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케터의 오답노트 4. 스타트업 마케터의 3단계 성장 과정
콘텐츠부터 퍼포먼스, IMC까지… 과연 넥스트 레벨은?
2014년 와디즈의 첫 인턴으로 입사해 지금까지 약 6년간 회사가 성장하는 과정을 함께 해왔다. 회사의 성장을 지켜보고 또 기여하면서 나 역시 마케터로서 성장했다. 돌아보면 콘텐츠 기획 및 제작부터 IMC 캠페인까지, 성장하는 회사에서 할 수 있는 모든 마케팅 액션을 경험했다. 그간의 성장 과정을 정리하니 크게 3단계로 나눌 수 있었다.
『캐즘 마케팅』이란 책에서 하나의 기술이 대중에게 받아들여지기까지의 과정을 나타낸 ‘기술 수용 주기’ 단계가 등장한다. 하나의 새로운 기술과 시장은 ‘Innovator(혁신 수용자)’를 시작으로 ‘Early Adopter’를 거쳐 본격적인 대중 시장에 진입한다. 이후 ‘Early Majority’와 ‘Late Majority’를 거쳐 서서히 ‘Laggard(회의주의자, 말기 수용자)’를 맞이한다.
1. Innovator
Condition
이 단계의 컨디션은 지금과 확연히 차이가 난다. 와디즈는 물론이고 크라우드 펀딩이라는 개념조차 생소하던 시기였다. 실제로 한 달에 펀딩 프로젝트 10개가 채 열리지 않았다. 마케팅 측면에서 보면 인스타그램과 유튜브가 지금처럼 활발하지 않았고, 대신 페이스북 카드 뉴스 콘텐츠와 네이버 블로그 SEO가 강세였다.
Challenge
당시 스물셋 인턴이었던 내가 가진 능력은 단 2개였다. ‘콘텐츠 제작 능력’과 ‘지구력’. 나는 이 두 능력을 합쳐 와디즈 공식 블로그에 적게는 하루 1개, 많게는 하루 3개까지 게시물을 올렸다. 당시 네이버 메인 섹션에는 [공익/나눔] 주제의 판이 있었고, 이 판에 블로그 글을 올리는 걸 목표로 공장에서 찍어내다시피 글을 썼다. 와디즈에 올라온 프로젝트만으로는 소재가 부족해 당시 이슈나 트렌드를 펀딩에 엮거나, 킥스타트ㆍ인디고고 같은 해외 펀딩 플랫폼에서 화제 되고 있는 프로젝트를 공유하는 등의 콘텐츠를 제작했다.
그 결과, 네이버 메인에 블로그 글이 게재됐다. 담당자가 해당 게시판의 주제와 우리 콘텐츠의 결이 잘 맞다고 생각했는지 이후 매주 1,2회 정도 메인에 올라가며 조회 수가 폭발적으로 증가했다. 블로그 글을 보고 펀딩에 참여하는 사람도 있었다. 처음으로 마케팅에서 콘텐츠의 힘을 느낀 순간이었다.
Insight 1. 크리에이티브 20 : 일관성 80
특히 초기 스타트업의 경우, 마케팅에 활용할 수 있는 예산이 한정적이므로 크리에이티브에 힘을 싣기 어렵다. 그렇다고 메시지를 효과적이고 효율적으로 전달할 수 있는 크리에이티브에 대한 고민을 포기해야 한다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브랜드 메시지를 얼마나 꾸준히 일관성 있게 전하느냐가 더욱 중요하다. 또한 이 단계에서 브랜드 메시지에 공감해 주는 사람을 만나는 것은 정말 행운이다. 이들과 오랫동안 함께 갈 수 있는 방법을 지속적으로 고민해야 한다.
