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자인이란… “디자이너의 색깔로 니즈를 풀어가는 것”
박기현 인볼드 스튜디오 디자이너 인터뷰
긴장한 모습이 역력한 아이, 자심감에 찬 아이, 객석의 부모님을 찾는 아이까지. 공연장 속 아이들의 천진한 모습을 표현한 이 포스터는 1인 스튜디오 ‘스튜디오 인볼드(Inbolde)’의 박기현 디자이너의 작품이다. 해당 포스터는 2023년 11월 충무아트센터에서 열렸던 ‘꿈의 오케스트라 중구 정기연주회’라는 중구 내 초·중등 학생으로 이루어진 오케스트라 단원의 공연을 홍보하기 위해 제작됐는데, 아이들의 표정을 잘 살린 것은 물론, 자세히 들여다보면 아이들의 눈, 코, 입 하나하나가 모두 오선보 위의 기호로 구성된 것을 알 수 있다.
박기현 디자이너의 디자인이 가진 독특한 색깔은 같은 공연의 지난 2022년 포스터를 보면 확연하게 느낄 수 있다. 그는 매번 기존과는 다른 독특한 디자인을 선보이고, 그 결과 인볼드의 아카이빙은 쉽게 찾아볼 수 없었던 스타일로 가득하다.
스튜디오 인볼드의 문을 연 이래로 이어온 수 많은 작업 모두가 독특한 색깔로 귀결되는, 고유한 색깔을 지닌 박기현 디자이너를 지난 12월 영등포의 한 공유 서재에서 만났다.
주어진 일에만 만족할 수 없던 학생, 스튜디오를 만들다
안녀하세요, 반갑습니다.
안녕하세요. 스튜디오 인볼드의 박기현 디자이너입니다.
1인 스튜디오를 운영하고 있습니다. 처음부터 스튜디오 운영을 목표로 했나요?
시각 디자인을 전공했는데, 학생 때부터 회사보다는 개인으로 작업하고 싶은 욕심이 있었어요. 주어진 일에 만족을 못하고 늘 더 욕심을 내는 학생이었거든요.
과제만 열심히 하지는 않았겠네요.
전시처럼 참여할 수 있는 건 다 열심히 했던 것 같아요. 당시에 ‘르데뷰(Ledebut)’라고, 학생들이 모여서 만든 패션 잡지가 있었어요. 해당 잡지 발행에 편집 디자인으로 참가하기도 했죠.
예전부터 작업에 대한 열의가 컸던 것 같네요. 그럼 졸업 후 바로 창업한 건가요?
그렇지는 않아요. 에이전시에서 짧게 3개월, 이후 다른 회사에서 9개월 정도 근무하긴 했어요.
회사에서 먼저 일했다는 건 의외네요. 퇴사를 결심한 계기는 무엇이었나요?
회사를 다니면서 퇴근 후에는 외주 일을 병행했는데, 외주 일에 대한 결과가 좋았어요. 계속 좋은 결과를 얻게 되니까 스튜디오를 차려서 해볼 수 있겠다는 확신을 얻을 수 있었고요.
스튜디오의 문을 열었던 게 2019년 9월이에요. 바로 직후에 팬데믹이 시작됐네요.
맞아요. 펜데믹으로 많이 어려웠어요. 처음 스튜디오를 시작하고는 일이 꽤 있었는데, 팬데믹이 시작되면서 많이 줄어버렸죠. 대부분의 작업이 행사 위주였어서 타격이 있을 수 밖에 없었어요.
팬데믹을 이겨낸 계기가 따로 있었나요?
KBS 교향악단의 작업을 맡게 된 게 전환점이었어요. 큰 프로젝트기도 했고, 해당 프로젝트에서 만들었던 작업물의 결과가 좋았거든요.
어떤 작업물이었나요?
KBS 교향악단의 769회 정기연주회 ‘전람회의 그림’ 프로젝트였어요. 보통 연주회를 홍보할 때는 연주회의 타이틀을 전면에 내세우는 경우가 많아요. 그런데 이 작업물은 지휘자를 전면에 내세웠어요. ‘정명훈 지휘자’라는 유명한 분이 지휘를 맡았거든요. 정명훈이라는 이름을 타이포그래피적으로 디자인해서 타이틀로 만들었죠.
인볼드의 색깔을 인정받기까지
일반적인 디자인은 아닌 것 같은데, 클라이언트의 반대는 없었나요?
다행히도 좋아해주셨어요. 사실 이 프로젝트가 KBS 교향악단과 처음 작업했던 건 아니었어요. 이전에 두 번 정도 함께 작업했던 경험이 있었죠.
그때도 순탄하게 하고 싶은 디자인을 할 수 있었나요?
