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랜딩, 선택 받을 이유를 발굴하는 것
How to make Lovemarks
당신은 ‘Number one’과 ‘Only one’ 중에 무엇을 선호하는가? 이 선택은 어디까지나 개인의 취향과 성향의 문제일 뿐 따로 정답은 없다. 본인의 생각을 먼저 정리한 후 이 글을 읽어 내려가면 재미있을 것이다.
# 마케터 본연의 철저한 개인지향점
이 질문은 결국 차별화에 관한 이야기다. 프로젝트의 진행방향을 결정하는 시작점이기도 하다. 그때마다 나는 늘 Only one을 선택한다. 이는 마케터로서 내 지향점이기도 한 동시에 삶의 자세이기도 하다.
얼핏 생각해보면 이 둘은 보는 관점에 따라 방향성이 다르다. 우선 Number one은 수없이 많은 경쟁에서 승리한 위너다. 흔히 매출 1위, 이용자수 1위, 선호도 1위, 지지율 1위 등으로 표현한다. 어마어마한 성과며 강력한 메시지다. 반면 Only one으로 인정받은 기업은 비록 지금은 Number one이 아닐 수도 있지만 사람들에게 자신의 존재 가치를 인정받은 존재다. 비록 1등은 아닐 수 있지만 존재 자체로 대체 불가다. 그 존재 가치는 그들이 사라졌을 때 역설적으로 더 크게 다가온다.
얼핏 봐도 Number one이 더 굳건해 보이고 안정적으로 느껴진다. 플렉스 그 자체이지 않은가? 그럼에도 내가 Only one을 더 선호하는 이유는 ‘양적 규모’보다 ‘존재감’에 더 많은 가중치를 부여하기 때문이다. 사실 마케터에게 있어 양적 규모와 존재감 모두 무시할 수 없는 요소인 동시에 마케터라면 추구해야 할 것들이지만 무엇을 우선하는가에 따라 일하는 방식이나 결과는 확연하게 달라진다. 앞서도 말했다시피 이는 우선순위의 문제지 옳고 그름의 문제는 아니다.
# How to make lovemarks
내가 양적 규모보다 존재감을 더 우선하는 이유는 하나다. 비록 단기간에 엄청난 매출을 거둘 수 있더라도 반짝 흥행으로 사라지는 브랜드가 아닌, 오랜 시간 사람들에게 회자되는 이른바 지속성과 생명력을 녹인 브랜드를 만들고 싶기 때문이다. 이는 흔히 말하는 ‘가늘고 길게’와는 조금 다르다. 오래도록 사람들에게 사랑 받기 위함이기 때문이다. 이를 위해 항상 염두에 두는 개념이 바로 ‘러브마크(lovemarks)’이다. 정말이지 애정결핍 마케터에게 어울리는 화두 아닌가?
러브마크는 영국의 광고대행사인 사치&사치의 CEO인 케빈 로버츠의 저서 《러브마크: 브랜드의 미래》(Lovemarks: The Future Beyond Brands, 2005)에 나오는 개념으로, 소비자를 유혹하고 사랑에 빠지게 만드는 전략이다. 얼핏 브랜드, 브랜딩이란 것을 언급할 때 나오는 어휘다. 그렇다면 과연 러브마크는 브랜드와 어떻게 다를까? 그 차이를 이해하기 쉽게 한 문장으로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브랜드는 기업이 만들지만 러브마크는 소비자가 만든다.
풀이하자면 소비자를 사로잡기 위해서는 그들의 머리(이성)가 아닌 가슴(감성)을 공략하라는 이야기다. 흔히 브랜드 전략을 수립할 때 마케터는 대부분 인간의 이성적인 요소 중심으로 진행한다. 사람의 머리를 공략하는 것이다. 그에 반해 케빈 로버츠는 러브마크를 만들기 위해서는 말 그대로 사랑과 같은 감성적 요소를 고려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정보보다 관계를 중요시하게 여기고, 품질에 대한 약속보다는 교감을 위해, 설명보다는 이야기를 만들어야 한다. 사실 이런 이야기들은 듣는 이에 따라서 전문성이 결여된 접근으로 보일 수 있다.