Insight 2. 현재 안에서 답을 찾자
현 상황에서 내가 가진 능력으로 최선의 성과를 만들어낼 방법을 계속 고민하는 자에게만 정답이 주어진다. 시도하지 않고 현재를 비관하며 몽상만 펼친다면 얻을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2. Early Adopter
Condition
복학 후 재입사하고 돌아온 회사는 더 성장해 있었다. 마케팅팀이 별도로 생겨 퍼포먼스 마케팅을 하고 있었다. 뉴스레터, 카카오 옐로 아이디 등의 CRM 매체도 활용하기 시작했다. 시장에서는 페이스북과 네이버 중심이던 마케팅 채널이 서서히 인스타그램과 유튜브로 이동하는 추세였다. 더욱 다양한 시도를 할 수 있는 환경이 구축된 것이다.
Challenge 1
블로그 콘텐츠만 집중했던 인턴 때와 달리 뉴스레터, 문자, 옐로 아이디 같은 CRM 매체와 소셜미디어 채널 중심의 콘텐츠를 제작해야 하는 시기였다. 예전과 확연히 달라진 분위기가 조금 낯설었고, 당시 마케팅 팀원 대부분이 회사에 입사한 지 오래되지 않은 분들이었기 때문에 브랜드 본질을 제대로 잡고 마케팅해야 겠다고 생각했다. 무엇보다 나 스스로가 펀딩을 내부인의 시선에서만 바라봤기 때문에 객관적인 대중의 시선에서 콘텐츠를 제작해야 함을 인지했다.
먼저 브랜드 본질을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 당시 펀딩 프로젝트에 달린 댓글과 소셜 미디어채널에 올라온 펀딩 후기를 모두 모아 인쇄했다. 몇 백 페이지의 종이를 책상에 올려두고 형광펜으로 죽죽 그어가며 고객이 플랫폼과 메이커를 바라보는 시선과 펀딩하는 이유를 분석했다. 파고들수록 유형이 나뉘기 시작했고 화이트보드 하나를 끌어와 포스트잇으로 시각화했다.
이렇게 일주일간 댓글을 읽고 분석한 끝에 <와디즈, 우리의 본질>이라는 문서를 만들었다. 대표님께 보고하고 팀에도 공유했다. 무엇보다 이 과정을 거치며 내가 이 팀에서 무슨 일을 해야 할지 명확하게 그릴 수 있었다. 이때 만든 자료는 아직도 간혹 열어본다. 놀랍게도 지금의 방향성과 크게 다르지 않다.
위 문서를 바탕으로 카카오 옐로 아이디, 뉴스레터를 리뉴얼하고 인스타그램, 페이스북 콘텐츠를 제작했다. <좋아하는 것에 투자하세요>라는 슬로건의 유튜브 캠페인을 진행했으며, <새로운 시대에 투자하는 사람들>이라는 책을 출판하기도 했다. 이렇게 다양한 방식으로 커뮤니케이션하는 와중 새로운 챌린지를 맞닥뜨렸다.
Challenge 2
바로 ‘펀딩 프로젝트 오픈 수를 늘려라!’. 펀딩을 오픈할 메이커를 모집해야 하는 상황에서 콘텐츠와 퍼포먼스 마케팅을 동시에 해내야 했다. 괜찮은 광고가 보이면 닥치는 대로 캡처했고, 샤워하다가도 카피가 떠오르면 휴대폰 메모장을 켜 입력했다. 이렇게 광고 소재를 제작하고 구글과 페이스북 매체를 운영했다.
이것만으로는 부족했다. 메이커 마케팅도 나름 B2B 마케팅이기 때문에 하나의 성과를 만들기까지 퍼널이 너무 길었다. 때문에 뉴스레터 구독하기, 스쿨 신청하기, 성공 노하우 다운로드하기처럼 미들 퍼널을 잘 세팅하고 지속적인 유입을 유도하는 장치가 필요했다. 이런 장치가 유지되려면 역시나 콘텐츠가 필요했다.
