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I·UX 디자인 특화 폰트 ‘SD 민부리’는 어떻게 만들어졌을까?
국내 유일 다국어 배리어블 폰트… SD 민부리 디자인팀 인터뷰
폰트는 UI·UX 디자인에서 사용자의 경험을 결정 짓는 핵심적인 역할을 담당한다. 하지만 많은 디자이너가 자신이 원하는 폰트를 찾지 못하거나, 그 중요성을 충분히 인지하지 못해 디자인 과정에서 폰트의 중요성을 놓치곤 한다.
이런 문제를 인지하고 사용성에 중심을 둔 디자인 철학에 기반해 디지털 환경에 최적화된 서체를 선보인 기업이 있다. 바로 산돌이다. 최근 산돌은 빠르게 확장되고 다양해진 폰트 사용 환경을 반영한 새로운 폰트 ‘SD 민부리’를 공개했다.
SD 민부리는 지난달 10일에 출시된 산돌의 최신 배리어블 폰트다. 간결하고도 기하적인 디자인을 갖춘 것은 물론, 국내 유일 다국어 지원 배리어블 폰트인만큼 디자이너가 상황과 목적에 맞춰, 여러 스타일과 굵기를 축으로 설정해 다양한 스타일의 폰트를 만들어낼 수 있다. 산돌이 SD 민부리를 ‘UI·UX 디자인을 위한 다국어 폰트’라고 소개한 이유다.
지난달 12일 산돌은 주최한 ‘2024 산돌 사이시옷: 타입 컨퍼런스’에서 “배리어블 폰트 기술 자체는 해외에서 나온 지 조금 시간이 지난 기술이지만 아는 분들이 많이 없는 것은 물론, 활용 방법을 몰라 못 쓰는 사용자도 많다”며 산돌은 이런 기술들을 점점 더 널리 알리고 싶기에 다양한 시도를 하고 있다”며 여러 기술들을 조명해 국내 폰트 산업에 이바지하겠다고 밝혔다.
그리고 이날 산돌 사이시옷 컨퍼런스로 기회가 닿아 SD 민부리 프로젝트를 이끌었던 이유빈 PD와 현대카드, 삼성, LG 등 국내 굵직한 기업의 브랜드 전용 한글 서체를 개발했던 권경석 산돌 이사를 만날 수 있다.
과연 산돌이 오랜 시간 고수해온 ‘사용성 중심 철학’은 과연 폰트 속에 어떻게 녹아들었을까? UI·UX 디자이너들의 폰트 고민을 해결해줄 SD 민부리의 개발 이야기를 직접 들어보았다.
산돌의 새로운 대표 본문용 다국어 폰트 SD 민부리
최근 정말 독특한 폰트 명칭이 많아졌지만, 이번 SD 민부리는 특히나 더 낯설고 독특한 명칭인 것 같습니다. 어떻게 ‘민부리’라는 폰트 이름을 짓게 됐나요?
이유빈(이하 이): 민부리는 ‘없다’ 라는 의미의 접두사 ‘민’과 한글의 ‘부리’의 합성어인데요. 영문 폰트의 대표격이자 고딕이라고도 불리는 ‘산세리프’와 대응되는 개념입니다. 13년 전에 앞서 발표된 산돌고딕 네오 시리즈의 뒤를 잇는 UI·UX 디자인 환경과 화면을 위한 산돌의 새로운 본문용 다국어 폰트라는 포부도 담겨져 있습니다.
SD 민부리가 UI·UX 디자인을 위한 폰트라고 하셨는데 어떤 점에서 특화돼 있나요?
이: 일단 SD 민부리가 여러 스타일과 굵기를 축으로 설정하고 수많은 폰트를 만들어낼 수 있는 ‘배리어블 폰트’라는 점이 가장 큰 특화 요소라고 생각합니다. UI·UX 디자인 과정에선 텍스트의 위계도 많이 나눠지고, 본문뿐만 아니라 제목을 포함해 다양한 곳에 폰트를 사용하게 됩니다.
