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받는 브랜드를 만들기 위해 필요한 것
디테일의 지속성
산소 같은 녀석, 브랜드
마케터끼리 모이면 쉽게 답을 내리지 못하는 화두가 있다. 바로 브랜딩이다. 특히 스타트업같이 회사의 규모가 작거나 제품의 인지도가 낮은 상황에서 브랜딩을 위해 예산을 집행해야 하는가에 대한 토론이 벌어지면 의견은 팽팽하게 맞선다.
소규모의 회사나 인지도가 낮은 제품에 ‘브랜딩을 위한 비용’을 지불하는 것을 반대하는 이들의 논리는 명확하다. 흔히 그들이 생각하는 브랜딩이란 가시적 성과를 측정하기 힘들기 때문에 직접적이고 즉각적인 성과가 측정되는 업무에 치중하고 브랜딩은 차후에 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그들의 비유는 다음과 같다. 쌀 사고 반찬 사는 데 돈을 우선적으로 비용을 지불하고, 책을 사거나 자신을 가꾸는 데 드는 돈은 가급적 미뤄야 한다는 의견이다. 현실적이고 강력한 논리다. 그런데 이 비유가 과연 적절한 것일까?
이런 비유가 나오는 것은 애석하게도 브랜드와 브랜딩을 디자인 작업이라고만 생각하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서 ‘How to say’의 영역으로만 치부하는 것이다. 그러나 브랜드를 만드는 것은 ‘How to say’ 이전에 ‘What to say’를 만드는 일이다. 사람들에게 자신의 브랜드가 사랑 받을 이유를 발굴하는 작업 말이다. 이처럼 업에 대한 오해도 이러한 토론이 생기게 되는 이유 중에 하나일 것이다.
다시 본론으로 와서 그렇다면 정말 브랜딩은 효과가 없을까? 번지르르한 포장일 뿐일까? 효과가 없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측정할 수 있는 능력이 없는 것은 아닐까? 나는 공기 중의 산소 같은 존재가 브랜딩이라고 늘 주장한다. 눈에 보이진 않지만 없는 것은 아니며 만약 없다면 호흡할 수 없는 것처럼, 제대로 구축하지 않는다면 시장에서 오래 생존하기 어려운 것이 브랜딩이다.
언제나 그렇듯 각자의 주장을 피력하기 위해 틈을 파고들지만 쉽게 정답을 찾지 못하고 평행선을 달린다. 각각의 주장이 모두 설득력 있기 때문이다. 그러다가 대화를 정리해야 할 때가 오면 언제나 ‘브랜딩은 결국 대표의 의지에 따라’로 이야기를 마무리한다. 그렇다면 이 토론은 왜 쉽게 답을 찾지 못했을까? 답이 없는 문제일까? 아니면 우리가 무능한 마케터여서 그런 건가? 고민을 하다 보니 이런 생각이 들었다.
“어쩌면 각자가 경험하고 생각하는 브랜딩에 대한 정의가 다르기 때문은 아닐까?”
과연 브랜딩이란…?
그렇다면 대체 브랜딩은 무엇인가? 대략적인 느낌은 알겠는데 막상 말로 하기에는 애매한 그놈의 브랜딩. 우선 브랜딩 업무에 대해 모두가 공감할 만한 정의를 내리려면 먼저 ‘브랜드’의 정의에 대해서 합의해야 한다.
내가 애용하는 표현이 있다. 브랜드란 우리가 제품이나 서비스를 직접 또는 간접적으로 경험한 뒤 형성되는 다른 무엇과 구별되는 고유한 인상이다. 여기서 직·간접적 경험이라 하면 제품을 직접 사용해보는 것부터 광고를 보는 등 마케팅 의도가 담긴 것들을 온몸으로 받아들이는 것이라고 이해하면 쉽다. 그리고 이런 고유한 인상은 개인에게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다수의 사람들이 공감할 때 폭발력을 지닌다.