메이커에게 도움 될 만한 매력적인 정보를 제공하기 위해 일주일에 한 번씩 <와디 파이>라는 성공 메이커 인터뷰 콘텐츠를 만들었고, 업계에서 인사이트가 뛰어난 분들을 따로 초청해 영상 인터뷰를 진행했다. 리소스가 부족했기 때문에 영상편집을 독학해 인터뷰, 촬영, 편집, 배포를 모두 도맡았다.
다음은 퍼널 분석이었다. 중간 퍼널들을 세팅한 후 GA로 예비 메이커가 사이트에 유입-전환되는 과정에서 가장 많은 이탈 포인트를 찾았다. 가장 많은 유입과 이탈이 일어난 곳은 펀딩 오픈 신청 페이지였다. 메이커가 펀딩의 베네핏을 제대로 인지하고, 오픈 과정을 쉽게 느낄 수 있도록 페이지를 리뉴얼했다.
연말이 찾아왔다. 연초는 누구나 무언가를 시작하고 싶은 타이밍이기에 이때를 잘 노려야했다. 단순 프로모션 그 이상의 무언가를 고민했다. 매년 연말연초가 되면 각종 기관에서 트렌드 리포트를 발표하곤 하는데 펀딩 플랫폼이야말로 트렌드를 가장 먼저 발견할 수 있는 곳이라 생각했다. 그래서 일 년 치 프로젝트 리스트를 뽑고 유형을 정리해 키워드를 뽑았다. 거기에 살을 입혀 <펀딩 트렌드 리포트>를 완성했다. 반응이 뜨거웠다. 특히 기자분들이 긍정적으로 봐주셨다. 덕분에 여러 매체를 통해 리포트가 퍼져나갔다. 펀딩 오픈 수는 팀 합류 전보다 63% 증가했고, 슬라이드쉐어에서만 3만 회가 넘는 조회 수를 기록했다.
Insight 1. 고객 목소리에 귀 기울이자.
이 시기에 만들었던 와디즈의 본질은 여전히 길잡이 역할을 한다. 그때의 초심, 그때의 희열, 그때의 노력을 떠올리게 하는 건 물론이고 브랜드가 막 성장한 시기부터 함께한 고객이 어떤 분들인지 알려준다. 정답을 모를 때는 고객 목소리를 탐험하다 보면 길이 보인다.
Insight 2. 뿌린 대로 거둔다.
당시 ‘내가 너무 비슷한 일만 하는 게 아닐까? 늘 만들던 콘텐츠를 만들고, 늘 쓰던 카피를 쓰고, 늘 보내던 뉴스레터를 보내는 게 아닐까?’ 불안했던 적이 있다. 그때 “언젠가 이렇게 한 일들이 도움 될 때가 올 거야”라는 이야기를 들었다. 단순한 위로의 말이라고 생각했지만 실제로 그때가 찾아왔다. 더 많은 일을 한정된 시간 안에 해내야 했을 때, 사소하다고만 느꼈던 반복적인 업무가 빛을 발했다. 작디작은 씨앗을 뿌려야 커다란 나무가 자란다. 최선을 다한 일은 반드시 도움된다.
3. EARLY MAJORITY
Condition
회사는 지속적인 성장 곡선을 그렸다. 브랜드팀 생기면서 나는 마케팅팀에서 브랜드팀으로 이동했다. TV CF를 비롯한 다채로운 경력을 가진, 실력 있는 동료가 합류했다. 대중에게 브랜드와 펀딩을 임팩트 있게 알릴 차례였다.
Challenge
모든 업무가 마찬가지지만 IMC 캠페인은 준비할 때부터 목표 기간이 끝날 때까지 챌린지의 연속이었다. 신규 회원 가입률과 앱 다운로드 수 증가라는 KPI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매일매일 싸우다시피 일했다. 모델 선정부터 광고 제작과 촬영은 설렘만 가득할 것이라는 기대와 달리 긴장의 연속이었다.
캠페인 론칭 후에는 프로모션과의 싸움이었다. 설상가상으로 코로나19가 덮쳤다. 한 치 앞을 가늠하기 어려운 환경 속 매달 새로운 프로모션을 론칭하기 위해 아이디어를 짜내고, 로봇처럼 기획안을 쓰고, 디자인팀ㆍ개발팀과 함께 촉박한 일정을 요리조리 끼워 맞췄다.