# 감성, 이성을 설득하다
그는 왜 이런 주장을 했을까? 일반적으로 광고물에는 사람을 설득하는 요소가 잔뜩 포함돼 있는데, 흔히 우리는 이러한 자극을 받을 때 인간은 스스로 이성적으로 판단한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광고물이 우리의 이성을 직접 자극하는 것이라 생각하지만 사실 그들은 우리의 감성을 먼저 자극한다. 그리고 그 자극된 감성이 다시 이성을 설득한다. 정확히 말해서 스스로를 합리화한다. 쉽게 말해서 우리는 우리도 모르는 사이에 이성적인 판단을 내리고 있다고 착각한다.
이는 연애와 비슷하다. 우리가 연애할 때 한 번쯤은 겪게 되는 상황을 떠올려보자. 어느 날 연인이 기대에 찬 얼굴로 당신에게 묻는다.
“자기는 내가 왜 좋아?”
순간 자신도 모르게 당황하는 당신은 말을 더듬고 만다.
“음… 나는 말야… 그러니까…”
선뜻 할 말이 떠오르지 않는다. 본능적으로 위기의식을 느낀 당신은 잠시 머뭇거리다가 급히 말을 잇는다.
“그러니까 말야. 내가 자기를 좋아하는 이유는… 일단 자기는 우선 착하고 남을 배려할 줄 알고 그리고… 음…”
그러나 이미 당신의 연인은 당신의 이야기를 더 이상 듣고 있지 않다. 그리고 이내 어색하고 차가운 공기만이 두 사람 사이를 흐른다. 어떤가? 뭔가 익숙하지 않은가? 여기서 중요한 포인트는, 그리고 답답한 포인트는 당신이 즉답을 못했다고 해서 연인을 사랑하지 않는 것은 아니라는 거다. 마음이 부족하지도 않다. 당신이 얼마나 억울한지 모두 잘 안다.
그럼 대체 왜 이런 일이 벌어지는 걸까? 대답이 늦어지는 이유는 우리가 연인을 사랑하는 이유(감성 영역)를 설명 또는 설득하기 위해 구체적인 언어(이성 영역)로 뽑아내는 데 시간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특별히 구체적인 이유가 있어서 연인을 사랑하는 게 아니라 사랑하기 때문에 이유가 있는 것이다. (억울한 일을 당한 적이 있다면 얼른 이 글을 당신의 연인에게 보여주자.)
# 창의적인 사람과 발굴하는 사람
이제 어느 정도 러브마크에 대한 개념이 잡혔다면 다음으로 러브마크는 어떻게 해야 만들 수 있는지에 대해 이야기해 보자. 주위에 흔히 브랜딩을 잘하는 사람(=러브마크를 잘 찍어내는 이)들의 공통점을 살펴보면 진득하게 자신의 이야기를 ‘발굴’하는 사람이었다. 번뜩이는 아이디어로 무장한, 우리가 흔히 말하는 창의적인 사람들이 아니었다.
독특하고 신선한 시선과 이를 뒷받침하는 테크닉은 매우 중요하다. 그러나 이것에만 의존하다 보면 초기에는 매력적으로 보일 수 있는 브랜드도 결국에는 들통나고 만다. 자신의 브랜드에서 ‘발굴’한 매력이 아니라면 말이다. 초반에 반짝하지만 롱런하지 못하는 브랜드들이 이런 경우에 속한다.
이미 많은 연구에서 증명된 것 중에, 매력적인 크리에이티브를 가진 광고의 경우 광고 태도(Attitude toward advertisement)에는 긍정적인 영향을 미치지만, 브랜드 태도(Attitude toward brand)나 구매 의도(Purchase intention) 형성에는 실패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
이는 제품이나 브랜드의 실제 가치와 광고 메시지 간의 거리가 멀 때 흔히 생긴다. 테크닉을 앞세운 영혼 없는 ‘좋은 말 대잔치’는 들통나기 십상이다. 이렇게 되지 않기 위해서는 나의 제품, 서비스, 브랜드 안에서 답을 찾아야 한다. 잘 먹히는, 유명한, 세련된 무엇을 가져오는 게 아니라 내가 가진 것에서 끄집어내야 한다.
