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케팅

기획자와 디자이너, 같은 이름으로 불려야 [UXer의 현장 수업 ②]

도구의 시대는 끝났습니다

프로젝트 현장에는 매뉴얼에 없는 문제가 많습니다. 직무 사이에 애매하게 걸친 일은 누가 해야 할까요? 반복되는 재작업은 어떻게 줄이죠? 고객의 의중은 또 어떻게 읽고요? 20년 차 이상 UX 전문가 이왕수님이 ‘베테랑 UXer의 현장 수업’을 연재합니다. 수많은 프로젝트에서 겪은 노하우가 정답 없는 문제로 고민 중인 실무자들에게 참고가 되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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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장준영 | 2026.07.07 | 8분

UX 업계의 회색 지대, 덮어둘 수밖에 없는가 [UXer의 현장 수업 ①]

전통적인 직무 구분의 한계

지난 글에선 국내 UX 업계에 만연한 회색 지대 문제를 살펴봤다. 국내 UX 에이전시는 기획, 디자인, 퍼블리싱, 개발로 세분화된 직무 체계를 유지해 왔다. 직무별 전문성은 높아졌으나, 협업 과정에서 업무가 중첩되는 ‘회색 지대’가 발생하며 비효율적인 소모적 커뮤니케이션이 반복되는 한계가 있었다.

최근 생성형 AI의 도입으로 ‘생산성’이 핵심 가치가 된 만큼, 이제는 파편화된 기존의 직무 체제를 근본적으로 재편해야 할 때다. 이번 글에서는 기획과 디자인을 중심으로 UX 업계의 직무가 어떻게 개편되어야 할지 필자의 생각을 정리한다.

AI, 직무의 경계를 허무는 게임 체인저

AI가 기존 직무의 한계를 허물고 있다(자료=이왕수, AI 활용)

먼저 최근 화두가 되고 있는 AI 기술부터 짚고 넘어가보자.

UX 업계는 항상 트렌드에 민감하게 반응해야 하고, 이에 대비해야 한다. 그동안 업계에서 주목했던 다양한 신기술, 하드웨어의 발전들이 전반적인 전문성을 향상시키는데 큰 영향을 주었으며, 이에 대응하기 위해 우리는 항상 새로운 기술을 배워야 했고, 각기 영역의 전문성을 갖춘 새로운 직무 포지션을 파생시키기에 이르렀다.

가장 기억에 남는 과거 트렌드는, 20여 년 전 RIA(Rich Internet Application)가 떠오르던 당시, 플래시의 액션 스크립트 2.0을 XML을 이용하여 DB와 직접 연결할 수 있게 되면서 영화 예매 등의 실제 거래 기능을 동적인 화면과 함께 구현할 수 있게 되었을 때다. 이에 따라 기존에는 디자인 직무에 가까웠던 플래셔가, 모션 작업을 전문으로 하는 모션 그래퍼와, 개발 직무에 가까운 액션 스크립터로 세분화되었다.

그러나 AI 기술의 영향력은 지금까지와 다르다. 기술과 도구를 던져주고 사람이 이를 학습해 유행을 창출하는 것이 지금까지의 흐름이었다면, 이제는 기술 자체가 우리를 대신해 스스로 학습하여 결과물을 생성해주는 시대가 온 것이다. 물론 AI 기술 발전에 따라 업계 판도가 장기적으로 어떻게 바뀔지는 필자도 속단할 수는 없지만 한 가지 분명한 사실은, AI는 기획, 디자인, 퍼블리싱 등 영역을 구분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필자는 20년 기획자 출신으로, 최근 AI 기술을 공부하기 위해 바이브 코딩도 자체적으로 해보고 관련 교육과 세미나를 쫓아다녔다. 한 가지 느낀 건 특정 영역을 벗어난 순간 막힘이 발생했다. 분명 초기 PRD를 정의하고 프로토타입까지 생성하는 단계까지는 잘 쫓아갔는데, Supabase 플러그인을 연동하여 API 키를 생성해야 한다든지, Git을 연동한다든지, 지금까지 직접적으로 수행해본 경험이 없는 작업을 해야 할 때 당황스러웠다. 물론 어느 정도 기초적인 지식은 있었고, 결국 AI가 다 알아서 해주니 직접 개입할 여지는 적다. 단지 욕심이 생겨 깊게 파고들려고 하니, 20년차 UX 직종 근무 경험이 무색하게 사회 초년생이 된 기분이었다.