기존엔 여러 폰트를 혼재해 사용했죠. 때문에 통일성을 해친다거나 관리가 힘들거나 매번 새로운 폰트들을 찾아야 한다는 등의 문제가 있었는데요. 하지만 SD 민부리는 자유롭게 변형이 가능하기 때문에 큰 도움이 됩니다.
그럼 SD 민부리는 배리어블 폰트라는 점 이외에 다른 강점은 없을까요?
권경석(이하 권): 기하학적인 모습도 SD 민부리의 특징이죠. SD 민부리는 기존의 뉴트럴한(중립적인 색상이나 단순한 구조 등으로 사용자에게 편안한 느낌을 주는 디자인) 뼈대를 유지하면서도 기하학적인 특징을 반영한 디자인, 즉 화면에 어색함이 없이 잘 어울릴 수 있도록 디자인됐습니다. 사실 SD 민부리가 지금의 모습을 갖추게 된 것도 워크숍과 인터뷰를 통해 다양한 분야에서 디자이너들의 의견을 조사하고 종합해 내리게 된 결과입니다.
제작 과정에서 어떤 리서치가 이뤄졌나요?
이: 대표적으로 기존 본문용 폰트 예시들로 블라인드 테스트를 진행했던 게 기억에 남습니다. 조사 결과 산돌고딕 네오1, 노토 산스, 윤고딕 순으로 뉴트럴해 보인다는 답변을 얻을 수 있었습니다.
이를 토대로 시장 조사를 진행해 정말 많은 디자이너가 3개의 폰트를 사용하고 있었다는 현황을 확인했고, 추가로 몇 년 동안의 다양한 브랜딩 사례와 기업 전용 폰트들을 조사하면서 최근 기하학적인 인상의 폰트 수요가 늘어났음도 알 수 있었습니다.
폰트 제작에도 사용성과 사용자 조사를 중시한 것이군요. 차별점들이 더 있을까요?
이: 숫자 디자인에도 고민이 많았는데요. 가변폭과 고정폭 숫자 사이에서의 고민이었습니다. 결국 국내외 폰트를 리서치한 결과 최근 웹과 앱 특히 앱 내에서 정렬된 숫자 데이터 사용이 늘어나면서 고정폭 숫자에 대한 수요가 많이 늘어난 것을 확인할 수 있었는데요. 이를 바탕으로 고정폭 숫자를 기본으로 제작하되, 가변폭 숫자를 설정을 통해 추가 제공하는 것으로 최종 결정했습니다.
방금 전에 SD 민부리가 다국어 폰트라고 말씀하셨는데, 어떤 특징이 있기에 다국어 폰트가 됐나요?
이: SD 민부리는 다양한 언어 세트를 지원하는 것을 목표로 디자인된 다국어 폰트인데요. 시각적 일관성을 유지하기 위해 모든 언어별 문자의 ‘시각 중심선’을 중앙에 맞춰 디자인했습니다. 또한 스페이스 축을 언어 별로 각각 제공하여 상황에 따라 속공간 크기를 다르게 조정할 수 있도록 했죠.
산돌이 SD 민부리의 다국어 기능에 공들인 특별한 이유가 있을까요?
권: 한글과 영문은 서로 높이와 너비는 물론 기준선도 다르거든요. 때문에 그동안 업계는 주로 여러 폰트를 하나의 디자인 안에 조합해 사용하는 소위 ‘섞어짜기’를 해왔습니다. 그런데 섞어짜기는 오프라인에선 통할지 몰라도, 요즘 같은 웹 환경에선 잘 작동하지 않는 경우가 종종 있습니다. 일일이 값을 설정해 줘야 하는 번거로움도 있죠.