자연스럽게 브랜딩에 대한 정의도 가닥이 잡힌다. 결국 남들과 구별되는 고유한 인상을 남기는 바로 그 과정, 결과가 아닌 과정에 해당하는 모든 활동을 지칭한다. 앞에서 언급한 ‘직·간접적인 경험을 만들어내는 활동’인 것이다. 광고를 제작하거나 기업의 웹사이트를 설계하고, 심지어 브랜드의 SNS 계정을 운영하는 등 나열할 수 없을 정도로 광범위한 활동이다. 그렇다 보니 사람들에게 제품, 서비스, 회사 등 전달해야 할 브랜드를 일관성 있게 유지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유치하지만 극단적인 예로, 제품 홍보 영상을 제작할 때는 블랙과 골드를 활용해 고급스러운 톤앤매너를 유지하고 웹사이트에는 관심을 끌기 위해 비비드한 컬러와 사람들에게 유행하는 신조어를 남발한다면 결과는 뻔하다. ‘에이 설마’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이런 일들은 우리 주변에서 심심치 않게 나타난다. 그렇다면 이런 일들이 왜 벌어질까?
성공적인 브랜딩 = 디테일의 지속성
브랜드와 브랜딩에 대한 의미적인 합의를 이뤘으니, 이제 성공적인 브랜딩을 위해서 중요하게 챙겨야 할 것에 대해서 이야기해보자. 앞에서 브랜드를 만드는 일은 ‘어떻게 보일까’를 하기 전에 ‘무엇을 보여줘야 할까’란 질문에 대한 답을 찾는 것이라고 언급했다. 그렇다면 그 ‘무엇’을 찾았다면 끝인 것일까?
지극히 개인적인 견해지만 브랜딩의 성패를 좌우하는 것은 단순히 매력적인 인상을 심어주는 활동으로는 부족하다. 그것보다는 매력적인 인상을 얼마나 일관되게 유지해 나갈 수 있는지가 더 중요하다. 그리고 이러한 브랜드의 일관성을 유지하기 위해 가장 명확하고 직접적인 방법론을 하나 꼽으라면 주저하지 않고 ‘디테일의 지속성’이다.
물론 콘텐츠 자체의 완성도를 높이는 디테일도 중요하다. 꼼꼼하게 일하는 것은 창의적인 일을 하는 이들에게도 놓쳐서는 안 될 요소다. 창작의 디테일을 넘어서 자신들의 메시지를 끈질기게 끌고 갔을 때 브랜드의 힘은 강력해진다. 이런 지속성은 사소한 것으로 치부돼 눈에 잘 띄진 않지만 쌓이게 되면 결국 브랜드를 받치는 든든한 버팀목이 된다.
그러나 말이 쉽지 실무자 입장에서는 지루한 싸움이기에 디테일의 지속성을 달성하기란 그리 쉽지 않다. 시쳇말로 영혼까지 탈탈 털어도 될까 말까한 부분이다. 사석에서 디테일 지속성에 관해 사람들과 이야기할 때마다 언급하는 에피소드가 있다. 홍보실 막내 시절의 일이다. 그리고 이는 당시 대표이사였던 김상헌님과의 추억이기도 하다. (맞다, 당신이 생각하는 그 김상헌님이다. 요즘은 트레바리 클럽장으로 더 유명하신)
사장님, 갑자기 내게 메일을 보내다…
신입사원 때의 일이다. 홍보실의 주요 업무 중 하나가 뉴스 모니터링이다. 그중에서도 가장 귀찮은 일은 바로 실시간 모니터링. 일과시간 중에 자사나 경쟁사 등 관련 업계에 관한 모든 뉴스를 실시간으로 모니터링해서 보고하는 업무다. 어려운 업무는 아니지만 관련 기사를 빠뜨리지 않고 전부 읽고 스크랩해야 하는 일이다 보니 지리멸렬한 싸움의 연속이다. 기업마다 차이가 있지만 보통 4번 정도로 시간을 나눠서 작성하는데, 점심시간이 1시 30분에 끝나는 회사 특성상 오후 2시에 작성하는 모니터링 보고서는 숙달돼 있지 않으면 실수하기 쉽다, 실수하기 쉽다, 쉽다. 그렇다, 나는 실수를 했…다….