퍼포먼스 마케터 없이 광고를 운영해야 했기 때문에 데이터도 실시간으로 파악해야 했다. CPA가 들썩일 때마다 우리도 몸을 들썩거리며 공장처럼 광고 소재를 찍어내고 엑셀 시트를 두드리며 그때그때 당면한 문제를 헤쳐나갔다. 돌아보면 정말 전투에 임하는 마음으로 일했다. 덕분에 우리는 목표를 초과 달성하고 연말에는 퍼포먼스 마케팅으로 상도 받았다 (이 내용은 <퍼포먼스 마케팅 정복을 위한 4단계 전략>에서 더 자세히 다뤘다).
Insight 1. WHY를 잊지 말자.
WHY는 길이다. 아무도 ‘왜 이 일을 해야 하는지’ 제대로 묻지 않으면 산으로 갈 수밖에 없다는 걸 뼈저리게 느꼈다. 구성원의 공감 속에서 합의된 목표를 가지고 함께 달려 나가야 더 강하고 더 빠르게 치고 나갈 수 있다.
Insight 2. 유저의 경험을 생각하자.
유저가 우리 서비스를 사용하는 순간부터 이탈하는 순간까지 모든 여정에서 느낀 경험과 마케팅 메시지가 상반되면 무용지물이다. 마케팅에서 전하는 브랜드 가치와 실제로 유저가 경험하는 가치를 일치시켜야 고객이 다시 돌아온다.
시장은 계속, 빠르게 변한다.
이렇게 지난 6년을 돌아보니 신기했다. 회사의 성장을 함께 한 덕분에 나도 많이 성장할 수 있었다. 동시에 시장은 계속 변화한다는 것도 체감했다.
영원할 줄 알았던 페이스북이 인스타그램과 유튜브에게 자리를 빼앗기고, 개인 크리에이터의 영향력이 점점 거세져 난공불락처럼 보였던 주류 매체의 아성을 깨고 있다. 코로나19라는 예기치 못했던 사건으로 우리 삶은 180도 바뀌었고, 이는 디지털 세계의 문을 더욱 크게 열어젖혔다.
이러한 일련의 변화들을 나열하니 앞으로 찾아올 변화가 어떤 모습일지 궁금해진다. 앞으로 또 어떤 위기와 기회를 만나게 될까? 위기에 무너지지 않으려면, 기회를 제대로 잡으려면 어떤 노력을 해야 할까? 새로운 질문이 떠오른다.
계속 나아가기 위해
최근 경험 기획이라는 새로운 업무를 맡았다. 그렇다. 또 다른 챌린지다. 이 업무의 궁극적인 목표가 있다면, 브랜드 메시지를 더 많은 사람에게 제대로 알리는 것이다. 앞서 언급했듯 제대로 알리기 위해서는 마케팅 메시지로 현혹하는 데 그치는 게 아니라 유저가 모든 여정에서 일관성 있는 브랜드 가치를 느낄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여전히 배워야 할 것이 많다. 이 글에는 나름 성공적인 경험만 늘어놔서 그렇지 숱한 실패를 겪었다. 최근에도 뼈아픈 실패로 슬럼프가 오기도 했다. 다행히도 주변에 좋은 본보기가 돼주는 동료가 많다. 매일 자극을 얻고 새롭게 배운다.
‘나아간다’는 말을 좋아한다. 이를테면 ‘하다’를 ‘해나간다’로, ‘배운다’를 ‘배워나간다’처럼 쓰곤 한다. 나아간다에는 Go와 Better의 의미가 모두 담겨있는 듯하다. 그냥 가는 게 아니라 더 나은 방식을 고민하며 앞으로 가는 것. 나는 앞으로도 계속 나아갈 것이다. 메신저의 역할을 다하기 위해 함께 나아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