업계 전문가들은 AI가 생성해주는 결과물을 평가하고 검증하는 것이 향후 사람의 중요한 역할이라 강조한다. 그런데 매번 검증을 기획자 따로, 디자이너 따로 하면 이 또한 얼마나 소모적인 과정일까?

디자인의 본질은 설계다

UX 현장에서 디자이너와 기획자가 하는 일은 무척 비슷하다(자료=이왕수, AI 활용)

국내 UX 직종에서 찾아보기 힘든 직무가 바로 기획이다. 기획자 출신으로 UX 프로젝트 현장을 뛴 필자이지만, 늘 머릿속 한편에 남아 사라지지 않았던 질문이 있다. “과연 기획자가 필요한가?”

에이전시 입장에서 UX 프로젝트를 시작하면 무엇을 만들지 대부분은 고객사가 제시한다. 그 요건이 큰 틀에서 곧 기획이다. 물론 고객이 제시한 요건을 토대로 UX 에이전시의 기획자가 다른 방향으로 제안을 하거나 설득을 할 수는 있겠지만 최근에는 인하우스 UX 조직을 갖춘 고객사도 많아 이미 정답을 가지고 상세하게 제시하는 경우도 허다하다. 결국 기획자가 할 일은 고객이 제시한 요건(기획)을 토대로 디자인과 개발이 진해될 수 있도록 상세하게 ‘설계’하는 것인데, 이 또한 디자이너의 역할과 개발자의 역할과 중첩되곤 한다.

여기에서 한 가지 짚고 넘어갈 점이 있다. 디자인의 의미다. 디자인의 사전적 의미는 설계다. 가끔 디자인을 창작 활동이자 예술로 여기는 경우가 있다. 물론 과거 UX라는 용어가 등장하기 전 크리에이티브 디자인이 주목을 받았을 당시, 디자이너가 창작과 편집의 영역도 소화해야 했고 이는 남들이 침해할 수 없는 ‘디자이너 고유의 신성한’ 영역으로 여겨졌다. 그래서 당시 업계에서 유명한 디자이너는 대체적으로 시각 디자인이나 관련 계통을 전공한 사람들이 많았다.

그러나 지금은 다르다. 프로젝트나 사업마다 성격은 다르겠지만 UX가 중요시되는 프로젝트의 경우 디자이너는 설계자에 가깝기 때문에 기획자가 하는 역할과 매우 가깝다고 봐도 무방하다.

도구의 시대를 넘어 ‘역할’의 시대로

UX 업계의 직무는 도구가 아니라 역할로 나뉘어야 한다(자료=이왕수, AI 활용)

설계 관점에서 볼 때, 기획자와 디자이너는 사용하는 도구로 구분된다고 해도 무리가 아니다. 실제로 과거에는 신입사원이 UX 직종에 취직하면 선배로부터 툴의 사용법부터 배웠다. 그래야 실력이 좋아졌다. 요컨대 사회 경력을 쌓아야 기획과 디자인 실력이 길러졌고, 툴 사용 능력이 곧 직무 역량으로 평가받던 시기였다.

그러나 지금은 시대가 변했다. 굳이 회사 선배의 도움을 받지 않더라도 툴 사용법을 쉽게 익힐 수 있다. 툴 자체도 점점 쓰기 쉬워지고 있다. 무엇보다 대부분의 UX 툴이 기획과 디자인, 개발 등 다양한 직무를 아우르는 방향으로 발전하고 있다.

게다가 생성형 AI의 도움으로 디자이너가 기획자 도움 없이 디자인 전 단계인 와이어프레임을 구상하거나 카피라이팅을 도출할 수 있고, 반대로 기획자는 AI를 이용해 본인이 원하는 초안을 곧장 프로토타입으로 생성할 수 있게 됐다. 설령 AI의 도움을 받지 않더라도 기획자가 작성하는 UX 와이어프레임이 사실상 디자인에 가까운 결과물을 내며, 심지어 UX 관련 대학 수업에서도 기획과 디자인을 함께 가르친다.