처음 맡았던 프로젝트는 KBS 교향악단 750회 정기연주회 ‘겨울날의 환상’이었어요. 당시에는 제 스타일을 좀 더 많이 녹여낸 시안이 아닌, 클라이언트의 의도에 부합하는 시안이 채택됐어요. 아무래도 클라이언트의 입장에서 기존과 다른 새로운 디자인을 선택한다는 건 모험이었을 테니까요.
두 번째도 그럼 원하는 디자인이 선택되지 못했나요?
아뇨. 두 번째는 751회 정기연주회였던 ‘거인의 태양’ 프로젝트였는데, 제가 원하는 디자인으로 진행됐어요. 저에 대한 믿음이 좀 생겼다고 할까요? 다행히도 이 작업이 신문에도 실리고, 반응이 좋았어요.
신문에도 실렸다고요?
새로운 스타일의 디자인이라고 많은 주목을 받았어요. 기존 오케스트라 포스터는 연주자에 초점을 맞춘 디자인이 많았는데, 제 디자인은 그렇지 않았거든요. 그럼에도 주제는 분명하게 드러나니까, 다들 좋게 봐줬던 것 같아요.
앞선 전람회의 그림 포스터를 원하는 대로 표현할 수 있었던 건 이 프로젝트의 성공 덕분이었겠네요.
터닝 포인트가 됐다고 할까요? 작업에 대한 탄력을 얻을 수 있었어요. 포스터를 비교해보면 아시겠지만, 거인의 태양 프로젝트 이후 진행했던 전람회의 그림의 작업물에는 좀 더 제 색깔이 강하게 드러나 있어요. 실제로 이후 전람회의 그림 작업을 보고 프로젝트 의뢰를 희망한 분도 많았고요.
인볼드의 색깔이 인정 받고 있다고 느껴지네요.
그렇죠. 점차 제 스타일을 인정받는 과정이 있었기 때문에 제 색깔에 대해 더욱 자신감을 가지고 밀고 나갈 수 있게 된 것 같아요.
자신의 색깔로 니즈를 풀어가는 것
클라이언트의 요청대로만 작업하는 스튜디오도 많을 것 같은데요. 그 편이 더 쉽지 않나요?
그렇죠. 실제로 그렇게 만드는 작업도 있기는 해요. 다만 그런 작업의 경우 따로 아카이빙에 포함시키지는 않아요.
만족스럽지 않기 때문인가요?
아무래도 좀 더 도전적이고, 제 스타일을 살리기 위해 노력한 작업에 더 만족감을 느끼죠. 그렇게 작업했을 때 좀 더 저만의 것을 만들 수 있으니까요.
그렇게 새로운 시도를 한다는 건, 필연적으로 설득이 따라오는 일일 텐데요.
욕심이 날 수록 여러 시안을 만들고 이야기하는 경우가 많아요. 설득의 연속이죠. 아직 많이 성공하는 편도 아니에요. 3할 정도라고 할까요? 그렇지만 앞으로도 이런 자세를 고수할 것 같아요. 제 색깔을 원해서 찾아오는 클라이언트도 늘고 있고, 틀렸다고 생각하지는 않아요.
계속해서 더 좋은 디자인을 만들어내기 위한 노력일까요?
좋은 디자인이란 뭘까요? 제 마음에도 만족스럽고, 클라이언트도 만족할 수 있다면 분명 좋은 디자인일 거예요. 클라이언트의 니즈를 그대로 옮기기만 하는 건 의미가 없어요. 니즈를 저만의 색깔로 풀어가는 것, 디자인이란 그런 거죠. 그래서 디자인이 재밌는 일이기도 한 거고요.
색깔을 가진 디자이너로 나아가는 것
많은 작업물에서 타이포그래피 디자인이 보이네요. 관심이 많은 것 같아요.
영문 폰트에 비해 예쁘게 느껴지는 한글 폰트는 적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게 관심의 시작이었죠. 높은 가독성을 유지하면서도 좋은 디자인을 가진 한글 타이포그래피를 만들고 싶었어요. 여력이 된다면 나중에 폰트 디자인도 하고 싶고요.
또 하고 싶은 게 있나요?
‘일상의 실천’에서 진행했던 전시를 아시나요? 작업물을 아카이빙한 전시라고 생각하시면 될 것 같은데, 디자이너로써 그런 전시를 보니 감회가 새로웠어요. 저도 언젠가 그런 아카이빙 전시를 열고 싶어요. 제가 영향을 받은 것처럼, 누군가에게 좋은 영향을 주고 싶기도 하고, 제 노력의 결실을 보여줄 수도 있는 거니까요.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다면요?
꾸준하게 이 업을 이어가고 싶어요. 디자이너의 수명은 40대다, 그런 말을 심심치 않게 들어요. 그렇지만 나이를 먹었다고 뒤쳐지고 싶지는 않아요. 계속해서 저만의 작업을 이어가는, 색깔을 가진 디자이너로 살아가기 위해 노력할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