이와 관련해 모기업의 기업 브랜딩 광고를 ‘안타까운 예시’로 항상 꼽는다. 사람이 미래라고 외치는 가슴 훈훈한 슬로건과 함께 평화로운 배경과 음악, 부드러운 성우의 음성, 엄친아/엄친딸 같은 모델들이 조화를 이루며 시리즈로 제작될 정도로 호평을 받았다. 상도 많이 받았다. 그러나 그 기업의 주력 계열사가 신입사원까지 희망퇴직 대상에 포함한 사실이 밝혀지면서 광고는 비웃음거리가 되어버렸다. 좋은 말 대잔치를 했지만 도리어 “사람이 기계다”, “명퇴가 미래다” 등과 같은 씁쓸한 패러디만 남겼다. 이 경우는 러브마크를 찍으려고 인주까지 묻혔지만, 안타깝게도 결국 실패하고 만 경우다. 광고 캠페인은 좋았지만 실제 기업이 이러한 가치를 이어가지 못했다. 이것만 봐도 기업이나 브랜드의 실상과 거리가 먼 크리에이티브만으로는 러브마크를 찍기 힘들다는 것을 알 수 있다.
# 러브마크는 발굴하는 것
이 기업 광고를 기획하고 제작한 해당 부서와 에이전시는 억울할 수도 있다. 자신들이 해고한 것이 아니지 않느냐 반문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따져보면 마냥 그렇지 만도 않다.
이게 무슨 말인고 하니, 이와 같은 사례를 만들지 않기 위해서는 ‘내가 보여주고 싶은 걸’ 고민하기 전에, ‘내가 무엇을 갖고 있는지 열심히 발굴’부터 해 봐야 한다는 말이다. 없는 것을 가져오는 게 아니라 자신의-프로덕트, 서비스, 브랜드 등 가지고 있는- 모습 안에서 이리저리 뜯어보기도 하고, 깊게 파보기도 하면서 자신만이 가진 선택 받을 이유를 찾아내는 노력이 필요하다. 번뜩이는 아이디어도 거기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이리 굴리고 저리 굴려서 단단한 알을 만들 수 있을 때 우리는 사람들을 만족시킬 수 있는 수준의 메시지 발굴이 가능하고 이때 비로소 러브마크를 만들 수 있게 된다.
그렇다면 러브마크를 만드는 데 있어서 가장 필요로 하는 스킬이 밝혀진다. 바로 ‘엉덩이의 힘’. 즉 농업적 근면성이 필요하다. 이 이야기는 누군가에겐 무식해 보일 꼰대 같을 수도 있겠다. 왠지 모르게 우아해 보이는 이 단어들, 브랜딩, 차별화, 러브마크는 안타깝게도 농업적 근면성과 떼려야 뗄 수 없는 단어들이다. 분명 더 많은 시간을 투자하고, 더 많이 고민하고, 더 깊게 발굴할 때, 더 좋은 결과물이 나온다.
조심스럽게 야근을 강요하는 것으로 보일 수도 있는데, 이는 반은 맞고 반은 틀린 이야기다. 무조건 책상 앞에만 오래 앉아 있는다고 해서 잘된다는 이야기는 아니기 때문이다. 여기에는 물리적 공간보다 심리적 공간이 중요하다. 사무실이 아니더라도 샤워를 하면서도, 출근하며 버스 카드를 찍으면서도, 집에서 텔레비전을 보면서도, 잠들기 전에도 계속 발굴할 수 있다.
진짜 이렇게밖에 말 못하는 사람은 되고 싶지 않았지만, 결국 남들보다 더 많이 고민할수록 더 잘할 수 있는 가능성에 가까워진다는 것은 내게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더라. 나도 안다, 지금 내가 하는 이 말이 누군가에게는 엄청 불편하고 답답한 꼰대나 할 법한 이야기라는 것을. 그렇다면 이왕 말을 꺼낸 김에 다음 연재에는 지금보다 더 꼰대 같은 소릴 해보려 한다. 엉덩이의 힘에 대해서, 그 힘이 어떤 것을 만들어 낼 수 있는지 이야기할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