따라서 앞으로는 사용하는 도구가 아니라 업무 특성에 따라 직무를 구분해야 한다. 그런 의미에서 기획자와 디자이너는 이제 모두 디자이너(Designer)라는 이름으로 불려야 한다고 생각한다. 디자인 이후 단계도 마찬가지다. 퍼블리싱 영역은 개발과 함께 엔지니어(Engineer)라는 영역으로 통합돼야 한다. 최근 HTML 마크업만 하는 퍼블리셔는 더 이상 필요 없다는 목소리까지 나오는 만큼, 퍼블리셔도 정적인 화면 구성에서 벗어나 프론트엔드까지 역할을 넓혀야 한다.

기획자의 새로운 정체성, 코디네이터

기획자는 직무간 협업을 돕는 코디네이터다(자료=이왕수, AI 활용)

그렇다고 기획자와 디자이너 고유의 업무를 무시하자는 것은 아니다. 특히 기획자의 경우 순수하게 기획서를 작성하여 전달하는 기본적인 업무 외에도 고객의 요구사항을 조율하고 의사결정을 지원하며, 많은 이해관계가 얽혀 있는 프로젝트 현장에서 원활한 협업을 유도하는 ‘코디네이팅’ 역할을 수행할 수 있어야 한다. 그래서 설계 능력 말고도 세련된 커뮤니케이션 능력이 요구됐고, 이로 인해 기획자들이 대부분 프로젝트에서 PM을 하거나 전체 리딩을 하는 경우가 많았다.

여담이지만 의사소통의 접점(HUB)에 있다 보면 많은 진통과 불협화음이 발생하는데, 필자는 이 과정에서 생기는 다양한 이슈를 해결하고 조율해 나가는 과정이 즐거웠다. 별로 티는 나지 않는데 없으면 바로 티가 나는, 그런 은은한 매력을 느꼈다고 해야 할까. 기획자의 길을 선택하기 전에는 사람들 앞에서 말 한마디도 못하는 성격이었는데, 선택한 직업 덕분(?)에 어느 순간부터인가 의사소통을 주도하는 성격으로 변했던 것 같다(MBTI가 ENFJ인데 극단적인 E인 케이스라, 아마 기획자를 하지 않았다면 분명 I로 남았을 듯 싶다).

마치며

AI 시대에 UX 업계의 과감한 대응이 필요하다(자료=이왕수, AI 활용)

기획자와 디자이너를 모두 디자이너로 부르자는 제안이 급진적이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여전히 많은 기업이 기획, 디자인, 퍼블리싱, 개발 구조를 유지한 탓에 소모적인 비용을 치르고 있다. AI 기술이 직무의 경계를 빠르게 허물고 있는 만큼 과감한 대응이 필요한 때다.

물론 말처럼 쉬운 일은 아니다. 속도 경쟁에 치이는 국내 UX 업계의 현실적인 상황을 고려하면 더욱 이해가 간다. 그러나 생산성 향상과 비용 절감이라는 두마리 토끼를 모두 잡기 위해선 업무 프로세스의 실질적인 변화가 필요하다. 우리가 어떻게 일을 했고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지 실무 레벨까지 들여다 봐야 한다.

다음 글에서는 개편되는 조직에서 주니어 디자이너와 시니어 디자이너가 어떻게 공생해야 할지 살펴보고자 한다.

이왕수

2004년부터 현재까지, 20년 넘게 UX 업종 외길 인생을 걸어온 베테랑 UX 전문가다. 현재는 개인 자격으로 UX 프로젝트 수행, 각종 미디어 기고, 온·오프라인 강연 활동을 하고 있다. 그간의 경험에서 인사이트를 발굴한 뒤 현실적인 관점으로 풀어내 국내 UX 산업 발전에 보탬이 되고자 한다.

■ 全 미디어포스얼라이언스 UX컨설팅 총괄 이사
■ 전문 분야: UX 컨설팅, PM, UX 기획, 프로젝트 품질관리, QA
■ 대표 프로젝트 : 신한카드, IBK기업은행, NH농협은행, 삼성SDS, SC제일은행, SK네트웍스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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