그리고 지금 폰트 환경은 굉장히 국제적으로 변하고 있는데요. 그러다 보니 다국어의 지원이나 멀티랭귀지 조합을 어떻게 만드냐가 굉장히 큰 관건입니다. 문자라는 것은 하나의 문화이기 때문에 다양한 문화를 하나의 폰트로 조화롭게 만드는 일은 되게 어려우면서도 중요한 일이기에 소홀히 할 수 없죠.
산돌이 본 폰트 환경의 변화
폰트 환경 변화를 언급하셨는데 어떤 변화가 있었나요?
이: 나무 활자와 붓글씨, 납 활자, 사진 식자를 거쳐 컴퓨터를 이용해 폰트를 제작하는 지금까지 서체를 둘러싼 환경에 큰 변화가 있었죠. 특히 디지털 매체의 등장에 폰트가 폭발적으로 변화하고 성장했습니다. 책, 신문 등 지류를 넘어서 스크린, 즉 화면이 등장하고 화질도 함께 높아졌기 때문인데요. 이외에도 인터넷의 발달로 인해 글로벌화가 진행되면서 폰트를 디자인할 때, 더욱 다양한 환경과 언어권을 고려할 수밖에 없게 됐습니다.
UI 디자인 업계의 변화와도 비슷한 것 같네요.
이: 네, 실제 UI 디자인은 화면을 비롯한 사용자의 환경이 다채로워지면서 일관되고 안정적으로 정보를 전달하고자 하는 경향이 강해졌고, 때문에 ‘미니멀’과 ‘뉴트럴’이 하나의 큰 흐름으로 자리 잡았습니다.
이런 UI 디자인의 흐름 변화는 폰트 업계에도 큰 영향을 줬는데요. 웹 기반 환경에서 다양한 그래픽 요소를 활용할 수 있게 되면서 다양한 요소를 하나로 묶어줄 수 있는 간결한 프레임에 대한 요구가 늘어났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환경 변화에 따라 폰트 디자인은 어떻게 변할 것이라 생각하시나요?
이: 배리어블 폰트처럼 새롭게 등장하는 기술도 있다면 동시에 사라지는 기술들도 있을 것 같은데요. 예를 들면 웹 화면에서 글자의 뭉개짐이나 왜곡 현상 없이 가독성을 유지하는 ‘힌팅’은 아직 유효한 기술이긴 하지만 저화질 화면에서나 필요한 기술입니다. 그런데 이제 사람들이 점점 더 고화질 화면을 사용하게 되면서 그 수요가 줄어들 것이라 생각합니다.
권: 비슷하게 ‘잉크 트랩’ 디자인 역시 향후 수요가 줄어들 것이라고 생각하는 디자인 요소 중 하나입니다. 과거 인쇄 기술이 좋지 못했던 시절에 잉크의 번짐을 방지하기 위해 설계된 요소여서 점점 디지털 비중이 높아지고, 인쇄 기술이 발전한 지금엔 기능을 잃고 있기 때문이죠.
사용성을 중시한 산돌
폰트 디자인에서도 사용성을 중시하는 점이 인상적입니다.
권: 산돌 폰트 디자인의 공통점이죠. 산돌 디자이너들이 공통적으로 지향하는 폰트에 대한 생각은 훈민정음혜래본에서도 잘 나와 있어요. 세종대왕께선 백성들이 쉽게 배우고 쓰게 하기 위해서 한글을 만들었죠. 어떻게 보면 500년 전에 디자인 철학을 이야기한 것인데요. 그걸 저희 산돌도 이어 받아 항상 쉬운 인터페이스, 좋은 접근성을 지향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좋은 접근성, 사용성 등은 요즘 분야를 막론하고 필수 요소가 아닌가요?
권: 다른 분야도 그렇겠지만 폰트 역시 연구 조사에 굉장한 투자가 필요합니다. 시간도 오래 걸리고요. 때문에 과거 폰트 시장의 형태는 공급자가 자기 마음대로 폰트를 만들면, 소비자가 알아서 사서 사용하는 형태였습니다. 다들 사용자의 생각 같은 건 알고 싶어 하지 않았죠.
