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대라 더 끌린다… 유행과 반대되는 콘텐츠의 향연
반대의 법칙이 통한 소식좌·지구오락실·롱블랙
<천국의 계단> <발리에서 생긴 일> <파리의 연인> 등 2000년대를 강타한 인기 드라마엔 공통점이 있다. 바로 태어날 때부터 이미 부자였던 재벌 2세 남자가 집안 형편은 어렵지만 옷이 많은(?) 서민 여자와 사랑에 빠진다는 점이다. 정반대의 삶을 살아온 두 남녀는 성격조차 다르다. 돈 걱정 없이 ‘오냐오냐’ 자란 재벌 2세는 냉소적이고, 내세울 건 없어도 씩씩한 서민 여자는 낙천적이다. 신데렐라 스토리로 치부되지만 어쩌면 서로 반대라 끌렸을지도 모른다. 실제로 반대 성향인 이성에게 더 매력을 느끼는 경우가 있으니까!
이런 반대의 법칙은 요즘 콘텐츠에서도 사용되고 있다. 트렌드와 반대되는 대표적 콘텐츠로 ‘소식좌’ ‘지구오락실’ ‘롱블랙’이 꼽힌다. 이들은 기존 유행에 싫증난 사람들로부터 신박하다는 반응을 얻으며 승승장구하고 있다.
보기만 해도 식욕 떨어져···
맛없게 먹는 ‘소식좌’
한국인처럼 먹는 것에 진심인 민족이 있을까? 한 식재료가 인기를 얻으면 과자부터 빵, 음료, 아이스크림까지 쏟아져 나온다. 심지어 먹방(먹는 방송)을 보며 남이 맛있게 먹는 것까지 시청한다. ‘먹기만 하는 걸 왜 볼까?’ 싶다가도 막상 보면 음식 비주얼과 복스럽게 먹는 소리에 희열을 느끼게 된다.
그런데 최근 먹방계는 새로운 변화를 맞았다. 맛있게 먹는 먹방이 아닌 ‘맛없게 먹는’ 먹방이 등장했다. 식탐이 없는 소식좌(적게 먹는 사람)의 식사는 신선한 충격 그 자체였다. 대식가에 맞서 반란을 일으킨 소식좌 1호는 방송인 박소현과 가수 산다라박이다. 박소현은 웹 예능 <밥맛없는 언니들>에서 남들이라면 식사 후 디저트로 먹는 커피음료를 아침 겸 점심 식사로 먹고, 산다라박은 고기 여섯 점으로 식사를 끝내는 경이로운 모습을 보였다.
또한 비빔밥 한 그릇을 삼시 세끼로 먹는 개그우먼 안영미의 먹방 리스트엔 조회 수 100만을 넘긴 영상이 3개나 된다. 많은 이의 식욕을 삭제한 소식좌들은 식품업계에도 영향력을 발휘했다. 식품업계는 소식 트렌드에 맞춰 소용량 제품을 출시하고 있다. 호불호 갈린다는 의견이 있지만, 호기심 가득한 MZ세대 사이에서 반응이 좋다. 특히 안영미가 먹방에서 먹은 디저트 브랜드 ‘누데이크’의 초소형 크루아상은 간에 기별도 안 가게 생겼지만, 평일 퇴근 시간 전에 매진될 정도로 인기가 많다.
출연진 놀리던 나영석이 기 빨리는 방송
<뿅뿅 지구오락실>
셀 수 없이 많은 히트작을 만든 ‘예능 천재’ 나영석 PD는 출연진을 들었다 놨다 한다. <1박 2일>에선 출연진이 야외 취침하도록 계략을 꾸몄고, <꽃보다 할배>에선 ‘츤데레’ 이서진을 매니저로 부려먹고, <신서유기>에선 난이도 높은 퀴즈로 출연진의 식사를 빼앗았다.
개성 강한 출연진한테 전혀 밀리지 않던 그는 <뿅뿅 지구오락실>에선 반대의 모습을 보인다. MZ세대 출연진(이은지, 미미, 이영지, 안유진)을 놀리려다 오히려 놀림을 당하는 입장이 된 것이다. 어느새 ‘영석이형’이 된 나PD가 1초도 입을 쉬지 않는 그들 때문에 정신이 혼미해진 모습을 보고 있자니, 왠지 모르게 고소하고 통쾌하다.
나PD는 출연진 모두에게 쩔쩔매지만, 특히 막내 안유진 앞에서 한없이 작아진다. 광기 어린 안광을 가진 그는 게임 규칙을 아무렇지 않게 무시하고 제작진의 실수를 당당히 지적하며, 매 순간 나PD를 당황시킨다. 나PD는 그의 뛰어난 예능감에 대해 “안유진 본인도 통제가 안 되는 느낌”이라고 언급했다. 역시 예능 천재가 발굴한 신흥 ‘예능돌’ 답다.
24시간 내 읽지 않으면 사라지는
뉴스레터 ‘롱블랙’
뉴스레터는 바쁜 직장인에게 마치 엑셀 단축키 같은 존재다. 구독만 하면 시사, 마케팅, 트렌드 등 분야별 콘텐츠를 따로 검색할 필요 없이 볼 수 있다. 정기적으로 메일로 전달돼 편리하기도 하다. 이런 장점 때문에 여러 뉴스레터를 구독하는 사람이 많은데, 여기엔 함정이 숨어있다. 무제한으로 접할 수 있다 보니, 기사를 저장만 해놓고 제대로 읽지 않는 것이다. 언제든 읽을 수 있는 건 지금 읽지 않아도 된다는 것과 같다.
매일 하나의 콘텐츠만 제공하는 롱블랙의 구독 서비스엔 기존 뉴스레터가 지닌 여유로움은 없다. 9,000~1만 자 정도의 깊이 숙성된 콘텐츠는 24시간 후에 사라진다. 하루 안에 읽지 않으면 다음 날엔 볼 수 없고, 구독자라도 지난 콘텐츠는 돈을 내고 봐야 한다. 돈 내고 마음대로 보지 못하는 ‘제한적’ 서비스의 효과는 엄청났다. 미루지 않고 바로 콘텐츠를 봐야 하는 환경이 조성돼 자연스럽게 매일 읽는 습관을 만들었다.
2021년 9월에 론칭한 롱블랙은 1년 만에 월간활성사용자(MAU) 13만명을 기록했다. 역발상 전략으로 강제성을 부여한 구독 서비스가 통한 셈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