여느 때와 다름없이 엑셀에 기사 제목과 언론사 이름 등 필요한 항목을 스크랩하고 각각의 기사에 링크를 설정해 언제든 그 기사를 쉽게 찾아볼 수 있게 정리했다. 나름 디테일을 중요하게 여긴 터라 글꼴과 글자크기, 줄맞춤도 꼼꼼히 챙겼다. 그리고 깨진 링크가 없는지 체크하기 위해 수십 개의 링크 중 몇 개를 골라 잘 넘어가는지 확인하고 메일을 발송했다. 참고로 그 메일은 김상헌 대표를 비롯한 네이버의 모든 임원, 모니터링 확인이 필요한 파트장들에게 발송됐다. 그것도 하루 4번씩. 주기적으로 많은 양의 기사가 다양한 사람들에게 보내진다. 그렇다 보니 실시간 모니터링을 잘 보지 않는 사람도 있고, 보더라도 제목만 쓱 훑고 넘어가는 일이 다반사다. 스팸으로 처리한 이들도 있을 것이다…
그렇게 업무를 마치고 모니터링 하느라 못 마신 커피를 챙겨 자리에 앉았다. 정말이지 회사원의 업무는 메일로 시작해서 메일로 끝낸다는 게 무슨 말인지 아는 사람을 알 것이다. 한 손에는 머그컵을 들고 마우스를 깨작대면서 메일함을 열었다. 그런데 메일함에 떡하니 ‘김상헌(CEO)’이란 이름이 박혀 있는 거다.
살짝 싸한 느낌은 들었지만 전체 메일이겠거니 무심히 넘기려고 했다. 사실 이제 막 인턴에서 정규직으로 전환된 신입사원에게 대표이사가 메일을 쓸 리 없지 않은가. 무심히 넘기는 시선 끝에 메일 제목이 보이는데 순간 등에 식은땀이 쫙~ 정자세를 하고 제목을 봤더니 ‘Re: [14시] 실시간 모니터링’이라고 적혀 있었다.
사장님, 내게 답메일을 보내다. 왜?
불안한 마음에 메일을 열었다. 답장으로 온 메일에는 짧고 간단하게 적혀 있었다. 아직도 그 순간이 사진처럼 뇌리에 남아 있다.
“아래 기사 중에 링크가 열리지 않는 것이 하나 있어요.”
순간 멍-해졌다. ‘어쩌지? 이제 대표이사실로 불려가나? 짤리나? 설마 이걸로 자르진 않겠지만 혼나려나? 아니면 찌질이로 분류돼서 좌천되고 그러려나?’
지금 생각해 보면 어이없는 상상이지만, 그때만 해도 순진했던 신입사원은 심각하게 고민했더랬다. 처음 일을 배울 때 선배가 보내기 전에 모든 링크를 다 열어보라고 충고했는데 귀찮아서 제대로 확인하지 않고 대충한 결과가 이렇게 바로 나타날 줄이야. 불안한 마음에 눈은 초점을 잃었고 마우스는 방황하고 있었다. 여긴 어…디? 나는 누구…?
다행히 전체 답장이 아닌 내게만 보낸 메일이었다. 불행 중 다행, 만약 전체 답장이었으면… 상상도 하기 싫다. 만약 같은 팀 선배가 보낸 메일이라면 “앗! 죄송합니다! 얼른 수정해서 다시 보내겠습니다”라고 할 수 있겠지만 이런 경우엔 어떻게 해야 될지 감조차 잡히지 않았다. 그렇다고 이 사실을 선배에게 말할 수도 없었다. 두 배로 혼날 것 같은 느낌? 일단 조용히 링크를 수정해서 김상헌 대표에게 메일을 따로 보냈다. 메일 보내는 순간 숨을 참은 건 비밀…
그렇게 메일을 보내고 몇 시간을 불안에 떨었던 기억이 난다. 그나저나 그는 과연 이걸 어떻게 찾아냈을까? 지금 생각해 봐도 신기한 것이 하루에 4번이나 보내는 메일에, 메일당 평균 50개가 넘는 기사를 지금까지 다 클릭했다는 것인가? 하나를 찍었는데 우연히 링크가 깨졌다고는 볼 수 없는 것이, 그 기사는 특별히 회사에 대해 다룬 기사도 아니었고, 단순 보도자료가 나간 아웃링크 기사였다. 참고로 아웃링크 기사는 광고가 많아서 클릭을 잘 안 하게 된다.
이런저런 상황을 고려해 봤을 때 그가 이것을 찾아낼 수 있었던 것은 매번 내가 보내는 실시간 모니터링 자료를 꼼꼼하게 체크했기 때문으로밖에 해석이 안 된다. 어쩌다 우연한 한 번의 클릭이 아닌 그의 꾸준한 디테일이 나의 실수를 잡아낸 것이다. 그리고 그 일 이후로 모니터링을 ‘대충’하거나 ‘덜’하는 경향은 확실히 줄었다. 예방주사 한번 제대로 맞은 셈이다.