당시엔 지금처럼 공급이 많지도 않았고, 경쟁도 없었습니다. 사용자들은 그냥 울며 겨자 먹기로 쓸 수밖에 없었죠. 그때 산돌이 생각의 전환을 했습니다. ‘사용자들이 우리 폰트를 어떻게 쓰고 있는지 알아야 되겠다’고 말이죠. 매일 편집 회사들을 돌아다니면서 조사 취지를 설명하고 폰트 사용의 애로사항을 듣고 피드백을 받았습니다.
충격적인 과거군요. 그렇다면 산돌이 그렇게 사용성을 중시했던 이유는 무엇인가요?
권: 아무래도 산돌이 해외 업체들과 프로젝트를 진행하면서 생각이 많이 바뀌지 않았나 생각합니다. 산돌이 제일 잘하는 것 중 하나가 해외 업체에 한글 폰트를 수출하는 일이기에 국내를 넘어 해외 기준에 폰트 사용성을 맞춰갈 필요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과거에 제작하셨던 산돌 네오 시리즈도 일맥상통한 이야기군요.
권: 네, 산돌 고딕 네오도 제작 과정에서 사용자들의 사용성 피드백에 귀 기울이고 본문용 폰트가 갖는 기본적인 틀에 사용자들의 요구와 연구 자료를 녹여냈고, 현대적인 고딕체를 만들어졌습니다.
지금도 많은 디자이너가 원하는 폰트를 찾지 못해 마음고생들이 심한데요. 좋은 팁이 있을까요?
이: 저도 ‘폰트를 쓰고 싶은데 어떻게 찾아야 할지 모르겠다’ ‘내가 필요한 폰트가 없는 것 같다’라는 말을 굉장히 많이 듣는데요. 폰트 디자이너 입장으로서 조금 안타깝다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굉장히 많은 기능과 기술들을 고려해 디자인을 했는데 사람들이 잘 알아주지 않는다는 생각이 들기도 해서 말이죠. 좀 더 폰트를 주의 깊게 살펴보는 사람들이 많아지면 좋을 것 같습니다.
권: 보통 본문 서체의 경우, 사람들이 변화하기 꺼려 합니다. 특히 본문 서체는 스타일과 결부돼 있기 때문에 쉽게 바뀌지 않죠. 저마다 철학이 있고, 방식이 있기 때문에 새로운 폰트에 대해선 개선점이 오히려 장애물이 되는 경우도 있는데요.
때문에 특별하게 폰트를 연구한다기보단 최종 결과물, 예를 들면 포스터를 봤을 때 포스터가 너무 좋았다면 무슨 폰트를 어떻게 썼을지, 누가 썼을지 등을 알아보려는 등의 접근 방식을 가지는 게 좋을 것 같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저희도 더 좋고 많은 폰트를 쉽게 소개할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하죠.
그렇다면 마지막으로 폰트 하나씩 추천 부탁드립니다!
이: 개인적인 취향은 ‘그레타 산스’를 정말 좋아합니다. 사실 다양한 폰트를 사랑해야 할 폰트 디자이너임에도 불구하고 그레타 산스가 너무 좋아서 학생 때도 자주 썼고, 심지어 지금은 메신저까지 적용해서 사용을 하고 있어요. 인간적인 터치가 남아 있는 고딕체가 많이 없다고 생각하는데, 그런 부분을 그레타 산스가 잘 채워줘서 잘 사용하고 있습니다.
권: 추천한다면 산돌 정체 시리즈를 추천합니다. 과거에는 산돌 정체는 약간 궁체 비슷하면서도 명조체 느낌의 고전적인 부분이 있어 매력적입니다. 명조 폰트가 인기였다가 지금엔 고딕, 산세리프 폰트가 유행하고 있는데요. 유행은 돌고 도는 것이니깐 언젠가 다시 정체 같은 폰트도 주목을 받을 날이 오지 않을까 생각합니다.