았다. 프리셋 실험은 매출 개선 측면에서 유의미했을 뿐 아니라 여러 교훈을 줬다. 덕분에 다른 등잔 밑을 둘러볼 수도 있었다.

1년 전 연 구독·월 구독 가격 테스트의 승자는 대조군과 실험군 모두 프리셋이 연 구독인 상태에서의 가격 변수 실험이었다. 프리셋이 월 구독으로 바뀐 상태에서 최적의 가격 세트를 찾아낸다면, 이는 30% 이상의 매출 개선을 이룰지도 모른다. 이번 실험이 모든 제품 관리자에게 기존 프리셋을 살펴보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