어찌 보면 실시간 모니터링은 홍보실 막내가 하는 허드렛일로 여겨질 수 있다. 나 역시 그렇게 생각했었고, 그래서 적당히 했을 지도 모른다. 그렇지만 알고 보면 이 업무는 홍보맨들에게는 기본기를 다지는 아주 효과적인 훈련이다. 내가 일하고 있는 산업의 흐름을 파악하는 데 도움이 되기 때문이다. 단순히 기사를 다양하게 많이 봐서만은 아니다. 포털에 잡히는 모든 기사를 스크랩하다 보면 이슈에 따라 기사의 수가 차이가 나는데, 결국 ‘여론이 어디에 무게중심을 두고 있는지’와 ‘어떻게 흘러갈 것인지’까지 파악하는 데 힌트가 되기도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당시에는 이게 그렇게 중요한 일인지, 도움이 되는 일인지 몰랐고, 그래서 적당히 하면 된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지금도 그 순간은 아찔하고 부끄러운 경험이다. 그리 어려운 일도 아닌데, 내가 할 일을 얕잡아본 것이다. 실수를 들킨 것보다 그런 마음을 먹은 것이 더 창피했다. 그래도 따끔했던 경험 덕분에 작은 업무에도 디테일을 지속적으로 추구한다면 좋은 무기가 된다는 것을 깨닫는 계기가 되기도 했다. 마치 영화 ‘취권’(1978)에서 사부가 황비홍(성룡)에게 물을 길어오게 하는 등 온갖 잡일을 시킨 것이 나중에 초식을 펼치는 데 밑거름이 된 것과 마찬가지다.
상헌님에게 그 날의 기억을 이야기했다
몇 해 전 따끔한 경험을 선사했던 상헌님을 독서모임에서 만났다. 맥주를 한잔한 김에 진실이 궁금해서 그날 이야기를 꺼냈다. 그는 살짝 당황했지만 충분히 어떤 상황이었는지 예상이 된다며 당연하다는 듯 말했다.
“당시 하루에 제가 처리해야 할 메일이 한 150개 정도 됐어요. 저한테 보낸다는 것은 그만큼 회사에서 중요한 일이라고 생각했기에 되도록 바로 답장을 했어요. 모니터링 같은 것들도 꼼꼼히 읽었고요. 사실 제가 판사 출신이잖아요. 워낙에 많은 양의 텍스트를 빨리 읽는 데 익숙해서 메일이 아무리 많아도 처리하는 게 크게 어렵진 않아요. 하하하 익숙하죠, 뭐~”
머쓱해하며 말을 이어간다.
“대신 그런 생각은 잠깐 했었어요. 전체 회신으로 보낼까, 아니면 개인 회신으로 보낼까 하는 고민 말이죠. 저도 당시 네이버로 옮긴 지 얼마 안 된 시기라 어떻게 하면 더 좋을지 잠깐 망설였어요. (웃으며) 살짝 부끄러운 이야기인데, 만약 전체 회신을 한다면 아직 절 잘 모르는 직원들에게 내가 부지런한 사람이라는 인상을 줄 수도 있겠단 생각을 잠깐 했었어요. 그런데 반대로 그러면 이 어린 친구가 사람들에게 얼마나 시달릴까 하는 생각도 들더군요. 그래서 결국 개인 회신을 했던 기억이 나요. 그러고는 잘한 일이라 생각해서 스스로 얼마나 흐뭇했는지~”
그날에 대한 이야기를 이렇게까지 솔직하게 듣게 될 줄은 몰랐다. 훗, 아저씨가 귀여워 보이는 일은 잘 없는데… 그는 의외로 상당히 귀엽다.
지금 돌이켜 보면 그때의 아찔한 실수가 이 바닥에서 지금까지 밥벌이를 하는 데 있어 도움이 됐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특히 이전까지만 해도 브랜딩이란 광고 커뮤니케이션 영역에 제한된 것이라 여겼다.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그런 것들. 그러나 그가 보여준 끈질김과 집요함은 회사가 추구하는 방향성과 그 가치를 담기 위한 디테일의 지속이었고, 이것이야말로 강력한 브랜딩을 구축하는 작업이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문득 스쳐지나갔다. 그리고 무엇보다 큰 깨달음이 있었다. 성공적인 브랜딩을 위해서 누군가는 피똥을 싸야 한다는 것을… 그리고 그게 나라는 것도.
세상 모든 마님들, 파이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